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5화. 배틀 에어리어(2)
“에이, 맛없네.”
신속하게 건물 전체를 탐색한 지호는 아쉬움에 혀를 찼다.
일반적으로 이런 게임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중앙 지역에 다양한 아이템들이 스폰된다고 들었다.
심지어 그중에서도 가장 큰 건물 아니던가.
한데,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AK-47/7.62mm 탄약 150발/방탄헬멧(★)/전술배낭(★)
이 초라한 목록이 그가 파밍한 전부였으니까.
‘첫 끗발이 개 끗발이라더니.’
옥상에서 처음 AK를 주웠을 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이어서 또 AK가 나왔어도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이게 웬걸.
건물을 전부 뒤져도 나오는 것은 권총 아니면 AK-47이 전부였다.
“무슨 AK 공장도 아니고.”
그뿐인가?
기껏 찾은 장비인 방탄헬멧, 전술배낭은 가장 낮은 등급인 1성. 그마저도 방탄조끼는 나오지도 않았다.
“원래 이런 건가.”
문득 궁금증이 들었지만.
어차피 달라질 건 없다.
그럴 시간에 차라리 다른 곳을 돌아보는 게 이득일 터.
지호는 고개를 저으며 옆 건물로 이동했다.
그리고 잠시 후.
“또, AK….”
그의 입에서는 또다시 황당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새로운 건물을 절반 이상 탐색했음에도 추가된 건, 섬광탄 한 개와 붕대 몇 개가 고작이었으니까.
“마가 꼈나…. 어?!”
힘없이 고개를 갸웃하던 찰나.
저 멀리, 바닥에 떨어져 있는 방탄조끼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 가장 필요한 아이템!
그는 곧바로 다가가려 했다.
하지만 그때.
스륵!
전방에서 들려온 작은 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
재빨리 고개를 들자.
반대편 복도 끝. 벽 너머에서 누군가의 손이 튀어나왔다.
당연히 적일 터.
지호는 반사적으로 총을 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상대가 무언가를 던졌다.
‘화염병?’
주둥이에 불이 붙어있는 작은 병.
화염병이었다.
흠칫 놀란 것도 잠시, 지호는 빠르게 대응했다.
탕! 타앙!
곧바로 상대의 손을 겨냥하고 있던 총의 방아쇠를 당기고.
반동으로 살짝 올라간 총구를 조정한 후, 그대로 다시 격발한 것이다.
언뜻 당황해서 급발진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대처.
하지만 이어진 결과를 본다면.
누구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다.
“윽!”
콰직!
그가 쏜 총알이 각각 상대의 손과 화염병을 정확히 꿰뚫었으니까.
그것도, 공중에서.
화르르륵-!
결국 화염병은 상대의 손을 떠나자마자 폭발하고 말았다.
* * *
-????????????????
-지금 화염병을 터뜨린 거임…?
-ㅇㅇ;;; 그것도 공중에서 날아오고 있는 걸…….
-말이 되냐??
-지금 보고 있잖아 ㅋㅋㅋㅋㅋ
-아닠ㅋㅋㅋ 이게 뭐냐고 ㅋㅋ
방송을 보던 시청자들은 경악했다.
공중에서 화염병을 터뜨리다니.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기예(技藝)였으니까.
-운 좋네?
-뽀록 오짐;;;
종종 이런 채팅도 올라왔으나.
이제는 먹히지 않았다.
-안경 좀 써라 ㅋㅋㅋ 저게 뽀록으로 보이냐 ㅋㅋㅋ
-근까;;; 난사한 것도 아니고, 딱 두 발만 쏴서 맞췄는데 눈이 없누;;
-ㄹㅇ ㅋㅋㅋ 표정도 보셈 ㅋㅋ 눈 하나 깜짝 안하는데 ㅋㅋㅋㅋ
정확히 필요한 만큼만 깔끔하게 쏜 것도 그렇고.
차분한 표정도 그렇고.
어떻게 봐도 운이 아니었으니까.
“아니이! 미다스!!! 화염병을 정확히 맞췄어요!!!”
“그 와중에 손도 맞췄죠. 이러면 화염병을 던진 초롱 님은 조금 당황스럽겠네요. 분명 좋은 타이밍이었는데.”
“당황스럽기만 할까요!!! 뇌정지오죠! 기습도 실패했는데, 체력은 본인이 닳았어요! 과연, 초롱!! 차분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인가!!”
흔히 볼 수 없는 장면에 MC들도 신나게 대화를 나누던 찰나.
화면이 심상치 않은 미다스의 움직임을 비췄다.
“미다스 님이 먼저 움직이네요.”
“아니!! 미다스!! 불을 뚫고 달려갑니다!!! 이거 못을 박겠다는 소린데요!!”
-와, 설마 했는데…. 이러려고 2발만 쏜 건가? 진짜 괴물이네….
-ㅇㅇ? 뭔 말임?? 설명 좀.
-기본 탄창은 총알수가 많은 편이 아니잖아? 근데 난사하면 재장전을 해야 하고, 시간이 걸리겠지?
-근데?
-지금 미다스가 유리한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 아니란 말야. 하이바도 싸구려에 갑빠도 없고.
-ㅇㅇ 맞지.
-그래서 상대한테 정비할 시간도 안 주고 싸우려는 거지. 보니까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던 듯.
-그게 순식간에 판단이 된다고?
-아니, 것보다 그 판단은 화염병을 막는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거 아닌가???
-첨부터 맞출 거라고 확신했다는 말이네…. 그 잠깐 사이에…….
-그러니까 괴물이라는 거지.
-미친;;;;;
-와 ㅋㅋㅋㅋ 돌았네 진짜.
-소름 돋는다. 나랑 같은 종족 맞냐…?
제삼자인 시청자들도 소름이 돋을 지경인데.
당사자인 초롱은 어떻겠는가.
“어?!”
그는 뭐라 말도 못 한 채, 화들짝 놀라서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코앞에서 터진 불길이 몸으로 번졌고, HP가 빠르게 줄어들었기 때문.
‘진짜 미친 괴물이네.’
무슨 상황인지는 안다.
미다스가 총을 쏘는 것도, 화염병이 터지는 것도 봤으니까.
보고도 믿기지 않는 상황.
어떻게 가능한지는 둘째 치고.
일단 체력이 벌써 절반 이하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미다스와 자신 사이에 화염병으로 인한 불길이 치솟고 있다는 것 정도?
초롱은 불이 꺼지기 전에 급히 HP를 채워줄 키트를 사용하려 했다.
하지만.
“미친! 이건 반칙이지!”
사용이 끝나기도 전에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미다스가 불길을 뚫고 달려왔기 때문이다.
타다다당!
온몸에 불이 붙은 채로 AK를 난사하는 그 모습은 광기 그 자체였다.
초롱은 뒤늦게 응사하려 했으나.
불가능했다.
그의 손에 들려있는 건, 총이 아닌 구급키트였으니까.
* * *
“뭐야, 내가 운이 없던 거였네.”
공중에서 화염병을 터뜨리는 묘기를 선보인 지호.
그는 죽은 초롱의 인벤토리를 보며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M24S1/7.62mm 탄약 90발/소음기/4배율 조준경/방탄조끼(★★)/전술배낭(★★★)/수류탄 2/구급키트
이런 걸 황금 고블린을 잡았다고 표현하던가?
대충 필요한 것만 챙겼는데도 이 정도였다.
저격소총인 M24S1을 시작으로.
총기 부착물인 소음기, 4배율 조준경까지. 게다가 계속 아쉬웠던 방탄조끼도 이제는 2성이다.
심지어 수류탄과 구급키트 같은 소모품까지 가지고 있었다니!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이제 좀 여유롭겠는데.’
만족스러운 미소도 잠시.
이내 어딘가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기습이 목표인 듯.
스치는 바람처럼 작은 발소리.
하지만 이미 전투에 돌입, 한계까지 예민해진 지호의 감각은 미세한 소리도 놓치지 않았다.
‘뒤!’
소리의 방향을 파악함과 동시에, 지호는 섬광탄의 안전핀을 뽑았다.
그리고는 어깨너머, 뒤로 던졌다.
펑! 파앗!
“꺅!”
순간, 엄청난 폭음과 함께 강한 빛이 터졌다.
그 위력은 지호도 잠깐이나마 귀가 멍멍하고 눈이 부실 정도였다.
등지고 있었는데도 이 정도인데.
정면으로 맞은 상대는 어떻겠는가.
“무슨 섬광탄이 있냐아!”
역시나.
상대는 정면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듯,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타다당! 타다다당!
자기방어를 위해서인지 들고 있던 총을 난사하기도 했지만.
아쉽게도 그곳은 아무도 없는 벽.
지호는 여유롭게 상대를 겨냥한 후 방아쇠를 당겼다.
* * *
[미다스 → 초롱]
[미다스 → 코라니]
잠깐의 텀을 두고 올라온 두 개의 킬로그.
방송은 열광의 도가니였다.
“아아!! 코라니도 죽었어요!!!”
“와… 이건 좀 엄청나네요. 코라니 님이 실수한 것도 없거든요.”
“그니까요! 소리도 안 냈고!! 눈치챌 방법이 전~혀 없었는데! 완벽한 기습 타이밍이었는데!! 오히려 당했죠!!!”
“미다스 님은 뒤에도 눈이 달려있나 보네요. 안 보고 던진 섬광탄이 저렇게 정확하게 날아가다니.”
“맞죠! 거의 노룩패스였어요!! 10점 만점에 10점입니다!!!”
-ㅁㅊ ㅋㅋㅋㅋㅋㅋ
-노룩패스 ㅋㅋㅋㅋ 김두기 미쳤냐고 ㅋㅋㅋㅋㅋㅋ
-근데 오지긴 했어 ㅋㅋㅋㅋ
-ㄹㅇ…. 내가 저거 당했으면 핵이라고 신고했을 듯;;;
-모르지 ㅋㅋㅋ 쟤 핵쟁이잖아.
-ㅇㅇ 딱 보면 핵인데, 다들 왜 빨아주냐 ㅋㅋㅋㅋ 시야 클라스;;
기존의 상식을 완전히 깨부수는 플레이에 또다시 핵 의혹이 올라왔다.
하지만, 처음과 달리 반응은 싸늘했다.
-여기서 핵 어쩌구 하는 건 좀 오바 아닌가 ㅋㅋㅋㅋㅋㅋ
-ㅇㅈㅇㅈ, 개에바지.
-TH가 준비한 장소에서, TH캡슐로 게임하는데 핵 ㅋㅋㅋㅋㅋ
-왜, 아예 TH가 미다스한테 핵 줬다고 해보지?
-억까도 정도껏 해야지 ㅋㅋㅋㅋ
-ㄹㅇ ㅋㅋㅋ 우기지는 말자.
지금 그들이 보고 있는 방송은 캡슐부터 게임까지 모두 TH 주관.
심지어 대표인 이태한이 핵은 없다고 확답했다.
이런 상황에서 핵이라 주장한다?
심지어 ‘핵인데 니들이 못 알아보는 거다.’라는 뉘앙스의 말까지?
이건 미다스를 의심하는 걸 떠나.
TH소프트, 그리고 방송을 보고 있는 시청자들까지 싸잡아 무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미다스 → 나이토]
[미다스 → 파라파라]
“미다스으으으!!! 또 더블 킬! 떠블 킬입니다!!!!”
“막을 수가 없네요.”
그 사이, Camp Parodi에 내린 다른 두 명의 스트리머들까지 미다스가 잡아내자.
분위기는 더더욱 끓어올랐다.
-와, 미다스. 리얼 보여주나?
-진짜 괴물이네…….
-이 정도면 방송할 때도 핵 아니었던 거 같은데 ㅋㅋㅋㅋ
-2222 그냥 태생 굇수네;;;;;;
-걍 SSS급 게이머였냐고 ㅋㅋㅋ
순식간에 4명을 잡아낸 미다스.
마치 AI를 상대하는 것처럼 그의 움직임은 막힘없었다.
문제는, 상대가 AI가 아니라는 것.
심지어 그저 평범한 플레이어도 아니었다.
하나같이 게임을 잘하기로 유명한.
어떤 게임에 던져놓건 상위 1% 내에는 우습게 들어가는 이들이니까.
-저기 올클리언가?
-ㄴㄴ 타미타미 남음.
-오.
이제 남은 건, 한 명.
타미타미뿐이다.
그리고 지금.
화면 속 두 스트리머가 서로 거리를 두고 바라보기 시작했다.
“타미타미! 좋은 자리네요!”
“미다스 님이 처음에 내렸던 그 건물로 들어갔네요. 구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 저격수가 자리 잡기 딱 좋은 곳이에요.”
“역시, 타미타미! 저격의 신! 아니잇! 미다스!!! 지금 저격전을 하려고 하는데요?! 이 선택 맞나요!!!”
먼저 자리 잡은 후, 미다스를 겨냥하고 있는 타미타미. 그에 맞서, 저격소총으로 무기를 바꾼 미다스.
서로 마주한 그들의 모습에서는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음…. 아무래도 거리가 있고, 타미타미 님의 자리가 좋으니 접근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거겠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타미타미 상대로 저격전은 무리 아닐까요!!”
“제가 알기론 미다스 님이 원래 게임을 안 하시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타미타미 님이 저격전문인걸 모르는 거 아닐까요?”
“아아, 그럴 수 있겠네요! 과연!!! 미다스의 행보, 여기서 끝날 것인가! 아니면! 신을 꺾고 나아갈 것인가!!!”
-이건 끝이지, 타미타미는 진짜 다르거든.
-ㅇㅈㅇㅈ 거기다가 스나 든 타미타미? 이건 못 말리지 ㅋㅋㅋㅋ
-ㄹㅇ ㅋㅋㅋㅋ
비단 MC들의 대화가 아니더라도.
시청자들의 기대감은 이미 증폭되고 있었다.
FPS에서의 타미타미는 그야말로 신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특히, 대 저격소총전은 프로게이머를 이겼다는 소문까지 있을 정도.
기대가 되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이처럼 모두의 기대가 정점에 다다른 순간.
탕!
저격소총이 발사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미다스 → 타미타미]
이번에도 어김없이, 킬은 미다스의 몫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