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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95)화 (87/130)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7장. 남편과 사이가 또…… (1)

왕자궁의 공기는 날카로웠다.

기드언은 환자 앞에서 살기를 세우면 좋을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시시각각 피어오르는 불안감과 어지러운 심사를 다스릴 수 없었다.

방 한 켠에는 여러 명의 의사들이 서 있었다. 두 손을 공손히 모은 채였다.

‘내상입니다. 기드언 전하.’

‘내상?’

‘예. 몸 안에서 마력이 폭주했습니다. 이건 저희가 치료할 수 없습니다, 전하.’

의사들은 손을 뗀 지 오래였고, 타티아나를 돌보고 있는 건 마탑의 중진 마법사들이었다.

그들은 쉴 새 없이 주문을 외우고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약간 주눅이 든 상태였다.

성까지 오는 과정이 결코 평화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탑에 들이닥친 살수들은 조사에 협조해 달라고, 일단 말은 그렇게 했다.

그러나 살수란 태생부터 눈빛이 일반인들과는 다른 것이다.

평소에는 감추는 척이라도 하지만,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들을 대할 때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타티아나의 상태가 심상치 않자, 마법사들은 심문과 조사를 받는 대신 치료부터 하고 있었다.

몇 명은 포승줄도 다 풀지 못한 채였다.

허튼수작 부리면 재미없다는 듯 등 뒤를 겨누고 있는 케이의 검과 1왕자의 살기는 덤이었다.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

마차에 오르기 전까지만 해도 타티아나의 상태는 괜찮았다.

마법을 쓰는 도중 피 섞인 침을 내뱉었다지만 이후로는 안정을 찾아가는 듯 보였다.

곧 죽을 사람처럼은 절대 안 보였다는 것이다.

의사소통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 그녀는 뒤늦게 도착한 케이에게 핀잔까지 주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난 네가 당한 줄 알았잖아.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죄송합니다, 비전하. 잠시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왜?’

‘전투 중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마법인 듯했습니다.’

타티아나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뭔가를 어렴풋이 떠올렸다.

‘프리즈 마법을 쓸 줄 아는 사람이 있었나 보네. 그런데 그 주문이 벌써 완성됐나?’

‘무슨 말씀이신지 잘…….’

‘그건 풀만에서 연구하다가 포기한 마법일 텐데.’

특정 상대에게 마법을 거는 건 광범위한 지역에 불덩이를 떨어뜨리는 것 못지않게 어렵다.

주문을 거는 마법사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상대에게도 자유 의지란 게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그게 일반인들보다 몹시 강하다.

최면술이 통하는 사람이 있고, 전혀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타티아나는 이상하다는 듯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진짜 무서운 부분을 발견해 내고는 흠칫 몸을 떨었다.

‘근데 너 지금 어떻게 살아 있어?’

발터 최고의 살수라 할지라도 전투 중간에 발이 묶이는 건 치명타였다.

적들이 사정없이 공격해 대는데 옴짝달싹 못 하면 어떻게 맞서고, 어떻게 피하란 말인가.

그러나 케이는 몹시도 덤덤하게 말했다.

‘다행히 손은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발도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마력이 다했었나 봅니다.’

그때까지 그냥 잠자코 제자리에서 방어했다는 뜻이었다.

타티아나는 케이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대체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걸까? 내가 아직도 너에 대해 알아야 할 게 남아 있니?

분명 아무 데서나 볼 수 없는 기술의 향연이었을 텐데. 그 자리에 없었던 게 천추의 한이었다.

기드언은 애석해하는 타티아나를 떨떠름하게 바라보았다.

그게 뭐라고 또 눈을 빛내며 궁금해하는 건가 싶었다.

그는 풀밭에 누워 있는 그녀를 짐짝처럼 번쩍 들어 올리며 케이에게 명했다.

‘마탑주부터 그 밑에 간부들까지 싹 다 잡아 와. 마탑 주변을 폐쇄하고 군부에는 대기 명령을 내려라.’

일단 서쪽 첨탑의 지하 감옥에 몽땅 처넣고 시작할 예정이었다.

배후로 추정되는 인물은 한 명뿐이었으나, 조사할 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기드언은 전투 내내 타티아나와 비슷한 의문을 품고 있었다.

마탑이 왜 그랬을까.

그는 마탑주를 비롯한 중진 마법사들과 그리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서로가 굉장한 실리주의자라는 점에서는 통하는 부분마저 있었다.

비록 마탑이 정치적 중립을 표방한 단체라고는 하나, 왕후와 기드언 중 마탑과 더 가까운 건 누구일까?

이렇게 묻는다면 답은 두말할 것 없이 기드언이었다.

무엇보다 기드언에겐 타티아나라는 아내가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마탑의 상징이자 자랑 아닌가.

엔야 블룸 부인에 대한 마탑의 자부심은 유명해서, 그 무엇을 대가로 제공한다 해도 맞바꾸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들이 대마법사의 딸을 함부로 공격할 리 없다는 뜻이었다.

한데 대체 왜…….

기드언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으나, 결국엔 답을 내리지 못한 채로 마차에 올라야 했다.

일단은 타티아나를 성안, 안락한 침실에 눕혀야 했다.

그게 우선이었다.

그러나 기드언과 타티아나가 나란히 마차에 오른 뒤, 사태는 급변했다.

그녀의 상태가 악화되었던 것이다.

안 그래도 창백했던 입술은 점점 파래졌고, 이마에는 송골송골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기드언은 그녀의 이마와 뺨을 차례로 짚어 보고는 난감한 듯 말했다.

‘티티, 몸에서 열이 납니다.’

‘그래요?’

‘네, 입술이 파래요. 혹시 춥습니까.’

‘아뇨. 그건 아닌데……. 사실은 추운 건지 더운 건지 잘 모르겠어요.’

타티아나는 자기 몸 상태를 본인도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기드언은 그녀의 눈동자가 말을 할 때마다 조금씩, 아주 서서히 몽롱해지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그때, 그녀가 우우욱, 하더니 마차 안에 피를 한 바가지 쏟았다.

새카만 군용마차 내부가 짙게 얼룩졌다.

너무나도 불길한 자국이었다.

‘티티!’

‘읍, 우욱…….’

‘이, 이게 무슨, 어떡해.’

‘…….’

타티아나는 늘 완벽했던 기드언이 말을 더듬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아마 그도 말을 깨친 이후로 처음이지 않았을까?

그녀는 오늘 희한한 일을 참 많이도 겪었으나, 이것만큼 기억에 오래 남는 광경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그만 풋, 하고 웃어 버렸다.

하지만 아내가 검붉은 피를 주룩주룩 토해 내다가 갑자기 피식거리니, 그걸 보고 있는 기드언은…… 얼마나 놀랐을까?

‘왜 웃는 거예요. 응?’

‘…….’

‘왜 그러는데. 괜찮은 거야?’

‘…….’

‘뭐라고 말 좀 해요.’

타티아나는 괜찮다는 의미로 손을 젓고는 입가를 스윽 닦았다.

마력을 소진한 것으로도 모자라, 남은 수명을 미리 끌어다 쓸 각오로 전투에 임했다.

이 정도 후폭풍은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극심한 현기증을 이기지 못하고 긴 의자에 풀썩 누워 버렸다.

기드언은 무서운 얼굴로 창문 밖 병사들을 독촉했다.

그러면서도 곁눈으로 타티아나를 볼 땐 노심초사, 애가 달아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지금이라도 마차를 세우고 인근에서 의사를 찾아야 하는 게 아닐까.

수도 없는 번뇌가 그를 괴롭혔다.

그러나 그는 마을 의사들의 실력을 좀처럼 신뢰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타티아나를 낫게 해 줄 것 같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타티아나는 잠꼬대처럼 끊임없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지러워, 토할 것 같아, 아파, 추워.

기드언은 병사들에게 서두르라는 명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의 현실에 신음하다 그녀의 마지막 말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다른 건 몰라도 그녀를 덜 춥게 해 줄 수는 있었던 것이다.

그는 곧바로 망토 버클을 풀어 그녀의 몸을 감색 천으로 여몄다.

그러나 이미 정신이 몽롱해진 타티아나는 누가 자신의 몸에 손을 대자 거부감을 보였다.

반사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하며 일어나려 했지만, 목조차 가누지 못한 채 다시 고꾸라졌다.

‘싫어, 하지 마…….’

기드언은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그녀를 끌어안으며 달랬다.

‘왜 싫어, 티티, 나예요. 기드언.’

‘……기드언?’

‘응. 네 남편이잖아.’

‘…….’

‘추워하는 것 같아서 옷 덮어 주는 거야.’

타티아나는 눈꺼풀을 깜빡깜빡했고 혼곤했던 초록 눈동자에는 잠시나마 초점이 돌아왔다.

그를 알아보았는지 입가에는 미소가 어렸다.

밀어내려던 남편의 손도 꼬옥 잡았고, 망토에 뺨을 비비기도 했다.

기드언은 그 모습에 더욱 애가 타서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러고는 다시 한 번 병사들과 마부를 재촉했다.

‘성까지 얼마나 남았지?’

‘거의 다 왔습니다! 이제 성문이 보입니다!’

‘서둘러라. 내 비가…… 너무 많이 힘들어해.’

여기까지가 타티아나가 성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이다.

의사들이 벌을 받듯 방 한쪽 벽면에 붙어 서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덧붙여 마탑의 고위급 마법사들이 지하 감옥이 아닌 타티아나의 침실로 방향을 선회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었다.

그러나 기드언은 여기까지 숨도 안 쉬고 달려온 보람을 눈곱만큼도 느낄 수가 없었다.

타티아나가 아무런 차도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식은땀을 너무나 많이 흘린 나머지 그녀의 침대는 축축했다.

기드언은 윽박지르듯 마법사들을 다그쳤다.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치료를 하고 있긴 한 건가? 열이 떨어지지 않잖아.”

“……최선을 다하고 있사옵니다, 전하. 비전하는 조금씩 나아지고 계십니다.”

“그 말 확실해?”

“…….”

마법사들은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이건 그들도 장담할 수 없는 문제였다.

한 번 폭주한 마력은 그리 쉽게 제자리를 찾는 게 아니었다.

태풍이 불 때 인력으로 잠재울 수 있나?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바람에 날릴 만한 위험한 물건들을 치우는 것 정도였다.

마력도 마찬가지였다.

마법사들이 해 줄 수 있는 건 들끓는 마력이 좁은 통로에 정체되어 폭발하기 전에 살살 다음 자리로 밀어 주는 것 정도였다.

그 외 나머지 해결책은 시간뿐이었다.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거다.

그때였다.

이 짧은 대화가 타티아나의 귀를 간지럽힌 걸까. 아니면 또 자신도 모르게 살기를 내뿜고 있는 기드언이 문제였을까.

타티아나는 잠에서 깨어나듯, 그렇지만 여전히 몽롱한 눈동자를 게슴츠레하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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