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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81)화 (73/130)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6장. 너의 검이 되어 (4)

타티아나는 어이가 없어졌다.

“무슨 그런 질문이 다 있어요.”

“…….”

“정말 답이 듣고 싶으신 거예요?”

“아뇨.”

기드언은 고개를 저었다. 안 들어도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하늘빛 눈동자를 닮은 마력석 목걸이를 아내의 목에 걸어 주었다.

타티아나는 그 테두리를 만지작만지작하며 생각했다.

‘나, 아직 엄마라고 안 했는데.’

그렇다고 딱 잘라 기드언을 선택하겠다는 건 아니었다.

그 둘은 비교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굳이 비교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하지만 타티아나는 그의 마음이 상했을까 봐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서운해요?”

“그럴 리가.”

기드언도 그 정도로 유치한 사람은 아니었다. 질투할 사람이 없어서 아내 어머니를 질투할까.

그는 오히려 타티아나의 부모님이 아무도 안 계신 게 좀 아쉬웠다.

만약 한 명이라도 생존해 있었더라면, 아내의 환심을 살 수 있는 방법이 무궁무진했을 텐데.

처가에 이것도 해 주고, 저것도 해 주면 타티아나는 틀림없이 좋아했을 테지.

게다가 그는 예전부터 블룸 가 사람들을 전부 마음에 들어 했다.

그들은 셋 다 조금씩은 성향이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꿍꿍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기드언은 왕족으로 나고 자라,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봐 왔다.

이제 와 누가 자신을 배신한다 해도 별로 놀랍지 않다.

하지만 블룸의 성을 가진 사람들에게선 그런 모습이 쉽사리 상상되지 않았다.

그는 어릴 때부터 그걸 알아보았는지도 모르겠다. 스승도, 아내도 다 본인의 의지로 선택하였으니.

그러나 너무 짓궂은 질문을 한 걸까. 타티아나는 계속 그의 말을 신경 쓰며 난감해하는 기색이었다.

지금이라도 남편이 선물한 목걸이를 착용해야 하나 고민하는 눈치였다.

기드언은 그녀를 도와줄 겸,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해 주었다.

“마력석은 장모님 물건이지만, 체인은 내가 해 준 거잖아요. 티티한테는 부모님도, 나도 소중한 거네요.”

타티아나는 감복하여 고개를 주억거렸다.

명답이로군. 명답이야.

기드언은 안도하는 타티아나를 귀엽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쥐더니, 빙그르르 반 바퀴 돌려세웠다.

이번 드레스는 과연 어디까지 등을 파 놨나 궁금해서였다.

모두가 그의 감상평을 기다렸고, 그는 잠깐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도 역시…… 자신감이 굉장하네요.”

타티아나는 푸흐흐, 잔웃음을 흘렸다.

여기에 일조한 시녀들도 몰래 같이 웃었다.

파티장에 들어서기 전, 타티아나는 기드언에게 팔짱을 꼈다. 일견 알콩달콩해 보이는 자세였으나, 그녀의 눈빛은 전열을 가다듬는 장수와도 같았다.

타티아나는 이 비장함을 의아하게 여기는 기드언에게 설명했다.

“친한 척해야죠.”

“……나랑 안 친해?”

“아니, 친한데, 오늘은 더 친해 보여야 한다고.”

뮐러 가 사건 이후, 첫 공식 석상이다.

사이가 너무 좋아 보여도 눈총을 사겠지만, 그래도 소원해 보이는 쪽보단 나을 것 같다.

파티에서만큼은 험담이 미담보다, 남의 불행이 행복보다 큰 파급력을 가지기 마련이니.

타티아나는 기드언의 굵직한 팔을 더욱 깊숙이 끌어안았다.

그러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짓이 쇼윈도 부부와 다를 건 뭔가, 살짝 의아해지기도 했다.

아마 다른 부부들도, 진짜 쇼윈도 부부들도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뭐, 대단한 속사정이 자리해 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다만 살다 보면 누구나 그럴 때가 있지 않나.

남들에게 내가 별일 없이 산다는 걸 보여 주고 싶을 때.

굳이 위선을 떨고 싶진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그래야만 할 때.

‘근데 나는 실제로도 이 사람이 좋으니까…….’

기드언은 타티아나가 지금 다소 쓸모없는 걱정에 빠져 있다는 걸 눈치챘다.

기우가 분명하나, 그는 그 사실을 알려 주지 않았다.

그녀가 남들 보란 듯이 그의 팔을 끌어안고 있는 게 귀엽고도 좋았기 때문이다.

힘이 너무 들어갔는지 살짝 피가 안 통하고 있긴 했지만, 아무튼 좋았다.

두 사람은 다정한 자세를 유지한 채 파티장에 입장했다.

아직 스칼렛 부부도, 왕후도, 바이칼도 오지 않아 연단 위에 착석한 건 그들 둘뿐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10여 분 정도 자리를 지켰을까. 타티아나는 기드언에게서 스르륵 팔짱을 풀었다.

그녀도 자신이 우려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는 걸 눈치챌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친한 척을 하든, 싸우는 척을 하든, 일단은 좀 봐 주는 사람이 있어야 뭐라도 할 게 아닌가?

눈을 마주치려 드는 귀족이 정말 단 한 명도 없었다.

어쩌다 시선이 맞닿아도, 다들 슬금슬금 피하기 일쑤였다.

이게 무슨 일이람, 생각하던 타티아나의 머릿속에는 얼마 전 친구들이 해 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지금 거의 금언령이 내린 분위기라고.

기드언이 벌이고 있는 감찰 조사 탓이었다.

괜히 왕자의 눈에 띄었다가 꼬투리 잡히는 게 두려운 것이다. 다들 뭐 하나씩 죄는 짓고 살아서.

아까까지만 해도 전의를 다지고 있던 타티아나는 살짝 허무해지고 말았다.

눈썹 상처도 열심히 가리고, 등도 한껏 드러내고, 남편이랑 팔짱도 끼고 들어왔는데.

물론 따가운 눈총과 쑥덕거림이 없으니 편하기는 했다.

그녀는 언제나 연회장의 석조 기둥 53이 되기를 꿈꿔 오지 않았나.

오늘에 와서야 비로소 그 꿈을 이룬 것이다.

소감이 어떠하냐면…….

“이것도 살짝 외로운데……?”

“뭐가요.”

“군중 속의 고독이랄까? 투명인간이 된 것 같아요.”

어떡하지? 난 사실 개구리들을…… 좋아하는 게 맞나 봐. 너무 조용하니까 허전하네.

두 사람은 나란히 웃음을 흘렸다.

그 모습을 힐끔거리던 귀족 하나는 기드언과 눈이 마주쳤다가 부리나케 시선을 피했다.

그러나 꽁꽁 얼어붙어 있던 연회장 분위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제법 매끄럽게 풀어졌다.

대기하고 있던 연주자들이 부드러운 선율을 흘려보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오늘은 기존의 왕실 파티와는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음악에 맞추어 멋진 춤을 선보이고 있는 전문 무희들이었다.

타티아나가 호오, 입술을 동그랗게 말며 기드언을 바라보자 그는 다소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시선 분산용.”

“분산할 만큼 우리 쪽에 몰린 시선이 없는데요.”

“나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누이가 불렀어요.”

“아아.”

어쩐지. 저 화려함과 아름다움은 딱 봐도 스칼렛 공주의 취향이었다.

그리고 공주는 역시 행사와 의전에 있어서는 전문가였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오는 데 이보다 더 확실한 방법은 없었던 것이다.

팔랑팔랑 나풀거리는 옷자락들이 나비의 날갯짓 같다.

사람이 어떻게 저리도 유연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동작들을 무희들은 너무나 쉽게 해냈다.

그렇다고 마냥 여려 보이지도 않았다.

춤 선에서 힘과 강인함이 느껴졌다.

타티아나는 점점 그녀들에게 빠져들었고, 동작, 옷차림 하나하나를 세세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발터 귀부인들이 아직 개척하지 못했던 파티 복식 문화의 새로운 영역.

어떤 무용수 하나는 그곳을 아주 과감하게 개척했다.

타티아나는 옷자락이 나풀거릴 때마다 언뜻언뜻 드러났다 사라지는 무희의 복근을 주시했다.

그리고 그 순간, 타티아나의 세상이 무너지고 말았다.

한 운동중독자가 그간 열심히 쌓아 온 자부심도 함께 흔들렸다.

“복근이…….”

“음?”

“나보다…… 이럴 수가.”

“…….”

타티아나는 자신의 복근을 움켜쥐며 망치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세상이 아무리 넓다지만, 무용에도 엄청난 근력이 필요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무용수에게서 발터 여기사들보다 훌륭한 복근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좌우 균형이 너무…… 완벽해.’

기드언은 충격을 받은 나머지 눈조차 깜빡이지 못하는 타티아나를 보며 황당해했다.

그러면서도 이게 아내한테는 참 큰 부분이지, 싶어 조심스레 위로하듯 말했다.

“티티. 원래 사람 체질마다 다른 겁니다. 잘 알면서 왜 그래요.”

“…….”

“티티는 사실 몸 더 만들 수 있는데, 그냥 유지하고 있는 거잖아요. 지금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해서.”

“…….”

“혹시 내 말, 안 들립니까?”

타티아나는 멍하니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절망한 게 아니었다. 도리어 서서히 눈을 빛내고 있었다.

반드시 저 비법을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듯.

“전하, 저 사람은 평소에 무슨 운동을 할까요?”

“……어?”

“저건 분명히 식단도 신경을 쓴 거예요.”

“…….”

“보통 사람처럼 먹으면 근육이 저렇게 선명하게는 안 나와요.”

하아, 내가 그동안 식단 관리를 너무 소홀히 했나? 성에 먹을 게 좀 많아야지.

사실은 너무 까탈스러운 인간처럼 보이거나 주변인들을 피곤하게 할까 봐 주는 대로 먹었던 측면도 있다.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주변인들의 입장을 하나하나 다 살피면서 제 갈 길을 가나?

길 가다 만난 새, 바둑이들한테 전부 다 인사해 주면 전력 질주할 수 있겠나?

타티아나는 성에 온 이래 방만하게 흘려보낸 시간들이 후회스럽기만 했다.

물론 이 속마음을 누군가가 알았더라면, 그 지독한 운동 루틴을 생생히 목격해 온 시녀들이 들었더라면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을 것이다.

당신은 절대 방만하지 않다고. 여기서 뭘 얼마나 더 할 셈이냐고.

제발 적당히 좀 하라고.

기드언도 비슷한 생각이긴 했다.

그러나 열망에 차 있는 아내의 눈동자를 모르는 척할 수가 없어 군소리하지 않고 도움을 주었다.

“파티 끝나고 따로 불러 줄게요. 그때 물어봐요. ……그러면 되는 거죠?”

타티아나는 고개를 위아래로 크게 주억거렸다. 아주 만족스럽다는 표정이었다.

기드언은 진짜 못 말리겠다는 듯 이마를 짚은 채 큭큭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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