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8장. 너의 방패가 되어 (6)
“왜 이러는 거죠?”
“뭐가 말입니까.”
“지금 심장이 너무 빨리 뛰는데요?”
“…….”
온몸의 근육이 잔뜩 긴장해 있는 타티아나와 거의 비슷한 속도였다.
부정맥이 있는 게 아니라면 가만히 있던 사람이 이러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시아버님도 건강이 좋지 않으신데, 설마 내 남편도……?
타티아나는 걱정 반, 의심 반의 눈초리로 기드언을 바라보았고,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손을 저었다.
그러나 그도 뚜렷한 이유는 설명하지 못했다.
원인을 몰라서가 아니라 차마 입 밖으로 뱉을 수가 없었다.
내내 걱정만 하며 마음을 졸이던 그는 그녀가 달려오자 안도했다.
그렇다면 긴장이 풀리며 마음이 평온해지는 게 순리일 텐데, 힘껏 달려오며 활짝 웃는 그녀가 그의 눈에는 너무 예뻐 보였던 것이다.
컴컴한 가운데 혼자서만 빛이 나는 듯했다.
품에 쏙 안기며 매달리자 순간적으로 가슴이 떨렸다.
그런데 네가 너무 예뻐서 설렜다는 말을 하는 게 상황에도 그다지 어울리지 않고, 멋쩍기도 하여 그는 아무 소리도 할 수가 없었다.
타티아나는 기드언의 안색을 살피다가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다시금 히, 하고 웃었다.
그러고는 몸을 부르르 떨며 뒤늦게 흥분을 표출했다.
“으으……. 전하, 어떡해요.”
“왜요. 혹시 어디 다친 데는 없어요?”
“없어요. 근데 너무 떨려서 기절할 뻔했어요!”
타티아나는 아직도 오싹오싹하다는 듯 두 주먹을 쥐었다. 심장이 진짜 터져 버릴 것 같았다.
기드언은 격양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타티아나를 보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녀는 너무 떨려서 기절할 뻔했다지만, 기다리던 사람도 걱정돼서 기절할 뻔한 건 마찬가지다.
능력 있고 잘난 아내와 사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아주 솔직하게 말해 볼까.
사실 엄청나게 자랑스럽다. 자신은 여기에 기여분이 하나도 없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과시하고 싶어진다.
가끔은 속없는 사람이 되어 부관들에게 넌지시 얘기를 꺼내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계속 오늘 밤과 같은 식이라면 불안해서 수명도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다.
육안상 다친 곳은 없는 듯하니 다행이었으나, 그는 확인하듯 물었다.
“오늘 마법은 몇 번이나 써 봤어요?”
타티아나는 멈칫하며 눈을 반 바퀴 굴리고 말았다.
실수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라 그녀도 순간적인 반응을 감추지 못했다.
“……두 번? 아닌가. 세 번이었나?”
기드언은 마법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그녀가 대충 얼버무리려 한다는 건 알 것 같았다.
원래 결혼 생활을 하다 보면 배우자가 켕기는 게 있을 때와 없을 때의 표정 정도는 구분할 수 있게 된다.
기드언은 추궁하듯 눈매를 가느다랗게 만들었다.
“가슴에 손을 얹고?”
타티아나는 그 말에 척, 하고 손을 가슴팍에 얹었다.
제법 당당한 태도였으나 기드언은 비식 웃으며 질문을 달리했다.
“블룸의 명예를 걸고?”
……어? 그건 함부로 못 걸지.
타티아나는 슬그머니 손을 내렸고, 기드언은 눈썹을 찡그리며 웃었다.
왜 남편까지 속이려 드냐고 따져 묻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었다.
아주 약간만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도 그는 더한 걸 감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드언은 타티아나를 계속 추궁하는 대신 케이를 바라보았고, 케이는 주군 앞에서는 숨기는 게 없었다.
“네 번 쓰셨습니다. 제가 본 것만 그렇습니다.”
정확했다.
하지만 타티아나는 케이가 마지막에 덧붙인 말에 약간 억울해지고 말았다.
그가 보고에 너무나 정확성을 기하려 한 나머지 여지가 생겨 버렸기 때문이다.
저 말은 자신이 보지 않았을 때 마법을 또 썼을 수도 있다는 것처럼 들리지 않나.
저게 진정 정확한 보고라고 할 수 있나?
타티아나는 케이를 원망스럽다는 듯 바라보았으나, 기드언은 이미 ‘그럼 그렇지’ 하며 혀를 차고 있었다.
그녀는 이 불편한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케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것 좀 얼른 내놔 보라는 듯이.
케이는 타티아나의 손바닥 위에 순순히 국새를 올려놓았다.
훔칠 당시, 그가 몹시도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미련 한 톨 없는 태도였다.
원래 큰 도둑 중에는 물건 자체에는 욕심을 두지 않는 사람들도 꽤 많다.
그들은 목표물을 손에 넣었을 때의 쾌감, 그리고 성공 여부에만 관심이 있는 거다. 이후의 향방은 솔직히 알 바 아니었다.
그게 설령 이 나라 국새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케이와 달리 타티아나는 아직 경력이 미천한 초보 도둑일 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첫 노획품을 몹시 소중하다는 듯 바라보다가 남편에게 수줍게 내밀었다.
한데 기드언의 태도는 케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픽, 바람 빠지는 소리를 한 번 흘리더니 뒤따르는 부관에게 국새를 건넸다.
어디 잘 보관해 놓으라는 뜻이긴 했으나, 그러는 동안 국새에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았다.
타티아나는 어? 하다가 몹시도 허망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저걸 어떻게 가져왔는데, 이런 취급이라니. 이건 비극이었다.
“……지금 내가 준 선물을 내팽개친 거예요?”
“어?”
선물? 이게 그렇게 되는 건가?
기드언은 전혀 내팽개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멈칫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타티아나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반응이 건조하게 느껴졌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그가 이 밤, 국새보다 타티아나 쪽을 훨씬 더 기다린 건 사실이었다.
그런 아내가 무사히 돌아왔으니 일은 잠시 미뤄 놓고 그녀에게 집중하려던 게 다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고생하며 가져온 걸 별거 아니라는 듯 취급하려던 건 아니었다.
기드언은 부관에게 손을 내밀어 다시금 국새를 돌려받으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타티아나는 약간 심통이 난 듯했는데, 해명하려던 기드언은 갑자기 뭔가가 떠오르고 말았다.
그녀는 이런 일로 기드언에게 서운한 기색을 내비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본래 과거사 공격 앞에 떳떳한 자 없었다.
“근데 티티도 내가 준 선물 버린 적 있잖아요.”
“내가 언…….”
언제 그랬냐고 하기엔 그녀도 바로 생각나는 게 몇 가지 있었다.
그가 제작해 준 검이 부담스러워 적당히 사양하려 했었고, 어릴 때 갖고 놀던 마력석은 본체만체했다.
“근데 그건 버린 게 아니라, 이자벨한테 그냥 어디에 잘 갖다 놓으라고…….”
“네, 그게 바로 내팽개친 거죠.”
“…….”
기억력이 좋은 남자와 살다 보면 언쟁에 있어서는 필패하게 되어 있다.
타티아나는 할 말이 없어서 입을 꾹 다물었다가 혹시나 해서 물었다.
“그때 기분 많이 나빴어요?”
“아니.”
이러든 저러든 내 눈에는 그냥 다 귀여웠지, 뭐.
기드언은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뺨을 살살 어루만졌다. 그러고는 뒤늦게나마 그녀가 고생한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다.
“아내한테 국새를 선물로 받은 남자는 나밖에 없을 거예요. 앞으로도 없겠죠.”
“……그치. 솔직히 결혼 잘했지.”
“응.”
타티아나는 일부러 막 어깨를 으쓱으쓱해 보였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허세도 부려 보았다.
전부 다 그가 보고 웃었으면, 하는 의도였다.
“또 어떤 거 갖고 싶어요? 다 해 줄 수 있어요.”
“글쎄. 돈?”
“어어? 안 되는데. 그건 쪼끔만 줄 건데.”
“왜 맨날 돈은 조금만 준다고 하지?”
기드언은 전부터 왜 그러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두 사람은 케이와 부관들을 돌려보낸 뒤, 복도를 걸으며 재잘재잘 떠들었다.
그리고 침실이 가까워지자 타티아나는 기드언의 등을 밀며 말했다.
“먼저 들어가 있어요. 난 씻고 올게요. 먼지 구덩이를 헤집고 다녔더니 지금 너무 더러워.”
타티아나는 기드언이 왕위에 오르면 그 환기구를 죄다 막아 버리든가, 건물을 새로 짓든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첩자가 드나들 위험을 원천 봉쇄할 생각이었다.
한데 기드언은 침실로 들어가지 않고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먼지를 툭툭 털던 타티아나가 ‘왜?’ 하며 눈으로 묻자, 그는 오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같이 씻을래요?”
그러자 타티아나는 한 걸음 떨어져서 남편을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았다.
원체 말끔하게 하고 다니는 남자라 구분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는 이미 씻은 상태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그녀가 의아한 듯 바라보자, 기드언은 난감해하며 이마를 매만졌다.
이 용감하고 씩씩한 대도 앞에 남편으로서 너무 믿음직하지 못한 발언인가 싶긴 했지만, 이 정도 감정 표현은 솔직하게 해도 좋을 것이다.
“사실은…….”
“응.”
“내가 오늘 좀 긴장했었나 봐요. 아직도 마음이 안 놓여서 떨어지기가…… 좀 싫네.”
“…….”
“내 눈에 보이는 곳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타티아나는 그 말에 너무나 활짝 웃었다.
웬 유난이냐며 핀잔하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릴 뿐이었다.
그녀는 시녀들을 부르러 가기 위해 등을 돌리며 말했다.
“그런 거면 같이 씻어요. 목욕물 부탁하고 올게.”
기드언은 타티아나의 뒷모습을 응시하다가 국새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러고는 피식 웃으며 가슴 언저리를 매만졌다.
딱히 새로운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지는 않은데, 그녀가 너무 사랑스러워서인가.
저렇게 활짝 웃을 때마다 심장이 이따금 떨려 오는 게, 이제는 약간 아플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