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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103)화 (95/130)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7장. 남편과 사이가 또…… (9)

타티아나는 ‘내가 여기에 넘어갈 줄 알아?’ 생각하며 입을 삐죽거렸다.

그렇지만 여기까지 와 준 친구들에겐 죄가 없었다.

실제로 그녀들과 나누는 대화가 근래 들어 울적했던 기분을 전환하는 데 꽤 도움을 주기도 했고 말이다.

타티아나는 어느새 친구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간간이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한데 기드언이 이들에게 무슨 뒷돈이라도 찔러 주었나?

그녀들은 갑자기 남의 부부 사이를 아름답게 포장하더니, 낯간지러운 말로 치켜세우기 시작했다.

“전하가 비전하를 정말 많이 좋아하시나 봐요.”

“으음…….”

타티아나는 애매한 신음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맞는 말이긴 한데, 그녀도 여기에 반박할 마음은 없는데 이렇게만 얘기하고 넘어가기엔 남들이 모르는 뭔가가 많아서였다.

타티아나는 단맛, 쓴맛, 신맛 다 나는 신묘한 차라도 맛본 듯한 표정을 지었고, 이를 본 친구들은 눈빛을 교환했다.

“어어, 지금 표정이 좀…….”

“내 표정이 왜.”

“세파에 좀 찌들, 아니, 아무튼 이건 갓 결혼한 새댁의 표정이 아니에요. 우리 엄마 같잖아.”

타티아나는 핏, 웃으며 말했다.

“이제 새댁은 아니지, 뭐.”

“아직 새댁이죠!”

타티아나는 시큰둥한 얼굴로 ‘그런가’ 하고 중얼거렸고 친구들은 또 키득거리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화제가 어디로 튀든 간에 그걸 가지고 금세 이야기꽃을 피워 내는 게 티 파티 멤버들의 저력이었다.

“엄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요즘 자꾸 잔소리해.”

“뭐라고 하시는데.”

“빨리 시집가래.”

“……으으.”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된다나, 뭐라나.”

그러자 방 안에는 깊은 탄식이 울려 퍼졌고, 타티아나도 눈가를 찡그리며 실소했다.

혼인을 해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는 건, 발터 부모님들이 자식들에게 으레 하곤 하는 잔소리였다.

꼭 나이 지긋한 부모님들만 하는 얘기도 아니었다.

파티에 가면 갓 결혼한 젊은이들이 무슨 훈장이라도 단 것처럼 으스대며 미혼인 친구들을 애 취급하는 꼬락서니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런데 친구 어머님께는 참 죄송하지만, 타티아나는 그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예전에도 그러했으며, 결혼을 한 지금도 그건 마찬가지다.

앞으로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적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그녀는 한때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일부 기혼자들은 대체 무슨 맥락과 근거로 결혼과 성숙을 연결 짓는 것일까, 하고 말이다.

흔히들 한 사람은 하나의 세계라고 한다.

누군가를 깊게 알게 된다는 건 한 세계를 탐구하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비단 기쁨만 존재하는 게 아닐 것이다.

한 세계에는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 있다.

시간 차이를 두고 같이 오기 때문에 가끔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지경이다.

한데 사람을 알아 가면서 기쁨과 즐거움 외에, 슬픔과 분노까지 느껴야 하는 건 너무나 피곤한 일이다.

그래서 성인들의 세계에는 그 피로감을 줄이기 위한 아주 손쉬운 방법들이 있다.

적당한 거리 유지와 절연. 흔한 말로 손절.

그런데 결혼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다른 인간관계에 비해 상처받지 않을 거리를 유지하는 게 어렵다.

좀 마음에 안 든다고 바로 연을 끊어 버리는 건 더 어렵다.

그들은 이혼이라는 배수진을 치고 되도록 거기까지는 안 가기 위해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텨 본다.

이혼이 나빠서 그렇다는 건 아니다.

그럼 뭐, 결혼은 나쁜 거라서 심사숙고하나.

결혼과 이혼 모두 생활 전반을 흔들어 놓는 변화이기 때문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좋든 싫든 한 번쯤은 더 참고 상대를 이해해 보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된다.

그 질풍노도의 시기를 다 거치고, 마침내 평화의 시대가 찾아오면 음, 좀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포기할 건 포기하고 수용할 건 수용하며 내가 좀 둥글어지고 넓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누군가는 득도한 노인 같은 인자한 눈빛을 갖게 되기도 할 테지.

그런 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

‘웃지 마요. 슬퍼 보이니까.’

많이 버티고 참아서 마침내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게 정말로 남들한테 자랑할 만한 일인가?

혹은 희로애락을 모두 맛보게 해 주는 그러한 인간관계의 통로가 결혼밖에 없다고 보나?

아니면 하나의 세계는 오직 인간에게만 있나?

타티아나가 생각할 땐 셋 다 아닌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젊음을 검과 마법에 다 바치고 있다.

그렇지만 검과 마법은 그녀에게나 소중한 것이지, 모든 이들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사람을 성장시키고 성숙하게 만드는 동력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그걸 어떻게 한두 가지로 단순화할 수 있나.

남의 동력원이 무엇인지 내가 정의하려 한다면 그건 오만이다.

그러니 결혼을 하고 나면 간혹, 아주 간혹 철이 드는 사람도 있다더라…… 정도로만 정리해야 우리는 논란을 피해 갈 수 있을 것이다.

“백작 부인께서는 그냥 걱정돼서 하는 말씀이실 거야. 결혼한다고 설마 다 어른이 되겠니? 아니, 그리고 꼭 어른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뭔데.”

“뭐, 그건 그렇지.”

“응, 반박할 수 있는 사례가 발터에 수두룩하다.”

아닌 사람을 꼽으라면 손가락, 발가락을 다 동원해도 모자란다며, 타티아나는 대충 이렇게 마무리하고 넘어가려 했다.

그렇지만 친구들은 이 말에도 영 개운치 못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창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어야 할 새댁의 태도가 때때로 너무 냉소적이고 건조했기 때문이다.

물론 균형적인 관점을 유지하려는 건 좋지만…… 이러면 듣는 사람도 재미가 없다.

“뭐, 좋은 점은 없어? 아니, 비전하도 결혼을 잘했다고 느낄 때가 가끔은 있을 거 아니에요.”

“으음.”

“그런 얘기를 좀 하라고. 지난번처럼 새로운 루틴이 생겼다, 뭐 이딴 이상한 얘기 하지 말고. 너 자꾸 이러면 사람들이 파티에서 거리감 느껴.”

“……아니, 루틴이 왜 이상한 얘기지?”

얼마나 솔직한 감상이었는데.

나는 정말로 아침에 일어났을 때 운동기구랑 남편이 제자리에 없으면 기분이 이상해.

그 찝찝함이 이해가 안 돼?

눈살을 찌푸리며 친구들을 흘겨보던 타티아나는 곧 입가를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친구들이 듣고 싶어 할 만한 이야기가 뭐 없을까, 딴에는 숙고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열심히 궁리하지 않아도 그녀는 결혼을 잘했다고 느낄 때가 꽤 많았다.

좀 웃긴 건, 그 생각이 유독 기드언과 싸웠을 때 들곤 한다는 것이었다.

“왜, 부부가 살다 보면 이혼을 생각할 때가 한두 번쯤 있잖아?”

“어? 그, 그래?”

“응.”

친구들은 타티아나가 너무 도발적인 단어를 꺼내자 흠칫 놀랐으나, 그녀는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이었다.

물론 평생 이런 생각을 안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타티아나는 실제로 그런 가정을 해 본 적이 몇 번 있다.

결혼을 하면 어떨까, 상상하는 것처럼 만약 이혼을 하면 어떻게 될까, 하고.

“그런데 그런 상황이 나한테 왔다고 가정할 때, 그 사람이 불행하길 바라는 내 모습은 상상이 되질 않는 거야.”

“…….”

“내가 너그러운 마음의 소유자라서가 아니라, 그 사람을 대상으로는 절대 그러고 싶지 않은 거지. 정말로 잘 되기만을 바라게 돼.”

“…….”

“전하가 꼭 잘 됐으면 좋겠어.”

“…….”

“그러다 보면 아, 나는 꽤 괜찮은 사람과 괜찮은 결혼을 한 거구나, 싶어져.”

원래 연애도 결혼도 좋을 때는 한없이 좋다.

그러나 사람의 진가는 상황이 나쁠 때 나온다.

부부 관계를 지속하는 저력도 그때 확인할 수 있다.

만약 그 관계의 종지부를 찍는 순간에마저 상대의 행복을 바랄 수 있다면, 두 사람은 결혼 생활을 하며 시간을 낭비한 게 아니다.

사실은 꽤 괜찮은 상대와 그럴듯한 정서적 교류를 나눠 온 것이다.

끝내 갈등의 폭을 좁히지 못했을지라도 말이다.

대련으로 치자면 서로 실력을 인정할 만한 상대와 싸운 거다.

배울 점도, 존경할 점도 어딘가에는 존재했을 테지.

그런 상대를 만난다는 건 사실 엄청나게 큰 행운이다.

그러니 타티아나는 앞으로도 이 관계를 되도록 소중히 가꾸고 싶었다.

때론 덜컹거릴지라도 기드언과 끊임없이 정서적인 교감을 나누고 싶다.

내가 그 자리에 있든 없든, 그가 잘 되길 바라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고도 반갑다.

타인의 성공과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 내 인생을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끌어 올려 줄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믿는다.

그러나 이혼이라는 단어가 너무 자극적이었던 걸까. 친구들은 좀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혹시 얘가 전하랑 부부 싸움을 한 건가, 의심하는 것 같기도 했다.

사실은 정답이었지만, 타티아나는 그런 속사정까지 미주알고주알 다 떠들 생각은 없었다.

“뭐, 나는 대충 그렇다는 얘기야. 별로 새겨듣지 않아도 돼.”

공감이 어려울 땐 그냥 이런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넘어가면 된다.

타티아나는 픽 웃으며 얼버무렸으나, 그녀들은 티 파티 정예들이라서 이야깃거리를 또 금세 찾아냈다.

수다는 그 뒤로도 몇 시간이나 계속되었다.

* * *

기드언은 새카만 서류철을 넘기다 인상을 찌푸렸다.

갑자기 그 위에 잔상이 하나 겹쳐져서였다.

까만 군용마차를 불길하게 물들이던 아내의 피였다.

“음. 이번 건 좀 세게 왔는데.”

그는 칼날이 타티아나의 눈썹을 스쳐 갔을 때도 약간의 트라우마를 겪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도가 좀 심각했다.

까만 배경만 보면 울컥거리며 피를 토하던 창백한 얼굴이 떠올랐다. 거의 자동이었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길 정도라 그는 잠시 서류철을 밀어 두었다.

그러고는 습관적으로 턱을 괴려다가 자세가 나쁘다는 타티아나의 지적이 떠올라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기드언은 요즘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지난 피습에 대응하여 새로운 일을 꾸미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그는 틈틈이 아내를 생각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을 가장 오랜 시간 차지하고 있는 의문은 타티아나가 어떻게 알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워서 감도 잡히지 않았지만, 이제는 짚이는 구석이 있다.

“역시 목걸이겠지.”

요란스럽게 빛을 낼 때부터 뭔가 불안했다.

밀고한 자가 있다면 입을 찢어 놓겠는데, 범인이 목걸이라니 그럴 수가 없다.

장모님의 유품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기드언은 솔직히 장모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려 했다.

진지하게 묘소에 찾아가 면담을 신청하고 싶을 정도였다.

맹수는 자기 새끼를 강하게 키운다지만, 이건 좀 과하다고 생각지 않으시냐고.

사람들은 그의 비를 암암리에 암사자라고 부르는 모양이나, 그에게는 자기 아내였고 그냥 아기 고양이였다.

타티아나는 그날 정말로 서럽게 울었다.

눈이 퉁퉁 부어 나중에는 개구리가 되어 있었단 말이다.

그걸 떠올리면 지금도 입맛이 썼다.

솔직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때 집무실 밖이 조금씩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어어……. 이렇게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왜? 회의 중이야?”

“그건 아니지만…….”

“에이, 그럼 비켜.”

스칼렛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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