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3화. 퓨처 워 -배치고사(2)
[황폐화된 도시에 소환됩니다!]
게임 시작을 알리는 기계음이 울렸고.
그와 동시에 지호의 눈앞에.
현실과 다른 이질적인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형이상학적으로 세워진 커다란 본진과 경계 포탑. 그리고 흉흉한 분위기가 감도는 파괴된 건물들까지.
퓨처 워의 전장, 황폐화된 도시다.
‘시작이네.’
이어서 코끝을 찌르기 시작한 매캐한 연기에 게임 속 세상임을 실감하고 있던 찰나.
시야 한쪽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과연’님이 미션을 등록했습니다.]
[서폿인데 킬 많이는 못하겠지? 킬당 10,000원. 죽으면 1스택 차감.]
1킬 당 만원이 걸린 미션이었다.
보통 킬보다 어시스트가 많은 서포터라 미션을 건 모양이다.
아마 3~4킬 정도를 생각했을 터.
하지만.
-아니, 미다스 서폿이 평범한 서폿으로 보이냐고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최소 10킬 예상해본다.
-10킬로 끝나면 다행이지;;;
“서폿이라 킬을 많이 못한다라…. 과연 그럴까요?”
그 정도로 끝낼 생각은 없었기에.
지호는 씨익 웃으며 미션을 수락하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들 잘 해보죠.”
“넵, 파이팅!”
“화이팅!”
경험상.
게임이 시작되면 사람들은 말없이 정해진 라인으로 향하곤 했다.
한데, 배치라 긴장이라도 한 걸까?
팀원들은 힘내자는 말로 서로를 격려하고 있었다.
한 명을 제외하고는.
“호들갑 노노. 내가 캐리할 테니까, 다들 제~발 1인분만 하셈. 정글은 그냥 미드만 오시고.”
훈훈한 분위기를 박살 낸 건.
캐릭터 선택창에서 미드에 가겠다고 우겼던 그 녀석이었다.
여전히 건방진 말투와 태도.
게다가 선택한 영웅은 하필 가속검이었다.
-진짜 과학 그 자체네 ㅋㅋㅋ
-나 이 장면 어디서 본 거 같아.
-ㄹㅇ ㅋㅋㅋ PTSD 오네;;;
-하는 꼬라지 보니까 쟤는 브론즈 가야겠다 ㅋㅋㅋㅋ
보는 이의 속도 뒤집어놓는 그 모습에 시청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한 마디씩 보태기 시작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처럼.
십중팔구는 결과도 처참할 터.
하지만 지호는 신경 쓰지 않았다.
환영군주를 고를 때 말했듯, 그는 캐리할 자신이 있었으니까.
“뭐, 알아서 하겠죠. 다들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그는 태연히 말했고.
자연스레 채팅창의 화제도 다른 곳을 향하기 시작했다.
-하긴, 어차피 봇은 잘 클 거라 상관없겠다 ㅋㅋㅋㅋ
-리쉬나 하러 갈까요??
-ㅇㅈㅇㅈ
주로 미드에 가던 지호였지만, 리쉬가 뭔지는 알고 있었다.
첫 번째 전투 로봇이 도착하기 전.
잠깐의 빈 시간 동안 정글러의 중립 몬스터 사냥을 돕는 것이다.
‘정글러의 초반 성장을 가속화하면서, 갱도 빠르게 갈 수 있게 만든다고 했었지.’
동선상, 보통 원거리 딜러와 서포터가 해줘야 하는 일이었기에.
“그래야겠네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립 몬스터의 젠 자리를 향해 이동을 시작했다.
아군 정글러, ‘그림자 늑대’의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봇님들, 리쉬는 안 해주셔도 됩니다. 저 위쪽에서 시작할 거라.”
“어? 그럼 리쉬는…?”
지호와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던 원거리 딜러가 의아한 듯 되물었으나.
“괜찮아요. 저 탑이랑 듀오라 탑이 도와줄 거예요.”
들려오는 대답은 변함없었다.
-탑부터 찔러주려나보네 ㅋㅋㅋ
-하긴, 미드 딱 봐도 쎄한데 불안하게 도박하는 것보단 듀오 챙기는 게 낫긴 하겠네…….
-근데 미드가 가만히 있으려나?
-백퍼 난리 나겠지 ㅋㅋㅋㅋ
아마 탑에 힘을 쏟기 위함인 모양.
뭐, 어디든 잘 크면 좋은 거 아니겠는가.
“네, 알겠습니다.”
지호는 흔쾌히 대답하며 봇 타워로 향했다.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 질문이 날아들었다.
[‘서폿유저’님이 10,000원 후원!]
[미다스님, 근데 환영군주를 서포터로 사용할 수도 있나요? 보통 미드로 가지 않나.]
-그러게 ㅋㅋㅋㅋ
-뭐, 속박이 있으니까 쓸 수는 있지 않을까……?
-일단 스킬을 맞추기만 하면 딜은 센 편이라, 딜서폿으로 괜찮을지도?
-맞춰야 말이지 ㅋㅋㅋ 다 맞추기 어렵기로 유명한데 ㅋㅋㅋㅋ
-와중에 유리몸이라 더 빡셈;;;
-그럼 적 스킬은 다 피하고 내 스킬은 다 맞추면 되겠네 ㅋㅋㅋ
-어? 그럼 걍 미다스를 위한 거 아니냐?
-맞네 ㅋㅋㅋㅋㅋ
-근데 미드랑 서폿은 다르니까.
실체와 비슷한 환영, 부분 속박을 걸 수 있는 채찍. 그리고 공격 스킬인 환영구슬까지.
환영군주의 스킬은 다양하다.
개중에서 가장 중요한 스킬을 꼽는다면?
백이면 백, 환영이라 말할 터.
오죽하면 환영 컨트롤에 따라 성능이 극과 극으로 나뉜다는 말이 있겠는가.
문제는 환영을 다루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환영군주는 다루기 어려운 영웅으로 손꼽히곤 했다.
심지어 보통 서포터가 아닌 미드로 가곤 했으니, 의문이 들 수밖에.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 좋았다.
지호가 보여줄 서포터는 평범한 서포터가 아니니까.
“여러분, 혹시 가장 좋은 방어가 뭔지 아시나요?”
-???
-갑자기?
-가장 좋은 방어요?
-설마 ㅋㅋㅋㅋㅋㅋ
다소 뜬금없게 느껴지는 질문.
눈치 빠른 몇몇은 웃었지만, 대부분 물음표만 날릴 뿐이었다.
잠시 그들의 반응을 만끽한 후.
지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몇 분은 아시나 보네요. 네, 공격입니다. 상대를 다 죽이면 우리 팀이 위험할 일도 없을 테니까요.”
-미친 ㅋㅋㅋㅋㅋㅋ
-맞긴 해…….
-서포터(물리)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말이 있다.
상황에 따라 서포터의 역할은 천차만별이겠지만, 이번에 지호가 보여줄 플레이의 모티브는 바로 저 말이다.
“제가 생각하는 공격형 서포터에는 환영군주가 제일 잘 어울리더라고요. 바로 보여드릴 테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캬 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패기 하나는 ㅋㅋㅋ
-저래놓고 매번 보여주니까 더 신기 ㅋㅋㅋㅋ
언제나처럼 자신에 찬 그의 말.
단순히 허세에 불과했다면 모를까, 그는 언제나 보여줬기에 시청자들의 기대감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깡! 까앙! 파삿!
때마침 도착한 양 팀의 전투 로봇들은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서폿님, 가죠.”
원거리 딜러, ‘사막 궁수’도 적 전투 로봇을 향해 활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근데 미다스님 상대 봇 캐릭들은 아시나?
-그러게 ㅋㅋㅋㅋㅋㅋㅋ
-방금 일반 게임 전적 찾아봤는데, 닻 사냥꾼은 모를 듯 ㅋㅋㅋ
이어서 올라오는 채팅에 지호의 시선이 상대 봇 듀오를 향했다.
아마 리쉬를 하고 온 모양인지.
그들은 저 멀리서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원딜은 철갑보안관이었고, 서폿은 처음 보는 영웅이네.’
개중 전신이 기계로 이루어진 ‘철갑보안관’은 본 적 있다.
하지만 거대한 닻을 들고 오는 서포터는 처음 보는 영웅이었다.
‘뭐, 큰 상관은 없지만.’
퓨처 워의 영웅은 한둘이 아니다.
당연히 판수가 쌓이기 전까진 낯선 영웅이 있을 수밖에 없고.
한데, 이제 갓 게임을 시작한 지호는 어떻겠는가?
매판 매판이 생소한 영웅들과의 만남이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지호가 극복하는 방법은 한결같았다.
바로, 몸으로 부딪치는 것.
검색을 통해 어느 정도 이론을 숙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부딪치는 것보단 못했다.
스킬의 미세한 궤도라던가 흐름처럼. 직접 경험해야만 알 수 있는 것들도 꽤나 많았으니까.
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도 지호가 생각하는 게임의 재미였기에.
그는 또다시 웃으며 말했다.
“지금부터 알아가면 되겠죠?”
* * *
5분이 지났다.
“야, 좀 맞춰봐. 뭔 스킬을 한 대도 못 맞추냐.”
지호를 상대하고 있던 적 원딜러.
철갑보안관이 친동생이자 듀오인 서포터 ‘닻 사냥꾼’을 타박했다.
‘지도 못 맞췄으면서.’
닻 사냥꾼은 억울했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못했다.
상대 환영군주에게 아무런 스킬도 맞추지 못한 건 사실이니까.
그것도 무려 5분 동안이나.
철갑보안관도 스킬을 맞추지 못한 건 마찬가지지만, 기껏 반박해봐야 또다시 비난만 날아올 터.
그가 동생인 이상 결과는 뻔했다.
굳이 사서 욕을 먹는 취미는 없었던 닻 사냥꾼은.
반박 대신, 환영군주를 응시했다.
‘한 대만 맞춰보자.’
그리고는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한 후.
스킬, ‘닻 던지기’를 발동했다.
후웅!
그의 손에 들린 거대한 닻이 환영군주를 향해 날아들었다.
크기에 어울리지 않는 빠른 속도.
게다가, 그 안에 실린 힘은 엄청났다.
한 번.
단 한 번만 맞추면 되는데….
스윽-!
이번에도 상대는 한 발자국 옆으로 움직이며 가볍게 닻을 피해냈다.
가장 약 오르는 사실은.
종이 한 장 차이로 스킬이 빗나갔다는 것.
‘아니, 빗나간 게 아니겠지.’
처음에는 아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 5분 동안 몇 번이고 스킬을 던져봤기에.
이제는 확신할 수 있었다.
상대는 분명 스킬을 피하고 있다.
아니, 그냥 피하는 정도가 아니다.
무슨 재주를 부리는지.
점점 더 교묘하게 스킬을 피해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조금 멀찍이 피하는가 싶더니. 이제는 종이 한 장 차이까지 좁혀졌을 정도.
‘이번 판 개꿀일줄 알았는데….’
라인에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이번 판은 쉽게 이기리라 생각했다.
적 서포터는 보통 미드로 사용되는 환영군주인 데다가.
원딜, ‘사막 궁수’의 스킬샷은 웃음이 나올 정도로 처참했으니까.
하지만 몇 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그 생각은 사라지고 말았다.
‘어떻게 한 대를 안 맞냐고.’
워낙 유명한 영웅이라 환영군주의 약점은 익히 알고 있었다.
유리라 불릴 정도로 약한 체력.
그 말인즉, 딜만 제대로 넣으면 금방 죽일 수 있다는 소리다.
자연스레 그들은 환영군주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마침 그의 스킬 ‘닻 던지기’는 퓨처 워에서 가장 강력한 제압스킬 중 하나였고.
철갑보안관도 딜에만 몰빵한 영웅이니 당연히 킬이 날 거라 생각했다.
상대가 모든 스킬을 피하기 전까지는…….
‘저 원딜이 조금만 더 잘했으면 우리가 개 털렸겠는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닻 사냥꾼이 철갑보안관을 향해 말했다.
“형, 그냥 서폿 버리고 원딜만 조질까?”
“그게 낫겠지? 쟤는 만만한데.”
환영군주는 그들과 차원이 다르다.
하지만 원딜은 해볼 만했다.
게다가, 지금까지 환영군주만 노려서 방심했는지 사막 궁수는 앞으로 나와 있었다.
“봇님들, 지금 갱 갈게요. 호응해주세요.”
때마침 들려온 정글러의 요청.
“스킬 다 써서 호응할 테니, 와주세요.”
닻 사냥꾼은 미니맵을 보며 타이밍을 기다렸다.
“지금 가요!”
그리고 정글러가 라인에 거의 도착했을 때.
후웅!
신중하게 닻을 던졌다.
“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손끝에서 느껴지는 짜릿한 손맛.
닻 사냥꾼은, 일그러지는 사막 궁수의 얼굴을 보며 닻을 당겼다.
끼릭!
그러자 상대가 조금씩 끌려오며 섬뜩한 소리가 울렸다.
쾅! 콰앙!
“진작 이렇게 할 걸!”
그 소리를 신호로 철갑보안관이 거대한 총을 쏘아대기 시작했고.
“택배 왔습니다!”
이어서 정글러, ‘타란튤라 퀸’도 모습을 드러냈다.
치열한 대치가 끝나려는 순간!
저벅.
상대 환영군주가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 나왔다.
3:2인 상황.
심지어 사막 궁수는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니, 사실상 3:1이었다.
한데 왜일까?
환영군주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있었다.
‘왜케 쎄하지?’
그리고 몇 초가 채 지나기도 전에.
닻 사냥꾼의 불안감은 현실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