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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27)화 (25/130)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2장. 실전 돌입 전 필수 예제 (13)

기드언은 푹 잤다. 비록 시간은 짧았으나 수면의 질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지난밤, 몹시 흡족하고 배부른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 오늘도 여지없이 텅 비어 있는 침대 옆자리를 확인한 순간, 그의 양 눈썹은 구겨졌다.

‘또 살쾡이같이 혼자만 빠져나갔네.’

배우자에게 취미가 있다는 건 꽤 괜찮은 일이다. 그게 운동처럼 건강한 취미라면 더없이 좋다.

물론 가끔은 소외되고 방치된 기분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결혼은 장기전이다.

결혼 생활이 늘 원만할 수도 없고.

그러니 건강한 하루를 영위할 수 있는 버팀목은 여기저기 만들어 놔도 나쁘지 않다.

힘든 일이 닥쳤을 때 다른 영역에서 활력을 찾고 다시금 일상을 지켜 나가는 배우자를 보는 건, 상대에게도 고무적인 일이다.

기드언은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는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타티아나가 푹 빠져 있는 분야에 대한 이해도도 높았다.

그녀에게서 검과 운동을 뺏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좀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타티아나는 검술에 관한 것만 건드리지 않으면 누구와도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반대로 검술을 건드리면 어떤 누구와도 못 살 사람이었다.

그러니 참아야 한다는 것을 기드언도 아는데…….

실질적인 첫날밤을 보낸 다음 날까지 이러는 건 좀 너무한 게 아닐까?

아내가 너무 다른 곳만 바라보는 남자의 아침은 외로웠다.

게다가 그를 진짜로 어이없게 하는 건 하나 더 있었다.

‘운동을 할 힘이…… 남아 있었다는 거네? 근데 그만하고 자자고 해?’

왕자비에 이어 1왕자가 침실 문을 열고 나오자, 시녀들은 ‘호오’ 하며 입 모양으로 감탄을 표했다.

타티아나가 사냥을 마치고 나온 느른한 암사자 같았다면, 기드언은 자신의 영역을 벗어난 암컷을 되찾기 위해 쫓아온 수사자 같았다.

그리고 그의 육감적인 등에 길게 나 있는 손톱자국을 본 순간, 시녀들은 또 한 번 헛숨을 삼켜야 했다.

온통 얼룩덜룩했던 왕자비의 몸에 비하면 양호했지만, 이상하게도 저쪽이 훨씬 더 선정적이고 야했다.

기드언은 바지만 꿰어 입은 채로 방 안을 끝에서 끝까지 왔다 갔다 했다.

분명히 저장고에 잘 숨겨 놨는데, 한눈을 판 사이 탈출해 버린 사냥감을 찾듯이.

그는 눈썹을 찌푸리며 시녀들에게 물었다.

“티티.”

“……예?”

“내 비, 어디 있냐고.”

얼음 조각 같은 눈동자에 미약한 짜증이 어리자, 이자벨은 얼른 시녀들 앞으로 나섰다.

사실 행선지야 뻔했으니 이건 하나 마나 한 대답이었다.

“연무장에 가셨습니다. 그런데…….”

“뭐.”

“오늘은 검도 들고 가셨습니다.”

전쟁 영웅의 딸은 확신의 운동중독자였으나, 본인의 무위를 제대로 뽐낸 적이 없다.

늘 기초적인 운동에 매진할 뿐, 검 자체를 활용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성에 온 이후로는 나방을 잡을 때, 아마 그 한 번이 전부였을 것이다.

모두는 그 사실을 의아하게 여겼고, 기드언도 마찬가지였으나 그는 그녀를 재촉하지 않았다.

무대의 연주자가 첫 건반을 눌러 주길 기다리는 마음으로, 번데기가 된 애벌레가 탈피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마음으로 그냥 가만히 있었을 뿐이다.

한데 타티아나가 오늘에서야 비로소 검을 들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면 그 또한 이상하다.

첫날밤을 보낸 여자가 아침부터 난데없이 칼춤이 추고 싶어졌다면…… 기분 좋게 잠들었던 상대편 남자는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기드언은 따라오는 시종들을 모두 물리고 연무장으로 향했다.

아침 이슬로 촉촉해진 잔디를 밟으며 안으로 들어선 순간, 기드언은 아주 잠시 눈을 감아야만 했다.

햇살이 너무 찬란하고 눈부셔서였다.

타티아나는 그 한복판에 올곧은 자세로 서 있었다.

이미 혼자서 뭘 거하게 한 판 했는지 상의가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기분 좋은 아침 공기, 그림 같은 풍경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았고 의식하지 못한 사이 그들의 눈가에는 웃음기가 스몄다.

‘나 그냥 가요?’

기드언은 출구를 손으로 가리키며 입 모양으로 물었다.

정말로 자리를 피해 줄 생각은 없었지만, 혹시라도 그녀가 원한다면 다른 방법이 있었다.

그에게는 관람을 위한 로열석이 마련되어 있으니 거기 착석하면 모든 게 말끔히 해결될 일이었다.

타티아나는 아주 잠시 고민에 잠겼다.

그녀는 기드언이 오기 전까지 머릿속으로 아버지가 남긴 검술서의 책장을 넘기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중에 그만, 예기치 못한 관객이 생겨 버린 것이다.

‘난 사람들한테 내 실력을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뽐내고 싶지도 않고 평가받고 싶지도 않아. 그리고 그중에서도 당신은 특히 부담스러워.’

타티아나는 흠, 웃으며 기다란 검을 다시 한번 허공으로 뻗어 보았다.

세상에 100명의 사람이 존재한다면, 옥석을 가리는 눈은 10명 정도에게만 있다.

저 기사의 어떤 면이 대단한지, 무엇이 부족한지 이유를 댈 수 있는 사람은 그보다도 적다.

아마 다섯도 채 되지 않겠지.

마지막으로 그 취약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해결 방안까지 제시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면 1, 2명쯤 되려나.

물론 1명도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공평하게도 입은 100명 모두에게 있다.

타티아나는 그 아흔여덟, 아흔아홉의 말이 가끔은 좀 지겨웠다.

한때 그들을 개구리에 빗댔던 건 사람들이 정말 개구리라 생각하며 무시한 게 아니다.

단지 자기 자신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였을 뿐이다.

사람들이 떠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구나, 여겨야지. 일희일비해 봐야 자기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니까.

대신 옥석을 가리는 눈은 타티아나에게도 필요했다.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백 마디의 말 중에서 한 마디의 가치 있는 조언을 가려 내야만 했다.

한데 참 골치 아픈 건 조언을 해 줄 정도의 자격, 안목, 혜안이 있는 자들은 대체로 남에게 말을 아낀다는 거다.

이 무슨 이상한 세상사인지.

그런데 그녀는 그런 사람을 아주 멀리서 찾을 필요는 없었다.

기드언은 그녀가 지금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 정도는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래서 타티아나는 좀 부끄럽긴 했지만…… 그냥 여과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 주기로 했다.

‘잘 봐요.’

난 사람들의 조소나 비아냥이 무섭지 않아요. 좀 피곤하고 서글플 때는 있었지만 두려운 건 아녜요.

만약 내가 그게 무서웠다면 당신 앞에선 더욱 몸을 사려야 하는 게 아니겠어요?

당신이야말로 내 진짜 허점을 순식간에 간파하고, 그 틈을 노릴 수 있는 사람인데.

타티아나는 한쪽 입술을 가만히 끌어 올리더니, 들고 있던 검을 허공에 휘둘렀다.

초승달을 닮은 긴 궤적이었다.

기드언은 저게 무엇을 알리는 신호인지 안다.

저것은 블룸 가의 검법이다.

살아생전 블룸 경이 구사하고, 간략하게나마 글로 남겨 놓은 그들 고유의 검술.

하지만 자신 있게 휘둘렀던 것과는 달리 타티아나의 검 끝은 흔들렸다.

짧은 찰나였고 일반인은 결코 알아볼 수 없는 미세한 차이였으나 기드언의 눈에는 명확하게 보였다.

그는 그 이유도 짐작할 수 있다.

저건 호흡이 아직 정돈되지 않았거나, 검을 든 자가 생각이 너무 많아서다.

주인의 의지가 명확하지 않으면 검은 제 갈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

만약 이게 아니라면…….

‘한동안 검을 손에서 놨군.’

그것도 꽤 오래. 적지 않은 시간.

그런데 왜?

기드언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서서히,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그녀의 움직임에 빠져들었다.

마치 어린 시절, 그들이 처음 만났던 날과 같았다.

타티아나는 자신의 검로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몇 번이나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본인이 만족할 때까지 타협하지 않는 얼굴은 평상시와 달리 몹시도 고집스러웠다.

그리고 그녀의 몸이 슬슬 이 검술을 기억해 내는 것일까.

타티아나가 기어이 안정적인 궤적을 그려 내자 기드언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만하면 됐어. 창시자도 그 정도로 완벽하게는 안 했어.’

아마 블룸 경은 저 동작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타티아나는 그 동작을 뼛골에 새기기라도 할 것처럼 몇 번 더 반복하더니 한참 후에야 다른 자세를 취했다.

머릿속에 펼쳐져 있는 검법서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기 위하여.

기드언도 이다음을 잘 알고 있었다.

블룸 경의 제자인지라 직접 배운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검법서 또한 읽어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블룸 경이 본인의 검술에 대해 남긴 그 저서는 사실 굉장히 불친절하다.

기드언은 왕후에게 블룸은 뛰어난 전략가이자 영민한 사람이었다고 두둔한 바 있으나, 이 자리엔 왕후가 없으니 그냥 솔직해지자.

블룸은 머리는 좋았으나 글이나 저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의 저서는 애초에 초심자용도 아니었다.

검을 쥐는 방법부터 호흡법까지 하나하나 떠먹여 주진 않는다는 거다.

그렇다고 왕실 친위대 기사들이 그대로 따라 하자니, 그것도 무리가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전쟁의 밑바닥에서 피어난 블룸의 검술은 몹시도 실용적이었다. 가끔은 너무나 호방한 나머지 거칠기까지 했다.

그동안 엘리트 교육만 받아 온 기사들이 복제하기에는 위험부담이 컸다.

함부로 흡수했다가는 애써 쌓아 온 기반까지 흔들릴지도 모른다.

그나마 흉내라도 낼 수 있는 이가 있다면 기드언과 타티아나 정도일 텐데.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블룸의 검술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접해 왔으니까.

두 사람은 그 검술의 원리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으니까…….

그 순간, 기드언에게는 타티아나가 겪고 있는 문제가 어렴풋이 보였다.

‘너…… 몸에 균형이 무너졌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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