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화. 합방이 끝나고(1)
“쩝, 저거 잡을 수 있을까요?”
적 정글러, ‘달고나라’.
그가 착잡한 표정으로 지호의 가속검을 가리켰다.
휘릭! 삭-!
어느새 쌓은 스택만 52개.
그야말로 미친 속도였다.
가볍게 땅을 박찬 것 같은데, 스킬인 질풍참보다 빠르게 움직일 정도였으니까.
대체 어떻게 저 속도를 제어하는지는 모르겠으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속도야.’
더군다나 이미 세 번이나 가속검에게 당했기에.
달고나라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되겠지….”
“아니, 그러니까 진작 왔어야 한다니까? 아까 내가 도와달라고 할 때, 원딜이랑 서폿도 올라왔으면 잡는 건데.”
마찬가지로 당해본 탑 라이너 ‘메가톤’과 미드 라이너 ‘찐만두주세요’도 확신하지 못하는 눈치다.
“니네 진짜 병신들임? 우린 5명인데 왜 쪼는 거야.”
“걱정 좀 하지 마셈. 어차피 저거 전투 로봇 상대라 그렇지, 다굴 당하면 속도 제어도 못 하고 자빠질걸? 가속검들이 다 그렇지 뭐.”
하지만 지호의 가속검을 처음 본 원거리 딜러와 서포터의 생각은 달랐다.
설마 5:1을 질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단 여기서 다 같이 나가면 당연히 튈 테니까, 다들 위치부터 나누자고.”
그렇기에 둘 중 원거리 딜러가 자신 있게 오더를 시작했다.
일리 있는 말이다.
지금 그들의 위치는 미드 근처 샛길.
퓨처 워의 지형 특성상.
그들은 가속검을 볼 수 있지만, 상대의 시야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감시 드론’도 없으니, 기습할 절호의 기회다.
문제는, 상대의 위치가 포탑 근처라는 것.
이대로 기습하면 잡기 힘들다.
가속검이 조금만 도망치면 경계 포탑에게 보호받을 수 있기에.
‘상황은 최악인데, 그나마 오더 자체는 나쁘지 않네.’
달고나라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때 이어진 말을 듣기 전까지는.
“그리고 거미는 본진에서 미드 가는 방향으로 이동한 다음에 저거 유인해. 그럼 우리가 뒤통수칠게.”
“어어, 그건 좀 별로인 거 같은데요. 아까도….”
달고나라는 반사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첫 번째 갱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오케, 좋아. 해보지 뭐. 대신 빨리 와야 함. 아까도 저 정글 새끼 바로 온다더니 늦게 쳐 와서 나 죽었으니까. 벌레 X발.”
질세라 찐만두가 바로 정치질을 시작했으니까.
“참내, 비교할 걸 비교해라. 클라스가 다른데.”
“그니까. 솔까 내가 정글이었으면 가속검 저거 0킬 8뎃이였어.”
이어진 원딜과 서폿의 호응까지.
‘에휴, 모르겠다, 니들 맘대로 해봐라.’
저들의 생각처럼 될 리 없다고 확신했지만.
“후, 그래요. 하죠 뭐.”
달고나라는 이내 자포자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그저 빨리 끝내고 다음 게임을 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으니까.
* * *
“탑 안 보여요! 다른 라인 조심!”
갑자기 들려온 아군 탑 라이너의 다급한 목소리.
“어? 봇도 귀환하더니 아직 안 돌아왔는데.”
“잠순가?”
이어서 봇 라인에 간 왕눈이와 서포터도 적이 사라졌음을 알렸다.
적 미드는 원래 라인을 비운 상태였으니. 모든 적이 사라졌다는 소리다.
그리고 이처럼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지호는.
타앗-! 슥!
“금방 깨겠네요.”
태연히 검을 휘두르며 시청자들과 소통을 하고 있었다.
현재 스택은 61.
게임시작 전에 받았던 미션의 최소치는 진작 넘겼다.
남은 스택은, 고작해야 39스택.
방해만 없다면, 미션 목표를 달성하는 건 시간문제로 보였다.
방해가 없다면 말이다.
“내가 돌아왔다!”
이러한 상황을 알고 있는 걸까.
기가 막힌 타이밍에 나타난 상대 미드 라이너, 찐만두가 도발을 시작했다.
“나 없는 동안 살만했지? 아까처럼 또 덤벼봐. 혼내줄게.”
경계 포탑도 철거된 후라 믿을 구석도 없을 터인데.
계속해서 도발을 하는 모습.
그리고 적들이 사라졌다는 아군의 경고까지.
상대의 의도는 너무 뻔히 보였다.
“나머지는 근처에 숨어있겠네요.”
전체 채팅으로 바꾸지는 않았다.
함정을 파악했다는 걸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으니까.
-쟤는 아까부터 연기가 왜 저 모양이야 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저러면 누가 속냐고;;;
-미다스님 걍 빼죠?
역시나 시청자들도 지호의 말에 동의하며 도망치자는 말을 했다.
대놓고 파놓은 함정에 굳이 당해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지호의 생각은 달랐다.
“에이, 그럼 스택 끊기잖아요. 100스택 쌓아야죠.”
그는 이 미션을 꼭 깨고 싶었다.
왜냐?
‘최초니까.’
지난 10분 동안의 소통으로 시청자들에게서 많은 것들을 들었다.
대표적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67스택이 최고라는 것과.
그 수치가 피지컬로는 원탑으로 알려진 프로게이머 엘카의 기록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100스택은 불가능이라고 했었지.’
시청자들에게 그런 말까지 들은 이상, 반드시 100스택을 달성하고 싶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걸 해내야, 더 짜릿할 테니까.
스걱-!
그렇기에, 지호는 전투 로봇을 베며 시청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금 5:1은 불가능할까요?”
간결한 질문이지만, 내포한 의미는 분명하다.
이 상태로 5:1을 하려는 것.
심지어 피할 수 있는데, 자진해서!
-미친 ㅋㅋㅋㅋㅋㅋ
-와, 이걸 싸우고 싶어하네.
-비벼볼만함. 성장 차이도 있고, 미다스님 컨도 좋아서.
-무슨 전투민족이여;;;
-진짜 패기 뭐냐고 ㅋㅋㅋ
수많은 채팅들.
그중에서 지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비벼볼만하다’는 채팅이었다.
최소한 지호에게 그 말은, 가능하다는 말과 일맥상통했으니.
“쫄았죠? 아무것도 못하죠? 킬 먹고 뭐하누.”
때마침, 또다시 찐만두의 도발이 울렸다.
말과는 달리 초조한 표정이다.
생각처럼 쉽게 걸려들지 않아 마음이 조급한 모양이다.
“저렇게 원하는데, 가줘야겠죠?”
질문을 던지던 방금 전과 달리, 확신에 찬 지호의 말.
-가즈아!!!!
-미다스, 또 사고 치려고!!!
-이래야 미다스지!!!
-이건 가야짘ㅋㅋㅋㅋㅋ
-미다스는 도발 못 참아!!
바로, 채팅창이 폭주했다.
진짜 5:1을 하러 들어가다니.
아무리 잘 큰 상태라 해도,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그사이.
“일단 거미부터.”
탓!
순식간에 남은 전투 로봇들을 정리한 지호가, 땅을 박찼다.
“걸렸-”
“까꿍, 우리-”
그와 동시에.
미드와 연결된 양옆 샛길에서 적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나 함정이었던 것이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에.
지호는 멈칫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속도를 박차며 질풍참까지 시전했다.
당연히 방향은 열심히 깐족대던 타란튤라 퀸이 위치한 곳이다.
파-앗!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기차에라도 탄 것처럼 주변 시야가 빠르게 흘러갔다.
어지간한 사람은 멀미가 났을 터.
하지만 지호의 표정은 평온했다.
“헉!”
그런 그의 속도에 놀란 걸까?
찐만두가 숨을 크게 삼켰다.
동시에 눈동자가 커지는 것 또한 지호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그만큼 놀랐다는 소리니까.
‘그렇다고 봐주지는 않겠지만.’
“으!”
푸슉!
빠르게 흐르는 지호의 시야 속에서, 자신을 향하는 상대의 손바닥이 보였다.
이미 본 스킬, 거미줄이다.
어떻게든 저지해보려는 목적일 터.
지호는 거미줄의 속도도 진로도 기억한다.
그리고 저 방향이라면.
‘안 맞지.’
툭!
역시나 등 뒤, 바닥에 거미줄이 스치는 소리가 허무하게 들려왔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마지막에 전투 로봇들을 잡고 왔기에, 현재 가속검 스택은 70이다.
그 말인즉, 속도는 14배라는 소리!
당황한 상태로 던진 스킬을 맞출 수 있었다면, 찐만두가 실버 티어에 머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악-!
순식간에 타란튤라 퀸의 면전에 도달한 지호가 검을 대각선으로 크게 내리그었다.
안 그래도 아이템과 레벨 등 성장 차이가 심한데, 가속도까지 더해진 질풍참에 얻어맞은 상황.
찐만두의 체력은 놀랍도록 빠르게 줄어들었다.
“시-!”
분함을 이기지 못한 찐만두가 평타라도 날려보려 했다.
하지만 그 또한 실패였다.
탁.
어느새 지호는 가볍게 상대의 뒤로 돌아간 후였으니까.
그리고는.
빠르게 검을 찌르고 휘둘렀다.
푹! 사악! 삭-!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가해진 세 번의 공격.
한 번에 엄청난 데미지를 입은 타란튤라 퀸이 결국 가루로 변했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가속검 → 타란튤라 퀸]
“-다!”
“-왔지롱!”
이 모든 과정에 걸린 시간은 겨우 3초.
샛길에서 튀어나온 적들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다.
“……?”
적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지호가 너무나도 빨랐기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쉬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뭐해요! 공격해요!”
한 번 당해본 값을 하는 걸까.
정글러, 달고나라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렸다.
“아, 맞다!”
“다들 예측 잘 해! 저 새끼 존나 빨라.”
“맞추고 바로 폭딜 넣어!”
이어서 탑과 원딜, 그리고 서포터가 동시에 스킬을 날렸다.
쐐액!
파아아앗-!
후웅!!
각자 다른 방향에서 빠르게 날아드는 스킬들!
지호가 빠르게 그것들을 스캔했다.
투사체의 크기, 속도. 그리고 궤도까지.
이어서 그는.
탁.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오더니.
타이밍을 맞춰, 검을 횡으로 베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세 개의 스킬이 지워졌다.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마치 원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 이게 무슨….”
“미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질적인 풍경.
이미 짐작하고 있던 달고나라를 제외한 모두는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왜 수적우위에도 불구하고, 달고나라가 회의적이었는지.
하지만 이미 늦었다.
지호가 다시 땅을 박차기 시작했으니까.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얌전히 죽음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게임은 끝났다.
결과는, 상대의 서렌.
즉, 항복이었다.
그리고 지호가 쌓은 스택은 정확히 100이었다.
[미션 성공!]
[‘스피드레이서’님이 1,100,000원 후원!]
[와ㄷㄷ 설마 했는데 이걸 다 받아가다니.]
하지만 지호는 여전히 아쉬웠다.
더 쌓을 수도 있었는데, 항복 가능 시간이 되자마자 상대가 항복해버렸기 때문이다.
“110만 원 감사합니다. 서렌만 아니었어도 더 쌓았을 텐데, 그건 아쉽네요.”
-ㄹㅇ ㅋㅋㅋㅋㅋ
-누가 이 미션 10만 원짜리라 했누? ㅋㅋㅋㅋ
-이걸 해내내 ㅋㅋㅋㅋ
-아 미다스가 괴물인 거라고 ㅋㅋㅋㅋㅋ
처음과 달리.
그의 말을 부정하는 시청자는 없었다.
그만큼 지호의 가속검이 안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100스택에 거의 도달했을 때에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그럼, 미다스 님. 빠르게 다음 판 가볼까요?”
“네, 좋습니다.”
그들은 그 후로도 두 판을 더 돌렸고.
모든 게임은 지호의 활약으로 칼서렌. 즉, 항복 가능 시간이 되자마자 이어진 상대의 항복으로 끝났다.
지호의 첫 합방은 그렇게 끝났다.
그리고 그날 저녁.
게임 방송 커뮤니티, 겜잘알이 미다스라는 닉네임으로 들끓었다.
그것도, 부정적인 방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