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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65)화 (59/130)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5장.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3)

타티아나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음산한 목소리에 얼어붙은 것도 사실이었지만 꼭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지금 그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사실은 황당하기까지 했다.

물론 이혼 얘기는 농담으로라도 함부로 꺼내는 게 아니라는 거, 타티아나도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방금 자신의 말이 그 정도로 지나쳤는지는 잘 모르겠다.

기드언은 이 상황에 정말로 결백한가?

그도 이 갈등에 일조한 바가 있었다.

잘잘못을 따지자면 그의 지분도 막대했다.

한데 그녀만 못 할 말을 했다는 듯 저렇게 눈을 까뒤집을 건 또 뭐냐는 거다. 섬짓하게.

타티아나는 어떠한 말도 꺼내지 않고 고집스럽게 침묵을 고수했다.

그리고 그 침묵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의 반응은 비딱해졌으며, 약간은 초조해졌다.

기드언은 타티아나의 몸 위로 올라와 이마를 맞댔다.

대답을 꼭 들어야겠다는 눈빛이었다.

“왜 갑자기 말이 없어졌어요?”

“…….”

“이혼해 달라면 내가 해 줄 것 같냐고.”

하지만 타티아나는 끝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불쾌감을 여실히 드러내며 답을 강요하는 그의 태도.

그 강압적인 모습에서 그녀는 도리어 눈치채고 말았던 것이다.

이게 바로 그의 약점이자, 심리적인 급소라는 걸.

기드언은 여길 찌르면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흥분하는 거다.

상대의 약점을 정확히 파악했으니 다음 순서는 뭘까.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이겠지.

이혼이라는 배수진을 치고 그에게 덤벼들면 그녀는 유리한 고지에서 그를 쥐고 흔들 수 있을 것이다.

운이 좋다면 지난 일에 대한 사과까지 받아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타티아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혼 얘기는 부부가 갈라서기로 마음먹은 순간, 그때 딱 한 번만 하는 거라던 어른들의 말씀이 떠올라서는 아니었다.

남의 급소를 집요하게 찔러 대며 심리적으로 자극하는 행위가 추하게 느껴져서였다.

이건 칼싸움이 아니었다.

배우자를 궁지로 몰아 회생 불능의 상태로 만드는 게 그녀의 진정한 목적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말에 자극받고, 태연하던 낯에 금이 가는 모습을 보며 통쾌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으나, 타티아나는 겨우 이런 것에 승리감을 느끼는 자기 자신이 더 싫다.

그러나 한쪽이 애써 마음을 좋게 먹으려 하면 무엇할까. 나머지 한쪽이 악심을 품고 있다면 바람직한 결과를 기대하긴 글러 먹은 것이다.

이미 기분이 틀어질 대로 틀어진 기드언은 그녀 위에서 이제는 거의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티티, 왕족 간에 갈라서는 건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해요.”

“…….”

“왜 계속 대답을 안 하지?”

“…….”

“네 맘대로 절대 안 될 거라고.”

대화가 이 지경으로 흘러가는 동안 몇 번이나 꾹 눌러 참았던 타티아나는 결국 참을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녀는 빈정거리면서도 일부러 성의 없는 말투를 가장하여 내뱉었다.

“그럼 법정으로 가야죠. 그래도 나는 정식 재판 받게 해 줄 거죠? 그간 부부로 산 정이 있는데.”

그 말은 곧바로 유효타가 되어 기드언의 귓가에 내리꽂혔다.

타티아나가 그들의 부부 생활을 과거형처럼 말하자 기드언은 이를 빠득, 갈았다.

“어쨌든 아직은 부부라는 거잖아. 물론 앞으로도 그럴 거고.”

“…….”

“난 이혼해 줄 생각 절대 없어요.”

기드언을 가만히 바라보던 타티아나는 그의 어깨를 밀쳐 내며 침대 옆 서랍장을 열었다.

그리고 자그마한 유리병을 하나 꺼내 들었다.

마탑에서 만든 피임약이었다.

타티아나는 기드언에게 그럼 의무든 합방이든 어디 한번 마음대로 해 보라고 할 심산이었다.

무서울 것도 없고, 이대로 그에게 지는 것도 싫었으니까.

그렇지만 책임 못 질 일까지는 저지르고 싶지 않았다.

홧김에 애를 만들 수는 없지 않나.

하지만 그녀가 손바닥 위에 알약을 탈탈 털어놓자, 기드언은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더니 약을 바닥에 쏟아부었다.

그러고는 난감한 듯 이마를 매만지다가…… 그냥 침대에 누워 버렸다.

뒤늦게 이성을 차린 사람처럼.

아무 짓도 하지 않고.

“뭐 하는 거예요?”

“……그냥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보러 온 거예요. 알잖아요.”

“괜찮다고요.”

“괜찮은 거 봤으니까 나도 됐다고. 그만하자고.”

“…….”

길일, 후사, 왕족의 의무.

이딴 것은 그에게도 결국 다 핑계일 뿐이었다.

그도 이 방에 찾아오고 머무를 수 있는 구실이 필요했던 것이다.

만약 그가 끝까지 왕족의 의무를 운운해 가며 잠자리를 고집했다면 타티아나도 이렇게 말해 주었을 텐데.

부부간 협박에 의한 잠자리 강요는 문제가 없을 것 같냐고. 그건 귀책사유 정도가 아니라 폭력이라고.

한데 기드언은 그 선을 너무나 정확히 아는 남자였다.

밟을 듯 말 듯 헷갈리게 굴더니 바로 그 경계 앞에서 멈추어 섰다.

그건 그가 정상적인 범위 안에서 사고하기 때문일까, 영악해서일까.

아니면 타티아나에게만큼은 절대 나쁜 짓을 못 하는 남자여서일까.

어쩌면 셋 다일지도 모르지.

기드언은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는 듯 팔짱을 낀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하지만 타티아나는 그와 한 침대에서 평화로이 잠을 청할 생각이 없었다.

이런 식으로 어설프게 뭉개듯이 넘어가고 싶은 생각은 더 없었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다. 그들은 아주 지독한 무한 굴레를 반복했다.

타티아나는 더 할 말 없으면 이제 나가라고 문가를 가리켰다. 기드언은 다시금 길일 카드를 꺼내 들었고, 그녀는 잘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약병을 집어 들었다.

기드언은 그 약을 다시 바닥에 쏟아 버렸으며, 타티아나는 어김없이 문가를 가리켰다.

이 과정을 족히 서른 번쯤은 반복했을 것이다.

과연 이 싸움의 승자는 누구였을까?

타티아나였다.

아니, 어쩌면 완전히 이긴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나가라는 뜻이었는데, 기드언은 그것만큼은 싫었는지 그녀의 위로 올라왔으니까.

그는 너도 참 대단하다는 듯 이를 갈면서도 마지막까지 그녀의 의사를 확인했다.

“싫으면 지금이라도 얘기해요.”

“…….”

타티아나는 말없이 검지를 세웠고, 기드언은 그 손가락이 문가를 향하기 전에 접으며 비딱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알약을 자신의 입에 털어 넣고 그대로 그녀에게 입술을 파묻었다.

한데 그 순간이었다. 타티아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기드언이 갑자기 눈을 휘며 곱상한 미소를 지었는데…… 그게 뭐랄까. 꼭 ‘속았지?’ 하는 것 같았달까.

그 직감은 정확했다.

기드언은 순식간에 연달아서 그녀의 목뒤와 정수리 혈을 짚었다.

살수들이 상대를 기절시킬 때나 사용하는 수면 혈이었다.

그녀는 이 싸움에서 승리한 게 아니었다.

기드언은 잠시 져 주는 척하며 그녀를 재우려 했던 것이다.

“그냥 좀 자요.”

“이이…….”

“이렇게 싸우고 나서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난 뭐 감정도 없는 줄 알아요?”

그런다고 사람을 이런 식으로 보내 버리나? 꿈나라로?

타티아나는 침대에서 일어나기 위해 바둥거렸으나, 기드언은 그녀의 턱선 아래를 지그시 눌렀다.

그 뒤로 암전이었다.

타티아나가 다시 눈을 뜬 건 손끝에 이상한 감각이 느껴져서였다.

기드언은 자신의 손바닥 위에 그녀의 손을 올려놓고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한데 그의 반대편 손에는 예사롭지 않은 게 들려 있었다.

날붙이가 어둠 속에서 섬뜩하게 번쩍였다.

그는 칼날을 타티아나의 손톱 끝에 가져다 댔고, 스윽,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 하는 거예요?!”

“너무 길어.”

“…….”

“다 좋은데…… 좀 따가워.”

타티아나는 그 말에 다시 한번 상황을 살펴보았다.

자세히 보니, 기드언은 그녀의 뾰족한 손톱을 갈며 정리해 주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가 너무 차가운 인상을 가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지금 그녀의 마음이 배배 꼬여서일까?

그는 꼭 아내의 손모가지를 이렇게 자를까, 저렇게 자를까 궁리하는 사람 같았다.

타티아나는 밤중에 그러고 있으면 누구나 오해하지 않겠냐고 따지려 했다.

그러나 곧 얼굴을 홧홧하게 붉히고 말았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지금 그녀의 손톱이 좀 긴 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방 밖으로 나가질 않아 시녀들에게 정리를 맡길 틈이 없었다.

그 결과 기드언의 팔뚝에는 가느다랗고 길게 파인 손톱자국이 남고 말았다.

그녀가 최후의 순간까지 정신 줄을 놓지 않고 침대에서 일어나기 위해 버둥거린 결과였다.

본의 아니게 상처를 입힌 것은 참 미안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그에게 손톱 정리까지 맡겨야 할까?

타티아나는 기드언과 그 정도로 다정한 분위기에 젖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양손을 등 뒤로 감추며 눈을 홉떴다.

“일어났으면 나가요.”

“내가 일어난 게 아니라 티티가 일어난 거예요.”

“……어쨌든. 안 할 거면 나가라고요.”

그는 아까부터 말하는 게 참 거슬린다는 듯 한쪽 눈썹을 치켰다.

그러나 그냥 조용히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가볍게 내뱉었다.

“진짜 안 재워 줄 건가 보네.”

“잠은 이제 전하 방에 가서 자세요. 여긴 여관이 아니에요. 바쁠 땐 거들떠도 안 보다가, 전하 내킬 때만 자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요.”

기드언은 이것까지는 넘어가기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얼굴에 불쾌감이 선연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녀의 말 속에서 그들이 이제껏 나눠 온 관계가 너무 저급한 행위처럼 표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수히 많은 이들이 스쳐 지나가는 여관 같은 곳에서 관계만을 목적으로 볼일을 본 게 아닌데.

기드언은 겉옷을 챙겨 입더니 침대 맡에 서서 그녀를 한참이나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참 거슬리지만 이번만은 참겠다는 듯 말했다.

“나한테 화난 건 알겠는데…….”

“…….”

“그렇다고 말을 너무 함부로 하지는 말아요.”

난 너한테 특별 대우를 하기로 한 것뿐이지, 성격을 고쳐먹기로 한 게 아니거든. 너도 알잖아.

기드언은 천천히 손을 뻗었고 타티아나는 그 손길을 거부하듯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는 끝끝내 보랏빛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속삭였다.

“내일 밤에, 아니, 오늘 밤에 봐요.”

“…….”

“길일이잖아요. 좋은 날.”

앞으로도 이걸 구실 삼아 계속 오겠다는 뜻이었다.

문이 있던 자리로 걸어 나가는 기드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타티아나는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몸과 정신, 양쪽 모두에 극심한 피로감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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