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화. 악몽 난이도(1)
-악몽? 이런 난이도가 있었나?
-ㄴㄴ 최초일 듯. 일단 튜토리얼에서 변종이 죽은 거 자체가 처음이잖슴.
생소한 난이도에 채팅창이 또다시 들끓었다.
‘악몽’이라니.
어감부터가 심상찮은 데다가.
정황상 최고 난이도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드보다 빡세려나?
-그걸 말이라고 ㅋㅋㅋ 당연한 거 아님?
-미친 ㅋㅋ 그걸 어떻게 깨.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어려운 난이도는 ‘하드’였다.
튜토리얼에서 변종 좀비와 마주친 후, 살아남았을 때 설정되는 바로 그 난이도!
문제는 대다수가 하드 난이도도 클리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변종 좀비가 죽어라 쫓아다니는데 어떻게 살아남겠는가.
기껏해야 몇 층 정도를 간신히 도망치고 만족하는 수준이었다.
한데 그걸 뛰어넘는 난이도가 나타났으니 시청자들의 기대감이 부푸는 게 당연하다.
‘최초……. 좋네.’
지호는 이런 비하인드를 모르지만, 눈치껏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채팅창만 훑어봐도 어느 정도는 파악 가능한 내용이니까.
그러나 함부로 입을 열지는 않았다.
“크르…….”
“크으어?”
어두운 복도를 어슬렁거리는 좀비들이 눈에 들어왔으니까.
한 놈이라도 자극하게 되면 연이어 몰려들 터.
지호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주변을 탐색했다.
‘하나, 둘, 셋…… 일곱.’
방금 올라온 계단을 중심으로 열십자(十) 모양으로 뻗은 복도.
아래층과 마찬가지로 불이 꺼져 어두컴컴한 공간을 좀비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그 수는 총 일곱 마리.
아직까지는 지호를 발견하지 못한 눈치다.
하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피할 각은 없고.’
전후좌우는 교묘하게 위치한 좀비들이. 위로 올라가는 계단은 방화벽이 막고 있는 상황이다.
방화벽을 열 방법은 없으니,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좀비들부터 처리하고, 탐색은 그 후에 해야겠네.’
지호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몸을 돌렸다.
의도적으로 인기척을 내며.
스윽-
고요한 복도를 울리는 이질적인 소리.
“크에?”
“크어?!”
“크르!”
좀비들의 고개가 지호를 향했다.
바라던 바였기에, 지호는 태연히 녀석들을 응시했다.
“크어?”
그간 잡아먹었던 인간들과는 다른 태도가 생소했던 걸까.
좀비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크에!”
“크르르!”
녀석들은 이내 침을 질질 흘리며 지호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한 번에 7마리의 좀비를 상대하게 된 상황!
-아무리 피지컬이 좋아도 이건 못 피하지!
-ㄹㅇ ㅋㅋ 불만이면 천장에 붙어서 이동하던가~
-근데 방금 일부러 소리 낸 거 같은데?
시청자들은 팝콘이라도 사 올 기세로 채팅을 날렸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지호는 당황하지 않았다.
“일단 저 녀석들부터 처리하고, 열쇠를 찾아보면 되겠네요.”
오히려 그는 태연하게 말하며 빠르게 달려드는 좀비들을 응시했다.
-그건 맞는데, 님 지금 위험함.
-ㅇㅈ…. 쟤네 강화 좀비라 빡셀 텐데?
그 말대로 강화된 좀비의 속도는 빨랐다.
하지만.
‘그래 봐야 변종보다는 느리잖아?’
하물며 변종 좀비도 지호에게 손끝 하나 닿지 못했는데.
저것들은 훨씬 느리기까지 하니.
이 상황을 넘기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에이, 아래층에서도 말했잖아요. 안 맞고 다 패면 된다고.”
지호가 씨익 웃으며 식칼을 휘둘렀다.
사악-
가볍게 허공을 가로지른 식칼이 좀비의 발톱과 맞닿았다.
자로 잰 것처럼 완벽한 타이밍.
식칼은 어김없이 좀비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냈다.
그걸로 모자라 손을 가르기까지!
서걱!
“키에에엑!”
예상치 못한 공격에 당한 좀비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으나.
지호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휘릭!
재빨리 뒤로 도는 지호.
“크아!”
등 뒤에는 그의 목을 물어뜯으려는 좀비가 있었다.
‘어딜.’
그는 곧바로 식칼을 휘둘렀다.
후웅-!
하지만 이번 좀비는 눈치가 빠른 녀석이었다.
지호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머리를 숙여버린 것이다.
“크르으.”
빠르게 아래쪽을 향하는 좀비의 머리통!
나름 회심의 일격이었겠지만.
이마저도 통하지 않았다.
어느새 올라온 지호의 무릎이 녀석을 반겼으니까.
빠각!
그림처럼 깔끔한 일격!
좀비의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크어?”
그런데 식칼에 당한 좀비처럼 큰 타격을 받지는 않았다.
당연하다.
좀비가 뇌진탕에 걸릴 리는 없고.
식칼이 아닌지라 추가 데미지도 부여받지 못했으니까.
다만, 잠시 멈칫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그 정도면 차고 넘치지.’
지호가 다시 손을 움직였고.
이어서 그의 식칼이 좀비의 이마 한가운데에 박혔다.
푸욱!
“키에……!”
호기롭게 달려들던 좀비의 움직임은 거기서 끝났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호의 일방적인 독무대가 시작되었다.
서걱! 퍽!
“키에엑!”
“크어…….”
그건,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기이한 광경이었다.
한 편의 잘 짜여진 인형극을 보는 느낌이랄까?
지호가 공격하는 게 아니라.
좀비들이 알아서 식칼에 달려드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
-아니, 식칼에 자석이라도 달렸나? 쟤들 왜 저럼???
완벽한 타이밍이 만든 결과였으나.
그것까지 간파할 수 있는 시청자는 몇 없었다.
대부분 의아한 반응만 내비칠 뿐.
간간이 채팅을 살피던 지호는 의아함을 느꼈다.
‘시청자가 많아진 건가?’
새로운 닉네임들이 다수 보였기 때문이다.
슬쩍 확인해보니.
처음에 12명이었던 시청자 수가 어느새 30명에 육박해 있었다.
-진짜 변종 좀비 잡았어요?
-설마;; 말이 되나;;
채팅 내용을 보아하니 제목에 끌려 들어온 시청자들인 모양이다.
지호는 태연히 대답했다.
“네, 잡았습니다.”
스윽!
“크에엑!”
그것도, 빠르게 달려드는 좀비의 목을 베면서.
-엥? 뭐지? 속도나 움직임 보니까 강화 좀비 같은데?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새로 들어온 시청자가 물음표를 날렸다.
순식간에 파악하는 걸 보니, 고인물인 모양이다.
-뭐야 ㅋㅋㅋ 튜토리얼은 무슨 ㅋㅋㅋ 어그로 적당히 끄셔요.
그러니 바로 결론을 내렸을 터.
그가 판단하기에는 가장 합리적인 결론이었을 것이다.
지호가 반박할 필요도 없었다.
곧바로 다른 시청자의 채팅이 올라왔으니.
-ㄴㄴ 아님! 무기랑 옷 봐요.
잠시 채팅창이 조용해졌다가-.
몇 초 후, 새로운 채팅이 올라왔다.
-미친? 맞네;; 여기 몇 층임?
-9층이요 ㅋㅋㅋㅋ
-어서 와. 악몽 난이도는 처음이지? ㅋㅋㅋ
그 사이 지호의 전투도 끝을 향해갔다.
사실, 처음부터 정해진 결과였다.
제아무리 강화된 좀비라 한들. 결국 좀비는 좀비다.
신체 구조, 지능.
그리고 결정적으로 움직임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움직임도 보이고 공격 패턴도 훤히 읽히는 상황이니, 지호의 상대가 될 리가.
“키엑…….”
그렇게 허무하게 마지막 남은 좀비의 목숨도 끊어졌다.
일곱 마리나 되는 강화 좀비가 지호의 손에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끝났네요.”
너무도 평온한 지호의 목소리에 시청자들은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좀비 아파트가 이렇게 쉬운 게임이었나?
-그럴 리가…….
-이게 맞나;; 악몽 난이도라며
일반적으로 처음 9층에 올라온 플레이어는, 지호처럼 태연하게 좀비를 상대하지 못한다.
대부분 허둥지둥하며 죽어나갈 뿐.
하지만 지호는 달랐다.
어디 하나 흠잡을 부분 없이 완벽하게 좀비를 상대한 것이다.
이제 시청자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와… 미쳤다.
-진짜 넘사벽인데?
-아까 핵이라 했던 놈들 어디 갔냐 ㅋㅋㅋ 뭐 판단까지 대신 해주는 핵도 있었냐?
예전, 그러니까 PC 게임이 성황을 이루던 시절과 달리.
지금의 핵은 기껏해야 에임을 잡아주거나 능력치만 올려줄 뿐, 아바타를 대신 움직여주지는 못한다.
그건 뇌에 영향을 미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번 층에서 지호가 보인 활약은, 그저 신체능력만 올린다고 될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게 실시간으로 시청자들의 평가가 달라지는 동안.
‘어디 힌트 같은 게 있을 텐데.’
지호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아무리 난이도가 어렵게 설정됐다 한들, 이건 게임이다.
결국 최종 목표는 클리어고.
거기까지 향하는 길이 있을 거다.
한데, 좀비를 다 잡았음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으니 이상할 따름이다.
한 시청자의 채팅이 눈에 들어온 건, 그때였다.
-근데 헬창 왜 안 나오지? 원래 여기서 도와주러 오는 거 아닌가?
-도와주기 전에 혼자 다 잡아버려서 그런 거 아님?
-아무리 그래도 나오긴 나와야지 ㅋㅋㅋ 헬창 없이 어떻게 올라가라고 ㅋㅋㅋ
-그러게 ㅋㅋㅋ 글고 보니까 열쇠도 헬창이 가지고 있지 않나???
-ㅇㅇ 보통 헬창이 합류한 담에 열어주는데….
‘헬창?’
지호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정황상 헬창은 NPC를 의미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도와주러 온다는 거겠지.
사실 지호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건 아니다.
적이 없는데 뭔 도움을 받겠는가.
그럼에도 저 소리가 반가운 건, 새로운 실마리를 찾았기 때문이다.
‘NPC라.’
지호는 빠르게 사방을 살폈다.
아마 헬창이라는 NPC는 이 층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찾아가면 된다.
좀비 아파트가 난이도가 높다는 평은 수두룩했으나, 불친절하다는 평은 거의 없었다.
분명 어딘가 힌트가 있을 터.
“찾았다.”
역시나.
복도 한쪽 끝에 살짝 빛나는 문이 보였다.
지호는 저게 힌트임을 확신했다.
그 빛은, 무기를 선택할 때 그랬듯 문을 강조하고 있었으니까.
-오, 진짠가?
-안 나오면 쳐들어간다 ㅋㅋㅋㅋ
-근데 지금도 이렇게 쉽게 잡는데 헬창까지 합류하면 너무 밸붕 아닌가?
-악몽? 좀비들의 악몽이라는 뜻이었네 ㅋㅋㅋ
-ㅇㅈㅇㅈ
-근데 아직 모름. 위로 갈수록 나오는 놈들이 보통은 아니라.
시청자들은 웃으며 반겼다.
헬창이라는 NPC가 어떤 존재인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전투를 도와주는 NPC인가?’
지호도 기대하며 문으로 다가갔다.
철컥.
슬쩍 손잡이를 돌려보니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후…….”
그리고는 격해진 숨을 잠시 고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제대로 찾은 거 같네요?”
내부 구조만 봐도 확실했다.
입구부터 시작해서 곳곳에 운동 관련 용품들이 즐비했으니까.
“계십니까?”
어지럽게 널브러진 물건들이 왠지 모르게 찝찝하긴 했다.
그래도 지호는 일단 정중하게 집주인을 불렀다.
그의 부름에 화답하듯 안쪽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 대답은, 모두의 예상을 크게 벗어난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