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72)화 (65/130)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5장.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10)

기드언은 다가올 충격을 예상하고 복근을 꽉 조였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힘이 참 셌다.

그는 윽, 하는 신음을 삼킨 채 그녀의 몸 위에서 버티며 생각했다.

‘진짜 까딱하면 죽겠네.’

결혼 초에 잠시 우려했듯 기드언은 기어이 아내에게 얻어맞는 남자가 되고 말았다.

사실 이 경우엔 본인이 자초한 게 크다 보니 누굴 탓하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기드언은 속으로 참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이런 순간에도, 얻어맞고도 기분이 나쁘지 않아서. 이렇게 가까이서 얼굴을 보고 있으니까 좀…… 좋아서.

하지만 타티아나는 자신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크게 탄식했다.

원래 상대가 알아챈 기습은 성공하기 어려운 법이다.

이 경우엔 그녀가 친히 예고까지 해 주었다.

그리고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도 힘을 전부 실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남편이 진짜 죽으면 어떡하나. 싸우긴 했다지만 남편 없이 사는 건…… 싫다.

타티아나는 이런 속마음을 숨긴 채 기드언을 흘겨보며 또 한 번 경고했다.

“안 비키면 이번엔 물어 버릴 거예요.”

“해 봐요. 나 그거 좋아하는 거 알잖아.”

“…….”

내 남편, 진짜로 미친 건가?

요즘따라 자주 헷갈려서 타티아나는 미심쩍은 눈으로 기드언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어떻게 하면 이 굴욕적인 자세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지 고심했다.

기드언은 그녀의 양 손목을 결박하고 있었고, 아까의 공격에서 교훈을 얻었는지 그녀의 허벅지 또한 다리로 짓누르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자유로운 건 머리뿐이었다.

냅다 들이박는 선택지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타티아나는 선뜻 그러지 못하고 입술을 잘근잘근 씹기만 했다.

본인 두개골의 단단함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다. 모양이 빠진다고 생각해서도 아니었다.

기드언한테 그렇게까지 강퍅하고 모질게 굴 마음이 들지 않아서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투지가 생기지 않는데, 그런 사람을 상대로 어떻게 싸우나.

타티아나는 한동안 열심히 그를 노려보기만 했다. 없는 투지를 쥐어 짜내듯.

하지만 기드언은 그녀의 눈동자가 시시때때로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거기에서 전해지는 복잡한 감정들이 있었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좀 묘한 눈빛을 하던 그는 물었다.

“티티.”

“…….”

“내가 많이 밉습니까?”

그렇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들켰다는 건지, 내 맘을 함부로 읽지 말라는 건지.

타티아나는 눈을 내리깐 채 답이 없었다.

기드언은 뮐러 공작 건에 대해서는 함구하기로 이미 결정을 내린 후였다.

하지만 그라고 왜 마음에 번민이 없을까.

그는 늘 타티아나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해 왔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그럴듯한 사내로 봐 주었으면 했다.

네 아버지를 그렇게 만든 놈을 잡아다 앞에 꿇어앉혀 주겠다고 약속도 했다.

‘내가 그 약속을 얼마나 지키고 싶었는지…… 네가 알아?’

그날의 맹세를 지키고 그녀 앞에 조금 더 떳떳하고 믿음직한 남자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아마 누군가는 분명히 말할 것이다. 부부 사이에는 모든 것을 털어놓아야 한다고.

글쎄. 그게 틀렸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세상에는 백 프로의 확률이라는 게 없으며, 그는 아내 일에 관해서만큼은 모험을 할 수 없을 뿐이었다.

쏟아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으니까. 깨진 유리는 아무리 이어붙여도 처음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까.

그때가 되면 부부 사이에는 비밀이 없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드높이던 사람들 또한 어떠한 책임도 져 주지 않을 테지.

하나같이 슬금슬금 발을 뺄 테지.

기드언은 그러한 사람들이나 그들 사이를 안타까워하는 부관들이 타티아나에 대해 모르는 것들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검을 잡지 못했다.

그녀가 그에게 보여 주었던 가문의 검무에서는 시간적 공백이 여실하게 느껴졌다.

왜일까. 그게 꼭 한 가지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녀 스스로 느끼는 한계, 좌절감. 목적과 방향성의 상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블룸 경의 죽음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뮐러 가에서 보냈던 시간이 최종적으로 그녀에게 약이 되었는지 독이 되었는지까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한 가지뿐이었다.

기드언은 그녀가 그런 혼란과 아픔을 다시 겪길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걸 위해 뮐러 공작은 적당히 포장될 필요가 있었다.

너무 소름 끼치는 인간이 아니라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부도덕한 사람으로.

자신의 죄를 회피하기 위해 죽음을 택한 적당히 무책임한 인간으로.

타티아나의 세계가 뿌리째 흔들리지 않을 정도의 평범한 악인으로.

기드언은 타티아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가 꼭 무언가를 말할 것만 같다고 생각했으나, 그는 말없이 보랏빛 머리칼을 톡 건드릴 뿐이었다.

방금 전까지 그녀를 결박하던 힘과는 대조적으로 새털처럼 가볍고 보드라운 손길이었다.

기드언은 그녀에게서 몸을 일으키고는 품 안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앉아 있는 그녀의 다리 사이에 뭔가를 툭 집어 던졌다.

얼마 전 부관을 통해 보냈던 마력석이었다.

“아무리 미워도 그렇지, 선물을 버립니까?”

“……제가 언제 버렸다고 그래요?”

홧김에 시녀들에게 그리 말한 적이 있기는 하나, 버린 적은 없다.

타티아나는 그냥 어디에 잘 갖다 놓으라고 추후에 말을 고쳤고, 이자벨은 마력석을 무수한 보석함 중 하나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기드언은 자신이 비록 여자에 대해 잘 모른다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알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가 다시 꺼내 오라 명하지 않았다면, 타티아나가 그 보석함을 열어 보는 일은 없었을 거라고.

“그게 버린 거지.”

“…….”

타티아나는 부인하기 힘들어 말을 아꼈고 기드언은 피식 웃으며 마력석의 정체에 대해 실토했다.

“그거, 티티 거예요.”

“…….”

“원래 네 거라고.”

타티아나는 ‘응?’ 하며 다리 사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러나 뭔가가 기억나기는커녕 의문만 증폭되고 있었다.

기드언은 그 알쏭달쏭하다는 표정에 기대도 안 했다는 듯 입술을 비틀었다.

“하도 많이 집어 던져서 생각이 안 나나 봐요.”

“내가 언제 집…….”

거의 습관적으로 반박하려던 타티아나는 중간에 입을 다물었다.

내가 언제 그런 짓을 했냐고 따져 묻기엔 실제로 그랬던 적이 너무 많았다.

열 몇 살 무렵엔 거의 매일같이 그랬다.

‘혹시 이거, 내가 어릴 때 갖고 놀던 건가?’

그녀는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기드언을 바라보았고, 그는 괜히 흙바닥을 툭 걷어찼다. 그러고도 바로 자리를 뜨긴 싫어서 주변을 둘러보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그의 시야에는 아주 기묘한 광경이 들어왔다.

막사 주변에 개구리 몇 마리가 폴짝폴짝 뛰어놀고 있었던 것이다.

기드언은 좀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대지는 바싹 메말랐고, 지금은 개구리들이 동면기에 들어가고도 남을 날씨였기 때문이다.

그는 눈썹을 찌푸리며 타티아나에게 물었다.

“혹시 저거, 먹이 주면서 키웁니까?”

“……내가 저딴 걸 왜 키워요!”

“다행이네. 난 미끌미끌한 건 영…….”

“어후, 왕자님, 공주님, 까다로워…….”

표독하게 말해 놓고 타티아나는 자신이 약이 바싹 오른 독 개구리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드언은 본인이 그녀의 반응 하나하나에 연연하는 풋내기가 된 것 같다고 느꼈을 뿐이었다.

대답을 듣고 싶어서 괜히 찔러보고, 부러 더 심술궂게 말하는 풋내기.

그러나 이 또한 그의 본래 성격이었을 뿐이다.

그는 타티아나에게 등을 돌리려다 말고 말했다.

“더 노는 건 좋은데, 잠은 들어와서 자요.”

“…….”

“이런 데서 자면 입 돌아가요. 예쁜 얼굴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할 건데.”

“……안 돌아가요.”

타티아나도 자기 몸 정도는 챙길 줄 알았다.

친부모가 돌아가셨을 때도 곡기를 끊지 않았던 몸뚱어리다. 고작 추위 정도에 나가떨어질 정도로 나약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드언의 말 저변에 깔려 있는 게 걱정과 염려라는 것까지 부인할 수는 없었다.

타티아나는 결국에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는데, 이제 좀 말이 통한다고 느낀 것일까? 기드언은 가려다 말고 기어이 한 마디를 더 덧붙였다.

“그리고 밤에 남자들 왔다 갔다 하는 거.”

“…….”

“진짜…… 너무 거슬려.”

타티아나가 뭐라 대답할 틈도 없이, 그는 볼일 다 봤다는 듯 돌아섰다.

그런데 그냥 곱게는 안 갔다.

그가 여기까지 오면서 파괴한 부비트랩은 총 여섯 개였다.

아직 하나가 더 남아 있었다는 뜻이다.

그게 무슨 보물찾기처럼 느껴졌나?

기드언은 소원을 비는 석탑처럼 쌓아 놓은 돌멩이를 의심스레 바라보다가 발로 툭 걷어찼다.

돌무더기가 와르르 무너지고 어김없이 단도가 날아들었지만, 그는 어렵지 않게 잡아채 그대로 땅바닥에 내리꽂았다.

그러고는 그 먼 곳에서 조언이랍시고 타티아나에게 입 모양으로 이렇게 말했다.

‘너무 단순해요. 일차원적이라고.’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의 발걸음은 올 때보다 훨씬 가볍게 느껴졌다.

그걸 끝까지 바라보며 타티아나는 중얼거렸다.

“……어후, 저 성격, 저거 진짜 어떡할 거야.”

안 그래도 해체할까 말까 생각 중이었는데, 고민을 말끔히 해결해 줘서 아주 고오맙습니다.

그러나 한껏 약이 올라 있는 표정과는 달리, 그녀는 그가 준 마력석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지난번에 받았을 때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던 탓이다.

그는 그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이 작은 돌멩이를 어쩌다 계속 간직하고 있었던 것일까.

타티아나는 마력석을 손에 꼭 쥔 채 장작더미를 바라보았다.

바이칼 왕자가 만들었던 불씨는 너무나 자그마해서 약간의 그을음조차 남기지 못했다.

겨우 그 정도로는 세상에 아무런 흔적도, 어떠한 영향력도 줄 수 없었다.

하지만 겨우 그 정도에도 그녀의 마음속에는 애타는 감정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부러움이었다.

‘나도 마력을 느껴 보고 싶다.’

그러고 나서 다시금 마력석을 바라보았을 땐, 달빛 때문인지 은은한 광채가 반짝이는 듯했다.

막사 주변에선 타티아나처럼 추위를 타지 않는 개구리가 개굴개굴 울어 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