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5화. 퓨처 워 -배치고사(4)
미드에서 아군들이 죽었다는 알림.
이어서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늑대새끼 뭐하는데! 거기서 그딴 식으로 들어오면 어캄? 진짜 벌레네.”
“어이가 없네. 숨도 못 쉬고 처맞는 거 도와주러 갔다가 니가 헛짓거리해서 같이 죽은 건데 이걸 내 탓을 해?”
“지랄 마. 스택 좀만 더 쌓으면 궁으로 폭딜 넣어서 죽일 수 있는 거였는데, 저 새끼 때문에 다 망했네.”
“녜이, 녜이. 그러시겠죠.”
대강 들어보니 정글러가 갱을 갔다가 역으로 당한 모양이다.
“우리 서폿님이 정글까지 다 잡아서 할 만해요. 다들 멘탈 잡고 하시죠.”
사막 궁수가 애써 다독여봤지만.
“정글러가 벌레라 어차피 질 텐데 뭘 멘탈을 잡아.”
“그러게. 미드가 사람이 아니라 지겠네요. 어휴, 서폿님이 미드 갔으면 그냥 찢었을 텐데, 어떤 트롤이 미드 간다고 찡찡대서…….”
도리어 불만 더 지필뿐이었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언쟁.
그 끝은 결국 파국이었다.
“걍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미드에 얼씬도 하지 마라.”
“와 달라고 빌어도 안 갈 테니 걱정 마셔. 적당히 못 해야 각을 보던가 하지.”
-벌써 싸우네 ㅋㅋㅋㅋㅋ
-배치가 그렇지 뭐…….
-이렇게 보니까 웃기긴 하네. 반만 해도 이기는 게임인데 이걸 안 받아먹어? ㅋㅋㅋㅋㅋㅋ
-저런 애들이 브론즈 가는 거;;
하지만 퓨처 워에서는 흔한 일이다.
어차피 말려봐야 듣지도 않을 거.
굳이 그들을 말리는 대신 지호는 현황판을 살폈다.
‘좋진 않네.’
방금 더블 킬을 당한 미드와 정글은 말할 것도 없고.
정글과 듀오라던 탑도.
전투 로봇 처치 수가 1.5배 이상 차이 나는 등, 맥을 못 추고 있는 상황이었다.
“서폿님, 이거 우리가 캐리해야겠는데요? 다른 라인은 좀…….”
그때, 사막 궁수가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조심스러운 표정을 보니 지호와 마찬가지로 현황을 확인한 모양이다.
-우리 ㅋㅋㅋㅋㅋㅋㅋㅋ
-뭘 했다고 우리입니까 선생님.
-은근 슬쩍 묶는 거 진짜 개웃기네 ㅋㅋㅋㅋㅋ
우리라는 표현에 시청자들이 장난치듯 웃었지만, 그의 말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원딜이든, 서폿이든.
봇듀오가 캐리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러게요, 일단 쟤네 둘부터 잡아볼까요?”
안 그래도 같은 생각이던 참.
지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흠, 근데 쟤네가 타워를 끼고 있어서 좀 빡세겠네요.”
하지만 그의 대답에도 사막 궁수의 표정은 어두웠다.
쉬운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가요?”
심란한 그의 목소리에 지호는 상대 포탑을 바라보았다.
쾅! 콰앙!
철갑보안관은 어느새 포탑 근처까지 밀고 들어간 전투 로봇들을 향해 총을 쏘아대고 있었다.
여전히 타워 옆에 딱 붙은 상태로.
마찬가지로, 닻 사냥꾼도 타워 범위를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경험치나 골드를 손해 보더라도 죽는 것보다는 낫다는 판단이었을 터.
-저러면 잡기 빡세긴 함.
-맞지, 다이브 뛰어야 하는데, 초반이라 타워 딜이 너무 쎄 ㅋㅋㅋ
-근데 사실 그냥 천천히 말려 죽여도 이득이긴 하니까…….
-ㅇㅇ 그게 나을 듯;;;;
시청자들의 말처럼, 타워에 붙어있는 적을 잡는 건 빡세다.
범위 내에서 저들을 공격하면, 곧바로 타워가 반격할 테니까.
그걸 알기에 경험치나 골드만 못 먹게 방해할 생각이었지만….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빨리 정리하는 게 편하겠지.’
대강 상황을 보아하니 이대로 흘러가면 귀찮아질 가능성이 클 터.
그렇게 되기 전에 게임을 휘어잡을 생각이었다.
게다가, 다소 귀찮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타워 사거리만 잘 조절하면서 싸우면 그만이니까.
“원딜님, 일단 처음엔 서폿. 그다음엔 원딜입니다. 그것만 기억하세요.”
“넵!”
지호는 간단하게 오더를 내렸고.
사막 궁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키는 대로 하면 이길 거라 굳게 믿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게임 내내 사막 궁수는 그 판단을 후회하지 않았다.
* * *
‘하… 환장하겠네.’
그 시간.
지호의 상대팀 미드라이너, 사이오닉커는 속으로 한숨을 쉬고 있었다.
휘릭-! 쐐액!
적 가속검이 빠르게 달려들며 검을 휘둘렀으나.
그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텅!
그가 손을 휘젓자, 빈 허공에 에너지 장막이 나타나며 가속검의 검을 튕겨냈고.
콰르르르-쿠웅!
이어서 사이오닉커의 스킬, ‘사이오닉 썬더’가 적에게 꽂혔으니까.
[적을 처치했습니다!]
[사이오닉커 → 가속검]
이미 성장차가 크게 벌어져, 가속검이 미드에 복귀하는 족족 바로 죽일 수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럼 뭐하겠는가.
[아군이 당했습니다!]
[환영군주 → 닻 사냥꾼]
[적, 더블 킬!]
[환영군주 → 철갑보안관]
‘봇이 저렇게 죽어주는데…….’
사이오닉커는 또다시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현황판을 확인했다.
[미다스(환영군주) : 10/0/3]
벌써 10킬 3어시스트.
[적이 첫 번째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심지어 이제는 포탑까지 밀어버렸다.
다음은 미드 아니면 탑일 터.
“봇듀오 진짜 뭐하냐? 똥을 싸도 적당히 싸야지. 어떻게 치우라고 저렇게 푸짐하게 싸지르냐?”
짜증을 참지 못했는지.
탑 라이너, ‘기계전문가’가 봇듀오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아니, 쟤가 진짜 잘한다니까?”
“우리가 못하는 게 아니라, 진심 핵인 거 같음. 그냥 미쳤음 진짜.”
“봇듀오 말이 맞아요. 오죽하면 제가 갱도 갔는데 3 대 1을 졌겠어요.”
원딜과 서폿, 그리고 정글까지 연신 변명을 늘어놓았으나.
“아… 그래서 10번이나 죽어줬냐? 그래, 못할 수도 있어. 근데 못하면 사려야지 왜 계속 죽어주냐고.”
기계전문가는 이미 머리끝까지 화가 나 있는 상태였기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이미 죽은 거 어쩔 수 없죠. 좀만 더 해봅시다.”
사실 벌써 5킬을 따낸 사이오닉커도 억울하기로는 결코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별말을 하지 않았다.
로딩 때부터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상대에 그 미다스가 있을 줄이야.’
핵으로 논란이 된 영상도 그렇고.
이후에 배틀 에어리어라는 신작 게임에서 날뛰는 광경도, 그는 실시간으로 보았다.
상대가 진짜 그 미다스라면 죽었다 깨어나도 이기지 못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빠르게 체념할 수 있었던 것.
‘일단 뭐, 최대한 해봐야지.’
사이오닉커가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있던 그때였다.
“서폿 안 보여요! 위로 올라갔을 듯!”
닻 사냥꾼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리고 동시에.
사이오닉커는 볼 수 있었다.
저벅, 저벅.
적 타워 뒤쪽에서 환영군주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상대의 정체를 알고 있어서일까?
그럴 리가 없는데, 환영군주의 덩치가 거대하게 느껴졌다.
도저히 이긴다는 그림이 떠오르지 않는 압박감.
하지만 그 와중에 이런 의문도 스물스물 들었다.
‘아, 너무 쫄아 있나? 내가 이길 수도 있는 거 아니야?’
똑같이 배치를 보는 상대를 간단히 압살하는 것으로 알 수 있듯.
그도 게임은 좀 하는 편이었다.
자연스레 혹시나 하는 생각을 참을 수 없었던 것.
미다스가 피지컬이 좋다는 건 알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 좋았다.
그가 진짜 실력자라면, 배치인 지금이 아니면 못 만날 상대라는 걸 알기에.
“환영군주 미드에 왔습니다. 잡아볼게요.”
사이오닉커는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억누르며, 다가오는 상대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 * *
-오, 안 빼려나본데?
-지도 잘 컸다 이건가 ㅋㅋㅋ
-하긴… 그래도 킬 좀 먹은 미든데 서폿한테 쫄아서 바로 튀는 건 오바지 ㅋㅋㅋㅋ
-그래봐야 밥일 텐데ㅠㅠㅠ
-쟤는 모르겠지…….
10킬 서포터와 5킬 미드 라이너.
사이오닉커가 전투 로봇의 경험치와 골드를 혼자 먹었다는 걸 감안하면 성장 정도는 비슷하다.
하지만 지호도 시청자들도.
심지어는 상대 사이오닉커까지도.
지호의 패배를 떠올리지 않았다.
그리고 모두의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환영군주 → 사이오닉커]
10초.
단 10초 만에 지호가 상대를 처치했으니까.
상대의 모든 스킬을 피하고.
그의 모든 스킬은 정확히 퍼부었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좀 잘 컸나 싶었는데, 간단하네요.”
지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간단 ㅋㅋㅋㅋㅋㅋㅋ
-킬 미션 건 놈 지갑 어카냐 ㅋㅋㅋㅋㅋㅋㅋ
-그러게 ㅋㅋㅋㅋ 이제 진짜 눈 마주치면 다 죽을 텐데 ㅋㅋㅋㅋㅋ
-벌써 11킬인데 눈물나네….
-하긴 미다스 클라스가 있는데 배치는 양학하는 게 맞지 ㅋㅋㅋ
그나마 잘 큰 사이오닉커도 상대가 안 되는 데, 다른 이들이 지호를 막을 수 있을 리 없다.
이제 남은 건.
말 그대로 킬을 쓸어 담는 것뿐.
모두가 미션을 건 시청자를 놀리기 시작했을 그때.
새로운 알림이 전장을 울렸다.
[적이 항복했습니다.]
-엥?????
-갑자기??????
-미다스가 잘 크긴 했는데, 이걸 한타도 안하고 서렌친다고?
-뭐지 ㅋㅋㅋㅋㅋㅋ
뭐,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하지만 황당하긴 했다.
보통 아무리 게임이 망했어도, 혹시나 싶어서 마지막 한타는 하기 마련이니까.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미다스 님, 영상으로 볼 때도 놀랐는데 실제로는 보니까 더 엄청나네요. 한 수 잘 배우고 갑니다.”
상대 미드인 사이오닉커의 전체 채팅이었다.
가장 잘 큰 미드가 포기했기 때문에, 나머지들도 자연스레 포기한 것.
-아 ㅋㅋㅋㅋㅋ 알고 있었구나.
-배치에서부터 샤라웃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친…….
-벌써 유명인이네;;;;;
-하긴 ㅋㅋㅋ 그거 본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건 말이 안 되긴 해 ㅋㅋㅋㅋㅋ
시청자들은 빠르게 납득했다.
미다스라는 이름이 겜잘알을 도배했던 기간이 최소 3일 이상인데.
누군가 알아보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닐 테니까.
“이건 좀 신기하네요.”
누군가 자신을 알아봤다는 사실에 지호가 머리를 긁적이는 것도 잠시.
[승리!]
이내 새로운 알림과 함께, 상대의 본진이 터졌다.
지호의 첫 번째 배치고사가 승리로 끝난 것이다.
* * *
빠르게 다음 판을 돌린 지호.
이번에는 별 부딪침 없이 가속검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캐릭터를 선택하자마자.
[미션 성공!]
[‘서폿유저’님이 100,000원 후원!]
[눈정화 제대로 하고 갑니다.]
[미션 성공!]
[‘과연’님이 110,000원 후원!]
[사이오닉커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11만원으로 끝낼 수 있었어요!!]
후원들이 한 번에 들어왔다.
지난 게임에 걸린 미션들을 이제야 정산한 것.
“다들 감사합니다.”
지호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던 찰나.
-와 ㅋㅋㅋ 상대 미드 봐 ㅋㅋㅋ
-쟤가 왜 여기서 나오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쟤 설마 전판 가속검임?
-ㅇㅇ 이번 판은 꽁승이네.
-미친 ㅋㅋㅋㅋ 이번판은 환영군주네 ㅋㅋㅋㅋㅋ
거액의 후원이 순간 묻힐 정도로 채팅창이 뒤집어졌다.
상대 미드가 전판에 가속검을 플레이했던 그였으니까.
심지어 그가 선택한 영웅은 환영군주였다.
-전판 미다스 하는 거 보고 골랐나본데…….
-쟤가 그게 되겠나 ㅋㅋㅋㅋ
-저 새끼 끝까지 깐족거리는 거 킹받았는데 개꿀.
-참교육 드가자~~~
결과가 훤히 예상되는 상황.
지호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서폿유저 님, 과연 님 다시 한번 후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번 판은 빨리 끝내겠습니다.”
* * *
몇 시간 후.
처음 겜잘알에 미다스의 배치에 관한 글을 썼던 이가 다시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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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다스 배치 빡셀 거 같다는 놈들 다 어디 갔냐???
벌써 배치 9승 0패임.
한 판만 더 이기면 전승인데 ㅋㅋㅋㅋㅋㅋ
트롤이니 저격이니 하던 놈들.
다 지금 어디서 뭐하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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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비꼬는 글.
하지만 부정적인 댓글을 썼던 이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미다스가 결과로 보여줬으니까.
대신, 다른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협동겜? 피지컬로 찢으면 그만.
-미친 ㅋㅋㅋㅋㅋㅋㅋㅋ
-배치 10승 받으면 뭐 나오냐?
-정확히는 모름. 최소 골드 이상.
-근데 전적 보니까 미다스 킬이랑 어시도 미쳤는데?? 개 높게 나올 듯.
-ㄹㅇ ㅋㅋㅋㅋㅋㅋㅋ
-전적 보니까 진짜 괴물이네;;;
퓨처 워의 배치고사 결과가 어떻게 산정되는지 정확히 아는 이는 없다.
똑같이 5승 5패를 하더라도 결과는 다른 경우도 빈번했기 때문이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승패뿐만 아니라 과정도 영향을 끼칠 거라 예상했다.
그간의 결과가 그래왔으니까.
현재 미다스의 전적은 9승 0패.
그것도 모든 판이 멱살 잡고 이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킬 수가 가장 적은 판이 11킬인 첫 번째 판인데 어련하겠는가.
-이건 진짜 뭐 나올지 모른다.
-ㅇㅇ 무조건 봐야겠네.
-아직도 안 보고 있었냐??
역대급 결과가 예상되는 상황.
당연히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었고.
[현재 시청자 수 : 10,322]
그렇게 시청자 수가 만 명을 돌파했을 즈음.
마지막 큐가 돌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