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화. 첫 위기(2)
시간을 조금 돌려, 지호가 함정에 빠졌을 즈음.
‘이제 좀 재밌어지겠네.’
천천히 거리를 좁혀오는 좀비들을 바라보며 지호가 미소 지었다.
헬창 좀비를 쓰러뜨린 이후 마땅한 적이 없어 지루하던 참에 이런 이벤트라니.
차라리 반가울 지경이었다.
물론 이건 지호의 입장일 뿐.
시청자들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미친, 저게 몇 마리야.
-많기도 많은데, 무기에 방어구까지;; 와…, 진짜 미쳤네.
-난이도 개떡상요.
“크르르!”
“크어….”
일단 좀비의 머릿수부터가 문제다.
얼추 보이는 것만 수십 마리 이상!
심지어 그게 전부도 아니다.
아직도 스멀스멀 늘어나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얼마나 많아질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니까.
그뿐인가?
무장상태도 지호에 비하면 압도적이다.
야구 방망이나 골프채부터 심지어는 날카로운 일본도까지.
좀비들의 무기는 관리가 잘 된 듯 번쩍거렸다.
부실한 식칼 한 자루만 들고 있는 지호가 초라해 보일 지경.
방어구는 또 어떠한가.
지호는 평범한 옷 한 벌만 걸치고 있는 상태다.
반면, 좀비들은 헬멧을 시작으로 심상찮은 복장을 갖추고 있었다.
‘저건 다 어디서 나온 걸까?’
자연스레 드는 의문에 지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답은 시청자들에게서 나왔다.
-저거 원래 NPC들이 만들어주는 거 아님?
-ㅇㅇ 맞음.
-와, 미친. 아무도 안 나와서 뭐지 싶었는데 존버한 거였네 ㄷㄷ.
-ㄹㅇ;; 지금까지 기 모은 듯.
-이게 영끌이지! 좀비 코인 가즈아!!!
그들의 짐작은 정확히 맞았다.
앞서 지호가 13층을 공략하면서 느꼈던 것처럼, 좀비들은 이 순간만을 위해 전력을 집중했던 것이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
“크르르르….”
“크하!”
“크허어!”
심지어 지능이 높아진 좀비들은 함부로 달려들지도 않았다.
진형을 갖춘 채 천천히 압박하며 다가오는 모습은 숙련된 사냥꾼들을 연상케 할 정도였다.
-이걸 어떻게 깨라고 ㅋㅋㅋ
-개발자 놈들 진짜 악마네 ㅋㅋ
-??? : 미션 실패!
채팅은 진정될 기미가 없었다.
이 순간만을 기다렸던 시청자가 한둘인가?
“흐음….”
지호는 그들의 예상대로 될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순간 장난기가 발동했기에.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 자신이 없긴 하네요.”
-ㄷㄷ
-와!!!
-속보) 미다스 서렌 선언!
-아무리 피지컬이 좋아도 사람인데, 이건 답 없지 ㅇㅈㅇㅈ ㅋㅋㅋ
처음 듣는 미다스의 약한 말.
활활 타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것처럼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이게 이어질 드립을 위한 빌드업이라는 사실을.
“죽을 자신이.”
다시 입을 연 지호.
시무룩한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
순간 채팅이 멈췄다.
이어진 지호의 말이 갑작스러웠기 때문이다.
-미쳤냐고 ㅋㅋㅋㅋㅋ
-자신감 무엇 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의미를 이해한 시청자들이 채팅을 치기 시작했을 때-.
타앗!
지호는 이미 땅을 박차며 앞으로 달려나가고 있었다.
목표는 슬금슬금 포위망을 좁혀오는 좀비들의 중심. 그중에서도 헬멧이 없는 개체!
놈과의 거리는 대략 5미터.
지호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크어?”
본능적으로 위험을 알아챈 걸까.
지호가 목표로 한 좀비가 당황한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그게 녀석의 유언이었다.
푸욱!
거의 곧바로 지호의 식칼이 녀석의 이마를 뚫고 들어왔으니까.
-저런 것도 할 수 있었냐고;;
-ㄹㅇ 별 걸 다하네.
-못하는 게 뭐야…….
그림처럼 깔끔한 찌르기!
시청자들이 연신 감탄했다.
하지만 지호의 활약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크어?”
“크르르!”
순식간에 한 마리의 좀비가 죽은 상황. 나머지 좀비들의 대응은 신속했다.
후웅!
재빨리 무기를 내려친 것.
깡!
그러나, 헛손질로 돌아가고 말았다.
녀석들의 목표인 지호는 이미 자리를 피한 후였으니까.
“크헝?”
좀비들이 고개를 갸웃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순식간에 사라진 지호를 찾는 것이다.
그리고 지호는….
“나 찾아?”
어느새 처음 그 위치에서 좀비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목을 끄는 데 성공한 지호.
그가 곧바로 다시 입을 열었다.
“뭐해? 덤벼.”
“크어?”
명백한 도발이었다.
지능이 높아졌으면 도발도 통하지 않을까? 라는 발상에서 비롯된 행동.
예상은 적중했다.
“크아악!”
“캬아!”
좀비들이 격분하며 달려들기 시작했으니까.
‘역시.’
미친 듯이 달려드는 좀비들을 보며, 지호는 씨익 웃었다.
털썩!
“크어? 크어아!”
“크르르르!”
천천히 압박하며 조여오던 방금 전과는 다르다.
서로 밀치고 섞이고 뒤집히고 난리도 아닌 좀비들.
그야말로 개판 5분 전이었다.
‘지들이 머리가 좋아져 봐야 좀비지.’
전부 다 지호의 예상대로였다.
제아무리 진형을 갖추고 포위한다 해도 여기는 아파트 복도 아니던가.
넓은 공간이 아니니 움직임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데도 이성을 잃고 달려든 순간.
저것들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었다.
“빠르게 정리하고 엔딩 보러 갈게요.”
그때부터.
지호의 일방적인 학살이 시작됐다.
* * *
잠깐의 시간이 지났다.
빠르게 정리한다는 말 이후 지호가 보여준 건, 말 그대로 무쌍(無雙)이었다.
-와, 저게 사람은 맞음?
-진짜 미친 거 같은데….
-지금까지 뭐하다가 이제야 방송 시작한 거?
-방송이 문제가 아니라 게임을 이제 시작함 ㅋㅋㅋㅋㅋ
-ㄹㅇ 재능낭비 갑;;
그가 식칼을 휘두를 때마다, 한 마리의 좀비가 쓰러진다.
좀비들이 착용한 방어구도 학살을 막지는 못했다.
아주 조금의 틈이라도 보이면 식칼이 비집고 들어왔으니까.
아니, 틈이 없어도 마찬가지였다.
지호가 어떻게든 만들어냈기에 결과는 같았다.
특히, 식칼 손잡이로 어퍼컷을 날리듯 헬멧을 벗기고, 그대로 머리에 식칼을 내리꽂는 장면은 그야말로 신기(神技)에 가까울 정도.
그 결과가 바로 지금 이 광경이다.
“크르르…….”
“크허엉….”
한참 쓰러트렸음에도 좀비는 아직 수십 마리 이상 남아 있었다.
하지만 녀석들은 무슨 결계라도 있는 것처럼, 지호의 반경 1미터 밖에서 눈치만 보고 있는 중이었다.
-끝난 거 같은데?
-ㅇㅇ
-이건 뭐, 누가 몬스터인지;;
그렇게 묘한 대치가 잠깐 이어지려던 찰나.
“크허엉!”
처음 지호가 문을 열었던 집 안쪽에서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
지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헬창 좀비의 울음소리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전신을 저릿하게 울리는 이 기세.
좀비화된 NPC임이 분명하다.
당연히 평범한 좀비들보다는 강할 터.
“크앙…!”
역시나, 한참 머뭇거리던 좀비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데 왜인지 겁에 질린 표정이다.
공포의 대상이 방금 전의 울음소리임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러니 죽을 걸 알면서도 달려들겠지.’
“크르르…!”
또다시 지호를 향해 무기가 날아들었다.
“이제 슬슬 나오려나 보네요.”
지호는 이렇게 말하며 좀비들의 공격에 대응하려 했다.
하지만 그때.
무언가 지호를 멈춰 세웠다.
끼릭-!
그건,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소리였다.
순간 전신을 스치는 불안감까지!
지호가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저건?’
그의 시야 끝에 대나무처럼 길쭉한 무언가를 들고 있는 좀비가 보인다.
뭔지는 알 수 없지만.
불안감의 원인이 저것임을 지호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정체를 파악하기도 전에.
푸슉!
그곳에서 파공음이 울리며 무언가 일직선으로 쏘아졌다.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지호를 향해 빠르게 가까워지는 투사체!
이번에는 지호도 위기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늦었다.’
못처럼 생긴 그 투사체는, 피하기에는 너무 빨랐으니까.
핑!
처음으로 느껴진 위기에 지호의 온 신경이 그쪽으로 쏠렸다.
지금까지는 없던 집중!
변화는 그 순간 시작되었다.
‘……? 뭐지?’
운동선수들이 극한까지 집중했을 때, 슬로우 모션처럼 시간이 느리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공의 실밥까지 보인다던 야구선수들이 그렇다.
원래였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웃어넘겼겠지만.
지금 이 순간, 지호는 그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피-이-잉--!
“크-르르-!”
실제로 그의 시야 속 모든 것들이 느리게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감각.
당연히 지호도 의아함을 느꼈으나, 그 와중에도 몸은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피-잉!
느려진 감각 속에서도 못의 속도는 여전히 빨랐다.
피할 여유도 그럴 공간도 없다.
이미 사방이 좀비들의 무기로 가득 찬 상황이었기에.
하지만.
‘막을 순 있겠다.’
지호의 표정이 차분해졌다.
동시에 그의 눈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파악하기 시작했다.
침을 질질 흘리며 달려드는 좀비들의 움직임. 살벌한 기세로 내리치는 무기들의 방향.
그의 목숨을 노리고 빠르게 다가오는 못의 궤도까지 모두.
피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나, 막거나 튕겨내는 건 가능했다.
길을 틀어막으면 그만이니까.
휘릭!
지호가 식칼을 들었다.
이번에는 칼날이 아닌 옆면으로.
당연히 지호 자신의 움직임도 느리게 느껴졌지만.
귀신같은 재능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의 행동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동작.
이어진 결과는 지호의 계산대로였다.
까앙!
식칼의 옆면에 가로막힌 못이 튕겨 나간 것이다.
그와 동시에.
느려졌던 감각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크아아?”
좀비들은 지호에게 달려들지 못했다.
빠르게 쏘아지는 못을 막아내는 신기를 눈앞에서 목도하지 않았던가.
눈을 휘둥그레 뜬 채로 잠시 멈칫하는 건 당연한 일이리라.
물론 그건 좀비들의 사정.
지호가 봐줄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그는 달려들던 자세 그대로 주춤거리는 좀비를 향해 식칼을 휘두르려 했다.
하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어? 식칼….
-헉!
쩌걱-
못을 막은 식칼 옆면에 금이 가더니, 쪼개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때마침.
끼릭!
예의 그 장전 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이번에야말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위기 상황이다.
그러나, 지호는 당황하지 않았다.
‘저쪽이었지.’
그의 시선이 못을 쏘아대는 좀비를 향했다.
역시나.
녀석이 지호를 조준하고 있었다.
“크아아!”
동시에, 눈치만 보던 다른 좀비들이 움직이기까지!
지호의 대응은 빨랐다.
찹!
그는 재빨리 튕겨 나가고 있는 식칼의 조각을 붙잡았다.
그리고 곧바로 던졌다.
사악!
결과는 보지도 않았다.
적중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대신, 그는 곧바로 허리를 숙였다.
후-웅-!
방금 전까지 지호의 머리가 있었던 곳을 좀비의 무게가 실린 야구 방망이가 스치고 지나갔다.
원래였다면 곧바로 반격했을 터.
하지만 지금 그는 빈손이다.
물론 공격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주변에 무기가 널려있는데 뭐가 걱정이겠어.’
지호의 손이 곧바로 바닥을 굴러다니던 일본도를 집었다.
그리고 즉시 몸을 일으키며,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던 좀비를 베었다.
서걱!
그를 노리던 좀비의 몸이 사선으로 크게 갈라졌다.
이어서.
푸욱!
지호가 식칼 조각을 던진 방향에서 살을 찢고 들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확신대로 좀비에게 적중한 것이다.
“후….”
잠시 심호흡을 마친 지호가 좀비들을 바라보았다.
한데, 뭔가 이상했다.
“크르르….”
“크아….”
왜인지 좀비들은 지호를 바라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를 쓰고 시선을 피하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빨도 딱딱 부딪치고.
어떤 놈은 몸을 덜덜 떨기까지.
“하?”
지호가 헛웃음을 찼다.
기가 막힌 일이었다.
다시 제대로 살펴봐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좀비들은 여전히 몸을 덜덜 떨고 있었으니까.
[업적 달성!]
[이제 누가 악몽이지?]
“진짜 겁먹은 거야?”
심지어 업적까지 깨졌다.
이제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좀비들은 공포에 사로잡힌 것이다.
하기야.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으면 모를까.
녀석들은 조금이나마 지능이 생긴 상태.
지호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은 거다.
-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누가 악역이냐고 ㅋㅋㅋ
-이거 이렇게 하는 거 아닌데….
-진짜 좀비들의 악몽이었넼ㅋㅋ
인간을 보면 달려드는 본능마저 억누를 공포라니.
시청자들의 웃음벨이 울리기에는 충분했다.
“하.”
잠시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좀비들을 바라보던 지호가 입을 열었다.
“야.”
“크헝?”
누군가를 특정하지 않은 부름에 한 좀비가 빠르게 대답했다.
그리고 이어진 지호의 말은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나와.”
* * *
나오라는 말 이후.
지호의 게임은 순탄 그 자체였다.
좀비들이 명령을 듣고 길을 비켰으니까.
공포에 떠는 좀비들 사이에서 열쇠를 찾고 옥상으로 올라간 지호를 기다리는 건, 게임의 엔딩이었다.
[미션 성공!!]
[‘고인돌’ 님이 50,000원 후원!]
[이걸 하네;;]
-미친…….
-이게 겜이냐.
-미다스를 아냐구요? 내가 아는 스트리머 중에 제일 괴물이었어요….
이처럼 수많은 명장면을 남기고.
지호의 첫 번째 게임과, 두 번째 방송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