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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64)화 (58/130)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5장.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2)

* * *

타티아나는 대인 관계가 꽤 원만한 편이었다.

영혼의 단짝 같은 건 없지만 누구와 크게 부딪혀 본 일은 없다.

원수를 질 만큼 싸워 본 적은 더더욱 없었다.

거기에는 타고난 성격도 한몫하고 있었으나, 무뎌지려고 노력한 면도 없잖아 있다.

그녀는 알고 보면 자신이 몹시도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꿈이 있고, 본인에게 없는 것을 갈망하고, 가끔은 그 때문에 시무룩해지며, 때로는 방황하는 보통의 청년.

하나 그녀가 남들 눈에 띄기 좋은 조건들을 너무 많이 갖고 있다는 건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었다.

아니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정도는 늘 있어 왔다.

그녀의 실패를 은근히 바라며 고소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꽤 많다.

사실은 극도로 예민해지거나 대인기피증에 걸리기 딱 좋은 환경이다.

타티아나도 속상하거나 울컥할 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그녀는 생각하곤 한다.

늘 주창해 온 개구리 전법이다.

‘아, 또 그 계절이 되었구나. 개구리가 우는구나. 타티아나 블룸! 그들과 일일이 싸우며 시간을 허비할 텐가? 맘에 안 든다고 정말 개구리들 다 밟아 죽일 건가?’

아빠가 힘 아무 데나 쓰지 말라고 했다. 기대를 버리면 실망도 크지 않다.

개구리가 내 지휘에 따라 노래해 주길 바라는 사람은 없을 테지.

타티아나는 시녀들과도, 케이와도 그럭저럭 관계를 회복했다.

그들은 개구리가 아니지만, 타티아나가 인간적으로 큰 기대를 건 적이 없다는 점에서는 비슷했다.

문제는 기드언이었다.

그녀는 그를 상당히 좋아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결혼 생활에 너무 많은 걸 바라지 말자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그게 아니게 되었나 보다.

그를 믿고 스르륵 마음을 열었던 것 같다.

타티아나는 이 실망감을 어찌할 수 없었고, 기드언을 그냥 개구리 한 마리처럼 바라볼 수도 없었다.

만약 그를 개구리에 꼭 비유해야 한다면, 그는 대왕 개구리이거나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독 개구리일 것이다.

그는 이미 그녀의 인생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을 갖고 있었다.

그가 잘 이해되지 않는 태도를 보일 때, ‘그래, 그냥 계속 개굴개굴 떠들어라’ 하는 식으로 넘어가는 건 절대로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타티아나가 문을 걸어 잠그고 방 안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보름 동안, 기드언은 매일같이 그녀의 침실 앞을 찾아왔다.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돌려보내긴 했지만, 그의 방문은 밤이면 밤마다 여지없이 계속되었다.

누가 보면 일 끝나고 꼬박꼬박 귀가하는 남편인 줄 알겠다.

타티아나는 사실 거기에도 열이 받았다.

‘아니, 사람이 목 빠지게 기다릴 때는 코빼기도 안 비쳐 놓고. 이제는 또 집이라고, 꾸역꾸역 들어올 마음이 생기시나요? 미안하지만 이젠 내가 됐네요.’

자잘한 일상을 나누며 함께 잠드는 건 언제부턴가 타티아나에게 하나의 규칙으로 자리 잡았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눈을 감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면 그녀는 그 잠깐 동안에도 편안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타티아나를 이렇게 만든 건 기드언이었다.

하지만 그 규칙을 먼저 깬 것도 기드언이었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같은 침실을 쓰지 말았어야지. 왜 사람이 이런 걸 당연시하게 만들고, 실망하게 만드나.

타티아나는 앙심을 품은 사람처럼 입술을 앙다물며 생각했다.

‘여기가 여관이야? 자기 내킬 때만 오고 가게? 미안하지만 그렇다면 장기 휴업할 거예요. 아니, 그냥 폐업할 거야.’

하지만 타티아나는 보름 정도면 기드언이 꽤 오래 참았다는 생각도 갖고 있었다.

상대가 자신을 거부하며 문전박대하는 건 어떤 누구에게도 유쾌한 일이 될 수 없다.

타티아나도 거기에 익숙하지 않은데, 왕족인 그는 오죽할까.

아마 이런 대접은 처음 받아 봤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그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오지 않았을까.

그녀가 칩거를 끝냈다는 소식을 들었을 테니, 오늘 밤에는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그녀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비전하. 기드언 전하께서 오셨습니다.”

이자벨이 침실 밖에서 그의 방문을 알리자, 타티아나는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

“몸이 좋지 않아서 좀 쉬고 싶어. 죄송하지만 다음에 뵙자고 말씀드려 줘.”

물론 하나도 죄송하지 않았다. 죄송은 무슨.

하지만 말을 뱉고 나니 정말로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 같긴 했다.

그녀는 한숨을 쉬고는 이불을 휙, 뒤집어써 버렸다.

그런데 그때, 신경을 거스르는 소리가 이불 안까지 파고들어 그녀의 귓가를 괴롭혔다.

처음에는 그저 달칵, 달칵 문손잡이를 건드리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소리는 머지않아 쾅, 콰앙, 하며 아주 요란하게 변모했다.

“세상에.”

지금 그녀의 눈앞에서 침실 문이 날아가고 있었다.

기드언은 사람들을 응접실 밖으로 내쫓더니 유유히 걸어 들어왔다. 그러고는 침대 맡에 앉아 그녀를 태연한 낯짝으로 바라보았다.

“……뭐예요, 지금?”

“몸이 어디가 어떻게 안 좋은지 내 눈으로 봐야 할 것 같아서.”

“……그럼 문을 열라고 해야죠.”

“안 열어 줄 거잖아.”

그런다고 멀쩡한 문을 부숴?

그녀는 난생처음으로 이 말을 자기 자신이 아니라 남을 향해서 하고 싶어졌다.

‘미친 자여, 이 미친 자여!’

타티아나는 남편에게 살짝 미친 구석이 있다는 걸 너무나 늦게 깨달았다.

이런 건 원래 결혼 전에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타티아나 블룸, 아는 사이라고 결혼 너무 쉽게 결정한 거 아닌가? 그간 이 사람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었던 건 확실한가?

한데 설상가상으로 그녀는 이 상황에 기시감을 느끼고 있었다.

눈앞에서 문이 부서진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그것도 고장 나서 그런 거 아니지?’

물론 그러했으나 이 깨달음도 늦은 건 마찬가지였다.

이미 다 부숴 놓고 진작에 새 문짝까지 달아 놨으니, 늦어도 한참 늦었다.

타티아나는 기드언을 맹렬히 노려보며 따져 물었다.

“그런다고 갑자기 부수면 어떡해요. 파편이라도 맞으면 어떡하려고?”

“피할 거잖아요.”

“못 피할 수도 있잖아요.”

“누가. ……네가?”

기드언이 근래 들은 것 중 가장 웃기는 소리였다.

왕자로 살면 보통은 웃을 일이 참 없는데.

그런 면에서 아내는 정말로 좋은 배우자였다.

하지만 타티아나는 전혀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눈앞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진 탓에 말을 섞긴 했지만, 사실 지금은 대화도 하기 싫었다.

“괜찮은 거 확인했으면 이제 가요.”

“…….”

“그만 나가란 말이에요.”

타티아나는 두 번째 손가락으로 휑해져 버린 공간을 가리켰다.

방금 전까지 문이 있었던 바로 그 자리였다.

그러나 그녀가 축객 의사를 밝혔음에도 기드언은 여전히 태연한 낯빛이었다.

마치 혼자 열을 내고 있는 사람을 상대하듯, 그녀의 격한 감정에 휘말리거나 동조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녀가 문가를 가리킨 손가락을 꺾지 않자, 궁금해졌는지 이렇게 물었다.

“언제까지 날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건 또 무슨 진부한 물음이란 말인가.

하지만 타티아나는 그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대답해 줄 수 있었다.

답은 그녀가 그만 피하고 싶을 때까지다.

혹시라도 유치하다고 비웃는다면 당신도 얼마 전까지 나에게 비슷한 행동을 하지 않았냐고 말해 줄 거다.

만약 상황을 회피하는 습관은 좋지 않다고 훈계한다면 그에 대해선 이렇게 말하겠다.

나는 지금 아주 적극적으로 의사 표현을 하는 중이라고.

무슨 의사? 꼴도 보기 싫으니까 나가라고.

하지만 이 강경함이 전혀 느껴지질 않는 걸까. 기드언은 그녀의 옆에 길게 눕더니 턱을 괴었다.

그러고는 흐음, 하고 웃었는데 타티아나는 그 미소가 어쩐지 불길하게 느껴졌다.

‘네가 정말로 날 쫓아낼 수 있을 것 같아?’ 말하는 것 같아서.

“티티. 오늘 길일이에요. 내일도네요. 감사한 일이죠.”

“…….”

“길일에 합방하는 건 왕족의 의뭅니다.”

“……지금 그럴 생각이 나요?”

타티아나는 너무 황당해서 물었으나, 그는 안 될 건 뭐냐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상중도 아닌데 뭐 어때요.”

타티아나는 순간적으로 엄청난 모욕감을 느끼고 말았다.

그녀가 속으로만 삭이고 있었던 그 사건을, 그가 너무 아무렇지 않게 입에 올려서였다.

비록 그에게는 무수한 정적 중 한 명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타티아나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걸 잘 알 텐데.

이게 이렇게 잠자리에서 가볍게 말할 화제는 아니지 않나?

타티아나는 그를 노려보며 치를 떨었다.

“어떻게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진짜 미쳤어요?”

“진정해요.”

“어떻게 진정…….”

“당신이 언제까지나 의무를 방기해 가며 나를 계속 내쫓을 순 없을 거란 뜻입니다.”

타티아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생각했다.

그의 말처럼 왕족에게는 길일마다 합방할 의무가 있다.

자손을 낳아 왕실을 번영케 하란 뜻이었다.

왕실 역사상 제아무리 견원지간 같은 부부일지라도, 거기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가 이 상황에서 그 패를 손에 쥐고 협박이라도 할 생각이라면 그녀도 해 줄 말이 있다.

“그럼 내가 유책 배우자라고 치고, 이혼하면 되겠네요.”

타티아나는 난 하나도 겁나지 않으니 의무 운운할 거면 그냥 입 다물고 나가란 뜻이었다.

정말 이참에 이혼하자는 얘기는…… 솔직히 아니었다.

하지만 기드언은 그 자극적인 단어가 뇌리에 와서 콱 박혀 버린 모양이었다.

방에 들어온 뒤 처음으로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아니, 사실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 타티아나는 그의 유리알 같은 눈동자가 갑자기 빙그르르 돌아가는 것 같다고 느꼈다.

“이혼?”

“…….”

“어떻게 그 말을 그리 쉽게 입에 담죠?”

기드언은 몇 번이나 헛웃음을 흘렸다.

이 입에 문제가 많다는 듯 그녀의 입술을 톡톡 건드리기도 했다.

그러고는 갑자기 궁금해졌는지 그녀에게 얼굴을 가까이하며 물었다.

“근데 말이야. 너는 그걸 내가 정말로 해 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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