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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92)화 (84/130)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6장. 너의 검이 되어 (15)

기드언과 타티아나는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몸을 수그린 채 마차에서 내렸다.

특별한 의견 교환 없이도 같은 행동을 한다는 건, 그들의 판단이 일치했다는 증거였다.

마차 안에 있으면 위험하다.

물론 이 군용 마차에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보호 마법이 걸려 있었다.

마력으로 일으킨 불길 정도는 막아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진에는 마법사만 있는 게 아니었다.

용병인지 살수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육탄전을 벌일 수 있는 사내들이 매복해 있었다.

그들은 지금도 혼란을 틈타 조금씩 전진하는 중이었다.

만약 기드언의 살수들이 저들에게 밀리고, 병사들의 저지선이 뚫려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최악의 경우, 타티아나와 기드언은 마차 안에 고립된 채 적들을 맞이해야 할 수도 있다.

그것만큼은 사양하고 싶었던 두 사람은 자세를 낮춘 채 병사들의 후미로 가 사위를 경계했다.

하지만 그러한 순간에도 타티아나의 머릿속은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참으로 이상한 상황이다.

이 정도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마법사라면 당연하지만, 떠돌이일 리 없었다. 아주 높은 확률로 마탑 소속일 게 분명했다.

한데…….

‘마탑이 왜?’

승계 문제에 관여하지 않고,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건 그들의 오랜 원칙이 아닌가.

그건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권력이 유한하며 국내 정세는 가변적이기 때문이었다.

괜히 함부로 누군가를 지지했다가 패하면, 마탑은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그들의 막대한 연구 비용을 대는 것도, 마력석을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것도 결국엔 현 왕과 차기 왕의 권한이니 말이다.

그들은 그 불확실한 도박에 휘말리는 대신, 아주 고상한 척 정치적 중립을 선언하고 연구에만 매진해 왔다.

사실은 몸을 사리고 뒤로 빠지는 거나 다름없었다.

마탑의 존속 앞에서는 언제나 보수적이고 안정 지향적인 집단이었다.

게다가 타티아나가 아는 마탑주 할아버지는 이런 일에 나설 위인이 절대 아니었다.

사실 마법사들 대부분이 비스름한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타티아나의 어머니도 남편 일임에도 불구하고 정치라면 질색을 했으니.

그렇다면 이건 혹시 개개인의 일탈이자 항명인가.

하지만 이것도 이상한 건 마찬가지였다.

마탑에 소속되어 있는 200명 남짓의 마법사들.

그들 중 이 정도 범위의 살상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이가 몇이라고 보나?

정말로 얼마 안 된다.

용의자를 특정하기가 너무 쉽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위험한 짓을 한다고?

왕후한테 약점이라도 잡혔나? 가족이 인질이 되기라도 한 건가?

타티아나는 도무지 상황 파악이 안 되어서 눈살을 찌푸렸다.

그때 기드언 측 병사 한 명이 소리 높여 외쳤다.

“가자! 지금 공격해야 돼!”

마법사를 상대하는 방법은 이미 기사들과 병사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정도 대단위 마법을 쓰고 나면, 시전자는 탈진하는 게 보통이다.

만에 하나 체력이 엄청난 마법사라 할지라도, 마력을 다시 끌어 올리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공격하려면 이 틈을 노려야 했다.

병사들과 살수들은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전진했다.

하지만 그때였다.

타티아나는 또 한 번 공기가 일렁이는 것을 느끼고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피해! 숙여!”

콰쾅, 쾅-!

그녀는 몸을 웅크린 채 허공을 바라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마법사가 한 명이…… 아닌가 보네?”

마력의 느낌과 특성이 아까와는 판연히 달랐다.

그 뒤로 전열이 흐트러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살상 마법은 기드언 측 진영의 허리에 내리꽂혔고, 상대측 병사들은 우르르 쏟아져 내려와 그 틈을 파고들었다.

기드언과 타티아나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적병을 물리친 뒤 앞선 부대와 합류할 것인가. 아니면 후퇴할 것인가.

그들은 예측 불가능한 존재인 마법사를 피해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타티아나는 쓰러져 있는 시체에서 검을 빌려 왔다.

기드언 또한 난전 속에 후퇴하면서 자신의 검을 휘둘렀다. 그 일격에 적병의 목이 날아갔다.

타티아나는 이 와중에도 기드언의 검술을 곁눈질로 바라보며 떫은 표정을 지었다.

‘내 남편, 사기꾼인가?’

아니지, 이 정도면 내숭쟁이인 것 같다.

타티아나는 기드언이 예전에 비해 검술 수련을 등한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근육질의 다부진 몸으로 보건대 운동 정도는 꾸준히 하는 게 분명하지만, 누군가와 대련을 벌이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한데 기드언의 검술은 퇴보하기는커녕 도리어 더 유려해진 것 같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기술은 갈고닦지 않으면 녹슬기 마련인데.

이게 천재라는 건가?

그런데 왜 이런 실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걸 아내한테도 안 알려 줬을까.

기드언은 또 한 번 검을 휘둘렀고, 이번에는 일격에 두 명의 목이 뎅겅, 하고 날아갔다.

타티아나는 그 동작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기합을 불어넣으며 한꺼번에 두 명을 처리했다.

그와 비슷한 기술이었고, 같은 숫자였다.

하지만 기드언은 격투술에도 능한 사람이었다.

그는 또 다른 두 명의 목숨을 거두더니, 마무리라도 하듯 달려드는 병사의 목을 우지끈 꺾어 버렸다.

타티아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한 번에 세 명을 처리하는 건 까다로웠으며, 검술과 달리 체술은 복제하는 게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 뼈는 생각보다 훨씬 단단해서, 저렇게 아무나 맨손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녀는 검술의 연결 동작을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길게 뻗은 검으로 적병의 가슴팍을 베었고, 그대로 한 바퀴 돌아 적들의 복부에 검을 푹, 푸욱 하고 연달아 찔러 넣었다.

어쨌든 처리한 건 세 명으로 결과는 기드언과 같았다.

기드언은 타티아나가 전투 중, 틈틈이 그를 흘긋거린다는 걸 눈치챘다.

나중에는 뭘 하고 있는지도 알아챘다.

그녀는 남편과 경쟁하는 중이었다.

“지금 누구랑 싸웁니까. 혹시 나랑 싸워요?”

타티아나는 그들 앞에 즐비하게 쌓여 있는 시체들을 바라보았다.

누구랑 싸우긴. 보면 모르냐는 뜻이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이내 자그맣게 덧붙였다.

“……전 언제나 제 자신과 싸워요.”

기드언은 코웃음도 안 치고 이렇게 물었다.

“그래? 가슴에 손을 얹고?”

“…….”

또 거짓말은 하기가 힘들어서 타티아나는 모르는 척 열심히 검만 휘둘렀다.

그 뒤로 두 사람은 정말로 경쟁이라도 하듯 쉴 새 없이 적들을 베어 넘겼다.

타티아나는 시체에서 슬쩍해 온 무기가 조잡한 게 너무나 아쉬웠다. 기드언이 선물해 준 명검이 자꾸만 떠올랐다.

오늘 입을 드레스에 검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시녀들의 간언이 있기도 했고, 어쩌면 빈민가 아이들을 안아 줄 일이 있을 것 같기도 해서…….

혹시라도 아이들이 겁을 먹을까 봐 시녀들의 조언을 따른 것인데, 그냥 챙겨 와서 마차에라도 놔둘걸.

확실히 좋은 검을 쓰다 보면, 몸이 거기에 적응하고 의존하는 경향이 생긴다.

도구를 탓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오늘, 그 무기를 대신하고도 남을 만큼의 훌륭한 파트너가 있었다.

타티아나와 기드언은 같은 스승 밑에서 배운 것도 모자라 부부였다.

손발이 이렇게 잘 맞을 수가 없었다.

‘왼쪽!’, ‘아래!’ 이 정도만 얘기해도 의사소통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녀는 기사들처럼 단체 생활을 해 본 적은 없지만, 안심하고 나의 등을 맡길 동료가 있다는 게 바로 이런 기분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 명을 처리했을까.

정확하진 않지만 이미 손가락, 발가락을 다 동원해도 세기 어려웠다.

기드언도 엇비슷한 숫자를 해치웠을 것이다.

그들과 따로 떨어진 병사들이 처리한 이들까지 합하면 족히 100명의 목숨은 거두지 않았을까.

이대로라면 어렵지 않게 남은 용병들을 따돌리고 안전한 곳으로 피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타티아나는 앞선 부대를 바라보았다.

그들 사이는 이미 멀어질 대로 멀어져 있다.

상황이 정리될 만하면 적진의 마법사가 쏘아 대는 마법 때문에 선두의 병사들은 뿔뿔이 흩어진 상태였다.

‘지금이라도 다시 합류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녀가 한 명의 개인이었다면 주저 없이 그리했을 것 같다.

타티아나가 선뜻 그러자고 말할 수 없는 건 그녀가 왕자비이고, 기드언이 왕자이기 때문이었다.

그들 진영을 체스판에 비유한다면 기드언은 두말할 것 없이 ‘왕’이다.

왕은 언제나 안전해야 한다.

본인의 목숨을 보전하는 게 그의 가장 큰 책무다.

그러나 이 싸움이 체스와 다른 게 한 가지 있다면, 왕이 좀 심각할 정도로 강하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있는 어떤 체스 말들보다 싸움을 잘했다.

타티아나는 기드언이 무심한 얼굴로 적병을 휙, 휙 베어 넘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거침이 없었다.

나무처럼 전투에 방해되는 지형물을 만나면, 그것마저 부수고 있었다. 약간 짜증스럽다는 듯 눈썹을 찌푸리며.

타티아나도 저게 기드언의 개인적인 전투 취향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지형물을 활용해서 숨어야 하는 건 저쪽이 아니라 우리 쪽인 것 같은데.

기드언과 타티아나의 일행 중에는 학교 설립 행사를 기록하기 위해 따라온 사관도 있었다.

그는 훗날 오늘을 이렇게 서술하지 않을까.

‘1왕자 전하께서 허공을 베시니 나무가 쓰러지고, 발을 구르시니 바위가 두 동강 났도다. 적들은 추풍낙엽처럼 흩날릴 뿐이었다.’

그만큼 압도적인 전투력이었다.

한데 그 순간, 타티아나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녀는 몸을 날려 기드언을 덮치며 바닥을 함께 나뒹굴었다.

이번에는 저 앞이 아니라 바로 근처에서 공기가 일렁거렸기 때문이었다.

방금 전까지 기드언이 서 있던 자리에는 수십 개의 불화살이 날아와 꽂혔다.

그걸 본 순간 타티아나는 직감했다.

‘당했다.’

여기에도 마법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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