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84)화 (76/130)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6장. 너의 검이 되어 (7)

* * *

타티아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물구나무서기로 하루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 그녀는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운동에 돌입했다.

얼핏 보면 스트레칭 같았지만, 시녀들은 저걸 과연 그렇게 점잖게 표현해도 되는 걸까 싶기도 했다.

그녀들 눈에는 왕자비가 본인의 몸을 거의 찢어발기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난밤 무희를 만나고 오더니 아주 이상한 걸 배워 온 모양이었다.

“비전하.”

“아이, 운동할 때 말 시키지 말라니까.”

“…….”

“왜 그러는데.”

“그 발끝을 어디까지 갖다 놓으실 계획인지요?”

타티아나는 외다리로 서더니 한쪽 발끝을 머리 위에서 부여잡고 있었다.

지금만으로도 어마어마하게 유연했다.

그런데 그녀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본인 발가락을 계속 잡아당기는 중이었다.

“얼굴 앞으로 보내려고.”

“……그게 될까요?”

“안 되는 게 어딨어. 힘으로 밀어붙이면 다 되지. 그 사람보다 힘은 내가 더 세.”

타티아나는 이를 악물더니 본인의 발을 확 잡아당겼다.

아악, 하는 비명을 지르긴 했으나, 그녀는 정말로 성공했다.

발끝이 정수리 앞으로 넘어갔던 것이다.

타티아나는 이제야 만족한 듯 두 발로 서며 두둑, 두두둑,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후우, 이번 건 정말 쉽지 않았다.”

그녀는 근육이 찢어지는 줄 알았지 뭐야, 하며 끔찍한 소리를 중얼거렸다.

그런 타티아나를 보며 시녀들은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저, 도, 독한…….”

“무서워, 너무 무서워.”

타티아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시녀들을 바라보았다.

너흰 하던 거 안 하고 왜 은근슬쩍 놀고 있냐는 뜻이었다.

그러자 시녀들은 말없이 기마자세를 취하며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했다.

약간 벌을 받는 기분이었지만, 왕자비가 뽐내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엉덩이를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으니 일단은 믿어 보기로 했다.

왕자비는 실제로 운동과 검 앞에서는 늘 진실했으니까.

물론 평소에도 거짓말 같은 건 잘 안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엉덩이를 대체 누구한테 뽐내지?”

“이참에 애인을 사귀어.”

“엉덩이 때문에? 굳이?”

시녀들이 또 시시덕대자 타티아나는 눈을 흘겼다.

운동할 때만큼은 유독 깐깐해지는 그녀는 시녀들에게 늘 호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는 했다.

귀엽긴 한데 동시에 너무 무서운 교관이었다.

‘저런 것도 블룸 경한테 배운 건가?’

시녀들은 우리가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고민해 보았지만 잘 기억나지 않았다.

분명 비에게 장단 정도만 맞춰 주려고 했던 것 같은데…….

하지만 원래 다 그런 식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그녀들은 이제 너나 할 것 없이 왕자비의 아침 운동 메이트가 되어 있었다.

아차, 싶었지만 무르기엔 너무나 늦어 버렸다.

타티아나는 누운 채로 양다리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복근 운동을 하고 있는 코니에게 다가섰다.

코니가 안간힘을 다해 다리를 들어 올리면, 타티아나는 그걸 휙 하며 바닥으로 밀어 버렸다.

“뭐해? 하나 더해야지.”

“……예.”

“내일은 날씨가 안 좋을 수도 있으니까 하나만 더 하자.”

“저흰 실내운동 중인데요.”

“……너 역시 만만하지 않네. 아무튼.”

코니는 사기를 당하는 기분이었지만 일단은 잠자코 지시에 따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내가 양발 들어 올리기를 해야 하는 이유가 이렇게나 많았다니?’

조만간 눈이 올 테니까, 날씨가 추우면 사람이 게을러지니까, 빙판길에서도 딱 버티고 서 있을 수 있는 근력을 위해…….

이제는 대체 어디까지 할 셈인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그리고 온갖 이유를 다 갖다 붙이던 타티아나도 나중에 가서는 레퍼토리가 떨어진 듯했다.

그녀는 먼 길을 돌고 돌아 다시 처음으로 왔다.

“내일은 날씨가 안 좋을 수도 있으니까…….”

“그거 아까 했는데요?!”

코니는 딱 걸렸다, 하며 벌떡 일어났으나 타티아나는 별로 민망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시시 웃으며 선선히 허락했다.

“그랬나? 알았어.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

“…….”

“고생했어.”

그러나 코니는 보고 말았다.

돌아서던 타티아나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참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것을.

‘얘네들은 대체 왜 이 정도도 못 하지?’ 생각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코니는 저 눈빛을 볼 때마다 억울함과 함께 모자란 사람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약간의 패배감을 느꼈다.

그런데 여기에 패배감을 느끼기 시작하면 정말로 큰일이 난 것이다.

보통 그다음엔 오기와 승부욕을 느끼게 되어 있고, 그렇게 빠져들다 보면…… 어느 순간 운동중독자가 되어 있다.

“비전하, 그런 표정 안 지으시면 안 될까요?”

타티아나는 다른 시녀에게 가려다 말고 의아한 듯 물었다.

“표정? 내 표정이 어떤데?”

“얘들은 대체 왜 이걸 못 할까, 맨날 그런 눈으로 보시잖아요!”

어머, 어떻게 알았지?

타티아나는 흠칫하더니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내가 그랬단 말이야?”

타티아나는 살아생전 그런 표정을 곧잘 지었던 사람을 둘이나 알고 있다.

그녀의 친부모님이었다.

블룸 경은 훈련 교관 시절, 견습 기사들을 예뻐하면서도 참 알 수 없는 일이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곤 했다.

기사들한테만 그랬나? 가끔은 어린 딸을 보면서도 그랬다.

타티아나는 그게 당하는 입장에선 상당히 울화통이 터지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가르쳐 주는 블룸 경은 ‘어때, 쉽지?’ 하는데 누가 봐도 전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자기가 그 표정을 고스란히 배워서 남들에게 똑같이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뒤늦게 미안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때 아빠가 어떤 기분이었는지도 알 것 같다.

아빠는 진짜로 이해가 안 되셨던 거다.

평범한 기사들의 고충에 공감하기에는 본인이 너무 천재라서.

그들과 같은 기준으로 생각하는 게 그에게는 도리어 어려운 일이라서.

심지어 블룸 경은 무투 대회에서 3연속 우승을 차지한 이듬해, 불참을 선언하며 이를 아쉬워하는 타티아나에게 이렇게 속삭인 적도 있다.

‘타냐, 애들 노는 데 어른이 끼는 거 아니란다. 이 정도면 충분히 했어.’

그에게는 발터의 기사들이 다 어린애들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같은 기사들을 상대로 그랬으니 멋있기라도 하지, 나는 일반인들, 그것도 시녀들 앞에서 무슨 짓이람.

타티아나는 머쓱한 얼굴로 코니에게 사과했으나, 코니는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냥 투정을 부린 것뿐이지, 감히 왕자비에게 사과를 받으려고 꺼낸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녀들도 알고 있었다.

왕자비는 시녀들에게 시간을 할애하기에는 너무나 고급 인재였다.

왕실 친위대의 이름난 기사들도 왕자비와는 다 한 번씩 대련을 해 보고 싶어 했다.

막사를 폐쇄하자 다들 너무나 아쉬워했던 것이다.

시녀들과 함께 아침 운동을 하는 것은 비에게는 그저 소꿉놀이 정도에 지나지 않으리라.

그러나 타티아나를 존경의 눈빛의 바라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녀의 훈련 방침에 의구심을 품는 이들도 가끔은 존재했다.

방금 전까지 기마자세를 취하고 있던 시녀는 슬금슬금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몹시도 망설이다가 타티아나에게 물었다.

“근데요, 비전하. 이걸 며칠째 하니까요, 오히려 다리가 굵어지는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살을 빼고 싶은 건데요. 비전하도 뺄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 말을 듣고 있던 타티아나의 표정은 시시각각, 아주 다채롭게 변했다.

떨떠름해하다가, 한심해하다가, 기가 막힌다는 듯 혀를 차기도 했다.

그러고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진짜 놀고 있네.

타티아나는 ‘뭐요? 제가 언제 놀았지요?’ 하며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는 시녀에게 설명했다.

“너는 내가 틈만 나면 운동하는 거 알지.”

“네. 잘 알지요.”

“네 눈엔 내가 막 우락부락해 보이니?”

타티아나는 이 부분에 약간의 한과 여전한 아쉬움을 품고 있는 사람이었다.

날렵하고 탄탄한 체형을 유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지 오래였음에도 말이다.

시녀는 고개를 저었고, 타티아나는 말을 이었다.

“근데 네가 왜 그걸 걱정하니? 네 지금 운동량으로는 알통 같은 거 만들고 싶어도 절대 안 생겨.”

“…….”

“지금은 근육이 자극을 받아서 일시적으로 부풀어 오른 거야. 금방 되돌아오니까 쓸데없는 걱정 좀 하지 마.”

근육질의 탄탄한 신체, 혹은 늘씬한 신체.

거기에 대한 호오는 사람마다 다르기 마련이니 손대고 싶은 생각 없다.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은 자신에게 있으니까.

본인의 몸을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형해 갈 수 있다는 게 운동의 재미이기도 했다.

다만 저런 걱정을 하려면 일단은 발터 여기사들의 백 분의 일만큼이라도 운동을 한 다음에 하라는 거다.

그래야 이쪽도 진지하게 들어 줄 게 아닌가.

“방금 네 말은 이런 소리와 같아.”

“어떤 소리요.”

“길 가다가 달랑 1발터화 줍고는 나, 이러다 부자 되면 어떡하지? 하는 거.”

“……너, 너무하사와요.”

시녀들은 뭐 이런 지독한 교관이 다 있냐는 듯 치를 떨었다.

평소에는 허허실실 넘어가다가도 운동 얘기만 나오면 사람이 아주 가차 없었다.

그러나 타티아나는 심드렁한 얼굴로 귀를 후빌 뿐이었다.

그녀가 듣기에는 이러다 천재가 될까 봐 공부 못 하겠다는 소리나 똑같았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천재나 부자가 되는 경우는…… 뭐, 대체로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