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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106)화 (98/130)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7장. 남편과 사이가 또…… (12)

* * *

친구들을 배웅한 뒤, 타티아나는 응접실 소파에 앉았다.

그 주변으로 시녀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고 그 즉시 수다 2차전이 시작되었다.

요즘 사교계의 최대 화젯거리는 왕자 부부 피습 사건이 아니었다.

왕자비가 정말 마법사인가, 아닌가였다.

호재의 파급력이 악재를 이기는 건 사교계에서는 드문 일이다.

타티아나가 마법사라는 건 사람들에게 그만큼 큰 놀라움을 안겨 주었다.

“비전하. 마력도 유전인가요?”

타티아나는 코니의 질문에 고심했다.

마탑에서도 아직 의견이 분분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글쎄. 표본 집단이 워낙 작아서 확신할 순 없는데, 아직까진 그럴 거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지.”

타티아나의 마력이 뒤늦게나마 발현되었으니, 앞으로 이 주장에는 더욱 힘이 실릴 게 분명했다.

그러나 세상에는 가계도와의 연관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현상들도 무수히 많다.

코니가 생각할 때는 본인도 그러했다.

“전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까지 다 마른 체형이신데, 왜 물만 먹어도 살이 찔까요?”

“으음.”

타티아나는 평소처럼 못 들은 체하고 싶었으나, 자신도 모르게 신음하고 말았다.

사실 그녀는 원인을 알 것 같았다.

잘 생각해 봐. 정말 물만 먹은 게 확실해?

얘, 너 방금 과자 먹었어. 간식이 아니라 그걸로 식사했다고.

내가 친구들 배웅하고 들어오다가 분명히 봤다? 너 이런 거 한두 번 아니야.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은 되돌릴 수 없었고, 기왕 먹을 거면 스트레스 받지 말고 즐겁게 먹자는 게 타티아나의 평소 지론이었다.

그녀는 지난 일을 들추는 대신 우리,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자며 독려했다.

“코니, 넌 이겨 낸 자다.”

“뭘요?”

“부모님이 물려주신 체질을 이겨 낸 강인한 자라고.”

“좋은 게 맞나요? 그런 거라면 전 이제 그만 이기고 싶은데요.”

역시 만만치 않군, 생각하며 타티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깐깐한 논리력을 식단과 운동에도 발휘해 볼 마음은 없냐고 묻고 싶다.

근데 얘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꼬치꼬치 따질까, 운동하고 싶으니 교관 노릇 좀 해 달라는 건가?

혹시라도 그걸 원한다면 대환영이었다.

하지만 그때 타티아나의 귓가에는 누군가가 복도를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발걸음이었다.

“전하 오신다.”

“어머, 정말요?”

“응.”

“……자리 피해 드리는 게 좋겠죠?”

“그럴래?”

타티아나는 그렇게 해 주면 고맙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시녀들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했다.

몰래 숨죽여 웃는 이도 있었다.

사실은 시녀들도 기드언의 부관들처럼 부부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싸운 듯하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

그러나 왕자비의 표정이 그리 나쁘지 않았고, 왕자가 왕자비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으니, 이 싸움은 오래갈 리 없다는 것 또한 중론이었다.

시녀들이 우루루, 방 안을 빠져나갔고, 한참 뒤 기드언이 문을 열었다.

그는 타티아나에게 바로 다가오지 않고, 문가에 비스듬히 기대섰다.

어쩌면 들어오라는 허락의 말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타티아나는 그런 남편을 빤히 바라보다가 한마디 했다.

“여보?”

기드언은 잘못 들었나 싶어서 눈썹을 치켜 올렸으나, 타티아나는 확인 사살이라도 하듯 반복했다.

“여보. 거기서 그러고 있지 말고, 우리 얘기 좀 해요.”

기드언은 손등으로 입가를 가리며 큼, 하고 헛기침을 했다.

식사 중이 아닌 게 천만다행이었다.

뭘 먹는 중이었다면, 좀처럼 듣기 힘든 호칭에 크게 사레들렸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기드언은 저 여보 소리가 참 좋았다.

이것만큼 두 사람의 관계를 확실시하는 호칭이 또 어디에 있을까.

그는 과시욕이 특별히 큰 사내는 아니었으나, 자신이 타티아나의 남편이라는 것만큼은 여기저기 알리고 싶었다.

그러니 가끔은 밖에서도 저렇게 불러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한데 지은 죄가 있어서일까? 기드언은 저 호칭이 오늘따라 별로 달콤하게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살벌하게 들렸다.

마치 싸움의 시작을 알리는 그녀만의 신호 같았달까.

그러나 기드언은 타티아나가 오래간만에 제대로 걸어온 대화를 피하고 싶은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도리어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드언은 성큼성큼 걸어가 타티아나의 허벅지에 자신의 허벅지를 바싹 붙인 채 앉았고, 그녀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으음, 하며 뜸을 들이다가 이렇게 물었다.

“전하가 뭘 잘못했는지 알아요?”

여보 소리를 잇는 또 다른 공격이었다.

기드언은 순간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해괴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하아, 한숨을 쉬는 것 같더니만 결국에는 얼굴을 감싸 쥔 채 웃어 버렸다.

“이런 거 어디에서 배웠어요? 파티에서?”

“네, 연인이나 부부끼리 다툴 때 이렇게 시작하면 서로 피곤해진대요.”

“근데 너는 왜 해. 나 골려 주려고?”

“응, 그렇지, 뭐.”

타티아나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려다 잘 안 되었는지 잘게 웃음을 터뜨렸다.

기드언은 거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런 감상이나 느끼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솔직히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잠시 후, 두 사람의 웃음은 잦아들었고, 기드언은 고개를 끄덕였다.

들을 준비가 되었으니 무엇이든 말하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타티아나는 운을 떼기 전 다짐했다.

잊지 말자, 타티아나 블룸.

이건 언뜻 싸움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상대를 회생 불능의 상태로 만드는 게 제1의 목적이 아니라는 거다.

내 주장을 관철하려는 욕심이 앞서 상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히면, 잠깐의 전투에서 승리할지언정 남은 레이스에서는 혼자 달려야 한다.

정말 그걸 원하는 건가?

그녀가 진정으로 바라는 건 찰나의 승리가 아니었다. 그와 손잡고 남은 시간을 함께 가는 거였다.

그러니 상대를 상처 입히는 말은 언제나 경계하되, 생산적인 관계를 위한 대화는 절대로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과연 어느 쪽에 속해 있는지 끊임없이 성찰할 것이다.

“전하.”

“응.”

“전하는 제가 전하의 신하가 아니라고 했죠.”

그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날 위해 싸워 줄 신하나 검이 필요해서 이 결혼을 한 게 아니라고. 네 남편이 되고 싶었을 뿐이라고.

“그런데 왜 저한테 뭘 감추세요. 앞으로도 이렇게 다 들키고 난 다음에 통보하실 거예요?”

“…….”

“신하한테는 그래도 돼요. 근데 전 전하의 신하가 아니라 아내라면서요.”

“…….”

“제가 왜 제 일에 대해서도 몰라야 하나요.”

그러자 묵묵히 듣고 있던 기드언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타티아나가 이렇게 말해 오리란 걸 아주 정확히 예상하고 있었다. 그에 대한 답변도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이건 티티의 개인사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친위대 내부에서 벌어진 권력 투쟁이자 항명이었습니다. 명을 내린 사람이 나이니, 마무리도 내가 짓는 게 맞아요.”

타티아나는 솔직히 그의 말이 허울 좋은 핑계처럼 들렸다.

만약 기드언이 이를 국무라고 여겼다면, 그녀에게 감출 이유가 더욱 없었다.

본인이 생각해도 그렇지 않으니 그녀 몰래 처리하고 열심히 조작한 것이다.

하지만 타티아나는 이 일을 개인사의 영역에 두어야 하느냐, 공무로 보아야 하느냐, 어느 쪽이 우선인가, 토론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런 식으로 말꼬리를 잡다 보면 파생되는 논쟁거리가 어마어마할 테고, 그건 너무 소모적이다.

“아뇨, 저는 물론 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라 전하의 일일 때도 마찬가지예요. 국무에 대한 은밀한 내용까지 다 알아야겠다는 건 아녜요. 그렇지만 저나 우리 부부와 관련된 사건에서만큼은 저를 배제하지 마세요. 전하 혼자 가뿐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 할지라도요.”

“…….”

“우리 결혼했잖아요. 우리 가족의 선장은 전하 혼자가 아니에요.”

기드언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녀의 말을 곱씹는 중인 것 같았다.

그러나 정작 할 말을 다 하고 난 타티아나는 약간 뻘쭘해졌다.

혹시 너무 따지는 투였나, 걱정스럽기도 했고, 하고 싶은 말들을 연습하고 외운 게 티가 났나, 눈치가 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이건 너무 자충수인가, 고민하면서도 사실 큰 기대를 갖고 한 말은 아니라는 점을 솔직하게 밝혔다.

“근데요, 저는 제가 이렇게 얘기해도 비슷한 상황이 오면 전하가 또 감출 거라는 걸 알아요.”

“……그걸 티티가 어떻게 알아요.”

“사람 사고방식이나 행동 양식이 쉽게 안 바뀐다 그랬어요. 우리는 분명히 살면서 이런 일로 또 싸울 거예요.”

타티아나는 피유, 하며 입을 삐죽였고, 기드언은 실소했다.

그러나 그는 ‘왜 이렇게 갑자기 비관론자가 됐어요?’ 하고 묻지는 못했다.

그녀의 말에 그다지 틀린 부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누이의 말처럼 타티아나는 그를 아주 정확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남편이라고 미화해 주는 거 없었다.

실제로 비슷한 상황이 또 벌어진다면 그는 어떻게 행동할까.

이번 일을 교훈 삼아 그녀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 이전에 더 완벽히 감출 수 있는 방법은 없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볼 것이다.

꼭 그렇게 하겠다는 게 아니라,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 정도는 무조건 셈해 볼 게 분명했다.

그게 그의 살아온 습관이자 일 처리 방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안 바뀔 거라는 저 단정적인 말에 약간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타티아나가 그를 너무나 정확히 파악한 나머지, 그라는 인간에 대해 기대 또한 하지 않으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게 허황된 바람이라는 듯, 경각심을 가지려 하는 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그도 인간적인 후회라는 걸 할 때가 있는데. 본인의 결정이 대체로 옳다고 믿으며 완고하게 밀어붙이지만, 타티아나와 관련해서는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

고뇌를 할 때도 있으며 미안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다.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기드언은 어렵사리 입을 뗐다.

예전부터 하고 싶은 얘기가 하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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