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4화. 퓨처 워 -배치고사(3)
“아!”
어느새 상대 서포터의 목전까지 끌려간 사막 궁수.
-슬금슬금 포지션 앞으로 잡을 때부터 저럴 거 같더라 ㅋㅋㅋㅋ
-걍 버려야 할 듯…….
-ㅇㅈㅇㅈ 줄 건 줘야지;;;
-아니 ㅋㅋㅋ 어떻게 스킬 한 번 던졌다고 바로 걸리냐 ㅋㅋㅋㅋ
“아이고, 죄송요. 서폿님 저 버리고 튀세요.”
채팅창도, 사막 궁수도 이미 끝났다고 생각하는 반응이었다.
뭐, 스킬에 걸려서 끌려간 데다.
상대 정글인 타란튤라 퀸까지 나타났으니 포기하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지호의 생각은 달랐지만.
‘해볼 만한데?’
사막 궁수를 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주더라도 이득은 최대한 뽑아내야 하지 않겠는가.
“원딜님, 다른 놈들은 무시하고 거미한테 스킬 다 써 주세요. 뒤는 제가 맡을게요.”
이득을 볼 수 있는 각이 보였기에.
지호는 거침없이 말하며 앞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죽어보자!”
적 서포터는 또다시 닻을 높이 들어 올리고 있었다.
다른 스킬을 쓰려는 모양이다.
그에 따라 닻이 풀리며 사막 궁수가 잠시 자유를 되찾았지만, 도망칠 기회는 없었다.
푸슉!
“어딜 가려고!”
곧바로 타란튤라 퀸의 거미줄이 그를 느리게 만들었으니까.
이미 체력은 바닥난 상황.
사막 궁수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다.
‘거미한테 스킬을 박으라고?’
솔직히, 어차피 죽을 텐데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하지만 밑져야 본전 아니겠는가.
그는 곧바로 활을 들고 스킬을 전부 발동했다.
목표는, 신난 얼굴로 독을 쏘아대고 있는 타란튤라 퀸.
구웅-!
화살 끝에 모랫빛 기운이 모이더니 그대로 앞으로 방출되었고.
쐐액! 쐐애액!
그 뒤를 강렬한 힘이 담긴 세 발의 화살이 뒤쫓았다.
결과는 전부 직격!
워낙 가까운 거리였던 터라, 빗나가는 일은 없었다.
동시에.
체력이 완전히 바닥난 그의 시야가 회색으로 변했다.
[퍼스트 블러드(First Blood)!]
[타란튤라 퀸 → 사막 궁수]
“미친, 왜 발악이야.”
갑작스러운 반격에 당한 타란튤라 퀸은 눈살을 찌푸렸다.
훅 줄어든 체력이 불편하기 때문.
하지만 괜찮다.
적 서포터인 환영군주까지 잡으면 엄청난 이득일 테니까.
마침 사정거리까지 다가온 상대.
“서폿 친구야, 죽고 싶으면 말을 하지. 왜 뛰어오고 그래!”
그는 미소를 지으며 거미줄을 던졌다.
“쟤까지 조져!”
“오케.”
이어서 철갑보안관과 닻 사냥꾼도 각자 무기를 들었다.
아무리 상대가 비범하다 한들.
3:1인데.
그들은 당연히 이기리라 생각했다.
상대 환영군주의 손이 움직이기 전까지는.
* * *
-이게 각이 나오나?
-정글러는 잡을 수도 있을 듯?
-그거 하나 잡고 죽으면 딱히 이득도 아닌데;; 에바 아닌가 ㅋㅋㅋㅋ
-좀 무리하는 거 같은데.
-미다스라 또 모르긴 함 ㅋㅋㅋ
-하긴…….
지호의 방송을 보던 시청자들도 부정적인 건 마찬가지였다.
3:2도 힘겨운 판에.
심지어 지금은 3:1이다.
어떻게 봐도 무리수였지만.
그들은 왠지 모를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다.
왜냐?
상대가 그 미다스였으니까.
이번에도 혹시나 싶은 것이다.
“서폿님, 그냥 빼시지 위험한-.”
먼저 죽은 사막 궁수만이 조심스럽게 말려보려 했으나.
그는 말을 끝맺지도 못했다.
후웅-! 사락!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두 개의 환영이 나타나더니.
지호를 포함, 총 세 개체가 거의 동시에 채찍을 휘두르며, 적들의 손목을 전부 낚아챘으니까.
-???????
-방금 내가 잘못 본 건가?
-미친…….
-아니, 이건 또 뭐야 ㅋㅋㅋㅋ
-저거 원래 한 번에 쓸 수 있는 거임????
-뇌가 여러 개면 가능할 수도? 한 번에 다 컨트롤해야 하니까.
-그럼 미다스는 뭐야;;;;;
-몰라 ㅋㅋㅋㅋ 슈퍼컴인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혹시나 싶어 기대하고 있던 시청자들도 이렇게 놀라는데.
다른 이들은 어떻겠는가.
“어?”
“무, 뭐야!”
그들은 하나같이 경악한 표정으로 지호를 바라보았다.
특히, 애초에 경계하고 있던 닻 사냥꾼은 입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
피지컬이 좋다는 생각은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도가 지나치지 않은가.
‘이게 무슨…….’
워낙 화려하기로 유명한 환영군주라 영상은 많이 봤다.
당연히 무슨 상황인지도 알고.
문제는.
‘저걸 어떻게 한 번에 쓰냐고.’
환영군주의 핵심 스킬, ‘환영’은 활용 난이도가 어렵기로 손꼽힌다.
그 이유는, 하나하나 직접 조작해야 하기 때문.
멀티태스킹도 어느 정도여야지.
한 번에 여러 개의 몸을 움직이는 느낌이라는데, 쉬울 리 없지 않은가.
한데, 저 환영군주는 동시에 채찍을 휘두르면서도 전부 다 맞췄다.
“아, 몰라. 일단 조지죠.”
이게 뭔 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떻게든 죽이면 될 터.
닻 사냥꾼은 곧바로 다시 닻을 환영군주에게 겨눴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쿵!
검은색의 구슬이 타란튤라 퀸을 강타하기 시작했다.
환영군주의 스킬, 환영구슬이었다.
쿠웅!
콰아앙!
잠깐 사이에 날아든 구슬만 9개.
그것도 모두 같은 위치에 꽂혔다.
환영구슬은 비슷한 위치에 적중할 때마다 추가 데미지가 들어간다.
한데 9개가 적중하면 어떻겠는가.
“미친-!”
타란튤라 퀸이 단발마의 비명과 함께 사라졌다.
안 그래도 줄어있던 그의 체력이 순식간에 바닥까지 떨어진 것이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환영군주 → 타란튤라 퀸]
순식간에 한 명이 사라지는 마술.
너무나도 이질적인 그 광경에 닻 사냥꾼은 확신했다.
‘지금 안 잡으면 못 잡는다.’
저게 피지컬이든, 핵이든.
그들이 잡을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유일한 기회라면.
스킬이 쿨타임일 바로 지금!
“형, 빨리 가자.”
“어……. 되겠냐?”
“어차피 쟤 스킬도 다 썼잖아, 바로 들어간다.”
그는 숨까지 참으며 집중력을 끌어올린 후, 닻을 던졌다.
후웅!
맹렬한 기세로 지호를 향해 날아드는 거대한 닻.
자칫 닿기라도 하면 사막 궁수처럼 일반적으로 당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저건 안 맞지.’
지호는 한 걸음 옆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미리 짜기라도 한 듯, 닻이 허공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건 못 피할 거다!”
첫 번째는 쉽게 피했다지만, 적은 둘. 당연히 공격은 끝이 아니었다.
이어서 철갑보안관의 총구가 불을 뿜기 시작한 것이다.
쾅! 콰앙!
자신감 넘치는 외침처럼 나름 절묘한 위치였다.
뭐, 피하려면 피할 수는 있겠지만.
지호는 도망치지 않았다.
그저 묘한 미소와 함께, 손가락을 튕길 뿐.
따악-!
[스킬 ‘환영군주의 시간’을 발동합니다.]
[환영군주의 시간을 제외한 모든 스킬의 쿨타임이 초기화됩니다.]
[사용 가능한 환영의 수가 2배로 증가합니다.]
[체력이 10%까지 떨어집니다.]
[이동속도가 50% 감소합니다.]
[적 처치에 관여할 때마다, 환영군주의 시간을 제외한 모든 스킬의 쿨타임이 초기화됩니다.]
[남은 시간 : 10초]
그와 동시에.
전장에 네 개의 환영이 나타났고.
모든 환영들이 채찍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피지컬로 찍어 누르는 플레이의 시작이었다.
* * *
-궁이 어케 벌써 활성화 됨??
-환영군주는 스킬 맞춘 횟수가 조건이잖아 ㅋㅋㅋㅋ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벌써 차는 게 말이 됨?
-ㅇㅇ 말이 되긴 함. 추가 데미지 들어갈 때마다 활성화 조건이 기하급수적으로 차거든.
-아니, 그걸 계산했다고????
-처음부터 궁각까지 계산하고 들어간 거구나 ㅋㅋㅋㅋㅋㅋ
-진짜 괴물이네;;;;
[피지컬 갓겜]
퓨처 워를 부르는 다른 말이다.
그만큼 피지컬이 중요하다는 뜻.
이를 증명하듯, 퓨처 워는 같은 영웅이라도 누가 사용하는가에 따라 성능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대표적으로는, 궁극기가 그렇다.
퓨처 워의 모든 영웅은 처음부터 궁극기를 가지고 시작한다.
그러나 곧바로 쓸 수는 없는데.
활성화까지 조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너무 이른 타이밍이라 당연히 적들은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지호는 그 조건을 달성한 것이다.
쾅! 쿠아아앙!
‘환영군주의 시간’으로 체력이 10%까지 떨어졌다.
총알에 스치기만 해도 위험할 터.
그 말은, 달리 말하자면.
‘안 스치면 된다는 소리지.’
흉흉한 기세를 머금은 거대한 총알들이 보인다.
한 가지 다행인 건.
속도는 그다지 빠르지 않다는 것.
지호는 차분히, 그리고 섬세하게 다섯 개의 채찍을 휘둘렀다.
자신을 제외하고도 네 개의 환영.
총 다섯 개체를 동시에 다루고 있음에도.
왜인지 버겁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에게는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처럼 쉽게만 느껴졌으니까.
휘릭!
묵빛 채찍이 허공을 가르더니.
그를 향해 날아들던 총알을 하나하나 맞추기 시작했다.
틱! 티익!
그저 조금씩 궤도를 비틀 뿐, 완전히 튕겨내진 못한다.
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방향이 조금만 틀어져도 결과는 확연히 다를 테니까.
구웅-!
이어서 지호와 환영의 손 위로 검은빛의 구슬들이 떠올랐다.
공격스킬, 환영구슬을 발동한 것.
[잔여 환영구슬 : 3]
남은 환영구슬은 개체 당 3개씩.
쐐액!
찰나의 차이로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총알의 바람을 느끼며.
그는 모든 환영구슬을 던졌다.
콰앙! 콰아앙!
역시나, 예상대로.
방향이 어긋난 총알들은 아무도 없는 바닥을 강타했고.
“미친 핵쟁이 새끼, 내가 꼭 신고한다 X발…….”
반면, 지호가 던진 환영구슬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철갑보안관을 정확히 덮쳤다.
스콰아앙!
[더블 킬!]
[환영군주 → 철갑보안관]
분명 3:1이었는데, 순식간에 두 명이 사라졌다.
남은 건, 서포터인 닻 사냥꾼뿐.
“이건 진짜 에바지!”
그는 황급히 도망치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킬을 먹고 초기화된 환영군주의 스킬이 또다시 그를 덮치기 시작했으니까.
* * *
[트리플 킬!]
[환영군주 → 닻 사냥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뭘 본 거냐 ㅋㅋㅋㅋㅋ
-상대 얼 타는 거 개웃기네 ㅋㅋㅋㅋㅋㅋㅋ
-얼 안 타게 생겼냐고 ㅋㅋㅋㅋ
-찢.었.다.
-아니 ㅋㅋㅋㅋ 이 사람 진짜 뭐임 ㅋㅋㅋ 환영이랑 본체랑 그냥 동시에 스킬 나가던데? ㅋㅋㅋ
-궁 쓴 다음은 더 미쳤지 ㅋㅋㅋ
-아까 상대가 죽고 싶으면 말을 하지 이러던데 ㅋㅋㅋㅋㅋ 민망하겠누 ㅋㅋㅋㅋㅋㅋㅋ
-환영군주 원래 이렇게 좋았냐?
-해봐 ㅋㅋㅋㅋ 저렇게 쓸 수 있나 ㅋㅋㅋㅋㅋ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명장면에 채팅창이 들끓었고.
[‘캬…’님이 1,000원 후원!]
[미쳤다.]
[‘인정협회’님이 10,000원 후원!]
[인정협회에서 인정하고 갑니다.]
[‘서폿유저’님이 10,000원 후원!]
[이게 진짜 서폿이구나…!]
[‘괴물ㅋㅋ’님이 100,000원 후원!]
[진짜 놀라운 건 이게 핵이 아니라는 거임 ㅋㅋㅋㅋㅋㅋ]
후원도 계속해서 올라왔다.
심지어는.
“방금 그거 어떻게 한 거예요? 버그에요? 핵임?”
같은 팀의 원딜, 사막 궁수까지 그를 바짝 쫓아오며 질문을 던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핵이 아니면 뭐임!!!
-나였어도 핵이라고 했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ㅇㅈ;;;;;
-핵이 아닌 게 더 신기함 ㅋㅋㅋ
“핵 아닙니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들어본 질문.
지호는 태연하게 대답하며 라인으로 복귀했다.
깡! 까앙! 파삿!
다시 라인에 도착하자.
처음처럼 서로를 공격하고 있는 양 팀의 전투 로봇들이 보였다.
한 가지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상대 봇듀오가 거의 타워를 끼다시피 사리고 있다는 것.
-쟤네 왜 저렇게 뒤에 있냐 ㅋㅋㅋㅋㅋㅋㅋㅋ
-쫄았쥬?
-저래가지고 경험치나 제대로 먹겠나 ㅋㅋㅋㅋㅋ
-딱 봐도 실력 차 나는데 사려야지 어쩌겠어…….
‘뭐, 상관없지.’
저들이 사리면 오히려 좋다.
경험치도 못 먹게 말려 죽이면 되니까.
“원딜님, 견제는 제가 다 할 테니까, 막타만 잘 챙기세요.”
지호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넵!”
그 말을 들은 사막 궁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토를 달 생각도 없었다.
왜냐?
‘딱 봐도 차원이 다른 고수니까.’
방금 전의 3:1만 봐도 알 수 있다.
저 사람은 괴물 아니면 핵이다.
안 그래도 미드 때문에 배치부터 망하는 거 아닌가 불안했던 참인데.
버스에 탈 기회가 온 것이다.
‘이럴 땐 얌전히 버스나 타는 게 상책이지.’
사막 궁수가 이처럼 생각하며 안심하던 그때.
또다시 기계음이 전장을 울렸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사이오닉커 → 가속검]
[적, 더블 킬!]
[사이오닉커 → 그림자 늑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