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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71)화 (64/130)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5장.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9)

미약한 불씨 하나가 불러온 여파는 너무나 컸다.

타티아나는 이제껏 듣도 보도 못 한 마법 앞에 무너졌고, 평소 상태를 회복하기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타티아나는 대놓고 웃은 게 미안해서 몇 번이나 거듭하여 사과했다.

절대로 비웃은 건 아니라고 진땀을 흘리며 해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바이칼은 별로 불쾌해하지 않는 눈치였다.

처음부터 형수님 즐거우시라고 한 것인데, 더 웃으셨으면 좋았을 뻔했다고 말했다.

타티아나는 이 상냥함에 감동받았고 그 뒤로 대화는 급물살을 탔다.

분위기도 제법 화기애애해졌다.

“그럼 16살 때 처음 알게 되신 거예요?”

“네, 그렇습니다.”

“희귀한 경우네요.”

타티아나는 바이칼 왕자의 마력이 왜 주목받지 못했는지 알 수 있었다.

세상 모든 일이 대체로 그러하지만, 마법만큼 조기교육이 중요한 분야는 없었다. 어릴 때부터 마법을 접한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는 성취 속도가 현저히 다르다.

사실 타티아나는 몹시도 특수한 경우였다.

대개는 마력이 없다는 걸 안 순간부터 그 세상과 평생 유리되어 살아간다.

어릴 때 그 가능성을 확인받지 못하고도 마법을 탐구하는 미련퉁이는 없다.

왕자도 드문 경우인 건 마찬가지였다.

그가 왕족이 아니었다면 마력석을 접할 기회가 드물었을 테고, 그렇다면 자신에게 뒤늦게 마력이 발현되었다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냉정하다. 마탑은 그중에서도 유독 냉정하다.

그들은 본인 힘으로 불씨 하나 제대로 피우지 못하는 재능에는 관심이 없다.

마법사 한 명을 양성하는 데에는 어마어마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선택과 집중 전략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하지만 타티아나는 마법사가 아니었고, 마탑 소속도 아니라서 바이칼의 그런 면에 오히려 호감을 느꼈다.

쑥스러움은 엿보이나, 그는 별 볼 일 없는 자신의 마력을 그다지 창피해하지 않는 듯했다. 그냥 흥미가 생겼고, 해 보고 싶은 게 다일 뿐인 거다.

저건 이 능력 위주의 냉정한 세계에서 싹트기도, 지키기도 힘든 순수한 마음이었다.

“에휴, 지금은 줄 게 딱히 없고…….”

타티아나의 태도는 처음과 완전히 바뀌었다.

집에 오신 손님께 냉수밖에 대접하지 못했다는 게 몹시도 애석하기만 했다.

그녀는 상형문자와도 같은 책 더미를 한참이나 들쑤시다가 말했다.

“제가 다음에 괜찮은 책 있으면 꼭 빌려 드릴게요. 왕립 도서관엔 없는 귀한 걸로.”

“예, 천천히 주셔도 됩니다. ……사실 일찍 주시면 좋겠습니다.”

아, 그렇지. 내가 그 심정 알지. 너도 배움에 목이 말랐구나.

어쩌면 그는 그냥 공감대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타티아나도 처음 검을 잡았을 때는 저랬다.

혼자 신이 나서 하녀들을 붙잡고 자신이 경험한 걸 마구 떠들어 댔던 것이다.

그녀는 바이칼에게 동질감을 느낀 나머지 우리, 어린아이처럼 손뼉치기라도 하고 놀자고 할 뻔했다.

사실은 체면 불고하고 마법을 한 번만 더 보여 달라고 조르고 싶었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녀의 이 감정 과잉 상태를 끊어 주는 사람이 있었다.

뚜벅뚜벅하는 발소리를 느낀 타티아나는 먼 곳을 응시하다가 나무 위의 호위병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초리는 싸늘해졌다.

‘내가 저럴 줄 알았어. 사람들이 하나같이 의리라곤 없지.’

남편을 누가 여기까지 불러들였는지는 뻔했다.

그들은 호위가 아니라 역시 감시 역할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드언은 아내가 집을 나가는 것까지는 참아도 자신의 이복동생을 만나는 건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걸어오는 내내 인상과 표정이 장난이 아니었다.

기드언은 막사 부근을 둘러보다가 갑자기 멈춰 서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재미있어한다기보다는 기가 막혀서 웃는 것 같았다.

그는 타티아나가 동여매 놓은 줄을 구둣발로 툭, 하고 건드렸다.

그러자 날이 섬뜩한 손도끼가 팽글팽글 돌며 그의 등 뒤를 노리며 날아들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으나 타티아나도, 지켜보던 어떤 누구도 가슴을 졸이지 않았다.

기드언은 등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도끼를 낚아채더니 그대로 던져 나무 기둥에 푹, 하고 꽂아 버렸다.

이후에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다.

그는 충분히 함정을 피할 수 있는 능력과 눈썰미를 가진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안전한 경로를 통해서 오는 방법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드언은 굳이 그걸 하나씩 다 밟아 보고 건드려 봤다.

흠, 하며 이것도 파괴하고, 으음? 하며 저것도 파괴했다.

그걸 바라보는 타티아나의 눈에는 씁쓸함과 싸늘함이 공존했다.

‘어후, 저 성질 좀 봐…….’

타티아나는 자신의 부비트랩이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자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남편을 죽이기엔 역부족이었다. 참고해서 다시 보완해야겠다.

타티아나가 섬뜩한 생각을 하는 사이, 기드언은 막사 앞까지 걸어왔다. 그러고는 비스듬히 서서 두 사람을 내려다보다가 바이칼에게 물었다.

“이 시간에 남의 아내와 단둘이 만나는 거, 좀 무례한 일 아니야?”

“송구합니다, 형님.”

기드언은 송구한 거 알았으면 얼른 꺼지라는 듯 턱짓했고, 바이칼은 형에게 변명 한 마디 못 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어느덧 서로 간의 심리적 거리가 가까워져 버린 건가. 타티아나는 바이칼의 뒷모습이 좀 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손님을 왜 당신 마음대로 쫓아내냐고 기드언에게 항의해 볼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냥 관두었다.

그녀가 생각해도 자신과 바이칼이 만나는 게 다른 사람들 눈에는 썩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기드언은 그런 그녀의 태도를 오해했는지 추궁하듯 물어 왔다.

“죄지었어요? 왜 눈을 피하지?”

“…….”

내가 죄를 짓긴 뭘 지어, 저 사람은 내가 당신이랑 결혼 안 했으면 애초에 만날 일이 없는 사람이야. 그 점부터 분명히 해야지.

그런데 그따위로 물으면 내가 화가 나, 안 나. 억울해, 안 억울해? 응?

타티아나는 발끈하려다가 일단은 한 번 참았다.

하지만 기드언은 아까 전까지 바이칼이 앉아 있던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더 기가 막힌 말을 내뱉었다.

“어린놈이랑 노니까 좋아요?”

“……뭐라고요?”

이렇게 대꾸할 가치를 못 느끼는 질문도 오랜만이었다.

기드언도 보고를 받았으면 바이칼과 그녀가 손을 맞잡고 불건전한 대화를 한 게 아니란 것 정도는 알 것이다.

도리어 그들은 아주 건설적이고 희망찬 이야기를 나눴다.

당신 남동생은 말이야. 비록 턱과 입 주변에 파르라니 수염 자국이 있긴 하지만, 자라나는 마법계의 새싹이야.

물론 꽃을 피울 수는 없을 테지.

내가 봐도 그래. 아마 평생 가도 모닥불 하나 피우는 게 다일 거야.

하지만 그래도 해 보고 싶다는데, 저것 좀 하면 안 되나?

타티아나는 옆에 놓여 있던 자신의 마법서들을 마구 들추었다.

기드언에게 밝힌 적 없는 취미 생활이었지만, 억울한 나머지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

그녀는 책을 들이밀면서 ‘이 얘기 하고 놀았다, 이 얘기. 이제 됐어?’ 하며 쏘아붙이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이 문자를 알아볼 리 없다는 것을 깨닫고 슬그머니 책을 내려놓았다.

기드언은 막사 안을 둘러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일단 바이칼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나니 표정은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기색이었다.

“다 좋은데, 이런 데서 단둘이 만나면 어떡해요.”

“여기가 뭐 어때서요?”

자신의 막사에 알게 모르게 자부심이 있는 타티아나는 눈을 치떴다.

물론 기드언도 이 막사의 완성도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바였다.

부부 사이만 괜찮았더라면 집들이 선물이라도 갖다주며 훌륭하다고, 장난스레 박수를 쳐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드언의 관점에서 이곳은 바이칼과 단둘이 만날 만한 공간이 결코 아니었다.

일단 공식 일정이 아니었고, 너무나 사적인 장소가 아닌가.

그의 눈에는 지금 거슬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털썩 누우면 베개가 있고, 조금만 뒹굴면 이불이 있고.

다른 게 침실이 아니었다. 잠들고 일어나는 장소가 바로 침실이었다.

그런데 밖은 어둑어둑하기까지 했다.

‘이제 너도 애 아니잖아.’

내가 너 데뷔탕트 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밤마다 확인했는데.

다 컸던데. 뭐가 문제인지도 상세히 설명해 줘야 아나?

기드언은 말없이 타티아나를 노려보다가 그녀의 옆에 바싹 다가가 앉았다.

냉랭하고 소원해진 부부 사이처럼 거리를 유지한 채 앉아 있었던 타티아나는 움칠했다.

하지만 이건 의도적인 거리 두기였을 뿐, 마음 깊은 곳에서까지 남편을 경계하진 않았었나 보다.

기드언이 어깨를 슬쩍 밀자 그녀는 그대로 밀려났다.

기드언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녀의 몸 위로 올라탔다.

타티아나의 동그란 머리통은 푹신한 솜 베개에 무사히 안착했다. 하지만 휘둥그레진 초록 눈동자에는 황당함이 가득했다.

기드언은 근육질의 몸으로 그녀를 짓누르며 입매를 비틀었다.

‘여기가 지금 이렇다고. 등 대면 바로 베개야.’

타티아나는 그 못된 표정을 보며 뒤늦게 벗어나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는 해 볼 테면 해 보라는 태도였고, 완벽한 힘의 차이 앞에 그녀는 너무나 분해졌다.

안 그래도 지난번, 그가 병사들을 움직여 자신에게 권력과 무력을 행사한 것에 대해 서러움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녀가 제일 열 받는 부분 중에 하나가 그거였다.

“폭력 쓰지 말자면서요. 나한테 힘 쓰지 말아요. 자꾸 이러면…….”

“이러면 뭐.”

“나도 쓸 거야!”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무릎으로 있는 힘껏 그의 배를 걷어차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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