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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46)화 (42/130)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4장. 부부 싸움은 칼로 (1)

결혼 생활을 하다 보면 굳이 알려 하지 않아도 상대에 대해 자연히 알게 되는 게 있다.

밤에 뒤척이는 편인가, 같은 자세로 쭉 자는 편인가. 잠귀가 어두운가, 밝은가.

단번에 침대를 털고 일어나는 사람인가, 이불 안에서 투정하는 시간이 유독 긴 게으름뱅이인가. 더 나아가 피곤할 때 코를 고는지, 아닌지까지.

아주 사소한 부분이지만, 같이 사는 사람에게만큼은 평생 속일 수 없는 모습이다.

그리고 타티아나는 이 사소한 부분들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편이었다.

식습관과 수면 습관은 아무리 작아 보여도 그 사람이 평생을 거쳐 쌓아 온 패턴이기 때문이다.

몸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다소 부끄러운 부분이 있다 해도 감출 수 없다.

그 리듬을 함부로 건드리면 생활 전반이 흐트러지고, 상대는 당연히 정신적으로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타티아나는 기드언의 기상 시간이나 수면 자세에 방해 요소가 되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 왔다.

실수로라도 그를 건드리는 일이 없도록 침대 끄트머리에서 정자세로 잠을 청했으며, 아침엔 거의 자객 같은 움직임으로 방을 빠져나갔다.

그때마다 그녀는 생각하곤 했다.

이래서 요즘 부부들 사이에 한 방, 각 침대가 유행하는구나, 하고.

그런데 그녀는 요즘 새로운 사실 한 가지를 깨닫는 중이었다.

결혼 생활을 하다 보면 결국에는 서로의 생활 리듬에 영향을 주고, 또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몸을 사리고 조심한다 할지라도.

매일 밤 몸을 겹치기 시작한 이래, 그들은 팔다리를 얽은 채로 잠들곤 했다.

타티아나가 살수의 재능을 지녔다 한들 그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품속에서 빠져나가기란 불가능했다.

기드언은 그녀가 뭔가 뾰족한 방법이 없을까 궁리할 때마다 스르륵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도주범을 검거하듯 그녀를 더 꽉 옭아매며 흡족하게 중얼거렸다.

‘잡았다.’

이제껏 상이한 방식으로 시간을 써 왔던 두 사람.

그들이 교점을 찾는 건 때로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의식주를 건드리면 아주 큰일이 나는 짐승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염두에 두면, 부부가 왜 별것도 아닌 일로 싸우는지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인간은 또 합의점을 도출하도록 끊임없이 교육받고 사회화된 존재가 아닌가.

내가 상대를 배려하고 무척이나 조심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면, 의외로 싸움을 피하기도 쉽다.

기드언과 타티아나는 언제부턴가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서로를 매만지고 조곤조곤 얘기를 주고받곤 했다.

왕자궁 예산, 내탕금 운용 계획처럼 진지한 화제를 나눌 때도 있었지만, 정말 아무것도 아닌 얘기를 할 때도 많았다.

이를테면 창밖으로 이슬비가 내릴 때 한숨을 쉬며…….

‘난 비 오는 날이 싫어요.’

‘왜? 밖에서 운동 못 해서?’

‘아니. 곱슬이라 머리가 부스스해져요.’

‘그랬나요. 묶으면 되죠.’

‘그렇게 해도 평소랑 달라요. 이이, 전하가 뭘 알아.’

겨우 이 정도의 깊이와 무게를 가진 대화들.

그리고 서로의 몸을 어루만지며 속닥이다 보면 그 애정 어린 행위는 도리어 더 깊어지기도 했다.

타티아나는 부부 관계가 꼭 밤에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됐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해가 고개도 내밀지 않은 새벽녘.

발터에서 제일 부지런한 농부도 일어나지 않았을 시각에 아내를 따라 눈을 뜬 기드언은 웃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위에 있는 타티아나를 추어올리며 말했다.

“발터에서 티티보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일, 흐,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왕후 폐하 말씀, 기억 안 나요?”

그러자 기드언은 몹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허벅지로 밀어 올리는 힘이 종전보다 거세졌다.

“왜 한창 좋을 때 왕후 얘기를 하지? 그리고 티티는 새가 아니라 암사자예요.”

“내가, 왜…….”

“날 잡아먹고 있잖아요.”

기드언은 낮게 웃었지만, 타티아나는 부인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지금 암사자가 아니라 뱀이 된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분수에 맞지 않는 먹이를 삼켰다가 배가 불룩해져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뱀.

타티아나는 자신의 배를 한 손으로 어루만지며 말했다.

“아니, 난, 으응, 뱀이에요.”

“왜? 가만 보면 파충류, 양서류, 이런 거 참 좋아해…….”

아니, 파충류를 좋아해서 뱀이라는 게 아니었는데?

타티아나는 샐쭉 눈을 흘기면서도 해맑게 웃음을 터뜨렸다.

기드언은 그 얼굴을 바라보며 일순 홀린 듯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그리고 남자가 여자한테 반했을 때, 무의식중에 흘리는 말은 대체로 단조롭다.

“티티는 왜 이렇게 예쁠까요. 안 예쁜 곳이…… 없네.”

타티아나는 기분 좋게 웃으면서도 그렇지는 않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으응, 안 예쁜 데도 많아요.”

“……어디가?”

“솔직히 손은, 흐, 너무 못생겼어.”

타티아나는 손바닥으로 기드언의 맨가슴을 문질렀다.

어릴 때부터 검을 쥐고 온갖 것들을 깨부수느라 그녀의 손에는 온통 굳은살이 가득했다.

하지만 기드언은 픽 웃을 뿐이었다.

본인도 안 예쁜 부분을 찾기가 참 힘들었나 보다 싶어서였다.

얼마나 없었으면 하다 하다 손을 꼽을까.

다른 사람들이 듣는다면 그녀가 참 얄밉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기드언의 생각과는 달리 타티아나는 지금 얼결에 꽤 진솔한 속내를 얘기하는 중이었다.

“검을 잡느라 이렇게 됐는데, 그래도 대검을 잡기엔 너무 작은 손이에요.”

“…….”

“몸도, 딱딱해. 그렇지만 전하 같은 사람이 어깨를 부딪혀 오면 나가떨어질걸요?”

“…….”

“난 솔직히 다른 여자들이랑은 좀 다르잖아. ……전하는 그래도 이게 예쁘다는 거예요?”

“……그럼요. 비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은 아녜요. 난 그런 거 잘 못해요. 굳이 할 이유도 없고.”

타티아나는 그래도 못 믿겠다는 건지, 아니면 말이라도 고맙다는 건지 그저 웃을 뿐이었다.

기드언은 다소 난처함을 느꼈다.

황홀한 기분에 취해서 흘린 말을 그녀가 생각보다 깊게 새겨들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심결에 내뱉은 말일지언정, 꾸며 낸 말은 아니었는데.

타티아나는 그의 심각한 표정을 보더니 푸흐, 웃고는 다시 은근하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던 거나 계속하자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목을 끌어안으며 남은 말들 또한 속삭여 주었다. 다소 쑥스러워하며.

“그래도요. 난 내 몸이 좋아요. 다른 여자들보다 손이 울퉁불퉁한 것도 좋고, 다른 기사들보다 작은 것도 좋아요.”

“…….”

“재밌잖아.”

“…….”

“내 말이 많이 이상하게 들리죠? 그래서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잖아. 사실 나도 가끔 내가 이상하게 느껴져요.”

“아니, 그렇게 생각한다니 너무 고마운데.”

타티아나는 의아한 듯 ‘뭐가?’ 하며 물었는데, 기드언도 거기에는 바로 대답하기 어려웠다.

그가 매일 밤 탐닉하는 그녀의 신체.

하지만 그 신체는 때때로 그녀에게 난관이었음이 분명하다.

혹시라도 타티아나가 거기에 열패감을 느끼고 자신의 몸을 미워하고 있었다면, 그 몸을 사랑스러워하며 안아 온 그의 마음도 좋지 않았을 텐데.

그게 아니라니 얼마나 고맙고 다행이냐는 거다.

아주 정확한 현실 인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고.

그건 당사자의 인생뿐만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의 일상에까지 영향을 준다.

기드언은 난 지금 너의 모든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손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열렬하게 그녀의 몸을…… 사랑해 줬다.

아침 해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 때까지.

침실에서 여운을 즐기던 타티아나는 가운을 걸쳐 입고 밖으로 나왔다.

아침에 나누는 육체적 대화가 생활화되며, 운동 시간은 조금씩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하지만 큰 불만은 없다.

그녀 때문에 기드언도 1, 2시간씩 일찍 일어나고 있는 건 마찬가지니까.

한데 기드언은 겨우 이 정도의 변화로는 부족했는지, 오늘 하루를 또 다르게 보낼 생각인 것 같았다.

그녀를 따라 나온 그는 자신의 서재로 향하지 않고, 응접실 소파에 앉아 버렸다.

“일하러 안 가세요?”

“급한 건 어제 다 끝냈습니다.”

“…….”

“보름이나 밖에서 일하고 왔는데 오늘도 하라고?”

그런 뜻은 아니었다.

쉬는 거야 본인 마음이었다. 다만 부담스럽게 왜 거기에 자리를 잡는지는 모르겠다.

그녀는 이제 운동을 해야 하는데.

그러나 기드언은 본격적으로 감상을 할 참인지 느른한 자세로 소파에 몸을 기댔다.

타티아나는 ‘흥, 그러면 내가 못 할 줄 알고?’ 생각하며 자신 있게 물구나무를 섰다.

하지만 몇 분 뒤에는 살포시 양발을 내리고 말았다.

아무래도 이건 너무 추하지 싶었기 때문이다.

기드언은 그녀가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으로 바닥을 쓸든, 피가 쏠려 얼굴이 시뻘게지든 한결같은 표정으로 바라봐 주었으나 사실은 그게 훨씬 더 부끄러웠다.

‘공주 전하를 흉볼 게 아니었네.’

이제는 서로의 몸을 샅샅이 알고 있는데, 그의 허리에 작은 점이 있다는 것까지도 알고 있는데.

상대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은 그것과는 또 별개의 문제인가 보다.

오히려 결혼 초보다 최근 들어 그런 마음이 부쩍 생겨 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타티아나는 이건 진정한 체육인의 자세가 아니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돔 안에 관중이 있다 하여 기사가 수줍어하는 것 보았나?

그녀는 곧바로 팔굽혀펴기를 시도했으나, 시녀들은 왕자비가 평소와 묘하게 다르다는 걸 눈치챘다.

물구나무를 서서 바닥을 활보하고 다니던 사람이 오늘따라 집중력을 잃고 건성이었던 것이다.

그녀들은 그게 누구 때문인지도 다 알고 있었지만, 그냥 모른 척해 주었다.

남편을 의식하는 새댁의 모습이 내심 귀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드언은 이걸 또 짚고 넘어가야겠는 모양이었다.

“혹시 몸이 어디 안 좋아요?”

“저요? 왜요?”

“글쎄요. 그냥 그래 보입니다. 아침에 무리했나.”

“……아니거든요?”

당신이 뭘 알아.

거꾸로 봐도, 똑바로 보아도, 세상이 뒤집혀도 잘생긴 당신 같은 사람이 내 마음을 어떻게 아냐고.

타티아나는 속으로 몹시도 분개했다.

그러다 ‘이거 참, 검을 휘두르기 좋은 날씨군!’ 하더니 장검을 들고 연무장을 향해 뛰쳐나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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