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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100)화 (92/130)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7장. 남편과 사이가 또…… (6)

타티아나가 자면서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다가 벌떡 일어나자 기드언은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오늘 그녀는 사람을 너무나 여러 번 놀라게 했다.

그도 상당한 강심장인데, 매번 이런 식이라면 수명이 줄어드는 걸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말을 붙이는 그의 목소리는 몹시도 다정하고 평온했다.

“티티.”

“…….”

“비.”

“…….”

“왜 울어요. 꿈 꿨어요?”

타티아나는 모호한 눈빛으로 방 안을 둘러보았다.

익숙한 침실, 아까와 똑같은 침대다.

‘꿈? 그런가?’

타티아나는 자면서 얼마나 억세게 쥐었는지 피딱지가 진 손바닥을 바라보다가 다시금 기드언을 응시했다.

그런데 참 희한한 일이었다.

사람이 자다 깨서 옆 사람의 얼굴을 보면, 현실감각을 되찾고 그냥 안 좋은 꿈을 꾸었구나, 치부하는 게 보통 아닐까?

타티아나는 오히려 기드언의 얼굴을 보면서 이게 단순한 꿈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 중이었다.

그녀는 평상시에도 내심 이상하게 여겨 온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기드언이 자신에게 뭔가를 감추고 있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기드언은 처음부터 뮐러 공작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녀한테 잘 보이고 싶어 하면서도 뮐러 가 사람들과는 식사 한번 하는 것도 꺼렸다.

돌아가신 그녀의 친부모를 언급할 때 그가 몹시도 깍듯한 태도를 보인다는 걸 생각하면, 뮐러 가에는 상대적으로 너무나 박했다.

사실은 뭔가를 속으로 끊임없이 의심하는 눈치였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친위대와 1왕자 간의 거리.

병영에 가지 말라던 당부.

감사와 숙청 과정에서 기드언이 보여 주었던 단호한 태도.

타티아나가 너무 급격한 결정이 아닌가 생각했던 공작의 투옥.

의혹이 많은 죽음…….

갑자기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타티아나는 기드언의 옷깃을 붙잡으며 물었다. 초록 눈동자가 어딘가 절박해 보였다.

“전하는 알고 있었죠.”

“뭐를요?”

“언제부터 알았어요. 처음부터인가요?”

“그러니까 뭐를.”

기드언은 그녀가 잠꼬대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어 난감해하면서도 소리 없는 웃음을 흘렸다.

어쩌면 그녀를 안쓰러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녀가 잠들었을 때 기드언이 들은 말이라고는 ‘아빠’, ‘엄마’, ‘사랑해’, ‘안 돼’가 다였으니까.

하지만 타티아나는 그때부터 심상치 않은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숨을 쉬기가 힘든 사람처럼 헐떡거리더니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터져 나오는 오열을 참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말까지 더듬었으며, 그녀의 목소리는 숫제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양부, 공작이, 우리 아빠를…… 당신은 알고 있었잖아!”

“……!”

“공작이 그랬잖아……!”

기드언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타티아나는 대체 어떻게 이걸 알게 된 걸까.

태연한 표정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그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머릿속 또한 정신없이 굴러가는 중이었다.

만약 기드언이 이 말이 나오게 된 맥락을 조금이라도 유추할 수 있었다면, 그는 일단 발뺌부터 하며 부인할 궁리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타티아나가 어떤 경로로 이 사실을 알게 됐는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정보가 없으니 대응을 할 수도 없었다.

타티아나는 섣불리 부인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긍정하지도 못하는 기드언에게서 오히려 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니면 아니라고 말했겠지.

그가 신중한 태도를 취하는 건 이 끔찍한 일이 진짜라는 거다.

그녀의 눈동자가 정신없이 흔들리자, 일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걸 느낀 기드언은 한숨을 쉬며 물었다.

“대체 어떻게 안 거예요.”

“그게 중요해요?!”

타티아나는 뾰족하게 소리쳤다.

한데 몸도 회복되지 않았으면서 목소리를 너무 높인 탓일까. 그녀는 현기증이 밀려와 이마를 짚으며 앉은 채로 휘청거렸다.

기드언은 놀랐는지 그녀의 등을 부축했지만, 타티아나는 그 손을 탁, 하고 쳐 냈다.

그녀의 머릿속은 지금 터져 나갈 것 같았다.

내가 대체 어느 집에서 누굴 아버지라고 부르며 산 걸까? 누구를 도와주려고 한 거냐고.

그 사람은 나한테 왜 그랬을까? 너무 싫어. 소름 끼쳐…….

타티아나는 정신없이 고개를 휘젓다가 미친 사람처럼 허망하게 웃었다.

그러다 기드언과 눈이 마주치고는 날 선 원망을 쏟아 냈다.

당신도 나빠.

알아? 당신도 잘못이 있다고.

“왜 나한테 말 안 했어요! 왜 숨겼냐고요!”

“…….”

“내가 정식 재판 받게 해 달라고 요청할 때, 전하, 속으로 무슨 생각했어요? 한심했어요?”

“…….”

“사실 알고 있었죠? 내가 목숨만 살려 달라고 부탁하고 싶어 하는 거. 차마 그렇게는 말 못 하고 전전긍긍하는 거 보니까 재밌었냐고요!”

그러자 얼굴을 찌푸린 채 묵묵히 듣고만 있던 기드언의 눈도 휙 돌아갔다.

그는 내내 저자세를 취하다가 그 말이 어딘가를 건드렸는지, 버럭 외치듯 말했다.

“네가 왜 한심해! 그게 왜 재미있어! 내가 정말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아?”

“…….”

“네가 나를 미워하는데 내가 어떻게 재밌어하냐고!”

“그럼 대체 왜 그랬는데!”

“전부 다 말하면 네가 상처받을 것 같으니까!”

“…….”

“차라리 날 원망하는 게 나을 것 같으니까.”

기드언은 타티아나가 그런 놈한테 1분 1초라도 자신의 마음과 인생을 쓰는 게 싫었다.

그곳에서 보낸 3년을 할 수만 있다면 다 도려내고 싶었다.

그의 잘못이었다. 그의 실책이었다.

되돌리고 싶은 게 너무나 많았다. 그렇지만 그건 불가능하니까…….

타티아나는 그의 말에 멈칫하며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다가 시선을 피하듯 몸을 비틀었다.

기드언의 말은 틀렸다.

그는 그래도 그녀에게 진실을 알렸어야만 했다.

이건 그녀의 일이자 그녀의 인생이니까.

아무리 그녀를 걱정해서라 할지라도 사람을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천치로 만들어서는 안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알게 된 타티아나의 가슴이 지금 무너지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나를 속인 건 잘못된 거라고 기드언에게 따지려면 이보다는 괜찮은 상태여야 할 텐데.

그녀는 지금 손가락이 떨리는 것조차 주체할 수 없었다.

이러면 그의 판단이 옳았다는 증명밖에는 되지 않을 텐데 도저히 감정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타티아나는 그에게 더 매섭게 따지지 못하고 하소연하듯 물었다.

“전하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건, 뭐 쉬운 줄 알아요?”

그것도 힘든 건 매한가지였다.

상대가 아무것도 설명해 주지 않는데, 뭔가 이유가 있을 거야, 혼자 애써 납득하는 게 얼마나 초라한 기분인지 그는 모른다.

내 남편이 그럴 리가 없다고, 억지로 낙관하려는 자신이 어리석고 형편없는 여자가 된 것 같았다.

사람들의 숙덕거림과 비난은 괜찮지만, 같이 사는 사람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어떻게든 이해하고 싶어서 발버둥 치는 스스로의 모습이 싫었다.

그래서 냉담하게 대하고 미워하려고 했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용서하지 않겠다고 내뱉어 놓고, 제대로 미워한 적조차 없는 것이다.

실은 이 순간에도 그녀는 화가 날지언정 그가 밉지는 않았다.

타티아나는 벌벌 떨리는 손을 감추기 위해 그를 조금 더 등졌다.

그걸 외면이라고 생각한 걸까. 기드언은 초조한 표정이었다.

이제는 아예 태도를 바꾸어서 무조건 사과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내가 다 잘못했어요.”

“…….”

“티티, 미안해요.”

이 사과가 진심인 건지 그녀는 잘 모르겠다.

아, 물론 미안해하는 마음은 실제로도 조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남편에 대해 상당히 많은 부분을 깊숙이 알고 있었다.

기드언은 다음에 또 이와 같은 일이 생기면, 그녀에게 모든 것을 말하는 대신, 조금 더 완벽하게 감출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할 사람이었다.

그걸 진짜로 미안해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거짓말하지 말아요. 안 미안하잖아.”

“……티티.”

“그냥 나가요. 지금은 얘기하고 싶지 않으니까.”

“안 돼. 그냥 얘기해. 화낼 거 있으면 여기서 나한테 바로 풀어.”

타티아나는 문가를 검지로 가리켜 보기도 하고, 그를 밀어내기도 했지만 기드언은 기어이 그녀를 부둥켜안았다.

“아니, 좀 나가라니까. 왜 항상 이래…….”

“혼자 두는 게 너무 불안해서 그래요.”

“…….”

“너 오늘 피 토했어. 어떻게 혼자 둬. 다른 사람이라도 불러 줘?”

타티아나는 누구한테 이런 흉한 꼴을 보이냐며 울먹거리는 얼굴로 신경질을 냈다.

기드언은 잠들면 갈게, 그것만 보고 나갈게, 하며 그녀를 달랬다.

그리고 그 뒤로 타티아나는 온갖 추한 모습은 다 보인 것 같다.

부들부들 떨며 울다가, 이불을 쥐어뜯었다.

잘하지도 못하는 욕을 주워섬기며 공작을 저주하다가 기드언의 가슴을 퍽퍽 때렸고 그에게 퍼붓듯이 화를 토로했다.

그녀는 이제껏 자신이 화를 잘 내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남편한테는 더욱 내고 싶지 않았다. 늘 좋은 모습만 보여 주고 싶었다.

그런데 왜 그게 잘 되지 않는 걸까.

왜 그 앞에서 이렇게 추하고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건가.

부부는 서로의 바닥을 이 정도까지 알아도 되는 건가?

모르겠다. 타티아나는 결국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고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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