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7장. 남편과 사이가 또…… (7)
* * *
1왕자 부부가 외부 일정 중에 피습을 당했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져 나갔다.
기드언은 아직 공식 입장을 표명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의 수족들도 말을 아끼고 있었지만 이건 쉬쉬하거나 조용히 묻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귀족들은 틈만 나면 삼삼오오 모여 이번 일에 대해 수군거렸다.
왕자비가 사경을 헤맨다는 소문은 사건 당일부터 돌았다.
감찰부와 군부 쪽에 잠깐이나마 얼굴을 비춘 기드언과는 달리, 왕자비의 모습을 본 외부 인사가 없다는 사실이 이 소문에 신빙성을 더해 주고 있었다.
그런데 엊그제부터는 정보가 빠른 귀족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간 쉬지 않고 검술가의 길만 걸어온 왕자비가 알고 보니 마법사더라는 것이었다.
다소 믿기 힘든 이야기였지만, 동시에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내용이기도 했다.
사실이라면, 이게 대체 얼마 만에 발터에 등장한 마검사란 말인가.
역시 사자와 사자의 자식이 평범할 리는 없는 것이다.
만약 타티아나가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또 숙덕대기 시작한다는 걸 알았다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렇게 생각했을 테지.
‘하아, 겨울인데 우리 개구리 친구들이 또……. 지치지도 않고 또……!’
그러나 1왕자 측은 이 소문에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았고,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눈은 왕자궁을 주시하고 있었다.
기드언이 공식 성명을 발표하기를 기다리면서.
타티아나가 실제로 어떤 상태인지 몹시도 궁금해하면서.
그리고 이와 같은 사교계 분위기에 그 누구보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사람이 있다.
현 왕후, 율리아 로셀 아인슬러였다.
왕후는 심부름을 보냈던 자신의 오랜 시녀에게 물었다.
“왕자비의 용태는 어떻다 하더냐.”
“왕자궁 시녀들이 전부 입을 다물고 있어 정확한 건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며칠 전에 비해 분위기는 그리 무겁지 않았습니다.”
경상에 그쳤거나 큰 어려움 없이 회복 중이라는 뜻일 것이다.
“약은 잘 전달하였고?”
“예, 명대로 하였사옵니다. 왕후 폐하.”
1왕자 측은 모든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한 채, 쏟아지는 병문안 요청을 고사하고 있었다.
왕후는 왕자궁에 직접 찾아가는 대신, 시녀들을 통해 약초를 전달했다.
여담이지만 이자벨은 그 약을 받자마자 독이라도 묻어 있다는 듯 엄지와 검지만을 이용해서 구석에 던져두었다.
그리고 갖다 버리라는 기드언의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코니와 함께 삽으로 파묻었다.
그것도 아주 먼 곳에.
혹시라도 그 자리에 약초가 아닌 독초가 자라날까 봐서였다.
사실은 태워 버릴까,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했으나 그 연기도 쐬면 안 될 것 같아 그러지 못했다.
왕후도 자신이 보낸 선물이 왕자궁에서 그런 취급을 당하리라는 걸 모르고 있는 건 아니었다.
이건 그저 정치적 제스처의 일종일 뿐이었다.
1왕자 부부가 피습을 당하면 가장 먼저 의심의 눈초리를 받게 되어 있는 건 왕후다.
이럴 때 펄쩍 뛰며 결백을 주장하는 건 세련되지 못한 화법이었다.
그러니 회복을 기원하는 척하거나, 이렇게 약재를 보내면서 난 이 일에 무관하다는 뜻을 간접적으로나마 밝히는 것이다.
이웃 나라에 인재가 생겼을 때, 그간 원수처럼 지낸 인접 국가에서 유감을 표명하며 발뺌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진실로 믿어 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것만으로는 좁혀 오는 포위망을 피해 갈 수 없었다.
며칠 전부터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왕후는 다소 조급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이 순간 그녀보다 더 초조한 기색을 보이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왕후의 오라비인 수도 방위군 대장이었다.
“풀만 마법사들까지 끌어들이는 건 무리수였습니다. 이제 외교 문제로 번지는 건 시간문젭니다.”
“기드언이 그걸 어떻게 알겠습니까?”
“……정말 못 알아낼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1왕자 측은 침묵을 지키는 와중에도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잡아다가 조사를 벌이고 있었다.
그중에는 마탑의 마법사들이 대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마탑에서 꽤 협조적인 태도로 응하고 있다 합니다.”
떳떳한 것이다.
기드언 측 인사들도 그들을 더 이상 죄인 대하듯 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혐의가 풀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동시에 새로운 용의자를 찾고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아니면 누군가를 특정해 놓고 증거를 수집하는 중이거나.
“마법사들에게 마법은 지문과도 같다고 하더이다.”
“…….”
“마탑에서 나서기로 마음먹었다면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실제로 그러했다.
마법사들끼리는 서로의 장기와 취약한 분야를 꿰고 있으며, 심한 경우 상대의 마법을 보고 그날의 몸 상태까지도 추측할 수 있다.
현재 살수들과 고위 마법사들은 사건 현장에 방문하여 그날을 시간대 순으로 복기하는 작업까지 끝마친 상태였다.
마법이 내리꽂힌 자리의 흙 한 톨까지 면밀하게 분석했다.
풀만 왕실에 항의 서한을 보낼 때, 첨부할 증거 자료를 위해서였다.
우린 한눈으로 대충 살펴도 이만큼 알아냈으니, 처세를 이상하게 하면 재미없을 거라는 경고이자 협박이었다.
풀만에는 마탑이나 마탑주와 같은 상징적인 존재는 없으나, 마법사 협회라는 단체가 있다.
풀만 왕실은 발터와는 달리 그들에게 꽤 많은 자율권을 허가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 그들은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것도 서슴지 않았고, 때로는 파벌을 나누어 자기들끼리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협회 내부에서 소수 의견을 대변하는 급진파 마법사들의 가려운 곳을 살살 긁어 이 일에 끌어들인 건 왕후였다.
바이칼이 왕좌를 잇기만 한다면, 그녀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건 너무나도 많았다.
마탑의 높은 자리, 마력석 광산에 대한 동시 채굴권, 풍족한 연구 비용.
분명 기드언 하나만 죽이면 여러 사람이 행복해지는 일이었는데…… 지난 기습은 실패로 돌아가 버렸다.
조만간 기드언은 풀만에 항의 사절을 보낼 테고, 그렇다면 풀만 왕실에서도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외교 참사나 다름없었고, 풀만 국왕이 이제껏 고수해 온 정책과 반대되는 결과였으니까.
수도 방위군 대장은 한탄하듯 말했다.
“그러게 제가 용병들로만 꾸리자고 하지 않았습니까. 중간에 꼬리를 자르려면 그렇게 했어야만 합니다.”
“답답한 소리! 오라버니, 기드언 놈은 검술을 처음 배울 때부터 괴물 소리를 들었어요. 가르칠 수 있는 사람도 몇 없었습니다. 그 어린놈이 말이지요.”
“…….”
“거기다 이젠 비도 있습니다. 어디서 굴러먹었는지 알 수도 없는 천한 종자들만 가지고 어떻게 기드언 놈을 상대한단 말입니까?”
“그러나 왕후 폐하는 이것도 결국 실패하지 않았습니까!”
수도 방위군 대장은 버럭 화를 냈다.
왕후의 후광으로 요직에 오른 뒤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왕후의 섣부른 결정으로 인해 자신의 정치적 생명까지 끝나 버릴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아니, 정치적 생명만 끝나면 차라리 다행이지, 이제 위험한 건 실제 목숨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벌컥 문을 열고 방 안에 들어섰다.
바이칼 왕자였다.
“어머니! 외숙과 또 무슨 얘기를…….”
그는 형님 부부의 소식을 들었던 날에도 어머니를 찾아왔으나, 답답한 마음을 안은 채로 돌아가야만 했다.
모친을 대할 때마다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 벽을 만난 기분이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이때, 어머니가 하필이면 외숙부와 만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다시금 이곳으로 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발 자중하십시오. 부탁입니다. 지금은 그러셔야 할 때란 걸 모르십니까.”
왕후는 그 말에 도도한 눈으로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렇게 물었다.
“내가 왜 자중해야 하지요? 설마 왕자도 이 어미가 그랬다고 생각하십니까?”
“…….”
바이칼은 순간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의 눈에는 ‘설마’ 하며 반신반의하는 기색이 스쳐 지나갔으나, 왕후는 코웃음을 쳤다.
그녀는 그저 아들의 반응에 비추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어떨지 확인해 보고 싶었을 뿐이다.
친아들마저 그녀를 의심하고 있으니, 수도의 모든 귀족들은 이 일의 배후로 그녀를 점찍고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같은 일이 왕후에게 벌어진다면, 그녀 또한 기드언을 의심했을 테니 말이다.
안 그럴 자신이 없다.
왕후는 외유를 나가다 마차 바퀴가 수렁에 빠져도, 물맛이 조금만 이상해도 기드언부터 의심했다.
그놈이 손을 쓴 게 아닌가 하는 이 뿌리 깊은 사고의 흐름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왕후는 기드언이 비슷한 사고 흐름에 빠져 있을 때, 그가 모르는 진실을 가장 먼저 알아챈 사람이기도 했다.
그녀는 블룸 경을 살해한 범인이 뮐러 공작이라는 걸 아주 오래전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자신이 사주하지 않은 일이다 보니 조금 더 객관적인 눈으로 주변을 살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는 열등감이 얼마나 지독한 감정인지 잘 알고 있었다.
범인과 원인을 추측하는 게 전혀 어렵지 않았다는 거다.
‘기드언 놈은 평생 그런 기분이라고는 모르고 살았을 테지……. 건방진 놈.’
약점을 들켜 버린 공작을 협박하여 이쪽으로 조금씩 끌어들이는 것은 손쉬웠다.
공작은 왕후보다 기드언이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을 더 두려워했다.
자신의 집안이 끝장날까 봐 늘 불안과 초조함에 떨고 있었으며, 죽기 직전엔 술과 약으로 도피하곤 했다.
그를 잘 활용했다면 조금 더 근사한 일들을 꾸밀 수 있었을 텐데, 공작은 감당 못 할 일을 벌인 사람치고는 정신이 참으로 나약했다.
너무 쉬이 못 쓰는 패가 되어 버렸다.
어쩌면 기드언도 뒤늦게나마 진실을 알게 된 것일지도 모르지.
본인이 범한 오류를 끝까지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칠 사람이 아니었다.
여간 똑똑한 놈이 아니니 말이다.
참 아쉽게 되었지만, 왕후가 요즘 들어 궁금한 건 따로 있었다.
자리를 보전하고 누워 있다는 왕자비가 과연 이 사실을 알까, 하는 것이었다.
‘모른다고 봐야겠지? 기드언 놈이 눈치챘다 해도 그걸 곧이곧대로 말할 놈은 아니지 않나.’
기드언은 자기 아내와 관련된 일에는 극도로 예민했다. 정말 과할 정도로 싸고돌았다.
어떤 말로 자극해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놈이 아내를 건드리면 살기를 내뿜고 달려들었다.
만약 그가 이 정도의 마음을 품고 있는 줄 미리 알았더라면, 왕후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성혼식을 방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지독한 놈은 사랑도 꼭 저같이 음흉하게 했다.
아무도 모르게. 때가 되기 전까지는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둘이 전부터 정분을 쌓았을 줄이야…….’
늦었지만 이제라도 왕자비를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왕후는 기드언이 무사한 것 못지않게 타티아나가 목숨을 건진 게 애석했다.
왕자비는 살아난 것도 문제였지만, 이제 이 이후가 더 큰 문제였다.
그녀가 현장에서 마법을 쓰는 걸 보았다는 병사들의 증언이 속출하고 있었다.
왜 하늘은 기드언 놈에게 검도 모자라, 마법까지 쥐여 주는 건가.
왜 자꾸 그에게만 날개를 달아 주나.
왕후는 이러한 현실이 너무나 분했다.
누군가의 인생이 열등감에 썩어 문드러져 가고 있을 때, 그는 너무 아무렇지 않게 길을 걷다 돌멩이 하나 줍듯이 보석을 손에 넣는다.
왕족이라는 핏줄, 장자라는 절대적 위치, 영특한 머리, 그를 위한 검에 이어 이제는 마법까지.
왕후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다가 오라비에게 물었다.
“현재 수도에 병력이 얼마나 됩니까? 오라버니가 움직일 수 있는 군사들의 숫자 말입니다.”
“어머니!”
바이칼이 경악하듯 외쳤고, 수도 방위군 대장 역시 낯빛을 굳혔다.
“왕후 폐하, 국왕 폐하의 인가 없이 그런 목적으로 군대를 움직이는 건…… 쿠데탑니다.”
하지만 왕후의 도도한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국새, 국새를 손에 넣는다면요.”
모두가 그녀를 의심한다. 그렇다면 그에 걸맞은 판을 짜야지.
언제부턴가 뭔가에 쫓기는 기분이 들곤 하지만 겨우 이 정도에 백기를 들 거라면 시작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 제발……!”
바이칼이 애원하듯 제발 멈추라고 청했으나, 그는 여지없이 또 한 번 벽을 만난 기분이었다.
왕후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도 이제는 아들의 외침이 잘 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