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80)화 (72/130)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6장. 너의 검이 되어 (3)

* * *

시녀들은 오늘따라 분주했다.

어떤 이들은 드레스 더미 앞에서 격렬한 논쟁을 펼치고 있었으며, 누군가는 그 옆에 액세서리의 산을 쌓는 중이었다.

새로운 드레스를 가져오다가 치렁치렁한 옷자락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 이도 있었다.

“으아악!”

“야, 옷 괜찮아?!”

“어, 괜찮은 것 같아. 그리고 궁금하진 않겠지만 나도 괜찮아.”

“어머. 정말 안 궁금한 얘기네.”

그녀들이 이토록 분주한 이유는 금일 밤에 있을 파티 때문이었다.

비록 허구한 날 열리는 게 왕실 파티라고는 하나, 왕자비가 참석 의사를 밝힌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뮐러 가 사건 이후로는 첫 공식 석상인 셈이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오늘 밤, 기드언 부부에게 쏠릴 게 분명했다.

시녀들은 준비 과정부터 단단히 기합이 들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건 이자벨이었다.

화장 정도는 어리고 손이 빠른 시녀에게 맡겨도 좋을 텐데, 손수 분칠을 해 가며 타티아나의 상처에서 붉은 기를 감추고 있었다.

“눈썹 먹 좀 내어 주려무나.”

시녀에게 붓을 건네고, 또 다른 화장 도구를 넘겨받는 이자벨은 마치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처럼 보였다.

아직 아물지 않은 환부 위에 눈썹을 한 가닥, 한 가닥 그려 넣는 손놀림이 예술가 같기도 했다.

타티아나는 그 신들린 경지를 거울로 바라보며 감탄하다가 생각했다.

이 기술은 자신보다 발터의 무수한 중년 남성들에게 더 필요한 게 아닐까?

이마 라인이 자꾸만 뒤로 밀려나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자벨은 구원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타티아나는 경외에 찬 눈빛으로 수줍게 요청했다.

“표 안 나게 잘 부탁할게.”

“그래도 파티라고, 신경이 쓰이긴 하십니까?”

이자벨은 눈을 흘겼으나 타티아나는 담담히 인정했다.

“그렇지, 뭐. 혹시라도 표가 나면 사람들이 계속 물어볼 거 아니야.”

타티아나는 요즘 결혼 생활은 어떠냐는 질문도 백 번 언저리까지 세다가 지겨워서 관두었다.

같은 소리만 반복해서 듣는 것도 고역이었다.

그렇지만 이 경우에는 차라리 경위를 정확히 물어봐 주는 게 낫지 않을까?

대다수는 속으로 지레짐작할 테니까.

“이대로 나가면 사람들은 내가 기드언 전하한테 맞았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설마요.”

“아니야. 이거 꼭 누가 뭐 던져서 피하다가 긁힌 자국 같잖아. 근데 전하는 너무 멀쩡하니까 사람들은 내가 졌다고 생각할 거란 말이지.”

“…….”

“자존심 상해.”

진지하게 듣고 있던 이자벨은 ‘으이그, 바빠 죽겠는데’ 하며 눈을 흘겼다.

타티아나는 다들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아 농담 한번 던졌다가 본전도 못 찾고 찔끔했다.

내가 왜 시녀에게 혼나야 하나 싶기는 했지만, 원래 가까워지면 위계 서열도 같이 무너지는 법이다.

타티아나는 딴청을 피우며 의상실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옆에서 이자벨을 보조하던 시녀가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시녀는 한 손으로 허리를 받친 채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지난번 타티아나가 넌 지금 척추측만증의 위태로운 기로에 서 있다는 걸 알려 주었는데도 차도가 없는 듯했다.

타티아나는 혀를 차며 물었다.

“의사한테 가 본 거 맞아?”

“예, 두어 번…….”

“그걸로 돼?”

의사가 지겨우니 그만 오라고 할 때까지 가야지.

그게 우리가 음식과 운동 외에 우리 몸에 베풀 수 있는 유일한 애정이라고.

타티아나는 아까 전의 이자벨처럼 ‘으이그’ 하며 눈을 흘겼다. 그러고는 시녀의 척추 어딘가를 살포시 눌러 보았다.

너무 정확하게 짚었던 것일까? 날카로운 비명이 허공을 찢을 듯이 울려 퍼졌다.

“아아아악! 비전하, 아파요……!”

타티아나는 귀가 따가워서 인상을 찌푸렸다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이런. 이미 못 쓰게 되어 버렸군.”

“네?”

“이 정도면 척추를 갈아 끼워야…… 아니다. 다시 태어나. 그게 빨라.”

시녀는 가히 절망적인 얼굴이었으나, 타티아나는 픽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문 쪽으로 밀었다.

“진짜 그 수준까지 가기 싫으면, 의사한테 빨리 갔다 오든가 쉬든가 하라고.”

병원 치료와 재활 운동은 병행되어야 한다.

타티아나가 옆에서 봐줄 수 있는 부분에는 한계가 있었다.

방치하면 안 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사람 말을 허투루 들으니, 뼈를 갈아 끼우라는 둥, 다시 태어나라는 둥, 충격요법을 쓰는 것이다.

안 그래도 서 있는 게 죽을 맛이었던 시녀는 왕자비가 허락하니 슬금슬금 자리에서 물러났다.

코니는 그 빈자리를 채우며 타티아나를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왕자비는 시녀들에게 무신경한 것 같다가도 자세나 운동 얘기를 할 땐 야물어졌다.

함께 운동을 하다가 엄살을 피우면 적당한 선에서 봐주긴 했지만, 시녀들은 전부 다 알고 있었다.

왕자비가 가끔 그녀들을 보며 ‘쟤들은 저게 왜 안 될까……?’ 하는 표정을 짓는다는 것을.

그럴 때면 살짝 울컥한 마음이 치미는 것도 사실이었다. 가끔은 항변하고 싶을 때도 있다.

비전하가 특수하신 거고, 우린 지극히 평균이라고.

그렇지만 코니는 요즘 들어 운동하는 여자가 참 멋있다는 걸 느끼는 중이었다.

시녀들이 무거운 걸 든 채 낑낑대고 있으면 왕자비는 그걸 번쩍번쩍 들어서 옮겨 주곤 했던 것이다.

‘에휴, 다 나와.’ 하면서.

만약 왕자비가 남성이었다면, 흠모하는 시녀들이 몇 명 정도는 생기지 않았을까?

사실 요즘도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는 시녀들이 한두 명씩 나오곤 했다.

하지만 그 헛된 망상을 발전시키기엔 비의 뒤에 버티고 있는 남편이 너무나 무서운 사람이었다.

기드언은 권력도 있는데, 심지어 싸움도 잘했다.

코니는 쓸데없는 생각을 내쫓으며 다시금 일에 몰두했다.

그녀가 화장대 위에 올려놓은 건 심사숙고 끝에 엄선해 온 액세서리 2종이었다.

“비전하. 목걸이는 어떤 것으로 하시겠습니까? 양쪽 다 드레스 색과는 잘 어울립니다.”

“으음. 그러네.”

왕족들이 파티에 참석하며 액세서리 하나도 그냥 착용하는 법이 없다는 것은 모든 이들이 다 아는 사실이다.

얼마나 고가의 보석을 사용했느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에 얽힌 서사와 상징성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 두 목걸이는 양쪽 다 합격이었다.

하나는 타티아나 어머니의 마력석이었고, 또 하나는 기드언이 선물한 푸른 장미 목걸이였으니.

둘 다 가문의 상징인 셈이다.

그중 타티아나의 시선이 더 오랜 시간 머문 쪽은 부모님의 유품이었다.

그녀는 마력석 정중앙에 조심스레 손을 가져다 대며 중얼거렸다.

“참 이상한 일이야…….”

“예?”

“나는 살면서 앞으로 몇 번의 실패를 더 거듭해야 하는 걸까.”

실패가 정말로 성공의 어머니라면, 그녀가 대성했을 때쯤엔 어머님이 몇만 분쯤은 계실 것 같다.

무슨 얘기냐 하면 마력석이 그날 이후 또 반응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타티아나가 본 광경이 마치 거짓말이었다는 것처럼, 며칠 내내 무응답이었다.

타티아나는 너무 간절한 나머지 내가 헛것을 보았나 의심하기도 했다.

비슷한 경험은 사실 어릴 때도 종종 해 보았다. 가끔은 자다가 꿈에도 나올 지경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녀는 이번만큼은 환시가 아니라고 확신했다.

막연한 기대감이 아니었다. 예전과는 분명히 다른 직감이 있었다.

그녀는 수없이 실패하고 마력석 앞에서 좌절해 보았기 때문에 그 미세한 차이를 구분할 수 있었다.

‘이대로 마력이 깨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그녀는 어머니와 같은 대마법사는 될 수 없을 것이다. 시작이 너무 늦어 버렸기에.

마검사로서 이름을 날리는 일도 쉽지는 않을 테지.

현재 활동하고 있는 마법사 중 마력과 검술을 동시에 사용하는 이는 없었다.

마탑 역사를 뒤져 보아도 그런 사례는 손꼽을 만큼 드물었다.

정적인 마법과 동적인 검술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기 때문이다.

전속력으로 뛰면서 정밀화를 그리는 게 불가능한 것과 같은 이치랄까.

남들보다 빨리 달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무수한 훈련이 필요하다.

실물보다 더 실물 같은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서도 시간이 필요한 건 마찬가지다.

운이 좋게, 아주 드물게 양쪽 방면 모두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겠지.

100년에 1, 2명 정도?

하지만 그들 또한 경주 도중 세밀한 그림을 그려 가며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지는 못할 것이다.

결국에는 그림도, 레이스도 다 망쳐 버린 채 이도 저도 아닌 결과를 낳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타티아나는 지금 정밀화를 그려 보겠다는 게 아니라서…….

‘난 그냥 마법을 느낄 수만 있어도 엄청 행복할 것 같은데.’

이건 그녀가 검술을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과 같았다.

남이 정해 둔 한계, 거기에서 오는 좌절감에 오염되기 전의 순수한 행복감.

너무 오래되어서 그녀가 한동안 잊고 지냈던 설렘이었다.

타티아나가 다소 먹먹하고 간절한 눈으로 목걸이를 바라볼 때였다.

밖에서는 경비병이 1왕자가 이쪽으로 오고 있음을 알려 왔다.

기드언은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을 활짝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시녀들은 조금 난감한 눈치였다.

남편이라지만 여인의 의상실에 저렇게 막무가내로 출입하는 법이 어디 있나 싶어서였다.

백조가 우아한 자태를 뽐내기 위해서는 물밑에서 처절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법이다.

남에게 보여 주고 싶은 건 우아한 자태이지, 그 처절한 노력이 아니다.

그러나 타티아나는 시녀들보다 관대한 관점으로 이 상황을 바라보았다.

문 안 부수고 들어온 게 어디인가 싶었다.

결혼 생활을 하다 보면 원래 이렇게 그러려니 하다가, 포기하는 게 한두 개씩 생기는 것이다.

기드언은 화장대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와 그녀 앞에 놓여 있는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것만으로도 그녀가 지금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눈치챘다.

부모님의 유품과 남편이 선물한 목걸이라…….

그는 참 흥미로운 상황이라 생각하며,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예요, 남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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