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화. 악몽 난이도(2)
“크허엉!”
헬창이라 불린 NPC.
그의 집 안쪽에서 들려온 소리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좀비……?”
순간 ‘낚인 건가?’라는 생각이 지호의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아니라는 걸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엥?
-뭐야 ㄷㄷ
-방금 좀비 소리 아녔음?
-왜 좀비가 여기서 나와;;;;
시청자들도 지호처럼 당황한 상태였으니까.
때마침 시야에 메시지가 떠올랐고.
그제야 지호는 자초지종을 파악할 수 있었다.
띠링!
[Tip. 플레이어는 각 층의 NPC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 단, ‘악몽’ 난이도는 모든 NPC가 좀비화된 이후의 상황이기 때문에, 도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 좀비가 된 NPC는 생전의 특성과 비슷한 능력을 부여받습니다.]
“아, 진짜 좀비였네요.”
다른 난이도의 세계관에서는 살아남았던 NPC들이, 악몽 난이도에서는 모두 좀비가 된 것이다.
‘오……. 신박하네.’
지호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사실 그의 입장에서는 크게 달라질 것도 없었다.
죽여야 할 좀비가 늘어난 정도?
하지만 지금 그에게 닥친 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큰 문제였다.
단순히 좀비가 늘어나거나 강화됐다는 것이 아닌.
NPC들이 좀비로 변했다는 말!
이건 클리어까지의 모든 과정이 달라진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니까.
-ㅁㅊ ㅋㅋㅋㅋ
-그럼 NPC들 아예 없는 거? 방어구나 무기는 어카지?
-그냥 저대로 가는 거 아님?
사실, 좀비 아파트에서 NPC는 단순한 들러리가 아니다.
헬창처럼 전투를 도와주기도 하고.
방어구를 제공해주거나.
심지어 무기를 강화해주기도 한다.
한 마디로, 원활한 클리어를 위해서라면 반드시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소리다.
한데 이런 NPC들이 사라졌다면?
안 그래도 어려운 난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할 수밖에 없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쉴 틈 없이 전투를 이어나가야 할 테니까.
-이 정도면 깨지 말라는 건데;;
-근데 그럴만함 ㅋㅋㅋ 사실 하드도 불가능이나 마찬가지인데, 이건 그 위니까 ㅋㅋㅋ
-와 진짜 미쳤다 ㄷㄷ
-괜히 악몽이 아니네…….
그 사실을 깨달은 시청자들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반면 지호는.
‘뭐가 크게 달라지나?’
당연히 그들의 반응에 공감할 수 없었다.
그는 기존의 좀비 아파트에 대한 상식이 아예 없는 상태였으니까.
그렇기에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려던 찰나.
“크허엉!”
방 안에서 또다시 거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오…….’
짐승이 울부짖는 것 같은 소리.
여태껏 들은 것과 달리 공기를 뒤흔드는 그 소리에는, 엄청난 힘이 담겨 있었다.
어지간한 강심장도 긴장하게 만들 정도였으나.
지호는 긴장하지 않았다.
‘재밌겠는데?’
오히려 묘한 기대감으로 미소를 짓기까지 할 정도였으니까.
“일단 가볼까요?”
그는 곧바로 소리가 울리는 방을 향해 다가갔다.
“쿠어어!”
쿵! 쿠웅!
한데 왜인지, 가까워질수록 소리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무언가 발버둥 치는 소리랄까?
그리고 조심스레 문 안쪽을 바라봤을 때.
“저게 헬창인가요? 아니…… 사람 맞나? 왜 저렇게 커요? 그리고 왜 저러고 있는 거지?”
지호의 입에서는 이런 의문들이 절로 흘러나왔다.
쿵!
“쿠어!”
홈 짐(Home Gym)이었는지 운동 기구들이 가득한 넓은 방.
그 중앙에 녀석이 있었다.
괜히 헬창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라는 듯 우락부락한 몸.
심지어 덩치도 엄청났다.
키는 2미터도 넘을 것 같았고.
옆으로도 어찌나 넓은지, 평범한 사람의 두 배는 될 거 같았으니까.
여타 좀비들처럼 창백한 피부와 기괴하게 꺾인 팔다리가 녀석의 외모를 더 흉악하게 만들었다.
-ㄴㄴ 얼굴은 헬창 맞는 거 같은데. 몸은 원래 저 정도까진 아님여;;
-좀비에다가 강화까지 되서 더 커진 건가?
-미친……. 끔찍하네.
오죽하면 이런 채팅이 계속해서 올라올 정도.
문제는.
“근데 왜 저러고 있죠?”
커다란 좀비가 각종 기구에 깔린 상태로 발버둥치고 있다는 것이다.
위에 쌓인 것들이 어찌나 무거운지, 그 덩치로 발악하는데도 버틸 정도였다.
“크어어!”
쿵!
끼릭.
좀비가 비명과 함께 몸을 버둥거릴 때마다 기구들이 조금씩 흔들렸다.
몇 초 정도 유심히 지켜보던 지호가, 뭔가 깨달은 듯 말했다.
“일부러 저렇게 한 거 같은데요? 제압하려고.”
-누가?
-설마….
“뭐, 아마 헬창 본인이겠죠? 물리거나 해서 좀비가 됐을 거고. 본인도 알고 있었을 테니까.”
-ㄷㄷ
-그저 빛창…….
단지 NPC일 뿐이지만, 지호도 이건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죽기 직전 스스로를 구속하는 판단이라니.
과연, 누군가의 채팅처럼 ‘빛’ 그 자체였으나.
그것도 이제는 한계로 보였다.
“크어어!”
끼릭… 끼릭……!
좀비를 제압하고 있던 기구들이 조금씩 휘청거리고 있었으니까.
-헐. 그러고 보니 열쇠는 저거 잡아야 얻을 수 있는 건가?
-그렇지 않을까요? 원래 헬창이 들고 있는 거니까.
아직 알아채지 못한 시청자들은 다른 말들을 주고받았다.
빠르게 스쳐 가는 채팅 중에 지호의 눈에 들어온 건, 열쇠라는 단어였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보였으니까.
“열쇠가 저건가요?”
지호의 손가락이 좀비의 오른쪽 허리춤을 향했다.
짤랑-!
그곳에는 동색의 작은 열쇠가 매달아져 있었다.
-맞는 거 같은데요?
-저걸 어케 가져오누 ㅋㅋㅋ
-잡는 거 말곤 답 없겠네;;
‘덩치가 크니 당연히 힘도 세겠지.’
아직 맞부딪치기 전이지만.
정면승부로는 답이 없을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하지만 강한 힘을 가진 보스 몬스터를 상대하는 방법은 10년 전 PC 게임을 하던 때부터 통달한 상태다.
힘이 부족하면,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면 그만.
‘될 거 같은데?’
한 가지 아이디어가 지호의 머릿속을 스쳤다.
그리고 때마침.
“쿠어엉?”
우당탕! 쿠웅-!
헬창 좀비의 울음소리와 무언가 무너지는 듯 커다란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좀비의 구속이 풀린 것이다!
충격으로 발생한 먼지가 지호의 시야를 막았다.
그리고 먼지가 걷히기도 전에.
쿵! 쿠웅!
무언가로 인해 바닥이 쩌렁쩌렁 울리기 시작했다.
헬창 좀비였다.
“후…….”
차분히 심호흡하는 지호.
그의 시선이 빠르게 가까워지는 헬창 좀비에게 꽂혔다.
쿵, 쿵- 쿠웅!
생전의 특성과 비슷한 능력을 부여받는다는 게 이런 의미일까?
좀비는 어느새 양손에 커다란 덤벨을 들고 있었다.
[50㎏]
각인된 무게만 봐도 헉 소리가 나올 덤벨이 두 개씩이나!
한데, 속도는 전혀 느리지 않았다.
오히려 얼마나 힘이 넘치는지 매 걸음마다 바닥이 흔들렸고-.
“크르르!”
그 와중에도 새어 나오는 거친 소리가 전신을 쭈뼛하게 만들었다.
‘속도 자체는 변종보다 느린데…….’
최소한 위압감 하나만큼은 변종 좀비를 압도할 정도였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멍하니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
지호는 빠르게 대응했다.
“이렇게 하면 편하려나?”
시작은 자세를 바꾸는 것부터였다.
몇 번의 전투로 기존 자세의 문제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슥, 스윽.
그리 큰 변화는 아니었다.
발의 위치를 살짝 조절하며 식칼을 정면으로 내밀었을 뿐이니까.
하지만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
-엥?
-뭐지…. 분위기가 달라졌는데?
의문이 들 만하다.
각종 매체 속 검사들처럼 유려한 자세는 아니었으나.
지금의 지호에게서는 날카로운 검 같은 예기(銳氣)가 느껴졌기에.
콰아아앙!
때마침, 헬창 좀비가 땅을 박찼다.
육중한 몸과 달리 신속한 도약!
그 여파는 엄청났다.
순식간에 바닥이 움푹 파이고, 파편이 사방으로 튈 정도였으니까.
이처럼 살벌한 기세의 헬창 좀비를 상대로.
지호는 도망가지 않았다.
그저 차분히 호흡만 가다듬을 뿐.
“크아!”
“후우…….”
기이할 정도로 대조적인 광경이다.
맹렬히 달려드는 좀비와, 미동조차 않는 인간의 대치라니.
무기는 또 어떠한가.
얇은 식칼과 무거운 덤벨이다.
어떻게 봐도 정면승부로는 답이 없는 상황.
-포기한 거 같은데?
-ㅇㅇ 그런듯…….
-까비. 치고 빠지기라도 해보지.
-막아도 식칼 박살날 텐데.
“크와아!”
쐐애액-!
설상가상으로 헬창 좀비가 덤벨을 내리찍기까지 하자, 시청자들은 완전히 체념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때.
지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락!
그저 식칼을 가볍게 들어 올리는 것뿐이었다.
헬창 좀비의 공격에 비해 한없이 무기력한 대응.
이변은 그 순간 벌어졌다.
식칼과 맞닿은 덤벨이.
지호가 아닌, 헬창 좀비의 허벅지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크허?”
가장 먼저 이변을 알아챈 좀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엥????
-머선……?
이어서 방송을 보고 있던 시청자들도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덤벨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가속이 붙더니-.
쿠웅!
그대로 좀비 본인의 허벅지를 가격하고서야 멈추었으니까.
퍽!
섬뜩한 소리와 함께 사방에 살점이 튀었다.
단 한 번의 공격
결과는 처참했다.
헬창 좀비의 두꺼운 허벅지가 폭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처참한 상태로 변했으니까.
-버근가??
-갑자기 왜 자해를???
채팅창은 순식간에 물음표로 가득 찼다.
누가 이런 결과를 예측했겠는가.
당연히 어떻게 된 건지도 몰랐다.
일부 고인물만 대략적으로 추측할 뿐.
-미친, 이게 된다고?
-ㅇㅇ? 뭔데?? 어케 한 건데???
-아니;;; 저걸 흘리네;;; 진짜 미친 플레이다.
-그래서 어떻게 한 거냐고!! 혼자만 알지 말고 알려줘!!!
-음…. 쉽게 설명하자면 헬창 좀비의 공격을 흘리면서, 방향까지 조절한거지.
-무협지임? ㅋㅋㅋㅋ
-그게 가능하다고?
-클립 따서 확인해봐야겠네.
-ㅇㅇ;; 어? 헬창 움직인다!!!
“끄에엑!”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분노했는지.
헬창 좀비는 찢어질 듯한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쿵!
급하게 한쪽 덤벨마저 떨어트리며 허벅지를 부여잡았지만, 이미 터진 상처가 막아 질 리 없다.
자연스레 좀비가 휘청거렸다.
하지만 녀석은 곧바로 근성을 발휘했다.
“크하아!”
발악하듯 소리치며 반대편 덤벨을 휘두른 것이다.
후웅! 쐐애액-!
여전히 강렬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되겠냐고.”
온전한 상태였을 때도 통하지 않았거늘.
이제와 통할 리 없다.
간절하면 강해지는 이야기와 달리 녀석은 주인공이 아니니까.
삭!
지호가 또다시 식칼을 휘둘렀다.
이번에도 결과는 같았다.
슥-!
식칼과 맞닿은 덤벨의 방향이 틀어지더니, 그대로 좀비의 반대편 허벅지까지 가격한 것이다.
쿵!
“크허아악!”
또다시 분노에 몸서리치며 허벅지를 부여잡는 헬창 좀비!
이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폭발적인 추진력을 보여주던 두꺼운 다리도.
식칼을 박살 낼 것 같던 덤벨들도 모두, 녀석의 손을 떠난 후였으니.
“크하아아아…….”
그렇다고 아무런 공격수단이 없는 건 아니다.
좀비가 되며 생겨난 강인한 손톱도, 이빨도 아직 건재했기에.
그러나, 그걸 사용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녀석이 또다시 움직이기도 전에.
푸욱!
“크헝?”
날카로운 식칼이 머리에 꽂혔으니까.
“크허어…….”
허무하게 쓰러지는 헬창 좀비가 마지막으로 들은 건, 지호의 시큰둥한 목소리였다.
“끝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