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비 스트리머가 게임을 잘함-21화 (21/110)

021화. 합방이 끝나고(2)

해가 저문 저녁, 지호의 방.

쿠아앙-!

환하게 빛나는 태블릿 화면 속에서 한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퓨처 워 월드챔피언십 엘카 하이라이트 -ST vs TXP]

영상의 주인공은 엘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피지컬도 손에 꼽힌다고 알려진 바로 그 프로게이머다.

[ST의 엘카 선수, 스플릿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아, 이러면 TXP는 고민이 될 텐데요.]

해설자의 차분한 목소리와 함께.

카메라가 한 캐릭터를 비추기 시작했다.

익숙한 캐릭터, 가속검이었다.

“스플릿?”

지호도 들어본 용어다.

그간 의미가 달라진 게 아니라면, 따로 라인을 밀며 상대를 압박하는 운영을 의미할 터.

역시나.

미니맵을 보니 탑 근처에 모인 ST팀의 다른 선수들과 달리, 엘카는 혼자 봇 라인에 있었다.

[그렇죠! 막긴 해야 하는데! 엘카를 나가면 골렘이 나가버리죠!! 과연 TXP의 선택은?!]

이어서, 힘찬 목소리로 분위기를 띄우는 캐스터의 진행이 들려왔다.

보통 스플릿의 목적은 상대를 압박함으로써 이득을 얻기 위함이다.

탑 근처에 4명의 팀원이 모인 ST의 목적은 팀 전체에 강력한 버프를 주는 에픽 몬스터, 메카닉 골렘.

상대인 TXP로써는 반드시 막아야 할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엘카가 따로 라인을 밀며 압박하니 거슬릴 수밖에.

[그나저나 역시 엘카 선수입니다! 누가 대회에서 가속검을 쓸 수 있겠습니까! 엘카 선수니까 가능한 자신감 아니겠습니까아!]

캐스터의 말마따나.

가속검은 대회에서 자주 쓰이는 캐릭터가 아니다.

왜냐?

가속검의 성능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피지컬이니까.

프로 대회. 그것도 세계대회에서 피지컬에 큰 차이가 날 가능성은 드물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가속검을 골랐다는 말은, 캐스터의 설명처럼 자신감에서 비롯된 행동임이 분명하다.

지호는 곧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오…….”

그로서는 드물게, 다른 이의 플레이를 보며 호기심이 생겨났다.

엘카라는 선수의 플레이가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전투 로봇을 파밍하는 것뿐인데.

예술이라고까지 느껴질 정도로 움직임 하나하나가 완벽했다.

한데 그 순간.

“어?”

지호의 눈이 커졌다.

[아! 엘카 선수! 위험한데요! TXP 선수 셋이 가고 있어요! 나머지 둘은 그대로 골렘에서 대치 중이고요!]

[TXP가 결단을 내렸네요. 최악의 상황에 골렘을 내주더라도, 나머지가 엘카를 끊으면 이득이라 판단한 겁니다. 이건 죽으면 타격이 클 수도 있겠네요.]

[맞습니다! 대신!! 엘카 선수가 살아남으면?! 게임이 되돌릴 수 없게 되겠죠!! 엘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혼자 스플릿을 하던 엘카를 잡으려 적 팀 3명이 움직인 것이다!

[엘카 선수, 적을 확인했습니다!]

[아아…. 일단은 골렘을 챙기라고 오더를 내리는 것 같네요. 4 대 2니까 잡기 쉽겠죠. 그동안 시간을 끌려는 모양입니다.]

이어서 나머지 ST의 선수들은 골렘을 치기 시작했고.

퇴로를 봉쇄당한 엘카는 후퇴 대신, 차분히 남은 전투 로봇을 파밍하는 모습이었다.

[일단 메카닉 골렘은 ST가 챙기겠지만,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엘카 선수가 레벨이 높아서 부활 시간이 좀 걸리는데, 그 사이에 TXP가 어떤 이득을 가져갈지 지켜봐야겠습니다.]

한데, 지호는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엘카 표정이?’

확실치는 않지만, 뭔가 이상하다.

해설자의 말처럼 포기한 느낌은 아니랄까?

서걱!

적이 다가오는 와중에도 차분히 스택을 유지하는 모습에서도 묘한 여유가 느껴졌다.

그리고 몇 초가 지나기도 전에.

[TXP! 도착했습니다!!!]

엘카의 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명의 가속검과 그를 둘러싼 3명의 적. 오늘 방송에서 지호가 겪은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다른 점이라면.

프로 대회니만큼 당연히 상대도 프로게이머라는 것.

사소한 움직임 하나하나도, 지호가 상대한 이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쿠앙-!

쐐애액!!

지잉!

곧바로 스킬을 퍼붓는 모습만 봐도 그 점을 알 수 있었다.

모든 스킬이 하나인 것처럼 교묘하게 엘카를 향해 쏟아진다.

그야말로 천라지망(天羅地網).

빠져나갈 구멍은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그런데.

‘웃네?’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엘카는 웃었다.

그리고는 가볍게 땅을 박찼고.

이내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더블 킬!]

[트리플 킬!]

[ST ELCA는 전설적입니다!]

엘카가 혼자서 3명의 적을 처치했으니까.

[아니!!!! 이게 무슨 일이죠!!!!]

[레드 팀이 메카닉 골렘을 처치했습니다!]

순식간에 끝난 전투.

그와 동시에 엘카의 팀이 골렘을 처치했다는 기계음도 울렸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것이다.

[골렘도 ST가!! 아!! 이건 결정타네요!!]

[정말이지 대단하네요, 엘카 선수.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리플레이로 다시 보겠습니다.]

해설자의 신호에 맞춰, 방금 전의 전투가 천천히 재생되기 시작했다.

쿠앙-!

쐐애액!!

지잉!

시야를 가득 메울 정도로 촘촘한 스킬들, 그리고 그에 맞서는 엘카.

이어지는 장면은 놀라웠다.

[아니!!]

[놀랍네요. 말 그대로 피지컬로 찍어 눌렀습니다.]

엘카가 모든 스킬들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낸 것이다!

딸깍!

거기까지 본 지호는 영상을 정지시켰다.

“음…….”

그리고는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방금 전의 상황을 그렸다.

자신이었다면, 어땠을까.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내가 그 스킬들을 마주했다면….’

형형색색의 스킬들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메운다.

게임에 관련된 지호의 천재성이.

영상으로만 본 장면을 완벽히 재현해낸 것이다.

이어서 그는 차분히 스킬들을 스캔했다.

결과는.

‘다 피하는 건 힘들겠는데.’

가능하게 만들 방법은 있다.

좀비 아파트에서 한 번 경험한, 모든 것이 느리게 느껴지는 상태라면 가능할 것도 같았다.

“왕눈이 님 말이 맞았네.”

다시 눈을 뜬 지호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방송이 끝나고.

단둘만이 음성채팅에 남았을 때.

왕눈이는 지호에게 두 가지 말을 전했었다.

그중 한 가지는.

“미다스 님, 아까 말씀하신 거 있잖습니까? 주변 속도가 느리게 느껴졌다고. 그거 들어본 적 있습니다.”

“네?”

“시청자분들 앞이라 조심스러워서 말씀을 안 드렸는데. 엘카 님이나 최정상급 선수들은 그런 경험이 있다고 얼핏 전해 들었네요.”

요지는 간단했다.

엘카라는 프로게이머.

그리고 그와 비슷한 최정상급 프로게이머들은 자신이 봤던 그 풍경을 볼 수도 있다는 말.

“뭐… 저도 직접 들은 건 아니고 전해 들은 거라 확실치는 않으니, 혹시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 번 여쭤보셔요”

마지막에 왕눈이는 이렇게 얼버무렸지만.

영상을 본 지금.

지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엘카는 그 시야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심지어 원하는 타이밍에!

그 말인즉, 지호보다 한 수 위에 있다는 소리다.

‘재밌네.’

색다른 경험이었다.

10년 전의 그는 누군가에게 게임으로 뒤처져 본 기억이 없으니까.

‘게임에서 만나보고 싶다.’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어떤 게임이든 간에, 저런 이들을 만난다면 짜릿함을 느낄 수 있을 거 같았으니까.

그러려면 여러모로 성장해야 한다.

게임 티어든, 유명세든.

그래야 어디서든, 어떻게든 마주칠 수 있을 터이니.

“유명세라.”

다음으로 지호의 시선은, 태블릿이 아닌 컴퓨터의 모니터.

정확히는 방송 플랫폼, 트리스가 띄워진 인터넷 창을 향했다.

하루 후원 금액.

[2,250,000원]

“미쳤네.”

오늘 하루 그가 번 금액이다.

시청자 수가 많았던 만큼, 후원이나 미션도 많이 들어온 것이다.

물론 왕눈이와의 합방이라 가능한 수치겠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엄청난 건 매한가지다.

‘왕눈이 님도 이 정도는 처음 보는 금액이라고 했었지.’

돈도 돈이지만, 그걸 떠나서 보더라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순식간에 올라오는 채팅들.

7,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의 플레이 하나하나에 같이 열광했었으니까.

“내가 관종이었다니.”

방송을 하기 전에는 상상도 못 한 일이다.

하지만.

짜릿했다.

또 이런 경험을 하고 싶었다.

모르면 몰랐을까.

알게 된 이상, 이제는 방송이 없다고 생각하면 어색할 정도였다.

‘평균 시청자 수 7,000명.’

당장에는 꿈같은 수치다.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러려면….

“스트리머로 성공하고 싶으시면 미다스 님만의 무기를 계속 갈고 닦으셔야 합니다.”

이번에도 그의 머릿속을 맴도는 건, 왕눈이의 조언이었다.

“예를 들면, 지금 미다스 님의 가장 큰 무기는 피지컬이겠죠. 그걸 토대로 하나하나 무기를 늘려 가시면, 어느 순간 방송 크기도 커져 있을 겁니다.”

생각과 노력이 필요한 문제였다.

“내 무기라.”

지호가 잠시 고민에 빠진 그때였다.

띠리리링-!

우렁찬 전화벨 소리가 그의 상념을 깨웠다.

[준영]

친구, 박준영이었다.

“야, 이 시간에 무슨….”

“야! 너 겜잘알 봤어?!”

대체 무슨 일인지, 지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급한 준영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넘어왔다.

“잠깐만.”

딸깍! 딸깍!

이유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베스트 게시판]

[1. 이래도 핵이 아니냐?]

[2. 미다스가 핵인 이유.avi]

[3. 속보) 퓨처 워 핵 뚫림.]

[4. 핵쟁이 스트리머, 미다스]

[5 다시 보니까 변종 좀비 잡는 것도 핵이었네.]

……

겜잘알 메인 화면의 베스트 게시판.

그곳의 모든 글들이 ‘미다스’, ‘핵’ 이런 단어들로 도배되어 있었으니까.

“일단 알았어. 한 번 봐볼게.”

대강 상황을 파악한 지호는 전화를 끊고 글들을 읽어보았다.

딸깍.

딸깍!

그러기를 한참.

“대충 어떻게 된 건지 알겠다.”

좀비 아파트 때와 비슷한 경우였다.

다른 건, 싱글 플레이인 좀비 아파트와 달리. 퓨처 워는 여럿이서 플레이하는 온라인 게임이라는 점이다.

누군가가 핵으로 승리하면.

다른 누군가는 질 수밖에 없기에.

논란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보아하니, 처음부터 이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엘카가 핵 아니라고 했는데?

-가상현실게임에 이 정도 성능 핵은 못 만드는 거 아니었음?

-그냥 피지컬이 미친 거겠지.

방송이 끝난 초반에는 이런 뉘앙스의 댓글들도 종종 보였으니까.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호의적인 댓글은 생각보다 힘이 약하다.

아니라는 증거를 가져오라면 할 수 있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대 팀이었던 ‘찐만두주세요’의 인증이 올라온 이후.

여론은 급속도로 기울기 시작했다.

[찐만두주세요 : 내가 상대 미드였는데, 그냥 완전 핵이었음. 상식적으로 1렙이 저러는 게 말이 됨? ㅋㅋ]

어느 정도냐 하면.

퓨처 워 개발사인 ‘파나즈’에서도 발 빠르게 대응했을 정도다.

[많은 유저들이 제보해주신 플레이어명 ‘미다스’ 계정은 핵사용이 의심되는 정황이 없습니다. -파나즈]

멀티 플레이 게임에서.

더군다나 가상현실게임에서 핵이 뚫렸다는 건, 그만큼 치명적인 이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여론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럼 핵이 핵이다 하고 티내나?

-이제 막 뚫린 거니까 니들이 증거를 못 찾지 ㅋㅋㅋㅋㅋ

이미 들끓을 대로 끓어올랐으니까.

그들은 이제 방송 플랫폼, ‘트리스’의 쪽지로도 미다스에게 해명하라고 항의하고 있었다.

“해명이라.”

지호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건 위기이자 기회라고.

게임 방송 최대 커뮤니티인 겜잘알의 모든 베스트 게시물을 독차지하다니!

세상에 어떤 스트리머가 방송 3일차에 이렇게 화제가 될 수 있겠는가.

여기서 확실히 해명하기만 하면.

그로 인한 광고 효과는 감히 짐작할 수도 없을 정도다.

“문제는 내가 핵이 아니라는 걸 어떻게 증명하냐는 건데.”

쉬운 일은 아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건 쉽지만.

그걸 해명하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딸깍! 딸깍!

지호는 생각에 잠긴 채 무의식적으로 인터넷을 살폈다.

그러기를 잠시.

“어…?”

그의 눈이 빛났다.

수많은 항의 쪽지 중, 눈에 띄는 쪽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미다스 님. 좀비 아파트 제작사인 TH소프트입니다.]

딸깍! 딸깍-!

“…이거면 될지도?”

천천히 글의 내용을 확인한 후.

지호는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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