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5장.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5)
병영에 가지 말랬더니 병영을 직접 차려 버리신 아내 덕에 기드언은 입술 끝을 비틀었다.
조금 비딱한 표정이긴 했지만, 부관들은 안도했다. 왕자의 눈동자에서 은근한 웃음기를 읽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이야.”
“예, 전하.”
“내 비가 좀 특이하긴 해.”
그 특별함과 엉뚱함은 대체로 기드언을 즐겁게 했다.
그렇지만 가끔은 ‘내 아내, 진짜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기드언은 타티아나가 어지간한 남자는 사내로도 안 볼 것이라고 누차 말해 왔다.
그러나 타티아나의 이상형을 떠나서, 그저 그런 남자는 그녀를 감당하는 게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솔직히 기드언은 나니까 감당하지, 하는 생각도 조금은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한다면 타티아나가 ‘그럼 감당하지 말아요!’ 할 걸 알기 때문에 아무 소리 안 하고 그냥 조용히 산다.
기드언이 피식피식 웃자 분위기는 제법 온화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관들은 난감한 눈치였다.
왕자비가 밖에 세운 건 어찌 보면 불법 구조물이었기 때문이다.
허가받지 않은 막사를 성안에 지을 순 없었다.
백번 양보하여 막사까진 그렇다 치더라도 저 끔찍한 부비트랩은 뭐란 말인가.
그 함정과 덫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진화하고 있었다.
기드언의 부관들은 타티아나가 삽을 들고 땅을 파기 전에 미리 언질을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이건 법도와 관행에 어긋난다고. 나중에 허무셔야 할지도 모른다고.
만약 그랬다면 타티아나도 헛수고를 들여 가며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데도 부관들이 말을 아껴 가며 주변만을 맴돈 건, 그들도 솔직히…… 왕자비가 어떻게 막사를 만들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막사의 위용도 충분히 알았고, 왕자비가 지금 당장 친위대에 입단해도 전혀 손색없는 인재라는 것도 잘 알았다.
감상이 끝났다면 다음은 냉정하게 일을 할 차례였다.
“전하, 어떻게 할까요. ……역시 철거해야겠지요?”
타티아나의 막사는 상당히 절묘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거리상으로는 왕자궁에 가장 가까웠지만, 그 안에 지어진 시설물은 아니었다.
타티아나는 아마 일부러 그곳을 골랐을 것이다.
아무리 눈 가리고 아웅일지라도, 이건 가출이니까.
적어도 담 한두 개 정도는 넘어 줘야 집을 나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게 아닌가.
한데 기드언은 이 사태를 그냥 눈감아 줄 생각인 듯했다.
피식피식 웃기만 하다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명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던 부관들은 의아해졌다.
사실 그들은 왕자가 당장에라도 왕자비를 끌고 올 줄 알았기 때문이다.
아내 앞에서 제법 다정하게 군다고는 하나, 왕자는 기본적으로 물렁물렁한 성품이 아니었다.
자기 아내가 집 나가는 꼴을 두고 볼 수 있는 사람이 전혀 못 되었다.
그리고 기드언은 부관들에게 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 정도로 끝난 걸 다행인 줄 알아. 비가 진짜 성 밖으로 나가겠다고 마음먹었으면, 지금쯤 여러 사람이 다쳤을 거다.”
“…….”
“그러니까 그냥 혼자 놀게 놔둬.”
“…….”
“도망가면 너희 실력으로 잡기 힘들다고.”
그러자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기 엇갈렸다.
왕자의 말을 반신반의하며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 이들은 주로 관료 출신들이었다.
비의 위명이야 못 들어 본 사람이 없다지만, 그들은 검술에 있어서는 까막눈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이 까막눈을 가지고 보았을 때, 타티아나는 탄탄하고 야무진 체형을 가지기는 했으나 어린 여자였다. 게다가 혼자였다.
병사들 수십이 그녀를 동시에 둘러싼다면…… 설마 그것까지 뚫고 탈출할 수 있을까?
그러나 케이와 그의 조직원들은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왕자의 말에 동의하는 눈치였다.
그들은 행정 서류 앞에서는 까막눈이었지만 반대로 검술과 전술에 있어서만큼은 누구보다 예리한 시야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전에 도주로를 차단하면 되는 일입니다만, 양쪽 다 출혈을 피해 갈 순 없습니다.”
“그래. 난 그 얘기를 하는 거야.”
기드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비는 도망치거나 숨는 데에 생각보다 소질이 있을지도 몰라. 스승한테서도 본 적 없는 보법을 구사하더군. 그땐 정말 아무런 기척도 느낄 수가 없다.”
“……그렇습니까. 아직 보질 못했습니다.”
“평소엔 몰래 다닐 일이 없으니까.”
갑자기 이야기가 딴 길로 새자, 부관들은 그저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왕자와 케이의 머릿속에서 위화감 넘치는 불법 구조물은 이미 뒷전이 된 듯했다.
결정권자와 행동 대장이 그렇게 판단했다고 하니 여기에 토를 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관들은 찝찝한 기분이 드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별거의 결말은 대체로 좋지 않기 때문이었다.
물론 기드언도 상황이 이렇게 될 때까지 마냥 방치만 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이 분위기를 풀어 보고자 딴에는 여러 번 시도했다.
먼저 식사도 청해 보았고, 나중에는 사람을 통해 선물도 보냈다.
아주 자그마한 마력석이었는데, 수하들은 그게 얼마 전 수리를 마친 블룸 부부의 유품이 아니라는 것에 의아함을 표했다.
‘처음 보는 것입니다만.’
‘이것도 내 비 거야.’
하지만 선물의 결과는 처참했다.
타티아나는 부관 앞에서 얼굴이 뻘게지더니 몸까지 파르르 떨었다. 분노와 수치심 때문이었다.
‘하나만 물어볼게. 전하께서는 내가 마력이 없다는 걸 혹시 모르시니?’
‘……글쎄요. 아마 아시지 않을까요. 비전하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거의 없으십니다.’
‘그럼 알고도 놀리는 거니? 더 나쁘네?’
그게 아니라면 왜 쓰지도 못하는 걸 갖다주냐며, 타티아나는 모욕이라도 당한 표정이었다.
나중에 듣기로는 시녀들에게 그냥 갖다 버리라고까지 한 모양이었다.
한데 남의 상처를 푹, 쑤셔 놓고도 기드언은 피식피식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수하들 앞에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바보. 자기 것도 못 알아보네.’
‘…….’
‘혹시라도 진짜 버리면 다시 주워 와라. 귀한 거니까.’
왕자가 원래도 이렇게 관대한 사람이었나.
타티아나가 털을 바짝 세운 암고양이처럼 굴고 있음에도 기드언은 시종일관 여유로운 태도였다.
가끔은 눈썹을 찌푸리며 사람들을 조마조마하게 만들기도 했으나, 아내를 생각하면 뭐든 참아지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 냉전을 지켜보는 수하들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기드언을 원망하는 타티아나의 마음은 이해하나…… 그들은 기드언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관들은 왕자를 꽤 오랜 시간 보좌해 왔고, 뮐러 공작을 심문하는 자리에도 함께 있었다.
공작이 늘어놓는 개소리를 다 같이 사이좋게 들어야만 했다는 거다.
‘정말 네가 그랬을까, 왜 블룸 경을 죽였을까. 거기에 대해 나도 생각해 본 적이 있지.’
왕자는 그 말을 꺼내며 공작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라 했다. 왕족이 너 같은 벌레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다시 오지 않을 거라고.
‘아마 너한테는 내 스승이 참 위협적인 존재였을 거야. 한때는 그냥 네 밑에 있던 평민 병사였는데 말이야.’
‘…….’
‘너무 순식간에 커 버렸어, 그렇지?’
‘…….’
‘넌 내가 블룸에게 첫 임무를 맡긴 게 불안했던 거야. 블룸이 그 임무를 완수하고 내가 왕좌에 오르면 그때는 블룸이 너보다 훨씬 높은 작위와 직책을 가질 테니까.’
기드언은 말하는 도중 ‘하, 참 치졸한 발상이네’ 하며 짜증을 냈다. 그러면서도 놀라울 게 전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벌레의 마음으로 세상을 기어 다니는 놈들이 한둘이어야지.
그러나 그도 그 순간까지 풀지 못한 의문이 있었다.
‘그런데 내 비는 대체 왜 데리고 간 거지? 후견인을 먼저 자처한 건 너였다.’
기드언은 그간 공작을 꾸준히 의심해 왔다. 확실하진 않지만 무시할 수도 없는 미약한 증거가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티아나가 공작의 보호 아래 있는 탓에 섣불리 일을 벌일 수가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타티아나가 위험해지니까.
몇 번이나 계획을 수정하고도 또 엎어야 했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기드언은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때 뮐러 공작은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웃으며 말했다.
‘내 전리품이지. 그 애는.’
‘…….’
‘엔야가 살아 있었다면 엔야를 데려왔을 텐데.’
‘…….’
‘무슨 말만 하면 기가 죽어서 좌절하는 게 꽤 볼만했…….’
기드언은 공작의 머리를 잡아채서 그대로 벽에 갖다 박았다.
턱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고, 어금니가 사방으로 튀었다.
수하들은 왕자가 이 자리에서 공작을 죽인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
공작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고, 명을 재촉하듯 미친 소리만 지껄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드언도 만만치 않게 미친 사람이었다.
그는 공작을 다시 철제의자에 앉히며 싱그럽게 웃었다.
‘말을 중간에 끊어 버렸네. 미안. 계속하도록 해.’
‘…….’
‘기절했군. 깨워라.’
그 뒤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부관들도 자세히 회상하고 싶지 않다.
그들은 기회가 된다면 딱 한 가지만 꼬집고 싶을 뿐이었다.
왕자가 자신의 부관들 대다수가 문관 출신이라, 끔찍한 광경을 잘 못 본다는 걸 자꾸 잊는 것 같다고.
이게 기드언이 타티아나 앞에서 피 냄새를 풍겼던 그날의 대략적인 전말이었다.
하지만 기드언은 타티아나 앞에선 이 일에 대해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부관들은 그 속내 정도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자기 아내에게 있는 그대로 들려주기에는 너무 잔인한 이야기니까. 진실 그 자체로 왕자비에게는 상처가 될 테니까.
친부의 벗이 친부를 죽였다는 것만으로도 충격적일 텐데, 그녀는 그를 양부라 부르며 같은 집에서 지냈다.
소름이 끼칠 테지.
자신이 그런 사람을 구명하려 했다는 것을 알면, 자괴감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 알려 주고 나면…… 적어도 왕자의 억울한 누명은 풀리지 않을까.
잠시 덜컥거릴 수는 있겠지만 왕자비도 왕자를 이해해 주지 않을까.
비는 지금 같은 공간에서 숨 쉬는 것도 싫다는 듯 집을 나갔는데, 이 원망과 미움을 계속 감내하고 살 거냐는 거다.
좋아하는 이에게 미움을 받는 건 누구에게나 속 쓰리고 아픈 일이다.
제아무리 왕자라 해도 그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비록 지금은 마음껏 해 보라는 듯, 다 받아 줄 수 있다는 듯 여유만만한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저게 과연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
지켜보는 사람들은 불안하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