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8장. 너의 방패가 되어 (14)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 살수들 틈바구니로 끼어들었다.
그러나 살수들은 다소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타티아나의 망치질은 흠잡을 데 없었으나, 사실은 숙련자 수준이었으나, 아무리 그래도 이걸 왕자비가 하는 게 맞는 걸까,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답을 구하듯 자연스레 기드언을 바라보았고, 그는 기가 막힌다는 얼굴이었다.
너무 잘하니 오히려 그게 더 황당했다.
그러나 그 역시도 타티아나를 대놓고 만류하지는 못했다.
일단 그녀가 너무 진지한 태도로 임하고 있었고, 어쩌다 저런 재능까지 꽃피우고 말았는가 생각해 보니 그 배경에 부부 싸움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코니는 눈치가 있어서 이상해져 버린 분위기를 빠르게 감지했다.
왕자비 혼자 하게 놔두는 건 아무래도 모양새가 좋지 않아, 그녀는 뭐라도 거들어 보고자 나섰다.
그러나 성가시게 하지 말라는 타티아나에게 단박에 쫓겨났다.
그 뒤로는 아무도 막사 짓는 왕자비를 방해할 수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 뚝딱뚝딱 소형 막사를 완성한 타티아나는 몇 걸음 떨어져서 결과물을 바라보았다.
연습과 현실은 달라서 예전만큼 완벽하지는 않았다.
도주 중이라는 상황을 고려했을 땐 이 정도가 최선이었다.
타티아나는 옹송그린 채 바위 위에 앉아 있는 스칼렛의 손을 잡고 막사 안으로 이끌었다.
그러고는 짐승 털가죽을 꼭꼭 여며 주며 말했다.
“근처에 불 피워 드릴게요. 살수들이 보초를 설 거니까, 옮겨붙을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아무 염려 말고 눈 좀 붙이세요.”
그녀는 스칼렛의 잠자리를 보아주고는 막사 밖으로 빠져나왔다.
살수들에게 나뭇가지를 더 모아 오라 이를 생각이었는데, 하필이면 그때 근처에 쭈그리고 있는 코니의 행색이 눈에 들어왔다.
생기발랄했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그녀는 눈 밑이 퀭해져 있었다.
고작 이틀 만에 꼴이 말이 아니었다.
그 모습이 딱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던 타티아나는 ‘너도 이리 와 봐’ 하며 코니를 막사 안으로 이끌었다.
그러고는 의아한 눈빛을 보내는 스칼렛에게 물었다.
“여기서 같이 자게 해도 괜찮을까요?”
“그럼, 그럼.”
스칼렛은 짐승 가죽을 들추며, 한때 자신의 시녀였던 코니에게 기꺼이 자리를 내어 주었다.
타티아나는 코니에게 속삭였다.
“네가 오늘 밤, 공주 전하의 인간 난로가 되어 드리렴.”
스칼렛은 서로가 서로의 난로가 되어 주는 거지! 외쳤고, 타티아나는 공주 전하의 말씀이 다 옳다고, 예, 예, 하며 물러났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얼른 살수들에게 다가갔다.
기드언의 시선은 계속 타티아나를 좇아 움직였다.
그녀는 케이에게 이런저런 의견을 구하고 지시를 내리더니 이제야 한숨 좀 돌리겠다는 듯, 모닥불 앞에 주저앉았다.
주변에는 그녀와 마찬가지로 휴식을 취하려는 살수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기드언의 표정이 미묘해진 건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그는 비좁은 막사를 한 번 바라보다가, 다시금 타티아나에게 눈을 돌리며 물었다.
“티티는요?”
“네?”
“넌 어디서 잘 거냐고.”
글쎄? 그건 그렇게 깊게 생각 안 해 봤는데.
그래도 굳이 답하라면 그녀는 그냥 이대로 있을 작정이었다.
여기서 쉬면 얼마나 쉴 것이며, 자면 또 얼마나 자겠나, 싶었던 것이다.
도리어 깨어 있는 쪽이 훨씬 더 속이 편할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기드언의 생각은 달랐다.
아이를 가진 누이야 그렇다 치고, 시녀까지 막사에서 잠을 청하는데 내 아내가 왜 살수들과 함께 보초를 서야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생존 능력, 검술, 마력, 이런 문제가 아니었다.
그의 아내도 귀한 사람이라는 거다.
타티아나는 기드언의 눈썹 사이가 서서히 좁아지는 것을 보며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했다.
그녀는 자신이 지금 의도치 않게 부비트랩을 밟아 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뒤늦게 발을 떼며 이 위험한 상황에서 빠져나오고자 했지만…….
“네 몸은 몸도 아니야?”
그럴 새도 없이 부비트랩은 펑, 터져 버리고 말았다.
타티아나는 기드언의 까칠한 말에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옆에 있던 케이도 덩달아 함께 일어났다.
그녀는 케이에게 무언의 눈빛을 보냈다.
‘전하가 화가 났어. 이럴 때 말로 싸우면 절대 못 이긴다?’
‘…….’
‘너도 지금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 잘 알겠지?’
케이는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살수들을 데리고 왕자비를 위한 임시 막사를 한 채 더 짓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타티아나는 괜한 불똥이 튀는 것을 막기 위해 스칼렛의 막사로 대피했다.
스칼렛은 짐승 가죽을 콧등까지 끌어 올린 채 말똥말똥한 눈동자만 내어놓고 있었다.
코니는 많이 피곤했는지 벌써 잠이 들어 코까지 드르렁거리는 중이었다.
타티아나는 막사 끝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으며 상체만 들이밀었다.
“올케도 나랑 같이 잘 거야?”
스칼렛은 다 이 언니에게 오라는 듯, 잠이 든 코니의 반대편 이불 끝자락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타티아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좁아요.”
비집고 들어가면 어떻게든 잘 수는 있겠지만,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셋 다 사이 좋게 잠을 설치는 수가 있었다.
스칼렛은 그럼 왜 여기로 온 거냐고 의아한 눈빛을 보냈고, 타티아나는 속삭였다.
“전하가요. 화가 났어요.”
“왜?”
“밖에서 자겠다고 했다가 아주 혼쭐이 났어요.”
타티아나는 손가락으로 머리 위에 뿔 모양을 만들었다가, 눈썹 사이를 마구마구 찌푸려 보였다.
하나도 안 비슷했지만, 남편 흉내였다.
스칼렛은 알 만하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그녀는 타티아나가 돌멩이로 망치질을 할 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아마 모두가 알지 않았을까?
오직 타티아나 혼자만 거센 바람에도 날아가지 않을 막사를 짓기 위해 밧줄을 동여매느라 남편 표정을 못 보았을 뿐이었다.
“올케, 솔직히 기드언이랑 같이 살기 좀 피곤하지?”
“아뇨, 뭐 그렇다는 건 아닌데…….”
어머, 부정하네? 아직 신혼이네?
스칼렛은 별꼴이라는 듯 입술을 비죽이다가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행랑에서 언젠가 한 번 보았던 비단 주머니를 꺼냈다.
스칼렛이 꽃 몇 송이를 짠, 하고 내밀자 타티아나는 눈을 크게 떴다.
“이 날씨에 웬 꽃?”
“마탑 안에 피어 있더라고. 공국에 도착하면 올케 해 주려고 가져왔지. 손톱에 물들인 거, 얼마 안 남았잖아. 어후, 근데 거긴 별 게 다 있더라.”
타티아나는 그곳 상황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공감의 웃음을 터뜨렸다.
마탑의 역사는 유구하고, 일반 사람들에게 마법사들은 별 같은 존재다.
그런 마법사들의 거처라고 하면, 대부분은 신비스럽고 근사한 공간을 떠올릴 것이다.
실제로 그런 면도 없지 않아 있다.
하나 연구실 구석구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긴 그냥 잡화상이었다.
없는 물건이 없고, 가끔은 구질구질할 때도 있다.
두 사람은 지난번에 이어 재차 손톱에 꽃물을 들였다.
그러나 이 야밤에, 그것도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서 거창한 일을 벌일 수는 없어, 새끼손톱 정도로만 만족해야 했다.
그때 기드언이 막사 근처로 다가왔다.
“……여기서 뭐해요.”
그는 약간 머쓱한 얼굴이었다.
아까 본인이 아무 죄 없는 아내한테 까칠한 말투로 얘기했다는 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피곤할 사람한테 성격 나쁜 티만 잔뜩 낸 것 같았다.
타티아나는 그걸 모르는 척해 주며 장난을 걸었다.
“저기, 여보?”
“…….”
“나 뭐, 달라진 거 없어요?”
기드언은 한없이 좋기만 했던 저 여보 소리가 언제부턴가 살짝 무서워지려고 했다.
갑자기 달라진 거 없냐니. 남편을 피해 막사로 도망 온 지 뭐 몇 분이나 됐다고.
그는 굉장히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기드언은 복잡한 눈으로 타티아나를 바라보다가 누이를 향해 말했다.
“내 비한테 이상한 물 들이지 말아요.”
스칼렛은 어머, 진짜 별꼴이야, 하며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동생 아내한테 이상한 물을 들인 적 없다. 그저 손톱 물만 들여 주었을 뿐이다.
내일이면 아주 고운 빛을 띨 테지.
그러거나 말거나, 누이의 억울함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기드언은 그만 나오라며 타티아나에게 눈짓했다.
그걸로도 부족하여 나중에는 그녀의 손을 잡고 직접 일으켜 세웠다.
두 사람은 살수들이 지어 놓은 임시 보금자리로 들어갔다.
기드언은 행랑을 베개 삼아 타티아나의 머리를 눕혔고, 몸 위에 두꺼운 옷가지를 여러 벌 덮어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자리는 한없이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아까 그 모닥불 앞과 비교했을 때 별반 나아진 게 없었다.
“안 추워요?”
타티아나는 그의 얼굴에서 미안해하는 기색을 읽고는 비시시 웃었다.
솔직히 춥긴 춥지. 이 계절에 어떻게 안 추울 수 있겠나, 싶다.
게다가 북부가 코앞인데.
그녀는 차마 거짓말은 하지 못하고, 그냥 괜찮다는 듯 웃기만 했다.
기드언은 그런 그녀에게 품을 내어 주듯 팔을 펼쳐 보였다.
“이리 와요. 난 체온이 좀 높은 편이니까.”
타티아나도 의외로 그가 몸에 열이 많다는 걸 잘 안다.
성에 있을 때는 셔츠 한 장도 안 걸치고 자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설령 그의 체온이 높지 않다 한들 그녀가 그의 품을 거절했을까.
차가운 얼음장 같았어도 그들은 서로의 몸을 끌어안았을 것이다.
타티아나는 기드언의 가슴팍에 콧등을 비비며 파고들었다.
아주 잠시만 눈을 붙일 요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