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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63)화 (57/130)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5장.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1)

타티아나는 한동안 두문불출했다.

외부 활동을 극도로 삼갔으며 씻을 때가 아니면 방 밖으로도 나가 보지 않았다.

어떤 날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눈물을 줄줄 흘리기까지 했다.

아는 이가 세상을 떴을 때, 누구에게서나 나올 수 있는 지극히 일반적인 반응이었다.

하지만 타티아나는 자신이 정말로 이상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면 인간성이 말살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녀는 눈물을 찔끔찔끔 쏟는 와중에도 근육 소실을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해 이렇게 변명하고 싶다.

사람이란 슬퍼하고 비통해하다가도 허기를 느끼는 동물이 아니냐고.

다시없을 고통을 겪고 해탈한 것 같다가도 겨우 손톱 거스러미 따위에 짜증을 느끼지 않냐고.

시녀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타티아나를 위해 건더기를 잘게 다진 묽은 수프를 준비하곤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타티아나는 그릇을 들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생각했다.

‘이딴 걸 먹고 사람이 어떻게 운동을 해. 지금 이게 기운을 차리라는 의도가 맞는 거야?’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그녀는 두문불출하는 동안에도 방 안에서 늘 운동을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침울한 기분이 그녀를 괴롭힐 때마저도.

조금만 둘러보면 세상에는 운동 기구가 될 수 있는 것들이 아주 많다.

협탁을 등진 채 그 위에 손을 짚고 팔을 굽혔다 폈다 반복해 보자.

곧바로 삼두가 자극되며 아주 상쾌해진다.

벽에 등을 바싹 붙인 채, 서서히 몸을 내려 자세를 유지해 보자. 마치 의자에 앉는 것처럼.

허벅지가 한껏 조여 오며 눈앞이 노래지는 것이 아주아주 짜릿하다.

그러나 타티아나는 곧 이 모든 게 시시해졌다.

운동도 중독이다.

그리고 중독자들은 언제나 현재에 만족하는 법이 없고, 더 강한 자극을 찾게 되어 있었다.

타티아나는 이 방 안 운동장이 자신에게 너무나 비좁다고 느꼈다.

‘개가 똥을 끊지.’

타티아나는 결국 검을 챙겨 들고 침실 밖으로 나섰다.

정확히 보름 만이었다.

왕자비가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내자 시녀들은 감격과 회한에 젖은 표정이었다.

어찌나 뭉클했는지, 그녀들은 타티아나가 무척이나 건강해 보인다는 것도 바로 알아채지 못했다.

타티아나는 그들을 못 본 체하며 일단 물구나무부터 서고 보았다. 그러나 시녀들에겐 그 모습마저도 감동이었다.

‘반갑네. 저 상하가 뒤바뀐 이목구비.’

‘응, 난 훨씬 더 오래 못 볼 줄 알았지 뭐야.’

이토록 멀쩡한 모습으로 툭툭 털고 일어나 준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녀가 앓아눕기라도 했다면 곤란해지는 이가 한두 명은 아니었을 테니까.

그런데 타티아나는 친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록 속은 문드러졌고 남몰래 눈물을 훔칠 때도 있었지만 겉으로는 꽤 그럴듯한 생활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슬프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타티아나에게는 놓지 못하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몸이 곧 재산인 사람이라서, 아무리 시궁창 같은 현실이 들이닥쳐도 자신의 몸만큼은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미래에 대한 실낱같은 가능성이 그녀를 현실 속에 머물러 있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온전히 슬픔에 젖는 게 사실은 힘들다.

그럴 때면 선명했던 목표가 애증이 되고, 이런 자신이 비정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은 그게 더욱 힘들다.

자신을 학대하여 세상에 시위하는 건 어리석은 짓일지 모르나, 때로는 그것만이 진실한 애도의 표현일 거라 믿는 이들도 있지 않나.

타티아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욕을 하고 비난해도 괜찮으니 대답해 달라고. 이런 건 비인간적이지 않냐고. 나 많이 이기적이냐고.

“하아.”

그녀는 양발을 스르륵 내려 카펫 위에 주저앉았다.

어딘가 씁쓸한 얼굴을 보며 시녀들은 뒤늦게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타티아나가 팔굽혀펴기를 하겠다고 바닥에 엎드리자, 코니는 슬금슬금 다가왔다.

“비전하.”

“왜?”

타티아나의 어조는 다소 퉁명스러웠다.

얼마 전 중요한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눈 가리고 아웅 한 것에 대해 꽁한 감정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시녀들은 기드언의 지시를 따랐을 뿐이겠지만, 다시 생각해도 썩 유쾌하진 않았다.

그때 코니는 흡사 비위라도 맞추듯 능청스럽게 물어 왔다.

“저, 등 위에 앉을까요?”

타티아나는 그만 피식, 웃어 버렸다.

“됐으니까 가서 쉬어.”

하지만 비집고 들어갈 구석이 있다고 느꼈는지 다른 시녀들도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다가오기 시작했다.

저기요, 선생님. 운동이 하고 싶어요.

“비전하, 그때 이렇게 하라고 알려 주셨던가요? 아, 일단 엎드릴까요?”

타티아나는 꽁해 있던 것도 잠시 잊고,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언제 그렇게 알려 줬나 싶어서였다.

어디 가서 저렇게 말하고 다니면 그게 다 가르쳐 준 사람 욕 먹이는 짓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일단 시녀들의 의지를 재확인하기 위해 물었다.

“정말 같이 하려고?”

“네.”

“그 말,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또 저렇게 본격적으로 물어오니 살짝 무서웠다.

하지만 그녀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설마 죽이기야 하겠냐 싶어서였다.

일반인인 거 뻔히 아는데 적당히 봐주겠지.

시름에 잠겨 있던 윗사람이 모처럼 방 밖으로 나왔는데, 장단쯤이야 얼마든지 맞춰 줄 수 있었다.

게다가 시녀들은 내심 감탄스러웠다.

타티아나가 비교적 안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난 게 놀라워서였다.

매일같이 이어져 온 규칙적인 생활. 땀 흘리는 습관. 건강한 신체.

지금 타티아나의 정신을 지탱하고 있는 건 이 모든 것들의 결과물인지도 모른다.

잠시 흔들릴지라도 금세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회복 탄력성.

왕자비는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도 튼튼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시녀들의 감탄을 자아내던 왕자비는 오래지 않아 악마로 화해 버렸다.

타티아나는 시녀들 사이를 휘젓고 다니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기도, 답답하다는 듯 가슴팍을 두드리기도 했다.

“내가 뭐랬어. 인간은 복근 힘으로 살아가는 거라고 했지.”

“…….”

“이겨 내, 이겨 내라고!”

“비전하, 저는 지금 무엇과 싸우고 있는 거지요? 대체 누굴 이겨야 하는 것인지요.”

“너 자신.”

타티아나는 엄숙하게 답했으나 오늘만큼은 시녀들도 진지했다.

어느덧 그녀들은 철학자가 되어 있었다.

원래 신체적 한계를 넘어서면 그다음엔 정신적 영역이 기다리고 있는 법이다.

코니는 깨달음을 얻은 듯한 현자의 목소리로 말했다.

“아아……. 그렇군요. 전 제 자신과 싸우고 있었군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나 강하다니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를 만났사와요.”

그녀는 철퍼덕 엎어지며 전사했다.

하지만 타티아나는 아이, 뭐 하는 거람, 하며 코니의 목덜미를 잡아채서 일으켜 앉혔다.

그 엄청난 악력을 보고 있던 시녀들은 엄살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타티아나는 ‘도대체 왜 이것도 못 하는 거야?’ 말하며 이 나약함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시녀들은 어느덧 서로를 독려하기 시작했다.

“괜찮을 거야. 윗몸일으키기 하다 죽은 사람은 없댔어.”

“진짜지?”

“응. 그렇지 않을까?”

그러자 타티아나는 시녀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는 뭔가 말을 할 듯 말 듯 하다가 ‘에이, 됐다’ 하며 얼버무렸다.

초보자들 앞에서 극단적인 사례를 뭐하러 얘기하나 싶어서였다.

하지만 뭔가 있다는 듯한 그 침묵에 시녀들은 갑자기 불안해졌다.

“왜 그러세요? 왜 말을 하려다 말아요, 무섭게!”

“걱정하지 마. 나는 숙련자야. 그런 식으로 죽게는 절대 안 놔둬.”

“……뭐야. 저게.”

“아이, 참. 걱정하지 말라니까.”

타티아나는 괜찮다는 듯 시녀들의 등을 툭툭 쳐 주었다.

안타깝지만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금세 이전의 관계를 회복한 시녀들과는 달리, 타티아나와 케이 사이의 어색함은 상당히 오래갔다.

사실 이 어색함은 타티아나 일방의 것일 뿐, 케이의 태도는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딱히 송구스러워하는 기색조차 없었다.

남의 팔을 붙잡고 죄인 압송하듯 질질 끌고 갔으면서 말이다.

물론 그 또한 기드언의 지시를 따른 것뿐이니, 사과받고 용서하고 이럴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도의상의 사죄, 유감 표명, 뭐, 이런 것도 있지 않나?

비록 예의상일지라도 그때는 결례가 많았습니다, 하고 언급을 해 줘야 이쪽도 마음 푸는 시늉을 할 게 아닌가.

‘이 사람은 서로 간의 얼음을 깨는 첫마디의 중요성, 이런 건 전혀 모르나?’

산속에서 살다 나온 사람도 이렇게는 안 할 것 같았다.

그냥 시원하게 주먹질이나 한 번씩 하고 지난 건 잊자고 얘기해 볼까 고민도 했지만, 타티아나는 관두기로 했다.

상대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있는데, 그런 사람한테 열심히 열을 올려 봤자 이쪽만 손해였다.

타티아나는 다른 건 다 집어치우고 이참에 그간 궁금하게 여겨 왔던 부분이나 해결하기로 했다.

“있잖아. 전에 친위대 관사에서…….”

“예, 비전하.”

“어디에 숨어 있었던 거야? 내가 분명히 네 기운을 느끼긴 했는데,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겠어.”

그러자 케이는 눈썹을 찌푸리더니 잠시 고민하는 눈치였다. 왜냐하면 이건 그의 영업 비밀이었기 때문이다.

성의 설계에 허점이 있다는 뜻이니 외부로 알려지면 안 되는 사안이기도 했다.

하지만 타티아나는 왕자의 아내이자, 왕자 진영에 속해 있는 사람이 아닌가.

적어도 아직까지는.

“성 곳곳에 환기구로 이어진 통로들이 있습니다. 대부분은 철망으로 막혀 있지만, 오래되어 삭아 버린 곳도 있습니다. 그런 곳은 약간만 손을 쓰면 해체할 수 있습니다.”

“…….”

“그래도 일반 사람들은 지나가기 어렵습니다. 사실 불가능합니다.”

처음 안 사실에 타티아나는 호오, 하며 눈을 빛냈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또 의아해졌다.

저 일반 사람들은 지나가기 어렵다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모호했기 때문이다.

작은 체구가 전제 조건이라는 뜻은 아닌 것 같았다.

왕실 기사들만큼은 아니었지만, 케이도 건장한 성인 남자였으니까.

그럼 지나갈 때마다 어깨라도 한 번씩 뺐다, 맞춰야 한다는 뜻인가?

세상에. 그런 멋진 통로가 있었다니.

누군가에게는 섬뜩한 이야기였지만 타티아나는 그저 흥미진진할 뿐이었다.

“근데 넌 그걸 어떻게 알고 거기로 다녔어? 무슨, 도둑이니?”

“…….”

반쯤은 농담 삼아 물었던 타티아나는 곧 ‘어어?’ 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지? 이 사람, 왜 정곡을 찔린 표정을 짓지?

케이는 대답을 안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타티아나의 눈마저 사선으로 피하고 있었다.

‘진짠가?’

타티아나는 몹시 궁금했지만 애써 말을 삼켰다.

남의 출신을 함부로 캐물어선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단 예의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세상에는 굳이 알려 들면 다치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이쯤 되면 기드언도 정말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어떤 나라 왕자가 기사들 놔두고 자기 호위로 도둑놈을 갖다 쓰나?

아니, 근데 진짜 도둑놈인 건 맞나?

타티아나는 미심쩍은 눈으로 케이를 훑어보았다.

그가 곤란해하며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걸 느끼긴 했으나, 차라리 잘 되었지 싶었다.

그녀는 지난 일을 복수하듯 그를 1시간 내내 쳐다만 보면서 계속 불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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