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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15)화 (119/130)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2장. 실전 돌입 전 필수 예제 (1)

기드언은 밤마다 타티아나의 침실을 찾아왔다.

시간은 들쑥날쑥했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그렇다고 무슨 특별한 용건이 있었느냐, 부부간의 밤 생활엔 진전이 있었느냐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아직 첫 키스 이상의 진도를 나가지 못했고, 기드언은 몹시 사소하고 형식적인 것들을 물어오곤 했다.

오늘 뭐 했는지, 음식은 입에 맞는지, 불편한 건 없는지.

근데 혹시 건방지게 구는 새끼는 없는지.

그는 정말 이게 궁금해서 남의 방에 매일같이 출석 도장을 찍는 걸까?

타티아나가 의아해질 때쯤 기드언은 질문에 변주를 주었다.

타티아나는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며칠만 더 했으면 그녀도 지루해질 뻔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자니, 이 새로운 질문이라는 것들도 이상한 건 매한가지였다.

‘타냐는 무슨 색을 좋아합니까?’

‘음. 검은색이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밤에 적들의 눈을 피하기 좋아요. 야습할 때 그보다 더 좋은 색은 없을 거예요.’

‘그럼 낮에는…….’

‘그땐 발터 군복 색이죠.’

‘…….’

‘국방색.’

이건 혹시 백문백답 같은 건가.

서면으로 작성해 드릴까요?

타티아나는 난데없이 시작된 취향 조사에 매번 농담으로 응수했다.

‘좋아하는 동물은 뭐예요.’

‘도마뱀이요.’

‘그건 또 왜요.’

‘음, 도마뱀들은 눈을 잘 안 감으니까요. 적 앞에서 눈을 피하지 않는다면, 그 싸움은 반쯤 이긴 거나 다름없지 않을까요?’

‘……혹시 내가 질문하는 게 싫습니까?’

기드언은 타티아나가 장난을 치는 중이라는 걸 비로소 눈치채고 황당한 듯 웃었다.

그리고 그때쯤 됐을 땐, 타티아나도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기드언은 그저 그녀와 대화를 나누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고.

그런데 그가 이제껏 살면서, 남과 어색함 없이 대화를 이끌어 가기 위해 노력해 본 적이 있을까?

기드언은 왕세자로 책봉되지만 않았을 뿐, 발터에서 계승 서열이 가장 높은 1왕자였다.

그런 그가 남의 눈치를 보거나 비위를 맞출 필요가 있었겠냐는 거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남편은 지금 나름대로 그 노력이란 걸 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타티아나도 더 이상은 그의 숨겨진 의도를 파헤치거나 넘겨짚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이 일문일답에 기꺼이 어울려 주는 쪽을 선택했다.

‘전하는 무슨 색 좋아하시는데요.’

기드언은 그때 타티아나의 머리칼을 손끝으로 슬쩍 건드렸다.

‘보라색.’

그리고 그녀의 에메랄드빛 눈동자도 힐긋 한 번 바라보았다.

‘녹색도 좋아요.’

‘……동물은요?’

‘고양이.’

‘…….’

타티아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누굴 염두에 둔 채 답하고 있는지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어떠한 질문을 받아도 그녀와 연관 지어 답할까 봐 몸서리가 쳐질 판이었다.

기드언은 본인이 맥을 끊어 놓고도 왜 말이 없냐는 듯 물었다.

‘벌써 끝이에요?’

‘…….’

‘질문 더 없냐고.’

‘……날 보고 말하지 말고, 전하가 진짜 좋아하는 걸 말해야죠.’

‘자기도 자기가 고양이 닮은 거 아나 보네.’

그는 티티이, 그녀의 이름을 가지고 말끝을 늘여 가며 피식 웃었다.

근데 너 별명이 암사자라며? 나방을 어떻게 벴길래 그런 소문이 나? 속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타티아나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으나 언제부턴가 내심 이 시간을 기다리게 됐다.

그가 늦게 오면 ‘바쁜가? 무슨 일 생겼나?’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혹시라도 자객에게 당한 거라면 내 이 쓸데없이 좋은 명검으로 복수해 드리리, 혼자서 생각하며 남편을 고인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했다.

그런데 여느 때처럼 그녀의 침실에 찾아온 기드언은 오늘따라 말이 없었다.

밤 인사마저 생략한 채 계속 생각에 잠겨 있을 뿐이었다.

뭔가 심각한 문제가 생겼나 보다, 아니면 중차대한 결정을 내릴 일이 있거나.

타티아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공사다망할 이 나라 왕자를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오늘도 유감없이 상의를 탈의한 그의 근육을 남몰래 훔쳐보았다.

타티아나가 살면서 남자의 몸을 얼마나 많이 보았을까?

유감스럽지만 거기에 정확히 답하기란 힘들다.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무수히 보았기 때문이다.

블룸 경은 딸이 사춘기라 이를 만한 나이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수련을 할 때도 옷을 꼬박꼬박 챙겨 입었으나 병영의 기사들은 아니었다.

원래 더운 데는 장사 없다.

더구나 기사들은 나신을 타인에게 보이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족속들이었다.

그러니 이러한 환경에서 성장해 온 타티아나가 남편의 몸에만 유독 특별하게 반응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이 옳다.

그냥 무심하게 바라보기엔 너무나 훌륭한 근육이었다.

‘전완근이…… 완벽해.’

팔뚝을 약간만 움직여도 근육과 힘줄이 꿈틀대며 요동쳤다.

타티아나는 기사들의 근육을 수도 없이 분석해 왔다.

너무 부러워서 잠을 못 잔 적도 많다.

그렇지만 맹세컨대 그 근육을 불순한 눈으로 바라보았던 적은 없다.

한데 장소가 침실이어서인가, 아니면 외모의 힘은 어디에나 작용하는 건가.

기드언의 몸을 보고 있으면 남자한테 섹시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인 건가 생각하게 된다.

타티아나의 시선은 쩍 갈라진 그의 팔뚝을 타고 어깨 아래 삼두근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드언은 갑자기 픽, 웃더니 자신의 얼굴을 두어 번 문질렀다.

‘어? 들켰나?’

넋을 놓고 있던 타티아나는 뜨끔해서 천장을 열심히 바라보았다.

기드언은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 그녀에게 물었다.

“왜 갑자기 안 보는 척해요?”

“……알고 계셨어요?”

“적당히 해야 나도 모르는 척해 주지.”

그렇긴 하지. 근데 싫었으면 주의를 좀 주지 그랬어?

너무 아무렇지 않게 벗어 던지길래, 다른 기사들처럼 신경 안 쓰는 줄 알았다.

하긴. 생각해 보면 기드언은 보통의 기사들보단 훨씬 예민한 편이었다.

쓸데없이 근육 자랑을 해 댈 만큼 유치한 성격도 아니었고.

그런데 가만 보고 있자니, 기드언은 싫어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이렇게 물어왔다.

“비. 내 몸이 맘에 들어요?”

“……네, 전완근이 너무 완벽한 것 같아요.”

“…….”

“아, 삼각근도 훌륭해요. 정말 좋은 어깨를 가지셨어요.”

“고맙…… 뭐야? 이거.”

기드언은 황당하다는 듯 타티아나를 바라보았으나, 관심사가 운동과 검뿐인 여자한테 청혼했으면 이 정도는 감당해야 하는 거다.

그녀의 감탄과 찬사는 진심이었고, 타티아나는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조금 더 나아가기로 했다.

“살짝만 만져 봐도 돼요?”

타티아나가 제아무리 남자의 근육을 숨 쉬듯 분석하며 살아왔다 한들 보는 것과 더듬는 것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었다.

비록 그녀의 집에는 블룸 경이라는 훌륭한 교재가 있었지만, 블룸 경은 다 큰 딸이 그의 몸을 들여다보기만 해도 혼비백산하며 도망 다니기 바빴다.

정말 순수한 학문적 탐구심이었는데.

하지만 그녀도 나이가 차면서부터는 아빠 몸을 만진다는 상상만으로도 남사스럽고 징그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내내 여유로운 기색으로 웃고 있던 기드언은 그녀가 조심스레 묻자, 몹시도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이건 좀 무례했나 싶어 타티아나는 금세 소심해졌다.

그에게는 자신이 많이 이상한 여자처럼 보일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부부 사이에 이 정도도 안 되는 건가, 생각하면 그건 또 모르겠다.

그는 그녀의 목을 허락 없이 죄 짓씹어 놓은 적도 있는데.

기드언은 계속 묘한 표정으로 타티아나를 바라보았다. 좀 찌푸리고 있는 듯도 했다.

그러나 그의 목울대는 위아래로 한 차례 꿀렁거렸다.

괜히 목이 타는 기분에 마른침을 삼켜서였다.

“비. 지금 진심이에요?”

타티아나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이었다.

아니, 기드언은 처음부터 그녀의 대답을 들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럼 해 보라는 듯 어깨를 불쑥 내밀었으니까.

어? 진짜? 눈을 동그랗게 뜬 것도 잠시, 타티아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런데 접촉 부위가 그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나 보다.

타티아나가 탄탄해 보이는 가슴팍에 손바닥을 올리자, 그의 가슴 근육이 움찔하고 흔들렸다.

기드언은 난감해하며 머리를 쓸어 넘겼으나, 그녀가 손을 거두자 눈살을 찌푸렸다.

“왜 떼.”

“아니, 싫어하는 것 같길래…….”

“그런 말 안 했습니다.”

“…….”

타티아나는 다시금 조심스럽게 손바닥을 갖다 댔다.

입술 새로는 작은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남자 가슴도 평상시엔 부드럽구나.’

힘줘 보라고 하고 싶은데, 어어, 왕자 전하께 그런 걸 요청드려도 될까?

근데 예의를 차리기엔 이미 너무 늦은 것 같지?

“저기, 전하.”

“왜요.”

“아까 그 움찔하는 거 한 번만 더 해 주면 안 돼요?”

“…….”

“아니에요. 그냥 못 들은 걸로 해 주세요.”

타티아나는 다시금 그의 몸에 몰두했다.

어디까지가 뼈대이고, 어디까지가 근육인고.

이건 필시 수련만으로는 만들 수 없는 몸이다.

역시 예체능은 타고나는 게 반 이상인 것이다.

피지컬이 멱살 잡고 끌고 간다고나 할까.

자신의 몸에 푹 빠진 타티아나를 보고 있는 기드언은 여전히 미묘한 표정이었다.

심정 또한 그러했다.

자신을 한결 편하게 여기는 것 같아 좋긴 한데…… 이건 편해도 너무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타티아나에게서 아무런 음심도 느껴지지 않아서 그는 도리어 심술이 나려 했다.

그래서 그냥 그 심술을 부리기로 했다.

“비는 내 몸이 진짜로 마음에 드나 봅니다.”

“……아, 네, 뭐.”

“나도 비의 몸이 궁금해요.”

“네?”

그는 삐딱하게 웃으며 어딘가를 바라보았는데, 그 시선은 타티아나의 가슴께를 향해 있었다.

어어? 갑자기 왜 거길 보고 있는 거야?

타티아나는 목을 움츠리는 자라처럼 어깨를 동그랗게 말았다. 하지만 그녀는 정직하게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말았다.

지금 나의 반응, 상당히 불공평한 것 같네?

이러면 전하는…… 억울할지도 모르겠네?

기드언은 그 점을 정확하게 지적했다.

“뭐예요. 비는 실컷 만져 놓고, 나는 안 됩니까?”

“여자 가슴은 힘준다고 막 움직이고 그런 거 안 돼요. 모르시나 봐요.”

기드언은 놀고 있네, 하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물론 초혼이고 이제껏 여자도 없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설마 그런 것까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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