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8화. 퓨처 워 -악질 저격 BJ(3)
타앗!
짙은 안개 속.
적도 아군도 보이지 않는 환경 속에서.
그에 비례해, 다른 감각들은 월등히 예민해졌다.
깡! 까앙! 파삿!
전투 로봇들이 공격하는 소리.
기릭-기리릭!
경계 포탑의 가동음.
쌔애액-
심지어 거칠게 불어오는 바람 소리까지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그중에, 지호가 찾는 소리도 있었다.
탁! 타앗!
그가 달려가는 방향에서 들려오는 거친 발소리, 서리검이었다.
혹시 모를 기습을 대비하는지.
서리검의 발소리는 계속해서 좌우로 움직이고 있었다.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자신감 넘치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조심스러운 모습.
다행인 건, 도망치려는 기색은 엿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긴, 도망치려 해도 이제 늦었지.’
탁!
어느새 코앞까지 가까워진 소리.
지호는 조용히 거리를 좁힌 후, 그대로 단검을 휘둘렀다.
서걱!
여전히 안개로 시야가 가려져 직접 확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결과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단검 끝에 타격감이 느껴졌고.
“뭐, 뭐야!”
서리검도 곧바로 반응했기 때문.
쩌저저적!
싸늘한 냉기와 함께 공기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서리검의 스킬, 서리폭풍이다.
피격 시 큰 데미지와 함께 느려지는 효과까지 주는 스킬이지만….
지호에게는 닿지 않았다.
그는 기습에 성공하자마자 자리를 뜬 후였으니.
-어??
-지금 무슨 소리지?
-싸우고 있나본데.
-엥? 어떻게????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챈 시청자들이 의아함을 표했으나.
지호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의 온 신경은 채팅창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
이미 서리검의 위치를 인식했기 때문일까?
여전히 앞은 보이지 않지만.
처음과는 사뭇 달랐다.
“어디야!”
당황했는지 떨리는 목소리.
타각!
이를 보여주듯 불안한 발놀림.
후웅! 훙!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검까지.
직접 보고 있는 것처럼 선명하게만 느껴졌다.
적의 위치가 느껴지는 이상.
짙은 안개 속이라 해도 평소와 달라질 건 없다.
‘지금.’
그저 타이밍에 맞춰 단검을 휘두르기만 하면 될 터이니.
서걱!
어김없이 서리검을 벤 칼날!
이번에도 지호는 일말의 미련도 없이 몸을 뒤로 날렸다.
“미친! 뭔데!”
연이은 기습에 서리검은 짜증스럽게 외치며 검을 휘둘렀다.
후웅!
그러나 이번에도 그의 검은 허무하게 허공만 가르고 지나갈 뿐이었다.
‘아니…….’
벌써 두 번이나 반복된 상황.
서리검은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공격을 당하고 있는데, 상대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다니.
귀신에 홀리면 이런 기분일까?
머릿속에는 의문만 차올랐다.
‘아니, 쟤도 안개 속에서는 아무것도 안 보일 텐데. 대체 어떻게?’
그리고 그때.
서걱!
다시 뒤쪽에서 공격이 날아들었다.
“아, X발 좀!”
두 번 당했으면 세 번째도 있을 거라 예상하는 게 정상이다.
당연히 서리검도 대비하고 있었고.
거의 곧바로 몸을 돌리며 검을 휘둘렀으나.
후웅!
여전히 그의 검에는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대체 뭐냐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적.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지만, 마냥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귀신의 스킬 ‘암살자의 검’은 지금처럼 보이지 않는 위치에서 당하면 추가 데미지가 들어간다.
‘암살자의 검’이 터지는 기습에 당한 것도 벌써 세 번.
서리검의 체력은 벌써 확연히 줄어든 상태였다.
‘안 되겠다.’
안개 장막의 지속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려 했거늘.
그보다 죽는 게 더 빠를 것 같다.
뭔가 해야만 하는 상황.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둘 중 하나였다.
얌전히 도망치는 것과.
맞서 싸우는 것.
그리고 둘 중에서 서리검이 선택한 건 후자였다.
‘한 대만 제대로 맞추면 된다.’
딸피인 미다스를 두고 어떻게 도망치겠는가.
어지간한 공격엔 슬로우가 따라붙는 서리검의 특성상, 한 대라도 맞추면 전세가 역전될 터.
그는 무차별적으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맞을 리가.’
지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서리검이 공격을 퍼붓는 방향을 피해 따라붙으며.
또다시 단검을 휘둘렀기에.
사악!
“아, 좀! 비겁한 새끼야!”
그때부터 지호는 기계적으로 움직이며 단검을 휘둘렀다.
“제발! 좀! 맞아라!”
서리검이 공격이 날아들면 피하고.
다시, 또 휘두르고.
이처럼 계속되던 그의 손이 멈춘 것은, 전장에 기계음이 울린 후였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귀신 → 서리검]
* * *
미드 절반을 가리고 있던 짙은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스킬, 안개 장막의 지속시간인 12초가 지난 것이다.
‘생각보단 오래 걸렸네.’
그제야 시야가 밝아진 지호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안개 장막으로 만들어낸 상황.
그의 일방적인 난타였는에도 킬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마 레벨 차이가 나서 그럴 터.
게다가, 서리검이 본진에서 아이템을 사 오고 나면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
‘이걸 커버하려면….’
잠시 고민하던 지호는 이내 현황판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다른 라인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때.
[‘감자톡’님이 1,000원 후원!]
[미다스님, 안개 장막 속에서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걸로 아는데 서리검은 어떻게 잡으신 거예요?]
후원 메시지가 울렸다.
‘아.’
자연스레 집중에서 빠져나온 지호.
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채팅창으로 향했다.
-저걸 어떻게 잡았냐 ㅋㅋㅋㅋ
-미다스 미쳤냐고…….
-아니, 안개 속에서는 귀신도 시야 없지 않나???
-ㅇㅇ 그것도 그거고. 일단 우리가 미다스 시야로 보는 건데 아무것도 안 보였잖아 ㅋㅋㅋㅋㅋ
-뭔 심안이라도 있나 ㅋㅋㅋ
-대체 무슨 수로 죽인 거야 ㅋㅋ
-진짜 이번 판 이기나???
언제나처럼 그의 플레이를 칭찬하는 채팅을 시작으로.
안개 장막 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하는 내용. 그리고 게임의 전망을 묻는 질문들까지.
수많은 채팅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게임에 얼마나 집중했는지 방송도 잊고 있었던 모양이다.
완전히 시야가 가려진 채로 움직이는 건 그로서도 처음이었으니까.
“아, 죄송합니다. 제가 잠깐 채팅 확인을 못 했네요.”
지호는 일단 사과를 건넸다.
게임에서 이기는 것?
당연히 중요하다.
만약 그가 프로게이머였다면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었겠지.
하지만 그는 스트리머, 방송 진행도 승패 못지않게 중요하다.
무려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시간을 써가며 그에게 집중하고 있지 않은가.
‘게임도 방송도 둘 다 챙겨야 롱런할 수 있다고 했었지.’
이전에 인터넷에서 본 글을 다시금 되새긴 지호는, 이내 방금 전의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다들 아시겠지만. 안개 장막을 쓰면 시야가 가려지는 거지, 귀는 잘 들리거든요.”
-ㅇㅇㅇㅇ
-그건 맞지 ㅋㅋㅋ
-근데 그게 왜여?
“서리검의 위치는 대강 알고 있었으니까. 일단 그쪽으로 접근한 다음에, 소리로 정확한 위치를 캐치한 거예요. 그다음에는 거리조절 하면서 히트 앤 런. 간단하죠?”
-?????????
-미친, 내가 들은 게 맞아??
-ㅋㅋㅋㅋㅋㅋㅋㅋ
-간단하죠라니 ㅋㅋㅋㅋㅋㅋㅋ
“이게 듣기에는 어려운 거 같은데 막상 해보면 생각보다 간단할 수도 있어요. 다들 연습해 보세요.”
-아! 그렇구나! ㅋㅋㅋㅋ
-눈이 보이지 않으면 귀로 들으면 된다! 간단한데? 간단한데… 활용은 못 하겠네…….
-미다스님, 사람은 맞아요……?
-진짜 ㅋㅋㅋ 저걸 어떻게 따라하냐고 ㅋㅋㅋㅋㅋ
-그게… 미다스니까…….
-ㄹㅇ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번에는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건데, 돌아오는 반응은 평소처럼 난해하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지호는 본능적으로 움직인 것뿐인데, 그걸 설명하려니 어려울 수밖에.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어떤 분이 이번 판 이길 수 있나 물어보셨는데. 음… 확실히 지금까지에 비하면 난이도가 있긴 해요.”
-ㅇㅈㅇㅈ 방금 전에도 서리검이 진작 집 다녀왔으면 졌을 듯…….
-확실히 맘먹고 트롤하는 놈 있으면 어렵네 ㅋㅋㅋㅋ
-이제 방금 전처럼 서리검 잡는 것도 힘들 듯? 안개 장막 깔면 튈 거고. 템 사오면 스펙도 차이나서;;
-ㅇㅇ 빡세;;;;
난이도가 있는 건 맞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방금 전, 현황판과 미니맵을 보면서 해결책을 생각해둔 터.
“그래서, 이번엔 다른 라인들을 열심히 키워보려고요.”
그는 집으로 귀환하는 대신.
탑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
-갑자기??
-정글러가 저 모양인데 어케 다른 라인을 키워요…….
다소 뜬금없는 말이었던 걸까?
순간 이해하지 못한 시청자들이 물음표를 날렸다가, 탑으로 향하는 지호의 동선을 보고서야 납득했다.
-아, 로밍이구나 ㅋㅋㅋㅋㅋㅋ
-나쁘진 않은데, 그래도 미드 로밍은 한계가 있지 않나?
-정글 없는 거 어느 정도 커버는 가능하겠지 ㅋㅋㅋㅋ
로밍.
라이너가 다른 라인에 도움을 가는 것을 의미한다.
정글러가 나서서 던지는 이번 판.
지호가 생각한 해결책은 바로 로밍이었다.
보통 어지간히 성장한 이후에나 로밍을 가곤 하는데.
그는 한 템포 빠르게 움직인 거다.
하지만 라스코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야! 생체골렘! 우리 미드 너한테 올라간다! 빨리 튀어!”
탑으로 가는 지호를 봤는지.
다급한 전체 말이 전장을 울린 것.
-미친;;;;
-가지가지 하네 ㅋㅋㅋㅋㅋ
-에휴…, 쓰레기 새끼…….
-그래도 늦게 봐서 다행이네.
-ㅇㅈㅇㅈ 이제 와서 튀라하면 뭐해 ㅋㅋ 벌써 도착했는데 ㅋㅋㅋ
이미 탑에 거의 다다른 상황.
지호의 눈에 상대 탑 라이너 생체골렘이 보였다.
“오, 고맙다!”
생체골렘은 황급하게 도망치려는지 등을 돌리고 있었으나.
이미 늦었다.
후웅!
그보다 더 빠르게.
아군 탑 라이너, 닻 사냥꾼의 닻이 허공을 날았으니까.
-캬!!!!!!!
-저걸 잡네 ㅋㅋㅋㅋ
-자, 드가자~~~~
끼릭!
이어서 닻 사냥꾼이 생체골렘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이건 차려진 밥상이나 마찬가지.
지호는 빠르게 다가가며 스킬 ‘뒤 잡기’를 사용했다.
* * *
‘아, 이게 걸리네.’
닻 사냥꾼의 닻에 걸린 생체골렘.
그는 속박이 풀리자마자 다시 도망치려 했다.
한데, 미처 닻이 풀리기도 전에.
사악!
뒤에서 서늘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상대 미드인 귀신일 터.
스킬로 거리를 좁힌 게 분명하다.
‘일단 귀신만 조심하면서 도망쳐야겠다.’
어차피 닻 사냥꾼의 순수 데미지 자체는 그리 세지 않다.
자신의 스킬로 귀신을 묶은 뒤 도망치면 되겠다는 생각에 생체골렘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렇지만.
‘?’
그곳에 귀신은 없었다.
서걱!
그리고 또다시, 등 뒤에서 데미지가 들어왔다.
‘뭐야?’
다시 뒤를 돌아보아도.
여전히 귀신은 보이지 않는다.
“버근… 가……?
꼭두각시라도 된 기분에 생체골렘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
그리고 지호의 방송을 보던 시청자들도 의아한 건 마찬가지였다.
생체골렘이 갑자기 허우적대기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생체골렘과 달리, 그들은 지호의 시야로 보고 있는 상황.
누군가는 이유를 알아챘다.
-미친;; 사각을 이용하는 거였네.
-?? 뭔 소리임? 설명 좀
-근까 지금 생체골렘 보면 정신 못 차리고 있잖아? 미다스가 쟤 시야 사각으로만 다니고 있는 듯.
-그럼 어떻게 되는데???
-저렇게 되는 거지. 쟤한테는 미다스가 안 보이고 계속 공격만 당하는 거야 ㅋㅋㅋㅋㅋ
-아니 그게 뭐야 ㅋㅋㅋ 그걸 어떻게 하는 건데 ㅋㅋㅋㅋ
-이론상 가능은 함 ㅋㅋㅋ 암살자의 검 터지면 순간 가속으로 빨라지니까 또 사각으로 이동하고 ㅋㅋㅋㅋㅋ
-킹론상이 나오네 ㅋㅋㅋㅋㅋ
-서리검도 저렇게 당한 건가?
-미다스, 대체 뭐임???
믿기지는 않지만 어쩌겠는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을.
[적을 처치했습니다!]
[닻 사냥꾼 → 생체골렘]
결국, 연이은 지호의 공격과.
닻 사냥꾼의 제어기를 피하지 못한 생체골렘은 그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앞서 지호가 예고한 것처럼.
악질 저격 정글러를 카운터 치는 플레이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