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화. 첫 위기(1)
2시간 후.
차락!
“이제 13층도 끝이네요.”
지호가 식칼에 묻은 이물질을 털어내며 말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온한 손짓과 목소리. 반면, 주변의 풍경은 살벌 그 자체였다.
“크허아…….”
일단 첫째로, 그의 앞에서 바들바들 떨며 죽어가는 좀비가 한 마리.
이마에 뚫린 상처를 보니, 지호가 털어내는 이물질의 주인인 모양이다.
그 외에도 복도에는 수많은 좀비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어림잡아도 20구는 넘을 정도.
반면에 지호는 털끝만 한 상처도 입지 않았다.
그 말인즉, 20마리가 넘는 좀비를 상대하면서 단 한 번의 공격도 허용하지 않았다는 것.
-여윽시. 시원시원하네요.
-ㄹㅇ ㅋㅋ 고구마 따위는 없는 방송 ㅋㅋㅋ
이제 놀라는 채팅은 없었다.
지난 2시간 동안 계속해서 본 익숙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켠왕을 선언한 지 어언 2시간.
지호의 플레이는 ‘파죽지세(破竹之勢)’라는 말로 간단히 요약 가능했다.
한 마디로, 물 흐르는 듯한 진행.
그 무엇도 지호의 앞길을 막지 못했다.
“이거 너무 쉬운 거 같은데요?”
오죽하면 이런 의문을 가지겠는가.
-그건 미다스님이라 그런 거 아닌가요? ㅋㅋㅋ
-ㅇㅈㅇㅈ 기만 멈춰!!
-멈춰!!!
곧바로 이런 반응이 돌아왔으나, 지호의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직접 플레이하고 있는 그에게만 느껴지는 찝찝함이랄까?
‘뭔가 이상한데…….’
쉽고 어렵고를 떠나서, 왠지 모르게 묘한 느낌이 들었다.
가장 쎄한 점은, 좀비들에게서 강한 의지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놈들은 시간을 끌려는 것처럼 계속해서 그를 잡고 늘어질 뿐이었다.
-이대로 켠왕 성공하나? 1코로?
-불가능하다던 사람들 다 어디 갔어 ㅋㅋㅋㅋ
-어이 어이. 상대는 미다스라고?
그 사이, 미션 성공을 확신하는 이들은 점차 늘어갔다.
13층까지 올라오는 동안, 적이라고는 무지성으로 달려드는 좀비들밖에 없었으니 그럴 수밖에.
다른 스트리머였다면 그 와중에도 난관이 있었겠지만.
상대는 미다스, 지호다.
변종 좀비와 헬창 좀비.
이 두 괴물조차 그 앞에서는 무력했거늘, 고작해야 일반 좀비가 상대할 수 있을 리 없다.
지호는 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가볍게 좀비들을 학살하며 올라왔다.
무쌍, 그리고 또 무쌍.
이 장면들의 반복일 뿐임에도 지루해하는 시청자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입소문을 타고 차차 늘어날 정도였다.
왜냐?
첫째는, 좀비들을 허수아비처럼 휩쓸고 지나가는 지호의 플레이가 경이로웠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언젠간 죽게 될 거란 기대감 때문이었다.
‘좀비 아파트가 이대로 끝날 리 없지. 심지어 악몽 난이도라며.’
시청자들 대부분의 생각이었다.
분명 뭔가 반전이 있을 터.
그들은 그 순간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위층에 뭔가 있지 않을까요?”
이대로 끝날 리 없다 생각하는 건 지호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놈들이 꺼내지 않은 패가 남아있을 테니까.
-ㅇㅇ 아직 NPC들 안 나왔잖.
-맞네…. 아모른직다…….
헬창 좀비 이후로는 NPC들을 볼 수 없었고.
좀비들의 지능이 높아졌다고 했는데, 그것도 체감되지 않았다.
그리고 계속되는 찝찝한 예감.
좀비들이 기를 모으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었다.
‘기대되네.’
15층이 옥상이니 위층인 14층은 사실상 마지막 층이다.
이대로 끝날 리 없으니.
분명 위층에 무언가 있을 터.
“일단 위로 올라가 보죠. 이제 마지막 층인가요?”
-ㅇㅇ 맞아요.
-와 근데 끝까지 세이브는 없네.
-두근.
그렇게 모두의 기대 속에.
지호가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 * *
[14층에 올라왔습니다.]
“조용하네요?”
지호가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아래층들과 마찬가지로 불이 꺼져 어두운 복도.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엥? 진짜네?
-;;; 이게 왜 악몽ㅡㅡ
-에반데.
시청자들은 의아한 반응이었다.
무얼 기대했건,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테니 그럴 만하다.
“어?”
그 순간, 지호의 표정이 굳었다.
분명 평범한 복도인데, 누군가 그를 지켜보는 것 같았으니까.
“뭔가 쎄한데요?”
사냥당하는 짐승이 된 듯한 불쾌한 기분. 그가 조금 더 찬찬히 주변을 살폈다.
…….
하지만, 역시나 복도에는 먼지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집안인가?’
이 아파트의 층별 세대수는 6세대.
당연히 집으로 들어가는 문도 여섯 개다.
어디가 정답인지 알 수 없는 상황.
“제일 안쪽 집부터 하나하나 가볼게요.”
가장 먼저 지호가 복도 한쪽 끝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문고리에 손을 올렸다.
“후우…….”
묘한 긴장감에 지호는 차분히 숨을 들이켜고.
이내 조심스럽게 손잡이를 돌렸다.
철컥, 끼-익!
그를 환영하듯 천천히 열리는 문.
지호는 집중을 유지한 채 문 너머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렇게 문이 반쯤 열리는 순간.
푸슉!
집 안쪽에서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려왔다.
‘역시’
애초부터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기에.
지호는 반사적으로 몸을 숙였다.
파삭!
천만다행이었다.
그의 머리를 향해 빠르게 날아오던 못이 뒤쪽 벽에 박힌 것이다.
‘와.’
이번에는 지호도 안도의 한숨을 토할 수밖에 없었다.
계속 찝찝하긴 했는데.
설마 좀비가 함정을 팔 줄이야.
조금이라도 방심했다면, 여기서 꼼짝없이 목숨을 날릴 뻔했다.
‘그래도 살았으니까.’
이제 그의 차례다.
타앗!
지호가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후속타가 날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눈으로는 신속하게 사방을 훑었다.
몇 걸음 뒤, 벽에 깊숙이 박힌 못이 보인다.
지호의 목숨을 노린 투사체일 터.
그리고 집 안쪽에는…….
“크르으.”
“크허…….”
“그아아악!”
-미친;; 저게 뭐야…….
-이래야 좀비 아파트지 ㅋㅋㅋㅋ
-게임오버각 날카롭쥬?
어떻게 된 건지.
각종 무기와 방어구들로 무장한 좀비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역시, 재밌다니까.’
지호는 일단 자리를 옮기려 했다.
일단 좀비떼를 떠나, 저 집 안쪽에 뭐가 있을지 모른다.
당장에 몇 초 전에만 해도 함정이 튀어나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계획을 시도하기도 전에 실패하고 말았다.
철컥! 철컥! 철커-억!
그가 땅을 박차기도 전에 14층의 다른 문들이 일제히 열리며.
“크아아!”
“구어!”
마찬가지로 무장을 한 좀비들이 대거 튀어나오기 시작했으니까.
* * *
한편, 비슷한 시각.
[GAME OVER]
“하…… 또네.”
한 스트리머가 게임오버 메시지를 보며 한숨을 토했다.
-ㄷㄷ 벌써 20트도 넘어가는데 포기하심이?
-형 이거 무리야;;
-ㅇㅈㅇㅈ 솔직히 할 만큼 했다.
걱정 어린 채팅이 계속해서 올라왔으나.
그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에이, 님들 왜 이러셔. 나 왕눈이야.”
오히려 더더욱 의지를 불태우는 것이, 계속할 모양이다.
왕눈이.
그는 어려운 게임에 도전하는 걸 즐기는 스트리머다.
“최소한 공격 한 번은 성공시키고 방종한다.”
그리고 지금 왕눈이가 붙들고 있는 게임은 다름 아닌 ‘좀비 아파트’다.
지금까지 그를 포함한 모두는 하드 난이도가 끝인 줄 알았다.
아무리 시도해도 씨알도 안 먹히니 그럴 수밖에.
한데, 바로 어제.
새로운 난이도가 개척된 것이다.
무려 ‘악몽’ 난이도라니.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왕눈이의 트라이는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자신만만했다.
“좀비 아파트잖아. 좀 죽으면서 패턴만 파악하면 금방이지 않을까?”
좀비 아파트는 극상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대신.
패턴을 외우다시피 하면 비교적 쉽게 깰 수 있는 게임이었으니까.
예를 들어, 튜토리얼의 변종 좀비를 피하는 방법이 그렇다.
모르면 죽어나가지만 알고 나면 그보다 쉬운 해결책도 없듯, 당연히 악몽 난이도도 그렇겠지.
……라고 생각했다.
특히나 분석력하면 왕눈이었기에.
자신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건 전제부터 잘못된 계획이었다.
튜토리얼에서 변종 좀비를 잡는 것부터는, 일반적인 좀비 아파트가 아닌 다른 게임이나 마찬가지였기에.
헬창 좀비까지 갈 것도 없었다.
그는 변종 좀비를 상대하면서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하하, 너무 쉬우면 재미없죠.”
변종 좀비 공략을 시작하고 30분이 지났을 때의 멘트다.
“확실히 빡세긴 하네요.”
그렇게 5시간이 지나고.
“미친. 다시 갑니다.”
7시간이 지났을 때, 그는 한 가지 경우의 수를 떠올렸다.
‘매번 반응이 다른데……. 설마 이거 패턴이 없는 거 아닐까?’
변종을 잡았다는 스트리머의 영상도 수십 번을 넘게 돌려봤고.
그가 어떻게 잡았는지도 안다.
한데 아무 패턴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처음부터 쉬울 거라 생각한 적은 없었기에, 왕눈이는 다시 힘을 냈다.
그렇게 10시간이 지나고.
총 시도 횟수가 100회를 넘어가기 시작할 즈음.
서걱!
“크허?”
그는 마침내 첫 번째 공격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오!”
-와! 드디어!
-왕눈이가 해냄!!
하지만 성공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었다.
“크아악!”
콰직!
[GAME OVER]
곧바로 다시 달려든 변종 좀비의 이빨에, 또다시 죽고 말았으니까.
“후, 겨우 공격은 성공시켰는데.”
좀비 아파트를 시작하기 전의 어두운 공간에서 왕눈이가 조용히 읊조렸다.
한 번 공격해보니 확신이 들었다.
변종 좀비는 패턴이랄 게 없다.
방금 전과 같은 공격을 해도 결과는 다를 것이다.
대체 저 괴물을 어떻게 잡는 걸까 아찔했던 찰나.
[‘속보’님이 5,000원 후원!]
-어제 악몽 난이도 처음 열었다는 사람 지금 14층 진출함. 곧 클리어 할듯!!]
“엥?”
-왕눈이는 20시간 개고생하고 간신히 공격 한번 성공했는데 ㅋㅋㅋㅋㅋㅋ
-이게 재능의 차이인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친.”
믿기지가 않았다.
자신은 22시간이나 쏟아붓고서야 겨우 유효타를 먹였는데.
미다스인지 뭔지 하는 스트리머는 어떻게 벌써 14층이라는 말인가.
“한 번 봐봐야겠네요.”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던 왕눈이는 직접 그의 방송을 틀었다.
처음 화면에 나타난 건, 아파트의 문을 열고 있는 미다스였다.
푸슉!
파삭!
“와, 저걸 피하네?”
못을 피하는 장면을 보고 왕눈이가 감탄을 토했다.
-뽀록이겠지 ㅋㅋㅋ
-운 좋네.
-ㄹㅇ 설마 저걸 보고 피했겠어.
왕눈이도 이건 운이라 생각했다.
저 속도를 눈으로 보고 피하는 게 말이 되는가.
진짜 놀라운 건, 그 이후였다.
“와…. 저게 뭐야.”
-ㄷㄷ 저걸 어케 깨라고.
-미친. 나였으면 10초 안에 죽을 자신 있다.
생전 처음 보는 무장한 좀비들이 나타난 것이다.
이어서 다른 문들도 열렸다.
당연히 그곳에서도 무장한 좀비들이 튀어나오고 있는 상황!
“이건 끝인데?”
왕눈이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저건 피지컬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엘카여도 답이 없을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의 표정은 이내 경악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게 끝난 후.
“그래. 뭔가 이상했어.”
왕눈이가 중얼거렸다.
-??
-뭐가??
“님들, 사람들이 왜 지금까지 변종 좀비를 못 잡은 거라 생각해?”
-하다가 포기해서?
-패턴이 많아서???
시청자들이 각자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물론 모두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왕눈이의 생각은 달랐다.
“그것도 맞는데, 지금 보니까 개발자님들이 조금 악마인 거 같다.”
-엥?
-갑자기??
-아 형이 못 깨니까 악마행이냐곸ㅋㅋㅋㅋ
뜬금없게 느껴지는 발언.
시청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냐, 아냐. 내가 10시간 정도 해봤잖아? 근데 이거 패턴이 없거든.”
-ㅇㅇ
-그런 거 같드라.
“그러니까 공격을 실시간으로 보고 피해야 한다는 말인데…. 어지간한 피지컬로 그게 되겠냐고.”
-맞지.
“아마 소수의 고인물이나 괴수들을 위한 컨텐츠 같은데. 이런 걸 튜토리얼부터 깔아두는 게 악마지 뭐야.”
-형, 울지 말고 말해봐.
-발컨은 웁니다 ㅠㅠㅠ
-근데 듣고 보니 맞는 말인 듯.
-ㄷㄷ
평소, 뛰어난 분석력으로 유명했던 왕눈이인지라.
대부분 그의 말에 동의했다.
그들이 보기에도 딱히 이렇다 할 패턴은 없기도 했고.
물론 태클이 없는 건 아니었다.
-엘카님은 불가능한거 아니라고 하시던데?
하지만 왕눈이는 한 마디로 그 채팅을 정리했다.
“그건 엘카님이니까….”
-하긴….
-갓카…….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이게 왕눈이가 말을 시작한 이유였으니까.
“그리고 그 말은, 저분이 엘카님에 필적하는 피지컬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야.”
-오바 아님?
-ㅇㅈㅇㅈ 그건 좀 오바인듯
-ㄹㅇ ㅋㅋㅋ 엘카랑 비빌 클라스는 좀 아닌 거 같은데;;
부정적인 반응이 나올 만도 하다.
엘카가 누구인가.
현직 프로게이머이자, 대한민국에서 피지컬로는 손에 꼽히는 존재 아니던가.
하지만 아직 왕눈이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러니까 한 번 해보려고.”
-뭘?
-갑자기?
-ㅁㅇㅁㅇ.
“합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