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화. 퓨처 워 -일반 게임(2)
퓨처 워는 쉴 틈 없이 바쁘기로 유명한 게임이다.
일단 대표적으로는.
계속해서 벌어지는 전투가 있다.
게다가, 전투가 소강상태일 때에도 쉴 수는 없다.
항상 미니맵을 살피며 적들의 움직임을 파악해야 갑작스러운 기습에도 대응할 수 있으니까.
그뿐인가?
레벨과 골드도 뒤처지면 안 되니.
그 와중에도 쉬지 않고 전투 로봇을 처치하며 상대를 견제해야 한다.
한 마디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소리!
그런 퓨처 워에도 유일하게 조용한 타이밍이 있었는데….
바로, 전투 로봇이 생산되기 전.
대략 1분 40초 정도의 시간이다.
물론 대회를 비롯한 치열한 게임의 경우, 이 타이밍에 수많은 전략들이 오고 가기도 한다.
하지만 지호가 플레이 중인 게임은 대회도 랭크 게임도 아닌 일반 게임이다.
그것도 1레벨인 지호가 포함된 터라, 전반적인 티어가 낮게 책정된.
당연히 전투 로봇 생산만 기다려야 하는 게 정상이거늘.
지호는 실제로 귀가 아프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고통받고 있었다.
“뉴비, 쫄아서 아무 말도 못 하죠?”
바로.
쉬지 않고 입을 열어대는 상대 미드, 타란튤라 퀸 때문이다.
박수도 손뼉이 맞아야 소리가 난다고 누가 그랬던가.
아마 이 광경을 보고 난 후라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놀랍게도 상대는 지호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는데도, 계속 도발을 걸어오고 있었으니까.
예사롭지 않은 행동과.
앳된 목소리.
일부 시청자들이 누군가를 떠올렸다.
-아 ㅋㅋㅋㅋ 왜케 내 사촌동생 같냐 ㅋㅋ
-야, 너도?
-ㅋㅋㅋㅋㅋ
-말투도 행동도 캡슐방 다니는 중딩이잖아 ㅋㅋㅋㅋ
-ㄹㅇ ㅋㅋㅋㅋ
지호의 생각도 비슷했다.
과거 즐겨했던 전설의 전장도, 퓨처 워와 같은 12세 이용가 게임이었으니까.
당연히 저런 친구들도 겪어봤다.
‘굳이 말 걸어봐야 시간낭비지.’
어차피 상대는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할 터.
시간과 기력을 낭비하는 대신.
지호는 다른 선택을 했다.
“타란튤라 퀸 정보 좀 아시는 분?”
바로, 상대 캐릭터에 대한 정보를 듣는 것이었다.
-평타에 독 데미지 있는데, 사거리도 가속검보다 길어서 거리 조절 잘해야 함.
-손바닥에서 거미줄 발사하는 스킬도 조심해야 해요!!!
-ㅇㅇ 그거 맞으면 슬로우….
-장판기도 있음 ㅋㅋ 이것도 독뎀에 슬로우 ㅋㅋㅋ 심지어 평타 독뎀 걸린 상태면 추가 데미지까지 ㅋ
-근데 장판은 깔리기 전에 바닥 검게 물드니까 보고 피하면 됨.
-궁은 거미 소환!!!
-물론~ 소환된 거미도 다 독뎀 있고~~~
-그냥 다 독임 ㅋㅋㅋㅋ
과연 7,000명이 넘는 시청자들.
순식간에 타란튤라 퀸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부터, 상대하기 위한 팁까지 쏟아졌다.
그 사이.
[지금부터 전투 로봇이 생산됩니다.]
예의 기계음이 전장을 울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기도 전에.
기릭! 기릭!
전투 로봇들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인즉.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됐다는 소리!
“아, 뭐해! 나와서 파밍해야지! 그것도 몰라? 아무리 뉴비여도 그렇지, 기본 상식이 없네.”
먼저 전투 로봇을 잡기 시작한 건, 상대인 타란튤라 퀸이었다.
애초에 정중앙까지 나와서 도발을 하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챱!
타란튤라 퀸의 손가락 끝에서 발사된 독이 전투 로봇으로 향했다.
치익-!
독에 맞은 부분이 검게 물들더니.
이내 전투 로봇이 녹아내린다.
막타.
즉, 마지막 타격을 입혔다는 말!
이로써 방금 녹아내린 전투 로봇의 경험치와 골드가 타란튤라 퀸의 몫이 된 것이다.
“뉴비야, 잘 봐둬. 아무거나 치는 게 아니라, 이렇게 막타만 쳐야 한다고! 이게 클라스야! 꺄르륵!”
챱!
타란튤라 퀸은 계속해서 약을 올리며 평타를 날려댔다.
한데, 왕눈이 때와는 달랐다.
정확히 막타만 골라서 쳤던 왕눈이와는 달리, 그냥 무작정 평타만 퍼붓고 있었으니까.
‘아니면 내가 만만해서 대놓고 압박하려는 걸 수도?’
뭐, 사실 어떤 이유이건 상관없다.
어차피 혼자 활개 치도록 둘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레벨을 올려야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게임들과 달리.
퓨처 워는 처음부터 모든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막타의 중요성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왜냐?
레벨이 올라갈수록 기본 데미지부터 스킬까지 모든 것이 강화되고.
또한, 막타를 쳐서 골드를 쌓아야 아이템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보아하니, 가만히 냅둬도 얼마 못 먹을 거 같긴 한데….’
지호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왔다.
“나오란다고 나오는 거 봐! 에바지! 어딜 주워 먹으려고!”
또다시 자신만만하게 외치는 타란튤라 퀸.
녀석의 손이 지호를 향했다!
한데, 아까와는 뭔가 다르다.
손끝이 아닌 손바닥을 보인 것.
행동이 달라질 이유는 하나뿐이다.
‘손바닥에서 거미줄 발사하는 스킬을 조심하라 했었지.’
푸슉!
역시나.
하얀 거미줄이 지호를 향해 쏘아졌다.
이미 예상했던바.
사악!
대응을 두른 지호의 검이 거미줄을 갈랐다.
“어? 뭐, 뭐야?!”
1렙이라고 무시했던 상대가 대응을 성공시켜서 당황한 걸까?
상대 타란튤라 퀸이 손을 허우적대며 평타를 날렸다.
챱!
왕눈이와의 1대1에서 경험했듯.
퓨처 워에서의 평타는 반드시 적중하는 공격이 아니다.
무빙으로 피할 수도 있고.
대응 같은 방어 스킬이 있다면, 막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더군다나 저런 눈 먼 평타라면….
‘맞아주는 게 더 어렵겠네.’
탁.
한 걸음.
겨우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으로, 지호는 가볍게 평타를 피했다.
그리고는.
타란튤라 퀸을 향해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미친!”
미드를 울리는 당황한 목소리!
지호의 독무대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 * *
미드 라이너, 타란튤라 퀸.
플레이어명 ‘찐만두주세요’는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상대의 전적을 검색했을 때까지만 해도, 당연히 이길 줄 알았다.
1렙! 그것도 첫판!
지면 더 이상하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타란튤라 퀸은 상성 상 가속검보다 우위에 있다.
일단 원거리라 유리하기도 하고.
타란튤라 퀸의 거미줄과 장판으로, 가속검의 주 무기인 기동력을 봉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나게 도발도 했다.
‘근데 이게 뭔 상황이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1렙짜리 계정이었는데….
왜인지, 지금까지 만나본 가속검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서걱!
평타를 견제하려는 건지, 살랑살랑 몸을 움직이던 가속검.
그가 깔끔하게 검을 휘두르며 전투 로봇을 반으로 갈랐다.
그리고 대략 4초가 지났을 즈음.
서걱!
또다시 다른 전투 로봇을 향해 공격을 이어갔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막타였다.
비록 실버라지만, 상대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는 아니다.
“미친, 1렙따리 가속검이 스택컨을 한다고?”
어이가 없었다.
한데, 스택을 끊을 수도 없었다.
그도 그럴게.
평타를 날리면 무빙으로 피하고.
거미줄은 대응으로 막아내고, 장판은 또 무빙으로 피한다.
“핵이야?”
이런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
분명 타란튤라 퀸이 평타 사거리도 더 긴데, 우위를 점할 수도 없었다.
쐐액!
“악!”
바로, 지금처럼.
한 걸음만 앞으로 접근하면, 곧바로 예리한 검이 자신을 향했으니까.
심지어 그새 스택도 잔뜩 쌓은 터라 속도도 엄청났다.
결국, 찐만두는 거리를 벌릴 수밖에 없었다.
사악!
그러자 상대는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하게 막타를 골라 먹으며 스택을 쌓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
상대를 압박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갈 수도.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언제나 일반 게임, 혹은 실버 티어에서의 게임만 해왔던 찐만두였기에.
이런 수준의 압박은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다.
하기야.
플래티넘 티어에.
종종 다이아도 만나곤 하는 왕눈이도 극복하지 못했을 정도의 압박인데.
실버인 찐만두가 감당할 수 있을 리 없다.
‘무슨 벽 같아.’
그나마 한 가지 다행인 건.
타란튤라 퀸이 원거리인 터라, 조금의 막타는 주워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이젠 끝이었다.
타앗.
가속검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와서 파밍을 시작했으니까.
“헉!”
그러자 호랑이라도 마주한 듯.
찐만두가 황급히 뒤로 도망쳤다.
이미 기세에 눌린 터라 달리 선택지도 없었다.
‘이러면 경험치도 못 먹는데.’
계속되는 압박.
점점 벌어질 격차.
벼랑 끝으로 서서히 내몰리는 감각은.
찐만두로 하여금 말도 안 되는 선택지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어차피 가속검은 한 번만 끊으면 되는 거잖아!’
그나마 한 가지 방법이 있다.
타란튤라 퀸의 궁극기.
새끼 거미 소환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으니까.
‘두 마리는 소환할 수 있겠다.’
타란튤라 퀸의 궁극기는, 중독 시킨 횟수에 따라 소환할 수 있는 새끼 거미의 마릿수가 달라진다.
가속검을 맞춘 적은 없지만.
야금야금 전투 로봇들을 파밍했기에 궁극기는 사용할 수 있다.
문제는.
저 가속검 상대로 두 마리는 애매할 수도 있다는 점인데.
“미드 님, 라인 밀리는 거 같은데 갱 갈게요! 호응해주세요!”
때마침 구원투수가 도착했다.
정글러(Jungler)의 팀 채팅이었다.
퓨처 워에서 정글러는.
어떤 라인에도 속하지 않고, 중립 몬스터를 사냥하며 성장하는 포지션을 의미한다.
정글러의 역할은 여럿 있다.
그중 하나가 갱킹(Gangking).
간단히 설명하자면, 해당 라인 라이너와 같이 적 라이너를 습격하고 죽이는 것인데.
지금 찐만두 팀의 정글러가 한 말이 그런 의미였다.
‘갱?’
미니맵을 보니, 정글러는 거의 도착한 상태였다.
그 말인즉, 지금이 기회라는 소리!
“네, 먼저 들어갈게요!”
찐만두는 팀 채팅으로 외치며 가속검의 공격 범위 안으로 들어갔다.
스스로가 미끼가 된 것이다.
이 상태로 가속검이 달려들면.
궁극기인 새끼 거미 소환으로 시간을 끌고, 그 사이 정글러가 기습하면 끝이다.
분명 계획은 완벽했다.
문제는, 상대가 지호라는 것.
“에?”
찐만두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앞으로 나아가는 그 몇 초의 찰나.
쐐액-! 쐐애액!
지금까지 여유롭게 스택을 관리하던 가속검이 순식간에 모든 전투 로봇을 학살하더니.
곧바로 그의 앞에 나타났으니까!
가속검의 이동기이자 공격 스킬인 질풍참(疾風斬)이었다.
‘미친, 무슨 뉴비가 저렇게 빠른 속도를 컨트롤 해…….’
순간 모든 의욕을 사라지게 하는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이대로 당할 순 없다.
“새, 새끼 거미 소환!”
찐만두의 앞에 예리한 독니를 자랑하는 두 마리의 거미가 소환되었다.
“캭!”
“캬야!”
위협적인 소리와 함께 상대를 향해 달려드는 거미들!
찐만두는 바로 거미줄을 쏘며 지원하려 했다.
상대 가속검이 스택을 많이 쌓기는 했지만.
그와 새끼 거미 두 마리면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것조차 오판이었다.
“어…?”
스칵! 서걱!
“키엑…!”
“킥….”
새끼 거미 두 마리는 5초가 지나기도 전에 역소환되고 말았으니까.
궁극기라는 게 무색할 정도.
‘망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찐만두는 망연자실했다.
“금방 가니까 좀만 버텨요!”
상황을 파악한 아군 정글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찐만두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걸 어떻게 버티냐고…!’
* * *
[퍼스트 블러드(First Blood)!]
호쾌한 기계음이 전장에 퍼졌다.
“나이스!”
지호와 같은 팀인 정글러, ‘수확귀신’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퍼스트 블러드.
일명, 퍼블.
즉, 첫 번째 킬이 나왔다는 소리다.
심지어 우리 팀이다.
당연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이기려나? 갑자기 느낌이 좋네.’
사실, 캐릭터를 선택할 때까지만 해도 졌구나 싶었다.
방금 전에 지고 온 랭크 게임에도 가속검이 있었는데.
또다시 가속검이 나온 것이다.
계속된 랭크 게임 연패로 지쳐있던 상황.
일반 게임에서까지 지고 싶지는 않았던 그는 결국 불만을 제기했었다.
‘미드가 가속검이라 불안했는데 다행이네.’
라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어?”
뭔가 이상하다.
[가속검 → 타란튤라 퀸]
킬로그에 가속검이 떠 있었다.
‘분명 1렙이었는데…. 왕눈이 말이 사실이었나?’
그런데 그때.
전장의 지도, 미니맵에 미드로 달려가고 있는 상대 정글러가 보였다.
하필 그는 미드와 거리가 먼 상황.
지원을 갈 수도 없었다.
“미드 님! 정글 가요! 빼세요!”
일단 다급히 팀 채팅으로 외쳤으나, 도망치기에는 이미 늦은 거리였다.
‘하…. 또 욕먹겠네.’
벌써 아찔했다.
안 그래도 가속검 픽으로 따졌던 상황 아니던가.
무슨 일만 있으면 정글 탓부터 나오는 게임인데.
심지어 이번에는 명분까지 있다.
하지만 가속검에게서 들려온 대답은 그의 예상을 크게 벗어났다.
“뭐지, 원플원인가…?”
“네?”
너무나도 뜬금없는 말에 잘못 들었나 싶어 반문했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더블 킬(Double Kill)!]
대신, 또다시 호쾌한 기계음이 전장을 울렸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