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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66)화 (126/130)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5장.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 (4)

* * *

타티아나는 칩거를 끝낸 이후로도 왕실 파티에 불참했다.

위세 높던 공작가의 몰락은 여전히 사교계의 화젯거리였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건 한때 뮐러 가의 수양딸이었던 왕자비의 반응이었다.

이건 신혼부부에게 있어 고작 장애물 정도의 사건이 아니다.

왕자비가 뮐러 가와 어떤 관계를 유지해 왔느냐에 따라 부부는 철천지원수가 될 수도 있었다.

타티아나는 이런 관심이 전혀 반갑지 않았다. 혼자 생각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자연히 파티 또한 멀리하고 있었지만, 귀족들의 입방아는 멈추지 않았다.

사실은 눈앞에 없으니 더 신이 나서 씹어 댔다.

‘왕족들이 사람 숙청하는 거 한두 번 보오? 부모 자식도 죽이는데 이 경우엔 피도 안 섞였잖소?’

‘그야 그렇지만……. 비전하는 혼인하신 지도 얼마 안 되었고, 아직 나이 어리신데 충격이 크지 않으실까요?’

‘의연하고 강건해지셔야죠. 블룸 아닙니까.’

‘그래도 장례까지 참석하지 않은 건 너무하였소.’

‘그러게 말입니다. 그건 나도 좀 의외였습니다.’

갑자기 대화 주제가 타티아나의 인성 문제로 번지려 할 때였다.

여론전에 뛰어든 건 스칼렛 공주였다.

‘내 올케가 왜 그 자리에 가야 하지요?’

‘고, 공주 전하.’

‘아직도 우리 올케가 뮐러이니 뭐니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나 보군요. 양자 입적은 편의상 진행한 일 아니었습니까. 현행 후견인 제도하에서는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가 한정적이라서.’

‘…….’

‘그 때문에 후견인 제도를 손봐야 한다고 한참 말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엎어졌나 봅니다?’

누굴까? 일 제대로 안 하는 사람? 벌려 놓고 마무리 안 한 사람이 누구니. 너니?

한동안 연극조로 한탄하던 스칼렛은 작은 키로 고개를 빳빳이 들며 좌중에게 물었다.

‘왜요. 내 올케가 타티아나 블룸 아인슬러라는 데 이의를 품은 사람 있습니까?’

그 질문에 손을 들면 그 즉시 반 기드언파로 찍히는 거였다.

이견을 제시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이튿날, 그들 중 장례를 운운했던 귀족 하나는 감찰부로 불려 가 영지 운영에 대해 조사를 받았다.

그 배후에 누가 있었는지는 뻔했다.

기드언은 타티아나와 달리 개구리들이 조잘조잘 떠드는 걸 푸근한 마음으로 지켜봐 주는 남자가 아니었다.

정말로 개구리를 싫어해서는 아닐 테고, 이건 앞으로 입조심하라는 경고였다.

누구든, 뮐러 가 다음 차례가 되기 싫다면 말이다.

타티아나는 이 모든 상황을 앉은 자리에서 전해 들었다.

결혼 전부터 교류한 친구들이 요즘따라 매일같이 찾아와 사교계 분위기를 생생히 중계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제야 좀 잠잠해진 것 같다며 이렇게 얘기했다.

“아무튼 그래서 요즘 거의 금언령이 내린 분위기야. 이제 파티에 나와도 되지 않을까? 그렇지 않을까요, 비전하?”

타티아나는 그래도 썩 내키지 않아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금언령이 아니라 정치 보복 수준인데. 공포 정치 듣는 것 같아.”

“…….”

타티아나의 말이 냉소적으로 들렸는지 열심히 떠들던 친구들은 슬그머니 눈치를 보았다.

그러고는 몹시도 조심스러운 태도로 물었다.

“저기, 괜찮은 거지?”

“뭐가?”

“결혼 생활 말이야.”

“음.”

타티아나도 친구들이 왜 이렇게 묻는지 알고 있었다.

적적해질 틈도 없이 찾아와 남의 정신을 쏙 빼 놓을 정도로 수다를 떠는 건, 그녀들이 심심하거나 한가해서가 아니었다.

타티아나를 걱정해서였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나면 친구 관계가 예전과 같지 않다고 하던가.

타티아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수긍하는 부분은 하나 있었다.

털어놓기 힘든 얘기가 한두 개씩 생겨난다는 것이었다.

‘남편이 밤마다 찾아와서 날 괴롭힌다는 얘기를 할 수는 없잖아.’

기드언은 타티아나가 아무리 냉담한 기색을 보여도 매일 밤 침실로 찾아왔다.

그 길일이란 방패 앞에서 그는 상당히 뻔뻔해지고는 했다.

가장 뻔뻔한 점은 길일을 운운하면서 아무 짓도 안 한다는 점이었다.

오늘은 뭐 했냐고 가끔씩 쓸데없는 말이나 붙여 올 뿐이었다.

타티아나는 그에게 질문 같은 걸 하고 싶지 않았다. 가능하면 입을 딱 다문 채 목석처럼 있고 싶었다.

하지만 한 번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물을 수밖에 없었다.

‘이럴 거면 길일 따져 가며 오시는 의미가 없잖아요.’

‘시늉은 해야죠. 남들 눈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

‘부부 사이 안 좋다고 소문나면 어떡할 건데.’

타티아나는 그 말에 어느 정도는 공감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의아해졌다.

기드언이 실제로 소문을 신경 쓰는 사람인지 아닌지 가끔 모호했기 때문이다.

그는 어떨 때는 함부로 입방아를 찧는 사람들을 다 잡아다 죽일 것처럼 군다.

그러나 정작 남들이 본인 사생활에 대해 지저분하게 떠드는 건 내버려 둔 전적이 있다.

사적으로 말을 거는 이가 없어 편했다며, 고작 그런 이유로.

하나 그가 어떤 기준을 가진 사람이든 간에 이런 나날이 계속 이어지는 건 곤란했다.

타티아나는 요즘 그를 대면하는 게 고역이었다. 정신적인 피로도가 상당했던 것이다.

그럼 싸워서 끝장을 내든, 큰맘 먹고 화해하든 결판을 내라고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타티아나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든 의문이 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서늘해지는 의문이다.

그날, 기드언의 집무실에서 맡았던 피 냄새. 그가 미처 갈무리하지 못했던 살기.

양부는 정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맞는 걸까. 혹시…….

‘전하가 그런 거면 어떡하지.’

그들은 지금도 충분히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다.

타티아나는 이것만으로도 가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왔다.

한데 여기에 뭔가가 또 더해진다면, 그녀는 솔직히 그 상황을 받아들일 자신이 없다.

그때도 지금과 같은 눈으로 기드언을 바라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아직 해소되지 않은 갈등을 품에 안은 채, 이보다 더한 최악이 있을까 봐 지레 겁먹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니길 바라는 마음은 어째서인가.

어쩌면 이것은 그녀가 그를 미워하고 싶지 않다는 증거나 다름없을 것이다.

* * *

며칠 후 타티아나는 용단을 내렸다.

그녀는 냉전 중에도 꼬박꼬박 귀가하여 남의 피를 집요하게 말려 대는 남편을 피해 집을 나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렇다고 진짜 성 밖으로 가출을 한 건 아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겸사겸사 예전부터 꼭 만들어 보고 싶었던 야전 막사를 짓기로 한 것이다.

세간에는 이런 얘기가 있다.

부부 싸움을 하고 나면 집을 먼저 나가는 사람이 지는 거라고.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타티아나는 기드언이 집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할 때, 저 말이 꼭 남겨진 자들의 자기 위로처럼 느껴졌다.

같이 사는 사람이 집에 안 들어오니 살짝 열이 받더라는 거다.

그런데 웬걸? 이젠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니 그것도 열이 받긴 마찬가지였다.

‘이 정도면 그냥 내 성격에 문제가 있는 건가?’

타티아나는 잠시 자기 자신을 돌아보다가 그냥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하나쯤 만들어 보기로 했다.

나쁠 거 없으니까.

그러나 그녀가 가볍게 생각한 것과 달리, 이는 성 사람들에게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지금껏, 왕실 역사를 통틀어 이런 짓을 벌인 왕족은 없었다.

그 비스름한 사례도 찾기 힘들었으며, 그중에 여인의 사례는 더 없었다.

체통머리 없다고 누군가가 문제 삼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타티아나가 때때로 버겁다고 느끼곤 했던 블룸의 이름. 그 명성은 고작 이런 곳에서도 위력을 발휘했다.

성곽 순찰을 도는 경비대원들을 통해 퍼져 나간 소문은 기사들과 병사들의 귀에까지 닿았다.

그들은 블룸 경의 딸이 과연 어떤 식으로 막사를 지을지 몹시도 궁금해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우호적인 여론을 등에 업고 타티아나는 자신이 정말로 블룸이었다는 걸 증명하고야 말았다.

남의 손을 다 거절하고, 직접 망치질까지 해 가면서 완성한 막사는 첫 작품치고는 너무나도 훌륭했다.

사무엘 샘슨 경을 앞세워 쭈뼛쭈뼛 관람을 온 친위대원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히야. 블룸은 뭐가 달라도 확실히 다르네. 이거 진짜 처음 지어 본 거 맞아?’

비바람에도 끄떡없을 만큼 튼튼해 보인다는 건 두 번째 문제였다.

어차피 전시에 이동하려다 보면 완성도는 기대하기 어렵고, 그럴 시간도 부족하다.

기사들이 감탄한 건 기가 막힌 부지 선정이었다.

양지바른 토양은 새벽녘 스멀스멀 올라오는 습기를 최소화해 줄 것이다.

전방 10미터 앞에 줄지어 서 있는 저 나무들은 적들의 시야에서 그녀를 최대한 가려 주겠지.

한데 왕자비는 이 와중에 막사 근처에 구덩이를 파 낙엽까지 덮어 놓았다.

설마 이런 짓까지 해 놓았으리라곤 생각지 못한 기사 하나는 발이 땅속 깊은 곳으로 푹, 들어가자 기함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또 다른 기사는 ‘이거 혹시……?’ 의심하며 나무 기둥 사이에 동여맨 줄을 툭 건드렸고, 그러자 등 뒤에서 단도가 휙 하고 날아들었다.

그래도 명색이 왕실 기사인지라 이 정도에 고인이 된 사람은 없었다.

두 사람 다 재빠르게 피하고 빠져나오긴 했지만, 동료 기사들은 이미 뜨겁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야. 멋있다, 진짜.’

‘아니, 왜 입단을 안 하시는 거지?’

기사들에겐 그 정도로 감명 깊은 막사였다.

그리고 이 소식은 케이의 입을 통해 기드언과 부관들에게까지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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