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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16)화 (120/130)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2장. 실전 돌입 전 필수 예제 (2)

그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뜬 채 비웃자 타티아나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러면서도 침대에 바르게 누워 슬그머니 이불을 목 위로 끌어 올렸다.

하지만 이불은 검은색도 아니었고, 발터 국방색도 아니었다.

이런 걸론 밤에도 낮에도 그에게서 은신할 수 없었다.

기드언은 타티아나에게 달라붙어 귀에 대고 물었다.

“안 돼요?”

“네. 이 상황에선 좀 아니네요.”

타티아나는 방금 전까지 머릿속에 신체 해부도를 펼쳐 놓고 있었다.

인간의 뼈가 몇 개인 줄 아나? 성인 기준으로 대략 206개다.

타티아나는 정말로 그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흐름으로 이어지면, 내 아름다운 첫날밤은 누가 책임져 줄 건데?

타티아나는 머릿속으로 열심히 변명거리를 찾았으나, 이게 다 핑계라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아름다운 첫날밤에 대한 로망 같은 건 원래 없으니까.

그녀는 단지 ‘그래요, 만져 봐요.’ 하고 대번에 허락하기가 좀 민망했을 뿐이다.

마치 너무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기드언은 그녀가 곤란한 표정을 짓는데도 재차 물어 왔다.

“진짜 안 돼요?”

“네.”

“그럼 언제 돼?”

“…….”

“왜 말이 없어요, 티티.”

“에잇,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요. 소름 돋아요. 정 애칭을 불러야겠으면 타냐라고 부르세요.”

“난 남이 하는 말 잘 안 들어요. 하지 말라고 하면 더하고 싶고.”

“지금 성격 나쁘다고 뽐내시는 거예요?”

“아니, 참고하라고. 비 남편은 이런 사람이니까.”

“…….”

“무슨 사기 결혼이라도 당한 표정이네요.”

그럴 리가.

애초에 당신이 둥글둥글한 성격이라거나 고매한 인품이라고 기대한 적 자체가 없거든?

소문이 한두 개여야 내 귀에까진 안 들어오지!

타티아나는 새초롬하게 눈을 떴고, 기드언은 웃음을 흘리면서도 이쯤 하겠다는 듯 항복의 표시로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그러고는 정말로 깔끔하게 물러서는 것이다.

안 잡아먹으니까 편하게 있으라고 말하며.

타티아나는 그가 말끔히 물러서자 기분이 더 이상해지고 말았다.

그는 대체 무슨 생각일까?

키스는 이미 했고, 침대 위에서는 적잖은 스킨십도 오간다.

하지만 그 이상이라 말할 만한 일은 없다.

다만 기드언은 그녀를 종종 습한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그렇게 한동안 응시하다가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릴 때면 그의 턱과 입매에 무심코 힘이 들어가는 게 보였다.

이렇게 순순히 물러서는 것이 의아하게 느껴질 만큼.

그런데 타티아나는 기드언 못지않게 자신의 심리 또한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격투를 하다 한쪽이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면, 다른 한쪽은 의심을 품으면서도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게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승부가 나지 않으니까.

혹시 이건 침대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걸까?

기드언이 절제하면 절제할수록, 싫으면 안 하겠다고, 괜찮다고 물러설 때마다 그녀는 아무런 관심도 없던 밤일에 호기심이 생겼던 것이다.

어떨 땐 기대감마저 들었다.

마치 자신의 무장을 해제하는 병사처럼 몸과 마음이 서서히 열리는 기분이랄까.

저 사람은 내가 싫어하는 행동은 안 하겠구나, 몇 차례의 경험을 통해 안심하게 돼서.

하지만 큰 사기를 당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진짜 사기꾼들은 원래 처음에는 약속을 아주 잘 지킨다. 변제일을 어기는 법도 없으며, 이자를 후하게 쳐 주고 젠틀하기까지 하다.

그들은 그렇게 상대의 신뢰를 얻을 만큼 얻은 후에야 큰돈을 가지고…… 제대로 뒤통수를 후린다.

그러니 아직은 기드언을 보며 본인의 욕망을 잘 통제한다든가, 성생활에 있어 담백한 남자라고 단정 지을 단계는 아니었다.

타티아나가 여기까지 의심하지 못하는 이유는 큰 사기를 당해 본 적이 없고, 검 말고 사람과 결혼한 건 처음이라서였다.

그리고 아직 어려서.

타티아나는 어느덧 단정히 눈을 감고 잘 준비를 하고 있는 기드언에게 한 뼘 더 다가갔다.

이렇게 자기엔 아쉬운 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얘기라도 조금 더 해 보고 싶었다.

아직 시녀들과는 많이 친해지지 못했고 타티아나가 이 성에서 대화다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기사들과 기드언뿐이었다.

개인 수련장을 얻은 대가로 병영 출입은 금지당한 거나 다름없으니 실질적으로는 기드언밖에 남지 않았다.

그는 타티아나가 심심해할 때마다 말동무를 해 줄 의무가…… 물론 그런 의무는 없다.

기드언은 눈을 감고도 타티아나가 자신을 빤히 보고 있는 걸 아는 듯했다.

쓰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으니까.

“나 그만 쳐다보고 얌전히 잡시다, 비.”

내가 중간에 한 번 접었으면, 너도 몸을 사리는 매너가 있어야지.

자꾸 옆에서 바스락거리면서 주의를 끌면, 피식자는 결국 포식 동물에게 잡아먹힐 수밖에 없는 거였다.

하지만 그녀는 피식자라기보단 고양이의 탈을 쓴 암사자라서, 한동안 미련이 남은 얼굴로 머뭇거렸다. 그러다 이내 자신이 질척거리고 있다고 느꼈는지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불을 끌어 올렸다.

기드언은 그런 그녀를 곁눈으로 힐끔 바라보며 또 한 번 쓰게 웃다가 물었다.

“비, 요즘 지내는 건 어때요. 혹시 많이 심심합니까?”

그러자 타티아나도 그를 향해 어깨를 돌렸다.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니고…….”

그녀는 뮐러 공작 저에서도 지금과 비슷하게 지냈다.

새벽마다 운동을 하고, 아버지의 검법을 구사하다가 번번이 한계에 부딪혀서 검을 집어 던지고.

하녀들과 시시덕거리기도 했지만 대체로 의미 없는 대화들이었다.

그런 타티아나가 요즘 밤마다 그의 방문을 기다리는 건, 그냥…… 음, 아마도 재미있어서일 것이다.

기드언은 눈을 도록도록 굴리고 있는 타티아나의 보라색 앞머리를 옆으로 넘겨 보았다.

반질반질한 이마를 엄지로 슬쩍 쓸어 보기도 했다.

“앞으로는 좀 바빠질 거예요.”

“왜요? 저 뭐, 할 일 있어요?”

찾아보면 많았다.

왕족에게는 분기마다 내탕금이란 예산이 배정된다. 일종의 품위 유지비였는데, 그 예산은 활용하기 나름이었다.

교육 사업을 펼친 왕족도 있고, 제방을 쌓거나 하천에 다리를 놓아 자신의 이름을 붙인 이도 있다.

기드언은 타티아나에게 그런 책임이나 의무까지 얹고 싶지는 않았다.

역사적으로 모든 왕족이 국책 사업에 관여한 것은 아니니까.

다만 왕족이 된 이상, 타티아나는 대외적인 자리에는 얼굴을 비추어야 했다.

피할 수 없는 행사나 파티 따위는 무수히 많았다.

“내일 밤, 왕실에서 주관하는 정례 파티가 있습니다.”

“…….”

“원치 않는다면 이번엔 참석하지 않아도 돼요. 어차피 나도 관심이 좀 시들해질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으니까. 그렇지만 한없이 미룰 수만은 없겠죠.”

“…….”

“꽤 피곤한 자리가 될 텐데, 괜찮겠어요?”

“……왜 피곤해요?”

큰 파티는 데뷔탕트 경험이 유일했지만, 귀족 저택에서 열리는 소소한 사교 모임 정도는 타티아나도 자주 참석해 보았다.

그녀는 대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지는 못했다. 귀족 영애들과 주된 관심사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큰 문제가 된 적은 없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얘기를 잘 들어 주기만 해도 좋아하니까.

다만 그것은 그녀가 파티의 쉰세 번째 기둥을 자처해도 문제가 없을 때나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이번 파티의 주인공은 그녀였다.

기드언은 그 사실을 상기시켜 주듯 속삭였다.

“내가 말했죠? 한동안은 모든 사람들이 비만 쳐다볼 거라고.”

“…….”

“비유가 아니에요. 비가 그날 물을 몇 번 마시는지도 세고 있을 겁니다.”

기드언은 본인이 말하면서도 마음에 안 들었는지 눈살을 찌푸렸고, 타티아나도 그걸 왜 세? 생각하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럼 어떡해요. 저, 사람들 앞에서 칼춤이라도 춰 줘야 하나요?”

그 정도가 아니라면 대중의 기대감을 충족시킬 수 없을 것 같았다.

기드언은 타티아나의 말에 그만 풋, 하고 웃어 버렸다.

타티아나는 속으로는 저도 웃겼으면서 책망하듯 그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왜 웃어요. 내가 유일하게 뽐낼 수 있는 게 그건데.”

살다 보면 알게 된다. 사람이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특기 하나가 있다는 건 정말로 대단한 일이라는 걸.

타티아나가 비웃지 말아요, 하며 어깨를 흔들자 눈가를 가리고 한참 웃던 기드언은 고개를 저었다.

그도 그녀가 칼춤을 얼마나 잘 추는지는 알고 있었으나, 그건 자신만 볼 거였다.

나이 들고는 아직 보지 못했으니, 다른 건 몰라도 첫 번째 관객만큼은 자신이어야 했다.

“칼춤은 됐고, 귀족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건 비와 내 사이일 겁니다.”

“아아.”

타티아나는 바로 알아들었다.

얼마 전 병영에서 만난 샘슨 경마저도 그녀의 결혼 생활을 궁금해하지 않았나.

“남들 앞에선 사이가 좋아 보여야 한다는 거죠? 친한 척.”

친해지자고 한 적은 있지만, 친한 ‘척’을 하길 바란 건 아니었는데.

어쨌든 결과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라서 기드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타티아나는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장난스레 물었다.

“막 보는 데서 키스하고 그래야 돼요?”

오늘 밤에만 벌써 몇 번째. 기드언은 또 한 번 오묘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그렇게까지 해 주게요?”

“……설마 원하세요?”

“…….”

연회장에 얼굴만 비추고 사라졌던 무수한 사례가 증명하듯, 기드언은 누구보다 파티를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억지로 웃거나 광대놀음을 하는 건 딱 질색이었다.

그가 왜 귀족들 앞에서 기분 좋은 척 연기를 해야 하나.

그런데 이걸 어떡해야 할까?

그는 타티아나의 질문에 그럴 필요 없다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광대 짓을 하는 대가로 얻는 반대급부가 상당하다 보니, 그도 저울질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 안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최후의 양심을 박박 긁어모으며, 긍정도 부정도 아닌 대답을 내어놓았다.

“티티가 하고 싶은 대로 해요.”

“…….”

“나도 나 하고 싶은 대로 해 볼 테니까.”

“너무 의미심장하게 말하니까 제가 꼭 실수를 한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전하한테 지기 싫어요.”

“네, 비의 뜻대로.”

두 사람은 꼭 질 나쁜 장난을 꾸미는 어린아이들처럼 나란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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