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7장. 남편과 사이가 또…… (4)
새파란 마력석 목걸이가 엄청난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물론 마력석이 마력에 반응하는 건 노상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빛은 광석 주위를 은은하게 감도는 게 보통이지, 이렇게 사람의 눈을 멀게 할 정도로 휘황찬란하지는 않다.
엔야 부인의 유품은 말 그대로 어두운 밤을 밝히고 있었다.
이 방 안이 너무 비좁다는 듯, 창문 너머 후원의 수풀을 비추며 풀벌레들의 밤잠을 깨워 댔다.
기드언은 얼굴을 무섭게 구기며 마법사들을 다그쳤다.
“왜 이러는 거지?”
“…….”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을 하란 말이다!”
기드언은 마법사들이 꾸물거리자, 타티아나의 목걸이 쪽으로 손을 뻗었다.
이상 징후를 보이는 저 물건을 자기 아내에게서 떼어 놓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마법사들은 깜짝 놀라서 기드언을 만류했다.
그러다 본인들이 허락도 없이 왕자의 몸에 손을 댔다는 걸 깨닫고 더 깜짝 놀랐지만, 제지하는 것만큼은 멈추지 않았다.
“함부로 건드리시면 안 됩니다!”
“왜?”
“…….”
“왜 안 되냐고. 알아듣게 이유를 설명해라.”
그들도 모른다. 그냥 오랜 시간 쌓아 온 마법사로서의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마법사가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마력석이 반응하는 게, 그것도 저렇게 격렬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게 흔한 일인가?
이건 그들 선에서는 해결할 수 없었다.
마법사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왕자비를 지켜보고 있는 이자벨에게 부탁했다.
“마탑주 어르신을 불러 주십시오.”
기드언은 서두르라며 턱짓으로 문가를 가리켰고, 마탑주는 사람들에게 등 떠밀려, 사실은 거의 끌려오다시피 침실에 들어섰다.
아직 잠이 덜 깬 듯 찌뿌둥한 얼굴을 하고 있던 마탑주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본인이 키운 후배 마법사들과 비슷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그는 한참 동안 타티아나와 목걸이를 들여다보다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허어, 거참…….”
그가 마법을 걸어 타티아나의 마력을 일시적으로 잠재웠다고는 하나, 사실 그녀의 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당연했다. 마력을 물에 비유하면 사람은 그릇이다. 그녀는 그 그릇의 용적을 천천히 넓히는 과정을 모조리 생략해 버린 거다.
그걸로도 부족했는지 물이 졸졸 흘러나오던 관의 입구를 부숴 버렸다.
나 시간 없으니까 빨리 좀 콸콸 나오라고.
마탑주는 성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안 봐도 알 것 같았다.
몹시도 다급한 상황이었을 테지.
그렇지만 이건 승리 이후를 생각하지 않은 처사였다.
본인이 타고난 그릇이 크고 유연하다면 버텨 낼 수 있을 것이다. 버티기만 한다면 수십 단계를 단번에 뛰어넘을 수 있다.
하나 다른 마법사들은 왜 이런 방법을 쓰지 않을까.
당연한 말이지만 반대급부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버티지 못하면 그냥 이대로 죽는 거다. 그것도 몹시 고통스럽게.
타티아나의 마력은 또다시 일렁이고 있었고, 이제 결과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국면에 들어섰다.
그런데 왜 마탑주가 이런 상황의 심각성에 대해 기드언에게 설명하지 않느냐 하면, 희한하게도 그는 타티아나가 괜찮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확률은 반반이지만 처음 타티아나의 용태를 볼 때부터 그러한 직감이 들었다.
그는 의사가 아니라 마법사였다.
의사 또한 늘 과학의 영역 안에서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마법사는 훨씬 더했다.
마법은 강한 의지와 염원의 실현이니, 믿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랄 수밖에.
불길한 말은 삼키고 긍정적인 말을 내뱉을 수밖에.
뿐만 아니라, 마탑주는 이 순간 굉장히 희망적인 신호 또한 발견할 수 있었다.
“비전하의 마력과 목걸이에 깃든 엔야의 마력이 공명하는 것이오.”
“…….”
“엔야가 도와주려나 보오.”
기드언은 아까까지만 해도 저 이상한 목걸이를 당장 내 아내의 목에서 뜯어내 버리겠다는 듯 단호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탑주의 말을 듣고는 멈칫하다가 손을 거두었다.
장모님의 유품이라는 걸 떠올리고 나니 천천히 이성이 돌아오는 눈치였다.
마탑주는 주름이 깊게 파인 얼굴로 웃다가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일종의 회한이 서린 눈이었다.
마탑의 마법사들은 지난 몇 년간 저 목걸이를 보관하며 별의별 짓을 다 해 보았다.
혹시라도 뭔가가 남겨져 있지 않을까, 그게 인류 마법사의 발전을 조금이라도 앞당겨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하나 무수한 시도 끝에 뭔가를 발견해 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저 목걸이는 타인의 마력에는 쉽게 반응도 해 주지 않았다.
그에 대해 어떤 마법사는 이러한 감상을 토로한 적이 있다.
‘더럽게 도도하네.’
마법구를 의인화하여 인격체처럼 대하는 건 많은 마법사들의 습관이다.
변태라서 그런 게 아니라, 사람이 연구실에 갇혀서 무생물만 만지작거리다 보면 애칭도 붙이고, 대화도 하고, 정도 들고 다 그렇게 된다.
그런데 오만 짓을 다 해도 냉랭한 반응만 보이던 저 목걸이는 타티아나의 손에 들어간 순간 아주 맹렬히 빛을 뿜고 있었다.
굉장히 차별이 심했다.
‘자기 딸이라 이거지. 알아보는 거야.’
마탑주는 어이가 없기도 하고 좀 짠하기도 하여 한숨 섞인 웃음을 짓다가 기드언에게 당부했다.
“기드언 전하, 지금부터는 비전하를 깨우거나 방해하시면 안 됩니다.”
“…….”
“이 안에서는 지금 전투가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외다.”
마탑주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건 타티아나의 동그란 이마였다.
그녀는 이 마력을 다스리고 흡수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어쩌면 엄청난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설령 목숨을 걸어야 할지라도 패기 넘치는 마법사들이라면 다 한 번쯤 욕심을 낼 만한 상황일 테지.
그러나 기드언은 심란한 듯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 전투에 끼어들 수도, 도와줄 수도 없다는 게 암담하게만 느껴졌던 것이다.
인생이란 언제나 예측 불가한 상황의 연속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는 그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늘 노력해 왔으나, 완벽할 수는 없었다.
변수는 길목 길목마다 존재하고 있었다.
이제 와서 그 변수를 처음 경험해 본 사람처럼 소스라치게 놀란 건 아니지만, 아내가 그 길목에 홀로 서 있어야 한다는 건 그를 상당히 괴롭게 했다.
그 괴로움은 자책으로 이어졌다.
내가 더 철저히 대비하지 못해서…….
기드언의 하늘빛 눈동자는 흔들렸고, 마탑주는 위로하듯 염원을 담아 말했다.
“괜찮을 겁니다, 전하.”
“…….”
목걸이는 이 순간에도 우웅, 하며 타티아나의 마력과 공명하고 있다.
딸을 얼마나 사랑했으면, 마법구에 깃든 마력이 사후에도 반응할까.
마탑주는 그 마음에 힘을 보태기 위하여 다시 한번 축원에 가까운 주문을 읊었다.
신이여. 어부를 보호하소서. 그의 가족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나이다.
* * *
타티아나는 어둠 속에서 눈을 깜빡거렸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한 공간이다.
‘여긴 어딜까?’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했을 때, 눈앞의 풍경이 한순간에 뒤바뀌었다.
블룸 백작 저였다.
‘세상에! 우리 집이잖아.’
타티아나는 뜻밖의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좋아했다.
한편으로는 비현실적인 상황이라는 걸 느끼고 있었지만, 그리 깊게 생각하진 않았다.
이건 그냥 꿈이 아닐까?
이런 꿈이라면 언제든 환영이었다. 매일 꿔도 좋았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은 역시 끝이 없다고, 타티아나는 금세 아쉬움을 느꼈다. 저택 안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떤 공간을 그리워한다는 건 거기에 서린 추억과 그 추억을 함께 나눈 이도 포함하는 것일 텐데 말이다.
하지만 타티아나는 곧 그 아쉬움을 해결할 수 있는 묘안도 생각해 냈다.
엄마는 역시 위대한 마법사다.
이럴 때를 대비하여 세상에 엄청난 주문을 하나 남기고 갔다.
기억의 보존과 재생은 대마법사가 평생을 다 바쳐 연구한 분야였고, 타티아나는 그 주문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외울 수 있다.
‘노여움과 슬픔은 깊은 곳에 잠들라. 함부로 깨우지 말라. 오직 빛바랜 추억들만이 물 위로 떠올라 고요를 깰지어다.’
그녀가 지금 보고 싶은 건…….
‘엄마, 아빠, 그리고 나. 우리 가족.’
저택 안이 아롱아롱한 빛으로 물들고,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건 어린 시절의 타티아나였다.
왜 저기서 저러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어린 타티아나는 연무장 풀밭에 엎드려 책을 읽는 중이었다.
그리고 어른 타티아나는 너무나 창피하여 차마 두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다.
‘하아, 난 어릴 때 왜 저렇게 콧물을 많이 흘린 거지? 내가 혹시 비염을 앓았나?’
꼬마는 뭐가 슬펐는지 아까까지 눈물 콧물을 찔끔거리다 이제는 벙싯벙싯 웃고 있었다.
그리고 어른 타티아나는 정말로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미친 자여, 이 미친 아이여. 제발 손수건으로 닦으란 말이다. 옷소매로 훔치지 말고!
그러나 애한테 너무 많은 걸 기대하지 말자.
10살짜리 어린애가 자기 집에서 놀다가 품에 있는 손수건을 꺼내 우아하게 코를 훔치는 쪽이…… 조금 더 이상하지 않나?
아무리 귀족이라지만 말이다.
타티아나가 애써 정신 승리를 이룩하고 다시금 저택을 둘러볼 때였다.
그녀는 숨이 멎을 듯한 기분을 느꼈다.
너무나 그리운 이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저택 창문을 통해 부모님이 코흘리개 타티아나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