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3장. 그때를 조심하라 (4)
“이제 안 아파요?”
“……원래도 아픈 건 아니었어요.”
“근데 아침엔 왜 울었어요.”
“전혀요? 안 울었는데요?”
“너 울었어.”
기드언이 확실하게 정정하자, 타티아나는 뚱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불과 몇 시간 전 일어난 일을 놓고 시치미를 뗄 만큼 낯이 두껍지는 못했다.
멀쩡한 문을 두고 ‘고장 났나 봐요’ 하는 태연함은 아무한테나 나올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기드언은 그녀의 허리를 마사지하듯 살살 주무르다가 얇은 천 틈새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그러고는 몰랑한 감촉을 조심스레 확인해 본 뒤 말했다.
“부은 것 같은데.”
“괜찮다니까요.”
“그럼 오늘 밤에도 할 수 있어요?”
“…….”
“티티.”
타티아나는 눈을 깜빡깜빡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약간 창피했는지 정수리로 그의 가슴팍을 들이받았다. 진짜 퍽, 하고.
결코 가볍지 않은 타격감이었으나 기드언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래도 되나 고민하면서도 결국엔 솔직하게 대답하는 쪽을 택하는, 저 선명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타티아나는 그 뒤로도 자그마한 머리통을 그의 가슴팍에 문질렀다.
단지 쑥스러워서였겠지만, 기드언에게는 이게 꼭 자신을 부추기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그는 손끝을 조금 더 세우며 말했다.
“이렇게만 할게요. 나머지는 밤에 하고.”
“…….”
“응? 하게 해 줘요.”
“……응.”
타티아나는 그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듯 몸에서 스르륵, 힘을 풀었다.
그 몸짓과 눈빛에선 어떠한 거부감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손이 다시 움직이자 그녀는 어찌할 수 없이 눈과 코를 찡그리고 말았다.
안쓰러움을 자아내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기드언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몸은 표정과 별개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둘러싼 공기가 습해졌고, 이불에는 그 징표가 번져 가고 있었다.
“앞으로 향유는 안 써도 될 것 같아요.”
“……이건, 으응, 그래도 밤엔 써야 해요.”
“왜. 밤엔 뭐가 좀 달라? 괜찮을 것 같은데.”
타티아나는 그의 어깨에 뺨을 댄 채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럼 다르지. 어떻게 같아. 이따 밤엔 제대로 할 거잖아.
그 부피감과 존재감의 차이를 기드언은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타티아나가 계속 고개를 젓자 기드언은 뒤늦게 그녀를 달랬다.
알았어, 알았어요, 밤엔 쓸게요, 웃음기가 묻어 있는 음성으로.
그러나 타티아나는 조금씩 달뜬 소리를 흘리면서도 그에게 완전히 집중하지 못했다.
눈동자를 굴리며 주위를 살피더니 나중엔 입술을 지그시 깨물기까지 했다.
기드언은 그녀의 아랫입술을 엄지로 문지르며 물었다.
“소리 안 참아도 돼요. 낮이라 창피해요?”
“……밖에, 흐, 들리잖아요.”
“시녀들은 티티처럼 귀가 밝지 않아요.”
“아니, 거기 말고. 처마에 누구 매달려 있잖아요.”
기드언은 손을 잠시 멈추었다.
실제로 그는 침실 밖에 호위들을 배치해 두었기 때문이다.
그걸 그녀가 눈치채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지만 곱씹어 보자니 좀 이상한 게 있다.
시녀들과 놀 때는 온통 정신이 팔려서 사람이 오는 것도 모르더니, 지금은 호위가 어디 숨었는지까지 알아?
나한테 집중을 못 하네? 내가 시녀들보다 재미가 없어?
기드언은 심사가 많이 불편해져서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러면서도 손으로는 계속 그녀를 어루만졌다.
“커튼 쳐서 보이는 건 없을 텐데……. 많이 신경 쓰이면 내가 얼른 가서 죽이고 올까요?”
“죽일 거면, 흣, 제가 죽였죠, 전하 손은 안 빌릴 거예요.”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기드언은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그리고 너 정말 그 말에 떳떳하냐는 듯 그녀의 귀에 속살댔다.
“그래? 그럼 지금 이건 누구 손인데.”
“…….”
“그거랑 이거랑은 달라?”
“아앗, 흐읏, 살살 해!”
“미안. 근데 이제 나한테 반말하기로 했어?”
기드언은 입으로는 그녀를 놀리면서도 다시금 부드럽게 그녀의 피부를 훑었다.
타티아나는 참고 있던 달뜬 소리를 토해 내듯 쏟아 냈고, 그녀의 몸은 움칠, 움칠하다가 천천히 곱아들었다.
기드언은 맛있는 음식을 바라보듯 그 광경을 탐욕스럽게 지켜보았다. 그리고 손수건을 꺼내 말끔히 닦더니 다시금 품 안으로 집어넣어 버렸다.
타티아나는 깜짝 놀라서 아직 잔떨림이 채 가시지 않은 몸을 일으켰다.
“그걸 왜 다시 챙겨요.”
“소장품.”
“……버려요.”
그녀는 말에 그치지 않고 그에게서 직접 손수건을 빼앗으려 들었다. 그의 어깨를 밀치더니 아예 몸 위로 올라타기까지 했다.
기드언은 그 날렵하고 군더더기 없는 손놀림을 막으며 생각했다.
‘……장난이 아닌데?’
아내랑 침대에서 아웅다웅하다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남자가 이 세상에 흔할까?
기드언에게 정말로 다행인 건, 그녀가 그를 힘으로는 당해 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저기 벽에 모셔 둔 검을 가져오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타티아나도 아직 남편을 죽일 생각까진 없는 것 같았다.
기드언은 그녀의 팔목을 단단히 붙들며 말했다.
“그만. 우리는 이러면 안 돼요. 장난으로 안 끝나.”
“…….”
“폭력 금지. 베개 싸움도 금지예요.”
“……베개도 안 돼요?”
“응, 안 돼.”
타티아나는 샐쭉한 얼굴로 손에서 힘을 풀었다. 그렇지만 그의 품 안에 있는 손수건을 포기하진 않았다.
기드언은 그냥 빼앗아 가게 내버려 두며 그녀를 다시 옆에 눕혔다.
그리고 옷자락과 머리칼을 정리해 주며 뒤늦게 여운을 즐겼다.
귓바퀴와 귓불을 오가는 그의 손가락은 상냥하다. 뺨에 내려앉는 입맞춤도 부드럽기만 했다.
표정도 평소보단 풀어져 있고, 눈가엔 즐거운 기색이 스며 있다.
만약 그가 조금 더 표현이 풍부한 사람이었다면 지금쯤 본인도 모르게 허밍을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타티아나는 그가 기분이 아주 좋은 상태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게 좀 신기했다. 그녀는 그에게 아무것도 해 준 게 없었기 때문이다.
아까 그 행위는 어떤 면에선 한쪽의 일방적인 봉사가 아닐까? 아니면 노동?
“전하는요…….”
“응.”
“저 해 주는 거 좋아요? 아까 한 거요.”
“……티티는 싫었어요?”
“아니, 좋았는데…….”
“…….”
“이건 저만 좋은 거잖아요.”
타티아나가 정말로 궁금하다는 듯 묻자 기드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불룩해진 바지 앞섶을 보고도 이런 질문이 나오는 건가 싶기는 했지만, 그들은 성애에 첫발을 들인 젊은 남녀였다.
모든 것이 경이롭고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기드언은 타티아나가 그 새로운 경험에서 비롯되는 호기심과 의문을 자신과 나누고자 하는 게 싫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음, 정확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
“내가 비를 만족시켰다는 데에서 오는 쾌감 같은 게 있습니다.”
“…….”
“대답이 되나요?”
타티아나는 으음, 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기드언은 아주 중요한 말을 덧붙였다.
“그런 남자는 나 하나였으면 좋겠어요.”
물론 앞으로도 계속 한 명이긴 할 것이다.
기드언은 그 사실을 의심치 않았다. 생기는 족족 뒤에서 다 죽여 버릴 생각이니까.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기드언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워졌다.
정말로 콧노래라도 흥얼거릴 것 같은 표정으로 그는 눈웃음을 치며 물었다.
“요즘 뭐 필요한 거나 갖고 싶은 건 없어요? 특별히 먹고 싶은 거라도.”
아내한텐 뭘 해 주면 좋을까. 원하는 건 전부 다 줄 수 있는데.
양손잡이니까 검을 하나 더 제작해 줄까. 아니면 아주 예쁜 갑옷을 하나 선물할까.
도마뱀이 좋다니 성에 풀어 놓고 키우라고 한 마리 안겨 주면 되나.
왜 죄다 이따위일까나.
쉽지 않다는 듯 한숨을 쉬던 기드언은 꽤 그럴듯한 제안을 한 가지 떠올렸다.
“친구들 초대할래요?”
“친구들이요?”
“파티에서 인사했잖아요. 불러서 같이 식사나 합시다.”
상대의 환심을 사고 싶을 때 그 주변 사람을 공략하는 건 성공 확률이 꽤 높은 전략이었다.
게다가 기드언은 타티아나가 친구들을 반가이 맞이하는 모습이 좀 신기했다.
예전에 외톨이처럼 혼자 울던 그 꼬마는 언제 이렇게 다 커서 친구를 사귀었을까?
하긴. 생각해 보면 그녀는 어릴 때부터 성격이 좋았다.
과도한 관심 속에서 성장한 아이는 성격이 비뚤어지기 십상인데, 타티아나는 모난 곳이 없었고 콧대 높게 굴지도 않았다.
비슷한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모난 곳도 있고, 콧대도 높고, 주위 사람도 잘 못 믿는 기드언은 타티아나 때문이라면 안 하던 짓도 가끔씩 해 줄 의향이 있었다.
아내의 원만한 대인 관계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좀 할애해 보기로 한 것이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남편이 채워 줄 수 있는 부분과 친구가 채워 줄 수 있는 부분은 분명히 다를 거라서.
‘너도 살면서 죽여 버리고 싶은 놈이 몇 명 정도는 생길 수 있겠지. 근데 말이야. 어떤 날엔 그놈이 내가 될 수도 있잖아?’
너도 그때 내 욕을 같이 해 줄 사람이 곁에 한두 명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
그런데 사람이 모처럼 마음을 먹었더니, 타티아나는 반색하며 좋아하는 게 아니라 고민하는 눈치였다.
곰곰이 생각하던 그녀는 어렵사리 운을 뗐다.
“친구들은 좀 나중에 만나도 되고요.”
“응. 그럼 뭐.”
어지간한 건 다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
기드언은 채근하듯 답을 재촉했다.
그러나 그녀가 묻는 말에 조심스레 대답한 순간, 기드언은 생각했다.
그 ‘다 들어줄 준비’라는 게 아직 덜 되어 있었나 보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