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4화. 배틀 에어리어(1)
쿠구우우우-
멍할 정도로 귓가를 때리는 비행기의 거친 엔진 소리.
지호는 눈을 두어 번 깜빡거리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아직 뉴비 티를 벗지 못했다는 증거일까?
새로운 게임을 접할 때마다.
멍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이게 게임이라니!
매번 놀랍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도 못해본 스카이다이빙을 이렇게 해보게 되네.’
캡슐에 들어오기 전.
TH 직원에게 간단한 설명은 들었다.
게임명은 배틀 에어리어.
다양한 종류의 전장에서 무기와 방어구, 각종 소모품 등을 활용.
최후의 생존자가 될 때까지 적을 처치하면 되는 게임이다.
말 그대로 간단한 설명이었지만, 이해하는 데 문제는 없었다.
배틀로얄 게임이라는 장르가 흔한 것처럼. 이와 비슷한 설정도 종종 찾아볼 수 있었으니까.
‘일단 지도부터 확인해볼까.’
직원에게 들었던 대로, 지호가 손을 움직여 눈앞에 지도를 띄웠다.
아직은 생소하게 느껴지는 지형.
수송기로 추정되는 아이콘과, 그곳에서부터 시작되어 지도를 가로지르는 기다란 화살표가 보인다.
아마 경로를 의미하는 것일 터.
‘오. 엄청 넓네.’
가장 작은 전장에서 시작한다고 들었는데, 그럼에도 규모가 엄청났다.
Prison, Camp Parodi, Rachok 등.
여러 건물들이 모여 있는 번화가부터, 그밖에 이름도 붙어있지 않은 자잘한 건물들까지.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될 정도였다.
‘흠….’
당연히 지호는 이런 게임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TH와 방송 얘기가 오가며 어떤 게임인지 들었기에. 비슷한 게임 영상을 찾아보곤 했다.
이런 장르의 게임에서 시작할 때는 보통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번화가에 가서 모두를 상대하는, 일명 여포짓을 하는 것과.
구석진 장소에 안착한 후, 차근차근 파밍한 후 후반을 도모하는 것.
이렇게 두 가지다.
‘역시 번화가가 재미있겠지?’
그렇기에 지호의 선택은, 지도 중앙에 위치한 ‘Camp Parodi’였다.
왜냐?
안전한 장소로 도피한 뒤, 무난하게 플레이하는 건 지호의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지금 같이 게임을 하는 이들은 게임을 잘한다고 소문난 스트리머들.
그런 사람들과 격전을 벌이면 재밌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번화가 선택은 당연한 것이었다.
달칵!
선택을 끝낸 지호가 맵을 닫았다.
그러자 방금 전의 자신처럼 허공을 응시하는 나머지 스트리머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도를 보고 있을 터.
잠깐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찰나.
“뭘 그렇게 재밌게 보고 있으셔?”
옆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누구…?”
고개를 돌리자 산적을 연상케 하는 남자가 보였다.
지호의 의문에.
그는 험상궂은 외모와 달리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타미타미요. 아! 반말은 컨셉이긴 한데 기분 나쁘면 지금 말하시고.”
“타미타미? 아, 괜찮습니다. 저보다 연상이실 거 같은데….”
“초면에 너무한데?”
피식 웃는 사내는 지호도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이곳에 있다는 점으로 알 수 있듯, 당연히 피지컬은 좋은 스트리머다.
하지만 기억에 있는 이유는 다른 것이었다.
‘왕눈이 님이랑 친한 스트리머라고 봤던 거 같은데.’
역시나.
“그나저나 왕눈이한테 대충 듣긴 했는데, 듣기보다 더 패기 있더만.”
타미타미는 왕눈이를 언급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근데, 너무 패기 넘치면 다른 사람들이 반감 가질 수도 있다는 거 알지?”
무슨 의미인지 물을 필요도 없다.
MC인 김두기와 했던 대화 때문일 테니까.
서로 경쟁하는 게임에서 실력을 증명한다.
다른 스트리머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을 무시하는 발언으로 여겨질 수도 있을 터.
그의 말처럼.
둘의 대화를 들었는지, 몇몇 이들이 예사롭지 않은 눈빛으로 지호를 응시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후회할 지호가 아니다.
“별수 없죠. 제가 뱉은 말이니 감당할 수밖에.”
진심이었다.
하면 안 될 말을 한 것도 아니고, 남의 눈치를 보느라 할 말을 참을 성격도 아니니까.
“그러다가 다굴 당하면 어쩌려고. 그것도 감당할 수 있을까?”
타미타미의 표정에 흥미가 깃들었다.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지호는 분명하게 말했다.
“극복해내야죠. 못해내면 제 실력이 거기까지인 거고.”
“하하하!”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 걸까.
타미타미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볼수록 맘에 드네. 역시 왕눈이가 사람 보는 눈이 있다니까? 아! 참고로 나도 따라 내릴 거니까, 한 번 극복해보라고.”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말.
그러면서도 표정은 여전히 흥미가 가득했다.
적대감이 아닌 흥미.
서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느꼈기 때문에, 지호는 웃으며 대답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와 대화하는 사이, 수송기는 목표했던 위치인 Camp Parodi 근처까지 접근한 상태였다.
이제는 내려가야 할 때.
“타미타미 님, 저는 여기서 내립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지호는 수송기 뒤쪽으로 향했다.
쿠구우-!
구름이 나란히 보일 정도로 높은 상공. 싸늘한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오.”
“자, 드가자!”
“여기서 내리는 사람들은 각오하라고. 난 눈에 보이면 다 죽일 거니까.”
지호가 출발하기만 기다렸던 건지.
몇몇 이들이 일어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히 그중에는, 타미타미도 있었다.
‘재밌겠네.’
곤란하다는 생각보다 흥미가 먼저인 건.
스트리머이기 이전에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일 터이다.
난관에 부딪힐수록 불타오르는 게 게이머라는 종족이니까.
타앗!
얼굴에 부딪히는 바람을 느끼며 지호는 발을 박찼다.
휘이이잉!
거친 바람이 전신을 때리고.
구름들이 빠르게 스치고 지나간다.
오금이 저리는 감각.
언젠가 놀이공원에서 탄 롤러코스터는 우습게 느껴질 정도로 스릴 넘치는 감각이었다.
하지만 스릴을 만끽하기도 전에.
촤락!
“컥!”
이내 몸에 충격이 가해지며, 낙하산이 펼쳐졌다.
초보자를 위한 시스템인 모양이다.
원래는 그가 직접 펼쳤어야 하는데, 자동으로 펼쳐진 것이니까.
후우웅-
여하튼, 덕분에 지호는 보다 여유롭게 주변을 살펴볼 수 있었다.
어느새 많이 내려왔는지 발아래 건물들의 형체가 명확해지고 있었다.
“으아아아아!”
“캬! 이거지!!!”
머리 위에서는 하강을 즐기는 이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그와 마찬가지로 짜릿한 감각을 즐기고 있는 모양이다.
‘적은 다섯 명이고…. 일단 저쪽으로 가볼까.’
지도상, 정중앙에 위치한 Camp Parodi.
지호는 그중에서도 가장 중앙의 커다란 건물 옥상을 향해 낙하산의 방향을 잡았다.
타앗!
그리고 이어진 자연스러운 착지.
낙하산이 펼쳐졌음에도 빠른 하강 속도였지만, 지호는 평지를 걷듯 가볍게 땅을 밟았다.
“오?”
운이 좋은 건지.
착지한 위치 바로 앞에 총과 탄창이 떨어져 있었다.
[AK-47]
배틀로얄 게임이 처음인 지호에게도 익숙한 총이었다.
가장 유명한 돌격소총 중 하나였으니까.
‘개이득.’
빠르게 총을 집어 든 그는 탄창과 총을 결합한 뒤, 장전했다.
그리고 기세를 몰아 건물의 남은 구역들을 파밍하기에 앞서.
지호는 재빨리 옥상 벽에 몸을 숨기며 주변을 살폈다.
이득을 볼 수 있는 타이밍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장 높은 건물에 착지한 덕분에.
Camp Parodi 전역이 그의 가시권 내인 상황.
더군다나 다른 이들은 지호보다 느리게 뛰어내린 터라, 착지도 한 타이밍 늦을 수밖에 없다.
한데 총까지 빠르게 얻었으니.
이 기회에 이득을 봐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적들도 게임에는 도가 튼 사람들. 빠르게 건물 안으로 들어갔는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한 명을 제외하고는.
‘찾았다.’
건물 몇 개 너머, 저 멀리.
조심스럽게 총을 줍고 있는 누군가가, 점처럼 작은 형태로 보인다.
착지하자마자 총을 얻은 모양이다.
일반적이었다면 무난한 시작이었을 터.
하지만 과연.
이번에도 무난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지호의 총구가 그를 향하고 있었으니까.
“후우.”
차분히 숨을 들이켠 지호가 멀리 보이는 적을 향해 총구를 조준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점처럼 작게만 보이던 상대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가깝게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망원경으로 보는 듯한 풍경.
무조건 맞출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에. 지호는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목표는 상대의 머리!
탕!
격발과 동시에 반동으로 인해 총이 위로 올라갔다.
예상보다 큰 반동.
하지만 지호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차분하게 총을 다시 제자리로 돌린 뒤, 마찬가지로 상대를 조준하고 다시금 발사했으니까.
타앙!
어찌나 빠른지 처음 발사된 총알이 상대에게 닿기도 전에, 두 번째 총알이 날아갔다.
결과는 두 발 모두 어김없이 적중!
[미다스 → 숭어빵]
방탄헬멧도 없는 상태로 헤드샷을 두 발이나 맞은 상황.
상대인 숭어빵은 어찌 된 영문인지도 모른 채, 맥없이 시체로 변하고 말았다.
“아니, 이게 머선…?”
사망으로 시야가 회색으로 변한 숭어빵이 허탈하게 중얼거렸지만.
대답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런 결과를 만들어낸 지호는 이미 건물 안으로 몸을 숨긴 후였으니까.
‘역시, 재밌어.’
짜릿한 손맛에 미소를 짓던 지호.
하지만 왠지 모르게 아쉬움이 남았다.
방송을 켠 상태였으면 시청자들의 반응이 볼만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방송을 하려면, 일단 핵 논란을 정리하는 게 먼저겠지.’
방법은 있다.
결국 논란의 시작점은 ‘핵이 아닌데 저런 미친 플레이가 가능해?’라는 의문이었으니까.
그걸 해소시켜주면 된다.
캡슐부터 게임까지 모두 TH에서 제공한 상황. 게다가 대표인 이태한이 핵은 없다고 확실히 못 박기까지 했다.
핵이라고 의심할 여지는 없을 터.
이 상태로 보여주면 그만이다.
물론, 쉬운 방법은 아니다.
핵 소리를 들을 정도로 미친 플레이가 쉬울 리 없지 않은가.
게다가 상대는 피지컬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스트리머들이다.
몬스터가 상대였던 좀비 아파트나.
일반 게임이었던 퓨처 워보다는 빡셀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호는 자신 있었다.
최소한 게임이라는 분야에서 그는 언제나 목표한 바를 이뤄왔으니까.
‘해보지 뭐.’
그 순간, 지호는 알지 못했다.
아니, 알 수 없었다.
벌써부터 여론이 변화하고 있음을.
* * *
“아니이! 이게 무슨 일이죠! 30초 만에 킬이 나왔어요!!”
“돌격소총으로 저격을 했네요. 스코프도 없이 저 거리는 쉽지 않을 텐데….”
“그뿐인가요! 반동을 잡는 속도도 엄청났어요!”
-미친, 뭐가 보이긴 했나?
-그러게;;; 글고 저건 AK잖아? AK가 언제부터 저격용이었지???
-어케했누…….
시작부터 나온 미다스의 활약.
두 MC들도 시청자들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먼 거리에 있던 상대를 정확히 맞추다니.
그것도, 장거리 저격을 돕는 스코프도 없이!
이대로도 놀라웠지만.
메인 MC인 김두기는 방금 전의 장면을 또다시 부각시켰다.
“이태한 대표님! 보통 FPS게임은 어느 정도 게임 보정이 있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배틀 에어리어는 보정이 더 많이 되는 건가요? 그래서 총을 맞추기 더 쉽다던가?!”
“그럴 리가요. 오히려 다른 게임들에 비해 보정이 없는 편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미다스 님이 돌격소총인 AK-47로 장거리 저격을 성공한 건, 아마 본연의 피지컬 덕분이겠죠? 아니면 운이던가.”
-클립 봐봐. 뭐가 보이긴 하네.
-저게 보이는 거냐 ㅋㅋㅋㅋ 그냥 점인데? ㅋㅋㅋㅋㅋ
-아니, 잘 보이지도 않는데 저걸 맞춘 미다스는 뭐야;;; 매야?
그새 만들어진 클립에 보이는 장면은 놀라웠다.
미다스가 숨을 가다듬고, 점처럼 작게 보이는 상대를 겨냥하더니.
탕!
쏜다.
그리고 바로 자세를 가다듬고 다시 방아쇠를 당기기까지.
어떻게 봐도 운이라고 볼 장면은 아니었다.
“아아! 그렇다면! 대표님은 운이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오!”
열정적으로 멘트를 이어나가던 김두기의 시선이 이태한을 향했다.
“음…. 조금 더 지켜보면 알 수 있겠죠? 근데 개인적으로는 미다스 님이 이번 경기의 키포인트라고 생각하고 있긴 합니다.”
“오오! 왜죠?!”
“제 생각대로라면, 뭔가 보여주실 것 같아서요.”
“그러고 보니 좀비 아파트에서 악몽 난이도를 개척한 것도 미다스 님이었죠!”
“뭐, 그렇죠. 오, 이제 슬슬 다들 움직이기 시작하네요.”
“그렇습니다! 이제 진짜로 재밌어지겠네요! 기대가 됩니다!!”
화면 속 미다스.
그는 빠르게 건물을 수색하며 장비를 찾고 있었다.
-저렇게 열심히 파밍해봐야 금방 죽을 텐데 ㅋㅋㅋㅋ
-ㄹㅇ ㅋㅋㅋ 어떻게 뽀록으로 킬 땄나본데 이제 바닥 드러나고 죽을 듯 ㅋㅋㅋㅋㅋ
-뭐, 어때. 빨리 죽으면 핵쟁이 얼굴 안 봐도 되니까 좋은 거지.
몇몇 시청자들은 냉소했지만, 모두 다 그런 건 아니었다.
시작부터 놀라운 명장면을 보여준 미다스. 그리고 TH소프트의 대표인 이태한의 고평가까지.
몇몇 시청자들의 마음속에 기대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만약 진짜로 미다스가 핵을 사용한 게 아니라면?
지금까지의 플레이가 모두 진짜 피지컬이었다면?
그렇다면 결과는 예상과 다를 터.
진실은 곧 밝혀질 것이다.
미다스가 쏘아 올린 총소리를 들은 다른 스트리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