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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125)화 (114/130)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9장. 남편과 사이가 좋을 때 (2)

* * *

오후 무렵, 발터 북부군이 공성에 도착했다.

북부군 대장은 기드언 측 인사로, 국무 회의 때마다 마물 정벌을 주장해 온 인물이었다.

그는 공국의 방어선이 무너지면 다음 차례는 자신의 병사들이 되리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사전에 힘을 합쳐 토벌하는 것과 물이 엎질러진 다음에야 수습에 나서는 건 천지 차이였다.

그가 기드언을 지지하며 정치적 뜻을 같이 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했다.

그러나 그들은 곧바로 마물 사냥에 나서지는 못했다.

대공은 무슨 맛보기라도 하라는 건지 공성 한복판에 마물 몇 마리를 잡아다 두었다.

사실은 타티아나와 수도에서 온 병사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였다.

북부인들은 매년 겨울마다 치가 떨릴 정도로 상대해 왔으나, 수도인들에게는 마물의 존재가 아직 낯설 테니까.

실제로 타티아나는 이제껏 생물 도감에서나 마물을 보아 왔다.

하급 병사들 중에는 그런 경험마저 전무한 이들이 대다수였다.

그리고 북부인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왕자비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1왕자 측과 왕실의 도움이 절실하기는 했으나, 한편으로는 의심스러웠던 것이다.

왕자비를 둘러싼 소문들은 과연 전부 다 진짜일까? 혹시 눈곱만큼이라도 과장된 부분은 없나?

마검사라는 왕자비는 그 무시무시한 위명에 비해…… 상당히 귀여운 생김새를 갖고 있었다.

성격도 전혀 과격해 보이지 않았다.

무슨 사자라고들 하던데, 이건 오히려 고양이 쪽에 가깝지 않나, 다소 무례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아주 솔직한 말로, 그녀가 비명을 지르거나 토악질을 한다 해도 그들은 이해할 수 있었다. 절대 흉 같은 거 안 볼 자신 있었다.

그들도 매년 마물을 봐 왔지만,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매년 징그럽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의 기대 속에 타티아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딱 한 마디 했다.

“별로 호감이 가는 생김새는 아니네.”

이 정도면 도감을 그린 화가가 혼신을 다해 미화한 거였다. 실제가 훨씬 흉물스러웠다.

화가는 왜 굳이 그런 쓸데없는 노력을 기울인 거지? 본인 심미안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외양이었나?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감상의 시간은 짧디짧았다.

그녀는 기드언을 독촉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계속 이러고 있을 거냐고, 어서 명령을 내리라는 뜻이었다.

북부인들은 그 건조하고도 밋밋한 반응에 김이 새 버리고 말았다.

아직 왕자비를 둘러싼 소문들의 진위는 확인하지 못했으나, 이거 하나는 확실했다.

왕자비는 비위가 좋았다.

하나 타티아나는 이번에도 현장에 바로 투입되지 못했다.

마물의 본거지를 치기에 앞서 개체 수를 줄이는 작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기드언 측은 마물 따위에게 단 한 명의 병사라도 잃을 수 없는 입장이었다.

때로는 압도적인 힘의 우위가 평화를 보장한다.

수도에 무혈입성하기 위해서는 군사를 있는 대로 끌어모아야 했고, 불필요한 희생을 최소화해야만 했다.

그 결과 타티아나는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성곽 위에 우두커니 앉아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기다리는 시간만큼, 그녀의 머리 위에 흰 눈도 소복이 쌓여 갔다.

살수들은 마물들을 자극하여 성 부근으로 몰아오는 중이었다.

적당한 때가 되었을 때, 저 위에 마법을 내리꽂는 게 오늘 타티아나의 임무였다.

타티아나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시되는 작전이었으나, 그녀는 어딘가 살짝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사실 그녀는 저곳에서 살수들과 같이 뛰고 싶었기 때문이다.

살수들은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날렵한 움직임을 보여 주었다. 기마술이 거의 신들린 경지였다.

상당히 위태로운 순간도 있었으나, 그건 일반인 눈에나 그럴 뿐이지 타티아나는 지금 살수들이 즐기고 있다는 걸 잘 알 것 같았다.

심지어 기드언과 대공도 저들과 함께하고 있었다.

왕자까지 동원될 일은 아니었으나, 북부와 왕실이 규합한다는 상징적 차원에서 나선 것이다.

하나 이러든 저러든 간에 타티아나 눈에는 지금 다 부러울 뿐이었다.

‘나는 확실히 현장 체질인가 봐.’

아빠가 승진을 할 때마다 왜 그렇게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었는지 이제는 이해가 된다.

명예고 나발이고 그냥 실무에서 뛰는 게 좋으셨던 거다.

그렇게 남들이 잔치하는 모습을 얼마나 오랜 시간, 지켜만 보았을까.

성 앞에 마물들이 시커멓게 몰려들었고, 때맞추어 성문이 열렸다.

기드언과 살수들은 재빨리 그 안으로 몸을 피했다.

이제 타티아나의 차례였다.

긴 기다림을 보상받고자 하는 심리에서였을까, 저들이 인간이 아니기에 죄책감을 덜 수 있었기 때문일까.

그녀는 평소에는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다소 과격한 주문들을 떠올렸다.

“피고 지는 꽃. 뜨고 지는 태양. 탄생과 죽음. 질서를 어그러뜨리는 자들이여, 절멸하라. 지금은 가야 할 때. 나는 모든 더러운 것들로부터 이 세상을 정화하리.”

타티아나는 무슨 파괴론자 같은 주문을 달달 읊었다.

그렇게 한 10여 분간 심취해 있다 보니, 다른 무엇보다 본인 성격이 먼저 파괴될 것 같았다.

이러다 자기 세계에 갇혀 미치광이가 되는 거다.

마법사들 중에는 실제로 그런 사례도 종종 있다.

그녀는 더 늦기 전에 손을 힘껏 휘두르며 마물 위에 섬광을 내리꽂았다.

그러자 사위가 번쩍였고, 곧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타티아나는 성공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고는 몸을 세웠다.

꾸웩, 하는 괴성이 사방천지를 뒤흔들고 있었다.

타티아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등 뒤를 돌아보았다.

응원차 따라 나온 스칼렛은 짐승 털가죽을 온몸에 뒤집어쓴 채 다 식어 버린 찻물을 홀짝이고 있었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자 ‘힘들지? 끝났어?’ 하고 물어왔고,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공주 덕분에 고독함을 덜 수 있어 고맙기는 했으나, 타티아나는 다소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다.

“공주 전하, 정말 계속 보고 계실 건가요?”

“응, 왜? 나 방해돼?”

“그렇지는 않은데요. 음, 이거 태교에 별로 안 좋을 것 같은데.”

거리가 멀어서 저 참상이 자세히 보이지는 않겠지만, 여러모로 정서에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일단 시끄러웠고 냄새도 지독했다.

마물들은 인간과 전혀 살성을 가졌으나, 살갗이 타들어 가는 냄새가 고약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최악이었다.

그런데 스칼렛은 코끝을 잔뜩 찡그리면서도 타티아나가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을 내어 놓았다.

“태교 때문에 일부러 나와 있는 거야.”

“……그건 또 무슨 소리세요?”

“난 말이야. 우리 아가가 나중에 타티아나처럼 멋진 검사가 되었으면 좋겠거든. 여검사면 더 좋을 것 같아.”

뭐지, 이 야무지고도 원대한 희망 사항은?

타티아나는 몹시도 해괴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잘못되어 있는 게 너무 많아서 어디부터 짚어 줘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녀는 하나부터 열까지 차근차근 시작하기로 했다.

“공주 전하, 일단 이름을 날리는 검사가 되려면 여자로 태어나는 것보단 남자로 태어나는 게 월등히 유리해요.”

“음.”

“제 입으로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아니, 나니까 이런 말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거죠. 내가 직접 해 봤으니까. 아무튼 신체 조건상 이건 하늘이 두 쪽 나도 바꿀 수가 없어요.”

그 타고난 차이를 따라잡으려면 오른손잡이가 양손잡이가 되는 노력 정도는 수반되어야 했다.

고수의 보법을 죄다 연구하고, 상황에 따라 본인 걸음걸이까지 고치려는 열의가 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렇게 해도 극복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사실은 불가능하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자기 자식한테 그렇게 힘든 길을 가라고 해?

그것도 왕손한테?

타티아나는 어릴 때 누가 이런 식으로 말렸다면 속상해했을 거면서, 갑자기 어머니의 마음, 아니, 숙모의 마음이 되고 말았다.

내 조카는 나처럼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다.

이래서 너랑 똑같은 자식 낳아서 키워 보라는 어른들의 말이 있는 건가 보다.

그건 얼핏 들으면 악담 같을 때도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너를 너무나 사랑하고 아끼는 탓에, 듣기 좋은 말만 해 줄 수 없는 내 마음도 좀 이해해 달라는 푸념인 거다.

타티아나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문제점을 계속 짚어 나갔다.

사실 그녀가 가장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이거였다.

“그리고 말이에요. 스칼렛 전하, 양심에 손을 얹고 본인과 브라우닝 경을 한 번 떠올려 보세요. 지금 너무 과한 걸 바라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으시나요?”

스칼렛은 올케가 시키니 일단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러고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어 되물었다.

“로버트랑 내가 왜?”

타티아나는 으이그, 하며 외쳤다.

“둘 다 몸에 운동이라는 게 전혀 없잖아요! 그 몸으로 평생 살았으면서 자기 자신을 그렇게 몰라요?!”

운동신경이 어디서 툭 튀어나오는 건 줄 아나?

예체능은 타고나는 게 반 이상이었다.

자식이 나중에 커서 굳이 하겠다고 고집을 피울 때, 그때 묵묵히 밀어주면 모를까, 부모가 바라는 건 양심이 없는 거지, 싶었다.

이러다 내 조카가 삐뚤어지면 당신이 책임질 거냐고, 타티아나는 애 엄마를 흘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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