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비 스트리머가 게임을 잘함-37화 (37/110)

037화. 퓨처 워 -악질 저격 BJ(2)

방송 플랫폼 ‘사파리’에서 저격, 트롤링, 꼬장 등을 주 컨텐츠로 방송하는 BJ, 라스코.

매일같이 업보를 쌓은 덕분일까?

고작해야 200명인 평균 시청자에 비해 별명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쓰레기, 악질, 저격충 등등.

하지만 그럼에도 라스코는 악질 짓을 놓지 않았는데…….

남들처럼 무난한 방송으로 가면 경쟁이 빡셀 거라는 이유가 첫째고.

둘째는, 언젠간 빛을 볼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바로, 오늘처럼.

[현재 시청자 수 : 3,262]

[‘소리과바다’님이 달초코 500개를 선물!]

[캬 ㅋㅋㅋ 미다스 배치 10연승이 이렇게 막히냐 ㅋㅋㅋㅋ]

[‘A12211’님이 달초코 100개를 선물!]

[넌 당분간 겜잘알 보지마라 ㅋㅋ 아마 욕 존나 먹을 거다 ㅋㅋㅋ]

[‘[TK]나무’님이 달초코 1,000개를 선물!]

[오늘 처음 보는데 배포 야무지네. 어떻게 만 명이 보는 배치를 저격하냐 ㅋㅋㅋ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조져버려라.]

-진심 상남자여 ㅋㅋㅋㅋ

-미다스 방송 보는 놈 10명 중에 3명만 뛰어와도 여기 방 시청자보다 많은데 그걸 저격 ㅋㅋㅋㅋㅋ

-지가 계속 돌려서 저격 당한걸 누굴 탓하누 ㅋㅋㅋㅋ

-그러게 ㅋㅋㅋㅋ 누가 미다스한테 돌리라고 미션이라도 검? ㅋㅋㅋㅋㅋ

3,000명이 넘는 시청자와 정신없을 정도로 터지는 후원, 그리고 쉴 새 없이 올라가는 채팅들까지.

그가 방송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경험하는 것들이었다.

‘이게 대기업의 공기……?’

언제나 꿈만 꿔왔던 상황.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지만, 라스코는 일단 크게 외쳤다.

“캬! 형님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기세 몰아서 이번 판 열심히 패배해보겠습니다잇!”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열심히 패배 ㅇㅈㄹ ㅋㅋㅋㅋㅋ

-미친놈 ㅋㅋㅋㅋㅋㅋ

-역시 저격만 하는 남자 ㅋㅋㅋㅋ 마음가짐부터 남다르네 ㅋㅋㅋ

-이 새낀 그냥 또라이임 ㅋㅋㅋ

“에이, 형님들. 또라이는 무슨, 난 평균이지! 솔직히 트롤해서 애들 열폭하는 거 보면 존나 꿀잼이다아님? 이걸 어떻게 참아!”

-맞긴 해 ㅋㅋㅋㅋㅋ

-당하면 피 거꾸로 솟는데, 보는 건 개꿀잼임 ㅋㅋㅋㅋㅋ

-특히 배치 9연승을 막는다? 이건 진짜 맛있지 ㅋㅋㅋㅋㅋ

채팅창 분위기는 방송인을 따라간다는 말이 있다.

이를 보여주듯.

라스코의 말에 답하는 채팅의 대부분은 거친 욕설이 섞여 있었다.

다른 방송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하지만 라스코는 만족스러웠다.

미친 듯이 올라가는 채팅창을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불렀으니까.

“흐음, 흐응~.”

-신나서 흥얼거리는 거 봐라 ㅋㅋㅋㅋㅋㅋ

-진짜 미친놈이라니까 ㅋㅋㅋ

-미다스는 눈물 날 텐데 ㅠㅠㅠ

-그래서 더 재밌는 거 아님?

-맞지 ㅋㅋㅋㅋㅋㅋ

콧노래만 흥얼거려도 채팅이 올라오는데 욕 따위가 대수겠는가.

이 정도는 얼마든 들어줄 수 있다.

그럴수록 자극적인 방송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유입될 거고.

결국 돈으로 이어질 테니까.

‘저 멍청한 놈이 알아서 도와주니까 더 잘 풀리겠네.’

라스코는 싸늘한 눈으로 저 멀리 미드로 향하고 있는 미다스의 뒤통수를 응시했다.

게임이 시작되기 전.

녀석에게 들었던 말이 아직도 귓가에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어차피 던질 거잖아? 그쪽 계획대로 이번 판 지면, 내가 50만 원 후원할게. 대신 이기면 나한테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영상 올리고 영구적으로 박제하는 거 어때?

내기.

그것도 누가 봐도 라스코에게 유리한 내기였다.

정글이 대놓고 던지는데 어떻게 게임을 이기겠는가.

다들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스스로를 과신하고 있는 게 분명했기에.

라스코는 고민 없이 콜을 외쳤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옳았다.

[‘해피밀견’님이 달초코 10개를 선물!]

[‘해피밀견’님이 1,311번째로 팬클럽이 되셨습니다.]

[‘대두디’님이 달초코 10개를 선물!]

[‘대두디’님이 1,312번째로 팬클럽이 되셨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쉬지 않고 들어오는 달초코를 보면 알 수 있듯.

사람들은 그걸 원하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모두의 생각이 같을 수는 없는 법.

-근데 진짜 이 게임 이기면 어카냐? 미다스는 다를 텐데? ㅋㅋㅋ

종종 분위기 깨는 질문을 던지는 이들도 있었다.

벌써 몇 번이나 들은 질문.

그때마다 라스코의 대답은 같았다.

“에휴, 꼭 모르면서 저런 말 한다니까? 형님, 한 번만 말해 줄게 잘 들어. 던지는데 진다? 이건 던진 놈이 병신이라는 소리야. 잘 봐봐. 내가 예술적인 트롤을 보여줄게.”

한 명이 마음먹고 던지는 게임을 이기려면, 누군가 최소 3인분 이상은 해줘야 한다.

특히, 라스코처럼 많이 던져본 사람이 상대라면 더더욱 빡셀 테고.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당연히 자신이 있을 수밖에.

그럼에도 지면 어떻게 하냐고?

뭐, 별일이야 있겠는가.

욕이나 신나게 먹겠지.

어차피 욕먹는 건 익숙하다.

게다가.

‘이걸 이기는 게 말이 되나.’

내기는 이미 시작됐다.

재수 없는 생각 해봐야 달라질 건 없다는 말.

그는 괜스레 드는 불안한 예감을 억지로 떨쳐내며 말했다.

“일단, 상대 미드한테 버프부터 배달해줄까요?”

* * *

이처럼 라스코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그즈음.

미드에 도착한 지호는.

고개를 갸웃하며 상대 미드 라이너, ‘서리검’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오, 진짜 미다스네. 미다스 님 살살 좀 부탁드려요.”

또다시 그를 알아보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어떤 영상이라도 본 걸까?

서리검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잔뜩 어려 있었다.

게다가.

라인에 도착한 전투 로봇들이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했음에도, 그는 앞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아예 파밍을 포기할 생각인 모양.

-미다스 매드무비 봤나보네 ㅋㅋ

-진짜 잔뜩 쫄아있네 ㅋㅋㅋ

-서리검이랑 귀신이면 초반 상성은 서리검이 유리하지 않나???

-상성이 중요한가, 상대가 미다슨데…….

-하긴;;;

“각 재셔도 소용없습니다. 저 어차피 계속 타워 끼고 있을 거니까.”

경계는 또 얼마나 심한지.

서리검은 자신을 슬쩍 보는 눈빛까지 경계하고 있었다.

그의 말처럼 타워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어차피 킬을 어려울 터.

“네네, 알겠습니다.”

서걱! 사악-!

지호는 그를 노리는 대신.

차분히 전투 로봇을 베며 스킬 구성을 살폈다.

안개 암살자라고 불리는 귀신의 스킬 구성은 말 그대로 암살자 그 자체였다.

불투명한 안개를 펼쳐 시야를 가리는 ‘안개 장막’을 시작으로.

적의 등 뒤로 이동하는 ‘뒤 잡기’.

대상의 시야에서 보이지 않는 공격을 성공할 시, 추가 데미지와 순간 가속을 부여하는 ‘암살자의 검’ 등.

대규모 전투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혼자 휩쓸고 다니기에는 최적화된 구성이었으니까.

‘대충 알겠네.’

재빨리 스킬을 살피는 지호의 머릿속에서는.

스킬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조합과 연계가 순식간에 맞춰졌다.

‘역시 재밌는 게임이라니까.’

동시에 지호는 즐거움을 느꼈다.

새로운 영웅, 그리고 새로운 스킬을 알아가는 것들은 게임을 하는 이유 중 하나였으니까.

서걱! 쌕!

어느새 그는 악질 저격 방송인에 대한 것도 뒤로한 채.

당장의 게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빡집중 ON.

-표정 보니까 이번에도 뭔가 보여주겠네 ㅋㅋㅋㅋㅋ

-하긴 미다스가 괜히 내기를 걸진 않았겠지…….

그리고 그럴수록, 시청자들의 기대감은 커졌다.

차분한 표정으로 몰입하는 미다스의 모습은 언제나와 같았고.

매번 이런 모습이 나올 때마다 그는 무언가 보여줬으니까.

-10연승 보고 싶은데ㅠㅠㅠ

-ㅇㅈ…….

-솔직히 저격충 때문에 분위기 팍 식긴 함;;;

종종 불안해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지호는 그들 또한 한마디로 정리했다.

“뭐, 그래서 더 재밌지 않나요? 매번 쉽게 이기면 그게 무슨 재미에요. 가끔은 어렵기도 해야지.”

-하긴 ㅋㅋㅋㅋㅋ

-글고 보니 미다스님은 매번 너무 쉽게 이기긴 했어 ㅋㅋㅋ

-ㅇㅈㅇㅈ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쫄려보겠어…….

배치 9연승.

그리고 배치에서 다이아가 잡히는 진풍경.

자연스레 예상되는 전례 없을 결과에 순간 과몰입했지만.

그들은 기본적으로 재미를 추구하는 시청자들이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면.

재미만 있으면 그만이라는 것.

자고로 게임 잘하는 스트리머가 저격에 고통받는 상황은 재미가 보장된 요소였다.

특히, 저격을 이긴다면 더 좋다.

사이다가 몇 배로 시원할 테니까.

-그래도 이겼으면 좋겠음 ㅋㅋㅋ

-2222 라스코가 공개 사과 박는 거 보고 싶긴 함 ㅋㅋㅋㅋ

-미다스님이 지면 어카지…….

“만약 지면 50만 원 후원해야겠죠? 근데 뭐, 그럴 일 없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반드시 게임을 이길 거라는 지호의 호언장담을 듣기라도 한 걸까?

“미드 갱 갑니다요.”

타이밍 좋게, 라스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거의 곧바로.

“다이브 할 테니까 호응하세요!”

그가 보였다.

한데, 위치가 이상했다.

아군의 진영이 아닌, 상대 타워 뒤쪽에서 튀어나왔으니까.

-미친;;;;

-저걸 다이브 뛴다고?

-그냥 대놓고 던지려나보네 ㅋㅋㅋㅋㅋㅋ

무방비로 타워에 달려드는 라스코.

“어?”

상대 서리검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스킬을 날렸다.

뜬금없는 상황에 급하게 날린 스킬이 정확하면 얼마나 정확하겠는가.

거리가 떨어진 지호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피하기 쉬운 각도였다.

하지만 라스코는 피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스킬에 몸을 던졌다.

[퍼스트 블러드(First Blood)!]

[서리검 → 환영군주]

이내 전장을 울리는 기계음.

본격적인 트롤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소리였다.

* * *

퓨처 워의 중립 몬스터 사냥에는 여러 가지 이점이 있다.

골드와 경험치가 대표적이지만, 각 진영에 두 마리씩 젠 되는 대형 몬스터는 버프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각각 ‘속도의 룬’, ‘힘의 룬’인데.

비록 지속시간은 3분 남짓으로 짧지만, 능력치의 상승폭이 워낙 커서 초반에는 사기라 불릴 정도였다.

그 상승폭이 어느 정도냐 하면.

압도적인 피지컬 차이를 가볍게 무시할 정도였다.

바로, 지금처럼.

“캬! 살다 보니 그 유명한 미다스를 이기는 날이 오네!”

서리검이 웃으며 검을 내리쳤다.

스킬도 아닌, 견제용의 가벼운 평타인데 직접 맞상대하는 지호에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까앙!

워낙 속도가 빠른 터라.

온 신경을 집중하고서야 간신히 막아낼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반격은 시도도 못 했다.

거의 곧바로 서리검의 스킬, ‘칼날 무도’가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게임 초반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속도와 데미지. 모두 서리검을 감싸고 있는 버프들 덕분이었다.

정글러, 라스코가 서리검에게 죽었기 때문에 버프가 넘어간 것.

“후….”

심혈을 기울여서 막고.

또, 피했지만.

워낙 스펙 차이가 큰 터라 전부 회피할 수는 없었고, 어느새 지호의 체력은 절반까지 떨어져 있었다.

“다음 쿨 때 죽여드리죠. 죽기 싫으시면 지금 집으로 도망치시면 됩니다, 미다스 님.”

이제 승리를 확신한 걸까?

서리검은 처음의 경계하는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거만한 표정으로 비웃음을 날리고 있었다.

뭐, 정상적인 반응일지도 모른다.

이쯤 되면 라스코가 일부러 던지고 있다는 걸 알아챘을 테니까.

“갱 갑니다!”

하긴.

라스코가 타워에 달려드는 게 벌써 세 번째인데 어떻게 모르겠는가.

[아군이 당했습니다!]

[서리검 → 환영군주]

아직 다른 라인은 무난하다지만.

미드는 벌써 3킬.

더군다나 레벨도 골드도, 심지어는 체력까지도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다.

-이건 어쩔 수 없네;;;

-미다스님 그래도 9승 1패면 진짜 잘한 거예요.

-ㅇㅇ 글고 배치 끝나고 좀만 돌리면 저 저격충 안 만나도 됨. 티어 차이나서 저격도 못할 듯.

이제 시청자들도 그를 격려하기 시작했다.

어찌 봐도 불리하니 그럴 수밖에.

하지만.

“아직 괜찮아요.”

그들과 달리 지호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길 수 있는 각이 남아있으니까.

어쩌면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상대가 본진에 복귀한 후 아이템까지 사 오면, 피지컬로는 극복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벌어질 테니.

‘뭐, 안 가겠지. 딸피의 유혹은 어지간하면 못 참거든.’

역시나.

“아직도 집을 안 가셨네. 그럼 죽어야겠지.”

라스코를 죽인 서리검은 다시 지호를 압박하러 다가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서리검의 전신에 감돌던 기운이 사라졌다.

버프의 지속시간이 끝난 것이다.

기다렸던 순간!

[안개 장막]

지호는 준비했던 스킬을 발동했다.

쿠구구웅-

이어서 그를 중심으로 불투명한 안개가 넓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래 봐야 본인도 안 보이는 거 모르나? 안개는 도주용인데, 튈 거면 진작 튀지 이제 와서 뭐하누.”

점차 자욱해지는 안개 속에서 서리검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의 말처럼.

안개로 가려진 시야 사이로 아군의 본진 방향은 또렷이 보였다.

그렇기에 도주용으로나 쓰일 터.

‘적 위치를 못 찾는 사람들이나 그렇겠지.’

하지만 지호는 달랐다.

그는 상대의 위치를 찾아낼 자신이 있었으니까.

“뭐야, 왜 조용해. 튀었나? 하하하! 미다스 별거 없네!”

“후우….”

또다시 서리검의 도발이 들렸지만.

지호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시야 속에서.

그대로 땅을 박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