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7화. 보여주다
투두두두!!
타당! 타다당!
허술한 ㄱ자 모양 벽을 향해 빗발치는 총알.
콰직! 팟!!
그로 인해 사방으로 튀는 파편들.
살 떨리게 파괴적인 풍경 중심.
정확히는, ㄱ자 모양의 벽 뒤편에 지호는 몸을 숨기고 있었다.
‘하나, 둘, 셋….’
각자 다른 방향에서 들려오는 총소리는 세 종류.
현재 생존자가 지호를 포함 4명이니, 남은 모든 스트리머가 그를 공격하고 있다는 소리다.
뭐, 예상하고 있었다.
그만큼 지호의 행보가 위협적이었을 테니까.
현재 그의 킬 스코어는 10킬.
지금까지 나온 킬의 절반 이상을 지호가 만들었으니, 먼저 처리해야 한다고 판단했어도 이상하지 않다.
연합 아닌 연합.
꽤나 불리한 구도지만 불만은 없었다.
지호가 생각하는 게임의 본질은 다소 불합리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위기와 역경을 극복하는 것.
그리고 그런 상황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거지.’
아무런 위기도 없다면 이긴다 한들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게임을 잘하기로 유명한 사람들이 협공까지 한다?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이건 저들이 자신의 실력을 인정했다는 소리니까.
그렇기에 지호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상황을 분석했다.
투두두두!!
타앙-!
탕! 탕!
정면, 대각선 오른쪽/왼쪽.
적들은 세 방향에서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하긴, 아무리 나부터 처치하려고 해도 뭉쳐 있을 리는 없겠지.’
쉬지 않고 총성이 울려대는 걸 보니, 벽을 부수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쩌적-쩌저적!
괜히 자유도 높은 게임이 아닌지.
지호가 몸을 엄폐하고 있는 벽은 이제 곧 부서질 기세로 곳곳에 금이 가고 있었다.
[잠시 후, 유독성 가스가 이동합니다.]
때마침 전장의 범위가 더 좁아질 거라는 메시지도 떠올랐는데.
하필 안전 지역을 나타내는 원은 지호의 정반대편으로 걸쳐 있었다.
누가 봐도 운이 없다고 할 상황.
그러나 지호는 이제 익숙했다.
이번 판 내내, 유독성 가스는 그의 편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빠져나갈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고.’
벽이 무너지는 이 순간.
지호가 지금까지 기다려왔던 타이밍이다.
쩌적!
벽이 갈라지는 요란한 소리를 신호탄으로.
그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달칵!
가장 먼저, 빠르게 두 개의 연막탄을 꺼냈다.
그리고는 한 개는 바로 아래에.
다른 한 개는 2미터 정도 떨어진 커다란 나무 근처로 던졌다.
푸슈욱-
빠르게 주변을 가득 메우는 연기.
그와 동시에.
콰지지직!
지호를 보호해주던 ㄱ자 돌벽이 완전히 무너졌고.
투두두두!!
타당! 타다당!
탕! 탕! 탕!
이어서 귀가 멍해질 정도의 총알 세례가 그곳을 덮쳤다.
하지만 킬로그는 뜨지 않았다.
지호는 이미 그곳을 벗어난 후였으니까.
삭-사악!
연막으로 시야가 가려진 틈에 마치 고양이처럼 빠르게 나무 위로 올라간 지호.
그의 눈이 순식간에 세 명의 스트리머를 쫓았다.
엄폐물로도 사용할 수 있는 커다란 나무였던 터라, 그들의 위치를 파악하는 건 간단했다.
“어?”
“뭐야?!”
어느새 연막은 사라진 상태.
연막이 사라진 자리에 아무것도 없는 데다가. 킬로그도 뜨지 않았기에.
그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커다란 나무로 향했다.
주변에 다른 엄폐물이 없으니 당연한 선택일 터.
기회는 이때!
지호는 신속하게 가장 거리가 가까운 적을 겨냥했다.
타다당-!
예상치 못한 습격에.
상대는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했다.
[미다스 → 스트키]
[11킬!]
“나무 위!”
하지만 그것도 이젠 끝.
남은 두 명의 총구가 빠르게 지호를 향했다.
당연히 이 또한 예상했기에.
그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바닥으로 몸을 날렸다.
후웅-
세상이 한 바퀴 빙글 돌았다.
뒤집힌 세상 속에서, 지호는 또다시 AK-47의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타다다다!
[미다스 → 세이카]
[12킬!]
이번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가 쏜 총알은 어김없이 상대를 관통했으니까.
[경고!]
[체력이 25% 미만입니다.]
이제 남은 적은 하나지만.
지호의 체력도 바닥인 상태.
그는 바닥에 몸이 닿음과 동시에 바닥을 굴러서 나무 뒤로 숨었다.
어느새 다가온 유독성 가스 탓에 살벌할 정도로 체력이 줄어들긴 하지만.
그대로 적에게 노출되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일단 체력부터 채우고 다시 연막을 쳐보자.’
이번에도 지호가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유독성 가스에서 안전한 상대가 굳이 먼저 움직일 이유는 없으니까.
이런 생각에 급하게 회복키트를 꺼내려던 순간.
딸깍!
그의 귀에 핀을 뽑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류탄? 섬광탄?’
아직 상대가 뭘 던지려고 하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뭐든 상관없다.
일단 투사체를 들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지호는 이미 비슷한 상황을 겪어본 바 있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부터는 쉽다는 말처럼. 그는 이번에도 해낼 자신이 있었다.
틱-
역시나.
마지막으로 남은 상대방의 손과.
그 손을 벗어나고 있는 수류탄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바.
지호는 즉시 수류탄을 겨냥하고 그대로 총을 격발했다.
탕!
단 1발.
확신이 담긴 일격이었고.
결과는 어김없이 그의 의도대로였다.
콰직! 콰아아아아앙-!!!
그가 쏜 총알이 수류탄을 정확히 꿰뚫었고.
곧바로 폭발했으니까.
[미다스 → 당콩]
[축하합니다! 최후의 생존자입니다!]
* * *
“아, 음…. 미다스 님의 승리네요.”
“…….”
“김두기 캐스터님?”
“아! 죄송합니다! 맞습니다!! 미다스의 승리!! 압도적인 플레이였습니다!!!”
혹시나 했던 미다스의 우승.
심지어 그 과정은 베테랑 중 베테랑인 김두기가 잠시나마 말을 잇지 못할 정도였다.
그가 이 정도인데.
시청자들은 어련하겠는가.
-??????????
-내가 뭘 본 거지????
-저게 말이 되냐ㅋㅋㅋㅋㅋㅋㅋ
-미친…….
-와 X발….
-;;;;;;;;;;;;
그들은 고장 난 기계처럼 비슷한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정신이 쏙 빠진 것이다.
다행히 재빨리 정신을 차린 김두기가 빠르게 멘트를 이어갔다.
“이런 명장면! 다시 안 보면 아쉽겠죠?! 스트리머 분들의 인터뷰를 준비하는 동안, 가볍게 다시 한번 감상하겠습니다!!”
-캬, 역시 김두기! 가즈아!!!
-제발 해설도 같이 해줘…. 뭐가 어떻게 된 거야;;;
-ㄹㅇ;;; 이게 말이 되는지도;;;
이어서 재생되는 영상.
궁지에 몰린 미다스가 연막탄을 던지는 장면이었다.
“아, 여기서 판단이 참 좋았어요. 다들 끝이라 생각했을 텐데.”
“그렇죠! 유독성 가스는 바로 뒤까지 밀려왔고! 엄폐물인 벽은 깨지기 일보직전! 사실상 유일한 생존 루트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저 세 명이 벽만 조지는 거 보고 확실히 고수들은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ㅋㅋㅋ
-ㅇㅈㅇㅈ. 처음 해보는 게임인데 바로 벽부터 부수려고 하더라 ㅋㅋㅋㅋ 솔직히 좀 까리하긴 했어.
-그럼 뭐하누…. 상대가 넘사벽 굇순데 ㅋㅋㅋㅋㅋ
-ㄹㅇ ㅋㅋㅋㅋ;;;;
탕!
다음으로 영상 속 미다스는 원숭이처럼 빠르게 나무 위로 올라간 후 총을 격발했다.
“이것도 엄청났죠. 차분히 조준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는데, 모두 명중이었어요.”
“급할 만하죠! 다른 사람들도 미다스가 어디에 있는지 금방 알아챌 테니까요!”
“원래라면 그랬겠네요. 연막의 위치도 그랬고. 일단 근처에 몸을 숨길 곳이 나무밖에 없었으니까요.”
“맞아요! 하지만, 미다스가 더 빨랐죠! 그것도 가장 데미지가 높은 헤드샷으로만! 이거 참!! 엄청납니다, 엄청나요!!”
-ㄹㅇ ㅋㅋㅋㅋ 에임 뭔데;;;
-솔까, 저기 나무 위라 자세도 불안정한데 일단 쏘는 거 자체가 빡세지 않으려나….
-ㅇㅇ 안 해봐서 모르겠는데. 아마 그럴 듯?
-근데 저 정도 정확도라니;;;
-아 ㅋㅋ 이해하려 하지 마셈 ㅋㅋㅋ 미다스잖아 ㅋㅋㅋㅋㅋ
다시 봐도 놀라운 플레이.
하지만 여기까지는 그래도 양반이었다.
최소한 사람으로는 보였으니까.
하지만 이어지는 장면은 그렇지 않았다.
“드디어 나오네요. 프로 선수들의 경기도 아니고, 이벤트 경기에서 이런 걸 보게 될 줄이야.”
바로, 미다스의 공중곡예였다.
심지어 감상을 돕기 위해서인지 영상은 느리게 재생되고 있었다.
천천히 땅으로 떨어지는 미다스.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타-앙! 타다다다!
“캬! 이게 말이 되나요? 나무에서 떨어지는 몇 초!!! 그 몇 초 사이에 상대를 겨냥하고, 정확히 맞췄어요!! 이번에도 다 헤드샷!! 아니, 이걸 어떻게 이겨요!!!”
“솔직히 제가 게임을 하는데 저런 플레이가 보이면, 신고 버튼 누를 거 같긴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건 뭐랄까…!! 천재지변이에요!!”
-진심 ㅋㅋㅋㅋ 저런 걸 보여주는데 어떻게 핵 소리가 안 나오겠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ㄹㅇ ㅋㅋㅋㅋ 저게 사람이냐?
-ㅅㅂ 미쳤어 진짜 ㅋㅋㅋㅋㅋㅋ
-에바야;;;
MC들도 그랬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더 격했다.
나무에서 뛰어내리며 상대를 쏜다?
그것도 정확히 헤드샷을?
영상으로 다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경이로운 플레이였으니까.
오히려 마지막 킬인, 수류탄을 터뜨리는 장면의 임팩트는 덜했다.
“자리도 좋으니 좀 더 차분했어도 되는데. 아마 당콩 님은 여기서 끝내고 싶었을 겁니다.”
“저였어도 그랬을 거예요! 방금 전에 그런 미친 플레이를 봤으니까!!”
-ㄹㅇ ㅋㅋㅋㅋ
-맞다이로 절대 못 이길 텐데. 저게 맞지 ㅋㅋㅋㅋ
“솔직히… 저는 당콩 님이 수류탄을 꺼낼 때부터 어느 정도는 예상했습니다.”
“초롱이 어떻게 죽었는지 봤으면 저렇게 대놓고 던지지는 않았을 텐데!!! 아쉽게도 다른 구역이라 볼 수가 없었어요!!”
이미 미다스는 초롱과의 대치에서 화염병을 터뜨리는 기예를 선보인 바 있기 때문이다.
결과를 몰랐던 건, 초롱뿐이었다.
[축하합니다! 최후의 생존자입니다!]
그렇게 모든 영상이 끝나고.
계속해서 극찬을 내뱉던 김두기의 멘트가 이어졌다.
“다 끝났네요! 사실 저도 오늘 참 궁금했습니다!! TH소프트에서 출시할 새로운 게임도 그렇고. 핵 논란의 주인공도 그렇고.”
-ㅇㅈㅇㅈ
-미다스가 나올 줄은 몰랐지만 ㅋㅋㅋㅋ
-결과적으로 꿀잼이었으니까 됐지 뭐.
-배틀 에어리어도 떡상 각인듯
-ㅇㅇ 백퍼지 ㅋㅋㅋ
격하게 동의하는 시청자들의 채팅.
그걸 보며 김두기는 미소지었다.
이제 남은 건 인터뷰뿐.
그건 TH의 직원들이 진행하는 형식적인 마무리 절차일 테니.
사실상 그가 진행하는 방송은 여기서 끝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내가 키운 떡밥이니, 마무리도 내가 하는 게 예의겠지.’
활발한 채팅창을 보며, 김두기는 오늘의 방송을 마무리 지을 멘트를 떠올렸다.
김두기가 직접적으로 언급한 이슈.
핵을 사용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결과로 보여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미다스는 정말로 보여줬다.
그것도 아주 완벽하게.
“방송을 보고 계신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직도 미다스 님이 핵을 사용했다고 생각하나요?”
-아닌듯…….
-ㅇㅇ 일단 핵을 사용할 환경도 아니었으니까 ㅋㅋㅋㅋ
-확실한 건, 미친놈은 맞는 거 같습니다;;;;;
-그건 ㅇㅈ. 걍 미친 괴물임.
-일단 게임에서 상대팀으로 만나고 싶진 않아….
“다들 비슷한 생각인 것 같네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면! 실력으로 보여줬으니까요!! 괴물 스트리머 미다스!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