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화. 퓨처 워 -일반 게임(1)
“와…….”
준영은 멍한 눈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응시했다.
재생되고 있는 건, 미다스의 방송.
정확히는 미다스의 가속검이 미쳐 날뛰고 있는 장면이었다.
쐐액! 타앗-! 쐐애액!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검이 움직이는 잔상까지 보일 정도였다.
“스택이 대체 몇이야.”
자연스레 그의 시선이 화면 오른쪽 구석으로 이동했다.
현재 스택은 37.
이미 기본 속도보다 7배 이상 빠르다는 소린데.
심지어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었다.
쐐애액!
한데도 화면 속 미다스의 움직임은 변함없이 안정적이다.
그야말로 비현실적인 플레이.
“캬…….”
또다시 감탄사를 내뱉던 찰나.
[갑니다.]
가속검의 궁극기, 공간살이 왕눈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게 일대일의 끝이었다.
처음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을 때부터, 마지막 공간살까지.
모든 과정은 첫판이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역시, 미쳤다니까.”
지호가 방송을 시작하기 전, 혼자 변종 좀비를 잡을 때부터 그의 플레이를 지켜봤지만.
여전히 적응하기 힘들었다.
재능이라는 단어를 의인화하면 저런 느낌일까?
미쳤다는 말만 계속 새어 나왔다.
-미쳤다 ㅋㅋㅋㅋ
-이건 진짜 양학 수준인데 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어떻게 1렙이냐고 ㅋㅋㅋ
그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지, 채팅창의 반응도 격렬했다.
시청자 수가 7,000명도 넘어가는 터라 스크롤도 미친 듯이 올라갔다.
“왕눈이랑 합방이라니, 진짜 대박이네.”
지금으로부터 대략 30분 전.
한참 영상을 편집하던 준영은 새로이 도착한 문자를 보고 적잖이 놀랬었다.
문자의 발신인은 지호.
내용은, 왕눈이라는 스트리머랑 합방하기로 해서 조금 늦게까지 방송할 것 같다는 말이었다.
“왕눈이?!”
당시 준영은 이렇게 반응했다.
그도 왕눈이가 누구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취미가 게임 방송 시청에.
심지어 관련 계통에 종사하고 있는 그가 대기업이라 불릴 정도로 유명한 스트리머를 모를 리 없으니까.
중요한 건, 지호 녀석이 이제 방송 3일 차라는 사실!
3일 만에 왕눈이와의 합방이라니.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성장이다.
게다가 방송하는 모습을 보니 벌써 자연스러웠다.
띠링!
[미션 가죠. 가속검 스택 50개 이상 쌓으면 10만원. 추가 10개당 20만원+, 최대 100개까지.]
때마침 추가된 미션까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미션이지만.
왠지 지호 녀석이라면 가능할 것도 같았다.
“그나저나 스택 저 정도 쌓았으면 글 좀 올라왔을 텐데.”
최대 43스택.
이건 아무나 쌓을 수 있는 수치가 아니다.
쌓고 말고를 떠나서, 그 전에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넘어질 테니까.
준영은 습관적으로 게임 방송 커뮤니티, 겜잘알에 접속했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반응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역시.”
[미다스]라는 검색어를 입력하자, 꽤나 많은 글을 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시청자 수가 7,000명을 넘어가는 상황이니 관련 글도 빠르게 올라오는 것이다.
그는 추천 수가 가장 많은 글을 클릭했다.
[(속보) 왕눈이 1렙 뉴비한테 가속검 1:1 찢김.]
“다들 빨라.”
새삼 감탄스러웠다.
불과 몇 분 전, 자신이 본 그 장면이었으니까.
그새 누군가 클립을 만들고, 겜잘알에 올린 것이다.
-저게 1렙이라고?
-미쳤네 ㅋㅋㅋㅋㅋㅋ
-속도 봐 ㅋㅋㅋ 람보르기니야? 공간참 안 쓰고도날아 다니네 ㅋㅋㅋㅋㅋㅋ
-와;; 43스택? 저게 가능하다고?
└상대가 왕눈이잖아 ㅋㅋㅋㅋㅋ 나도 왕눈이 상대로는 80스택도 가능할 듯 ㅋㅋㅋㅋ
└ㅇㅈㅇㅈ 프로게이머 상대였으면 10스택도 못 쌓았을 듯 ㅋㅋㅋ
└ㄴㄴ;; 다이아 선에서 컷 가능
└개소리들 하네 ㅋㅋㅋ 봇 상대로 40스택 쌓고 인증해봐라. 절대 못할 걸 ㅋㅋㅋㅋㅋ
-아니, 상대가 누구인지가 중요한가?;;; 저 속도로 움직이는 게 대단한건데 ㅋㅋㅋㅋ
└ㄹㅇ ㅋㅋㅋ 포인트 못 잡고 헛소리 하는거 보니 브론즈일듯 ㅋ
└장담하는데 상대가 어쩌니 하는 놈들 10스택도 감당 못한다.
-확실한 건 1렙 클라스는 아님.
└22222
└3333 저게 어뜨케 1렙 ㅋㅋ
추천 수가 많으니만큼 댓글도 활발하게 달렸다.
공격적으로 싸우는 댓글도 있지만.
과반수가 미다스의 실력을 칭찬하는 댓글이었다.
“이것들은 또 시작이네.”
겜잘알에서 일상처럼 반복되는 다툼에 준영은 고개를 내저었다.
굳이 신경 쓸 문제도 아니다.
어차피 진지하게 싸우는 것도 아닐 테니까.
의도적으로 악성 댓글을 달고 다니는 일부 악질들도 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결과로 보여주면 수긍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요한 건, 결과로 보여주는 것!
준영은 확신했다.
‘지호 놈이라면 가능하겠지.’
그렇기에 그는 싸움에 불을 끼얹는 댓글들 달았다.
-안 그래도 미션 걸렸던데? 최대 100스택까지 ㅋㅋㅋ 그거 결과 보면 답 나오지 않겠음? 100스택은 아무나 하는 것도 아니고 ㅋㅋㅋㅋ
쿵!
때마침 미다스의 방송도 변화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게임의 큐가 잡힌 것이다.
준영은 곧바로 겜잘알을 닫고, 방송 감상에 들어갔다.
* * *
“과학 에반데…….”
최소 판수 요건으로 인해.
랭크가 아닌 일반 게임 매칭을 돌린 지호가 처음으로 들은 말이다.
‘과학?’
정확히 지호가 선택한 캐릭터 가속검을 향하고 있는 시선을 보면, 그에게 한 말임은 분명하다.
한데,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다.
-과학 혐오 ㅋㅋㅋㅋㅋㅋㅋㅋ
-미다스 무슨 말인지 모르는 듯?
-가속검 별명이에여 ㅋㅋㅋㅋ
-2222 가속검 있는 팀은 무조건 진다고 ㅋㅋㅋㅋㅋ
“아.”
채팅을 보니 그제야 이해가 된다.
과거 지호가 전설의 전장을 즐겨하던 때에도, 과학이라 불리던 챔피언이 있었으니까.
아마 비슷한 맥락일 터.
“하, 일겜이라 밴도 못 하는데…. 그냥 다른 거 하시면 안 됨?”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상대가 또다시 말을 걸어왔다.
이제는 캐릭터를 바꾸라는 소리까지 한다.
랭크 게임이었으면 캐릭터를 금지(Ban)했을 기세인데, 일반 게임이라 방법이 없는 것이다.
분명 불쾌할 수도 있는 행동인데.
지호는 황당함보다는 왠지 모를 향수를 느꼈다.
‘어떻게 이런 게임은 10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냐.’
그가 기억하는 전설의 전장도 비슷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반말은 기본이고.
불만이 생기면 바로 들이받는다.
심지어 지금처럼 맘에 안 드는 영웅이 나오면 일부러 상대에게 죽어주는 이들도 많을 정도였으니까.
그걸 감안한다면, 그나마 존대라도 하는 저 사람은 매너인일지도?
‘물론 들어줄 생각은 없지만.’
10년 전이었다면 그냥 다른 캐릭터를 골랐을지도 모른다.
굳이 티격태격하는 것보단 바꾸는 게 속 편할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내키지 않았다.
달리 할 줄 아는 캐릭터가 없기도 한데다가.
방금 전, 가속검의 짜릿함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저 잘해요. 한 번 믿어보셈.”
“…….”
-자신감 ㅋㅋㅋㅋㅋㅋㅋㅋ
-가속검 픽하는 놈들 특 : 다 지 잘한다고 함
-ㄹㅇ ㅋㅋ
-근데 진짜 잘하잖아 ㅋㅋㅋ
자신감 넘치는 지호의 발언.
당연히 시청자들은 웃었다.
‘저 잘해요.’라는 말로 끝날 문제면, 매일 반복되는 수많은 싸움은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역시나.
“아니, 1렙이네…. 하, 첫 판이면서 잘하긴 뭘 잘해요.”
뒤늦게 상대의 대답이 돌아왔다.
보아하니 전적을 찾아본 모양이다.
중간엔 종료한 왕눈이와의 일대일은 기록에 남지 않으니, 미다스의 전적은 클린 그 자체!
가상현실게임은 부계정도 만들 수 없으니, 이번이 첫 판임은 분명하다.
그런 주제에 스스로 잘한다고 허세를 부리는 상황이라니.
솔직히, 저 정도면 손에 꼽힐 정도로 점잖은 반응이다.
어지간하면 바로 욕을 날려도 이상치 않을 상황이니까.
“이분 가속검 진짜 잘합니다. 제가 보장할게요.”
그때, 잠시 타이밍을 재던 왕눈이가 지원사격을 시작했다.
방금 직접 당하고 온 터라 확신에 찬 말투였다.
“아니, 그쪽이 보장한다고 뭐 달라…….”
어이없다는 듯 대꾸하던 상대방의 말끝이 흐려지더니—.
“와, 왕눈이?! 내가 아는 그 왕눈이?”
이내 격하게 놀란 반응을 보였다.
가속검 픽이 인상적이라 놓치고 있던 왕눈이의 닉네임이 이제야 눈에 들어온 것이다.
“네네, 맞습니다. 지금 방송 중인데 이분 확실히 잘해요.”
“걍 대충 하죠. 어차피 일겜인데.”
“맞아. 빡겜 할 거면 랭겜 돌리지 왜 일겜 돌림?”
자신도 알 정도로 유명한 스트리머인 왕눈이의 보장.
그리고 다른 이들의 비난까지.
“후…. 알겠습니다. 잘 해봐요.”
그는 떨떠름한 목소리로 상황을 마무리 지었다.
사실, 달리 방법이 없기도 했다.
전적 검색 결과를 보면, 어차피 미다스라는 사람은 아무것도 해본 적이 없다.
처음 해본 캐릭터나.
과학이라 불리는 가속검이나.
오십보백보 아니겠는가.
그나마 왕눈이가 보장한 가속검이 나을지도?
방송 중이니 거짓말은 하지 않을 테니까.
“라인 겹치는 곳 없으니, 이대로 가면 되겠네요. 다들 잘 해봐요.”
“네.”
“즐겜여.”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캐릭터 선택이 끝났다.
[3, 2, 1.]
파아앗!
그리고 이내 선택시간이 0에 도달하며 밝은 빛이 터졌고.
[황폐화된 도시에 소환됩니다!]
전장을 울리는 기계음과 함께, 주위의 풍경이 급변했다.
“고고, 움직이죠.”
“저 초반에 약하니까 지원 자주 와주세요.”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라인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미다스 님은 미드로 가주시면 됩니다. 가속검이 보통 미드에 서니까.”
“네, 알겠습니다.”
‘미드라.’
왕눈이의 말에 대답한 지호는 빠르게 전장의 지도를 살피며 이동했다.
위, 중앙, 아래.
본진으로부터 세 갈래로 갈라진 길이 보인다.
미드(Mid)라 함은, 가운데 길!
참고로 위쪽 길은 탑(Top), 아래쪽 길은 봇(Bot)으로 불린다.
이 중 미드는 팀의 기둥이라 불릴 정도로 중요한 역할이다.
그렇기에 팀원이 캐릭터 선택창에서부터 불안해했던 것.
미드부터 지고 시작하면 게임이 힘들어질게 불 보듯 훤하니까.
당연히 상대방 미드도, 자신의 포지션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고 있을 터.
“뉴비 하이~.”
지호가 미드 포탑에 도착하자마자, 상대방이 말을 건네 왔다.
두 다리를 제외하고 6개나 달린 팔. 거미를 연상케 하는 하반신.
지호도 영상으로만 본 캐릭터, 타란튤라 퀸이었다.
“1렙인데 가속검? 바로 찢어줄게. 꺄륵.”
이어진 말은 명백한 도발이었다.
뉴비, 1렙이라는 말을 강조하는 걸 보니 아마 전적을 검색한 모양.
당연히 자신이 이기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얼마나 쳐 맞으려고 저런 도발을 ㅋㅋㅋㅋㅋ
-찾아보니까 쟤도 실번뎈ㅋㅋㅋ
-귀엽누 ㅋㅋㅋㅋㅋㅋ
더군다나 상대도 그리 압도적인 실력은 아니었다.
이어질 결과가 훤히 예상됐기에.
시청자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엉아가 미드 어떻게 하는지 참교육해줄게. 너무 슬퍼하진 마, 상대가 나잖아.”
그 와중에도 도발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래서일까?
[‘참교육 요망’님이 미션을 등록했습니다.]
[퍼블 따면 50,000원]
그새 미션까지 추가되었다.
‘역시 재밌는 게임이라니까.’
돌아가는 상황이 너무도 흥미로워서.
지호는 말없이 웃었다.
물론 미션은 바로 수락했다.
안 그래도 그러려던 참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