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6화. 퓨처 워 -악질 저격 BJ(1)
“쩝… 좀 오래 걸리네요.”
9연승을 달리고 있는 배치의 마지막 판.
당사자인 지호도.
-그러게요 ㅠㅠㅠ
-이번 판은 진짜 오래 걸리네;;;
-슬슬…….
만 명이 넘는 시청자들도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다.
[게임 찾는 중]
[11:53]
11분이 지나도록 새 게임이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치 9연승이라 그런 듯 ㅋㅋㅋ
-그래도 11분은 좀 많이 긴데;;; 뭔 챌린저도 아니고…….
-뭐, 전판 보니까 플레들도 잡히던데, 쌩 배치에 이 정도 티어는 거의 없으니까 오래 걸릴만하지.
-ㄹㅇ ㅋㅋㅋㅋㅋㅋ
뭐, 납득이 안 되는 건 아니다.
그만큼 이례적인 경우였으니까.
퓨처 워의 배치는 이길 때마다 티어가 급격하게 올라가는 시스템.
특히, 연승을 이어갈수록 그 상승폭은 커진다.
한데 9연승이면 어떻겠는가.
이제는 배치를 보는 사람은 만나지도 못할 정도였다.
“그렇긴 한데, 이번에는 좀 심하게 오래 걸리네요. 전판은 5분 정도 걸렸던 거 같은데.”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11분은 너무 길지 않은가.
이쯤 되면 버그 아닐까 싶어 고개를 갸웃하던 찰나, 기다림의 끝을 알리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쿵!
[게임을 찾았습니다!]
새로운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오! 드디어!!!
-자, 막판 드가자~~~
-캬…….
-이번엔 평균 티어 어디일지 벌써 궁금하네 ㅋㅋㅋㅋㅋ
-전적검색 대기 중 ㅋㅋㅋㅋㅋ
“갑니다.”
지호는 바로 수락을 눌렀고.
곧바로 시야에 보이는 풍경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후웅!
먼저, 바닥이 사라지더니. 이내 ‘황폐화된 도시’를 묘사한 거대한 지도가 빈자리를 채웠다.
이제는 익숙한 풍경.
랭크 게임의 캐릭터 선택창이었다.
[배정된 포지션 : 중앙]
‘다행이네.’
이어서 배정된 라인까지 확인한 지호는 안도의 한숨을 토했다.
평소처럼 미드를 선택하긴 했으나.
워낙 게임을 찾는 시간이 오래 걸렸던 터라 혹시나 싶었던 것이다.
간혹 아무 포지션에나 배정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으니까.
“포지션은 안 꼬였네요.”
다행히 이번에도 미드였다.
게다가 미드를 가겠다고 우기는 이도 없었다.
그 말인즉, 승리의 보증수표인 가속검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소리!
-캬ㅑㅑㅑ 가속검 나오나요???
-이번판도 찢겠네 ㅋㅋㅋㅋ
-미다스 가속검은 진짜 봐도 봐도 맛있음 ㅋㅋㅋㅋㅋ
-배치 10연승 가자!!!!!
채팅창은 이미 축제 분위기였다.
지호의 가속검은 핵 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남다른 수준이니까.
당연히 이기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자연스레 그들의 관심은 다른 곳으로 넘어갔다.
바로, 해당 게임의 수준이었다.
-전적 조회한 사람?
-미쳤음 ㅋㅋㅋ 평균 티어 플2!
-큐 오래 잡을만했네 ㅋㅋㅋ 무슨 다이아도 있는데???
-오……. 생배치에서 다이아를….
-이건 진짜 말도 안 되는데;;;
-걍 얘는 규격 외임 ㅋㅋㅋ
이번에도 채팅창의 반응은 격했다.
첫 배치고사에서 다이아를 만나다니!
전례 없던 일이었기에, 그들의 놀라움은 지극히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 하던 대로 하면 되겠죠.”
그들과 달리 지호는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실버 큐든, 다이아 큐든.
해야 할 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테니까.
그는 언제나 최선을 다할 뿐이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
-하긴 ㅋㅋ 그 정도는 이길 듯?
-ㅇㅈ 다이아 있다고 질 거였으면 진작 졌겠지 ㅋㅋㅋㅋㅋㅋ
-배치에서 만난 게 신기하긴 한데, 뭐 그 정도야…….
시청자들도 그의 말에 동의했다.
첫 배치에서 다이아를 만난다?
당연히 신기한 건 맞다.
하지만 그저 신기하다 정도일 뿐.
결과가 달라질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플래나 다이아 하위 티어가 있다고 불안해하기에는 지호가 보여준 플레이가 너무 뛰어났으니까.
하지만 그건 방해가 없을 때의 이야기.
누군가가 방해한다면 난이도는 급격하게 올라간다.
바로, 지금처럼.
“오, 진짜 미다스 잡혔네. 개이득.”
“음?”
막 밴픽을 시작하려는 와중.
갑자기 들려온 능글능글한 목소리에 지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미다스 맞죠? 반갑네요, 크크.”
목소리의 주인은 정글에 배정된 남자였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그는 불쾌한 미소를 지으며 지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지?’
의아한 기분이 드는 것도 잠시.
-쟤 라스코 아님?
한 시청자의 의문 섞인 채팅이 올라왔고.
-어? 라스코 맞는 거 같은데???
-ㅇㅇ 맞음…….
-아오;; 하필 쟤를 여기서 만나네;;;;;;
이어서 다른 시청자들도 격하게 동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쉴 새 없이 올라가는 채팅들 가운데 긍정적인 반응은 단 하나도 없었다.
역병을 만나면 이런 반응일까?
언뜻 봐도 이상했기 때문에, 지호는 고개를 갸웃하며 질문을 던졌다.
“라스코 님이요? 저는 처음 들어보는데 방송하시는 분인가요?”
만 명이 넘는 시청자의 힘을 보여주듯, 대답은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ㅇㅇ 근데 트리스는 아니고, 사파리에서 방송함.
-모르는 게 약임. 악질이라;;
-ㄹㅇ ㅋㅋㅋ 주 컨텐츠가 저격, 트롤, 시비걸기임 ㅋㅋㅋㅋ
-그냥 쓰레기;;;;
-오죽하면 현피도 몇 번이나 당할 뻔했다던데 ㅋㅋㅋㅋ
사파리는 트리스와 더불어 양대 방송 플랫폼 중 하나인 곳이다.
그곳에서 활동하는 방송인인 모양.
‘대충 어떤 느낌인지 알겠네.’
뭐, 다른 플랫폼의 방송인과 친분을 쌓지 말라는 규정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딱히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일단 시청자들의 반응도 그렇고.
그 전에, 쎄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아, 네. 반갑습니다.”
지호는 형식적인 인사만 건네고 다시 게임에 집중했다.
[금지 영웅을 선택하세요.]
보통 밴이라고 부르는 과정으로.
한 사람 당 하나씩 특정 영웅을 배제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상대하기 까다로운 영웅이나, 유난히 성능이 좋은 영웅을 금지하곤 하는데….
‘뭐, 아는 영웅도 별로 없으니까.’
지호는 아직 상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영웅이 없었기에.
언제나처럼 적당한 영웅을 선택했다.
[금지 영웅 선택이 끝났습니다.]
그리고 그때.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쿵!
[금지 영웅]
[가속검]
……
…
지금까지 주로 사용하던 가속검이 금지된 것이다.
-?????
-가속검을 밴한다고……?
-아니 ㅋㅋㅋ 요즘 미다스 말고 가속검 제대로 쓰는 사람이 어디있다고 저걸 ㅋㅋㅋㅋㅋ
-미친;; 라스코가 밴 했네?
-흠…….
-엿 같은 냄새가 나네…….
‘흠, 이건 예상 못했는데.’
사실 지금까지는 밴을 신경 쓸 일이 없었다.
가속검은 워낙 사용하기 어려워서 천대받던 영웅이라 밴 당할 일이 없었으니까.
한데, 배치 마지막 판에.
그것도 같은 팀이 밴할 줄이야.
‘이번 판은 좀 귀찮아지겠네.’
스멀스멀 느껴지는 쎄한 예감에 지호가 머리를 긁적이던 그때.
“어? 실수로 가속검을 밴해버렸네. 이거랑 환영군주가 주캐였지? 두 개 다 뺏기면 게임 어떻게 하려나 배치충이라 영웅 폭도 좁을 텐데……. 미다스, 막판은 져야겠네?”
라스코가 대놓고 긁는 말과 함께 환영군주를 골랐다.
-미친놈;;;;
-가속검 밴에 정글 환영군주? 진짜 가지가지 하네 ㅋㅋㅋㅋ
-이건 너무 티나는데…….
-진짜 미친놈인가???
-왜 저러는 거임;;;;;
뜬금없는 가속검 밴과.
정글 환영군주라는 낯선 픽.
그리고 라스코의 입에 걸려있는 비웃음까지.
공통적으로 나타내는 것은 하나다.
“저격이네요.”
저격.
그것도 노골적으로 패배를 노리는 악질 저격이라는 것.
한데,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방송하시는 분이 대놓고 저격하는 건 좀 신기하네요.”
-원래 사파리가 이런 거에 비교적 자유롭긴 함…….
-ㅇㅇ 글고 라스코도 이미지 신경 안 쓰는 악질이라;;;
-매번 정지 당하는데 안 바뀜.
-저래놓고 상대가 빡치면 미친놈처럼 좋아하잖아 ㅋㅋㅋ
“아아….”
보아하니 한두 번이 아닌 모양이다.
오죽하면 정지를 당하고 풀린 적도 있다고 하겠는가.
‘재밌네.’
마주칠 일이 거의 없는 다른 플랫폼의 방송인.
심지어 악질로 유명한 부류.
그냥 무시하는 게 현명할지도 모른다.
이번 큐를 취소하면 패배로 기록되겠지만, 그래도 시간 낭비는 하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저렇게 대놓고 걸어오는 도발은 참을 수 없지.’
게다가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이 순화되었지만.
그도 한참 게임을 즐길 때에는 만만치 않은 성격을 자랑했던 터.
“가속검이랑 환영군주 두 개 뺏겼다고 지겠냐. 한번 용 써봐. 어차피 니 생각대로는 안 될 테니까.”
그는 상대와 마찬가지로, 입가에 비웃음을 걸며 말했다.
쿵!
[영웅을 선택하세요.]
동시에 찾아온 그의 선택 차례!
허공에 몇몇 영웅들이 나타났다.
-서리검 어떰? 초중반만 조금 버티면 후반에 무쌍 가능함요.
-암흑과학자도 괜찮을 듯? 미다스님 피지컬이면 버프 오지게 잘 걸 수 있으니까 ㅋㅋㅋㅋ
-바위광인도 잘할 거 같은데.
-ㄴㄴ 피지컬로 다 찢을 수 있는 핏빛처형자가 베스트임 ㅋㅋㅋ
그와 동시에 채팅창에 수많은 영웅들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이때가 기회다 싶은 모양.
자신이 좋아하는 영웅을 피지컬로 유명한 지호가 다루는 걸 보고 싶어서일 것이다.
‘다 좋은 영웅들은 맞는데….’
아쉽게도 지금 지호가 고려하고 있는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들 추천은 감사합니다. 근데 이번엔 다른 걸 해야겠네요. 다들 예상하시겠지만, 이번 판은 정글이 없다 생각하고 해야 할 거 같아서요.”
이렇게 대놓고 저격했는데.
당연히 밴만으로 끝나진 않을 터.
최악의 상황엔 일부러 죽어주거나 하는 식으로도 방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 말인즉, 혼자서 날뛸 수 있다는 영웅을 골라야 한다는 소리!
-그럼 가속검이 최곤데ㅠㅠ
-ㅇㅇ 그래서 밴 한듯;;;
-진심 가속검이었으면 나머지 넷이 다 던져도 이길 텐데 ㅋㅋㅋ
가속검이 베스트인 건 맞다.
하지만 밴 당한 지금은 사용할 수 없으니, 차선책을 골라야 한다.
그가 선택한 차선책은 바로.
“귀신 고를게요.”
안개 암살자라는 이명이 있는 귀신(鬼神)은.
폭딜과 기동력을 갖춘 영웅이다.
한 가지 단점은, 주 스킬인 안개가 본인의 시야도 가린다는 것.
이는 극복할 방법이 있었기에.
지호는 고민 없이 귀신을 골랐다.
“캬, 배치에서 처음 하는 영웅 고르는 패기 봐라. 오집니다요.”
그러자 또다시 비꼬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대꾸하기도 전에 후원이 들어왔다.
[‘속보’님이 1,000원 후원!]
[지금 라스코 방 제목 : 미다스 저격 성공했습니다.]
-와 미친 그렇네? ㅋㅋㅋ 지금 라스코네 방 미션 걸려있음.
-ㄹㅇ????
-ㅇㅇ 방금 가속검이랑 환영군주 뺏었다고 달초코 5,000개 터진 거 같고 이번 판 지는 거 성공하면 만개 추가라는데 ㅋㅋㅋ
-만개면 얼마지?
-100만원 정도 됨;;
-미친;;;
-진짜 그 방송인에 그 시청자네 ㅋㅋㅋㅋㅋ
‘역시.’
패배를 위한 의도적인 저격.
돈까지 걸려있으니 분명 갖은 수를 써서라도 방해하려 들겠지.
하나, 불만스럽지는 않았다.
난관이 클수록 승리의 맛은 달콤한 법이니까.
여기에 추가적으로 재미를 볼 수 있는 방법까지 떠올랐기 때문에.
지호는 역으로 도발을 던졌다.
“거기 그쪽, 라스코 맞지? 어지간히 자신 있나 본데. 나랑 내기 하나 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