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9화. 퓨처 워 -배치고사 결과(1)
게임 시간 10분이 지났다.
진행속도가 빠른 판이었으면 벌써 윤곽이 나오고도 남을 시간.
특히, 트롤러가 있다면 그 속도는 더 빨라질 수밖에 없다.
“하…….”
한데 이게 웬일일까.
지호의 배치고사 마지막 판을 저격한 BJ, 라스코의 표정은 어두웠다.
[14:7]
라스코가 바라보고 있는 게임의 현황판, 그 상단에 표시된 양 팀의 킬 스코어였다.
14킬과 7킬.
일반적인 경우였다면, 둘 중 비교적 적은 7킬이 라스코가 속한 팀의 킬 스코어였을 것이다.
정글러인 그가 던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는데….
바로, 미드 때문이었다.
[귀신(미다스) -6/0/7]
6킬 0데스 7어시스트.
미드라이너, 미다스의 스코어다.
팀 전체의 킬 수가 13킬이라는 걸 감안하면, 혼자 게임을 캐리하고 있다는 소리!
당연히 라스코의 방송 채팅창은 비꼬는 내용들로 가득 찼다.
-라스코 뭐하누? 쳐 자냐?
-달초코 만개는 글러먹었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다스 지는 거 처음으로 보나 했는데, 하꼬한테 기대한 내가 등신이지;;;;;
-아니, 이럴 거면 처음에 주둥이는 왜 턴 거냐 ㅋㅋㅋㅋㅋㅋ
-예술적인 트롤은 어디 감??
3,000명의 화력을 보여주듯, 쉴 새 없이 올라오는 채팅들.
라스코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난에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기 때문이다.
‘진짜 돌겠네.’
주 컨텐츠가 컨텐츠인지라 욕먹는 건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여야지, 이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뭐, 이해는 된다.
입장을 바꿔놓고, 그였어도 저들과 마찬가지로 욕을 퍼부었을 테니까.
‘무조건 질 수 있다고 그렇게 떵떵거렸는데 스코어가 이 모양이면 욕하는 게 당연하겠지.’
하지만 라스코도 할 말은 있다.
“아니, 형님들 들어봐! 다들 퓨처 워 해봤으면 알 거 아냐. 정글이 라인 와서 죽으면 멘탈 나가잖아? 거기다가 쌍버프까지 줬단 말이지?”
사실 이 정도만 던져줘도 지가 알아서 게임을 이겨야 정상인데, 심지어 그게 끝도 아니다.
“그리고도 연달아 2번 더 죽어줬는데 이거 골드만 해도 얼마야. 또, 갈 때마다 미다스 경험치도 야금야금 빼먹어서 레벨 차도 났을 거고….”
3킬에, 두 개의 버프.
그리고 미다스의 경험치 손해까지 감안하면, 눈 감고 싸워도 이길 정도로 차이가 나야 정상이다.
한데, 그럼 뭐하겠는가.
어찌 됐건 미다스에게 죽었는걸.
-그럼 뭐해 ㅋㅋㅋㅋ 금마가 템도 안사고 깝치다가 미다스한테 따였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
-ㄹㅇ ㅋㅋㅋㅋㅋ
-서리검이 미다스한테 못 까불게 말리지 그랬냐 ㅋㅋㅋㅋㅋㅋ
이게 라스코가 하고 싶은 말이다.
대체 왜 거기서 템도 안 사고 덤비냔 말인가.
평소대로였다면 이제 미드는 쉬엄쉬엄 죽어주고, 다른 라인만 각 잡고 방해하면 되는 거였는데.
지금은 이도 저도 아니게 됐다.
“그니까! 저 새끼 때문에 더럽게 꼬였네. 형님들, 이거 억까 아냐?”
생각할수록 기가 막힌 라스코가 억울함을 토로했으나.
-어쩌라고 ㅋㅋㅋㅋㅋ
-그러게 사람 잘 보고 던졌어야지 ㅋㅋㅋㅋㅋ
-던지는 것도 실력이야~~~
-예술적인 트롤은 시~팔 ㅋㅋㅋ
-내가 던져도 얘보단 잘 던질 듯.
씨알도 먹힐 리 없다.
오히려 시청자라는 놈들은 그를 조롱하기 바빴으니까.
‘하긴 뭘 바라겠냐.’
더 징징거려봐야 까이기만 할 터.
그는 혀를 차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시청자들이 아닌, 팀원을 향해서였다.
“탑님, 갱 갈게요.”
또다시 던지기 위함이었는데.
“꺼져, 벌레야. 내가 트롤한테 호응하겠냐?”
차가운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
하기야, 애초에 던지는 티를 그렇게 냈으니 당연한 반응이겠지.
-ㅋㅋㅋㅋㅋㅋㅋㅋ
-호응도 안 해주는데 어떻게 던질 거냐 ㅋㅋㅋㅋㅋ
-이제 죽어봐야 골드도 얼마 안 준다 아님??
-ㅇㅇ 6데스니까 이제 대형 전투 로봇 정도 주겠네 ㅋㅋㅋㅋㅋ
라스코가 괜히 탑에 호응을 유도한 게 아니다.
퓨처 워는 연달아 죽을수록 처치 시 골드도 줄어드는 시스템.
일방적으로 죽어주기만 하는 트롤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무리한 갱을 가서 팀원들의 죽음을 유도하려 했는데, 이마저도 실패한 것이다.
게다가 그 와중에 다른 목소리가 라스코의 속을 뒤집었다.
“봇 가겠습니다.”
바로, 미다스였다.
녀석은 무슨 정글러라도 되는 양 전 맵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넵! 개같이 호응할게요!”
게다가 라스코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라이너들이, 그의 말에는 곧바로 호응했고.
[적을 처치했습니다!]
[귀신 → 신기루 총사]
[암흑과학자 → 광전사]
결과도 항상 좋았다.
가는 라인마다 거짓말처럼 킬이 나오고 있었으니까.
그뿐인가?
봇에서 알림이 울리고 얼마 지나기도 전에, 또다시 기계음이 울렸다.
[영웅의 출현!]
[귀신 → 보석수집가]
이번에는 적 정글에서였다.
-저렇게 로밍 다니는데 서리검은 포탑 안 밀고 뭐하냐 ㅋㅋㅋ
-딱 보면 모름? 저 새끼 쫄아서 사리는 중 ㅋㅋㅋㅋㅋㅋ
-내가 미다스 방송도 같이 켜둬서 아는데, 미다스가 라인도 계속 밀고 있긴 함.
-아무리 그래도 아직까지 못 미는 게 말이 되나;;;
-에휴 ㅋㅋ 접어라 걍 ㅋㅋㅋㅋ
라스코의 편이 아닌 시청자들도 저렇게 답답해하는데, 라스코는 어련하겠는가.
시원하게 욕이라도 퍼붓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나마 믿을 구석이 서리검밖에 없는데.
“야, 서리검 병신아. 미드 갈 테니까 받아먹어라.”
라스코는 허탈한 한숨을 내뱉으며.
또다시 미드를 향해 달려갔다.
* * *
“야, 서리검 병신아. 미드 갈 테니까 받아먹어라.”
전장을 울리는 상대 정글러, 환영군주의 전체 말.
“에휴, 저 병신. 저렇게 죽어주는데도 털리는 게 사람인가.”
“그럴 거면 미드 왜 갔음?”
“제발 넌 랭크 게임 돌리지 마라. 이렇게 못하면서 미안하지도 않냐?”
이어서 팀원들까지 그를 비난하니 당사자인 서리검은 미칠 지경이었다.
‘아니, 나보고 뭘 어쩌라고.’
처음에 무리하다가 죽은 건 그의 잘못이 맞다.
귀신, 미다스가 피지컬 괴물이라는 걸 알면서도 까불었으니.
솔직히 미다스라 무리한 걸 수도.
이런 기회가 아니면 못 잡을 거물 아니던가.
하지만.
‘그다음에도 내 잘못이냐고…….’
지금 귀신이 학살하고 다니는 건, 서리검의 잘못이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욕은 그가 하고 싶었다.
귀신이 사라졌다는 것도 말해주고.
시야를 밝혀주는 소모품, 감시 드론도 몇 개나 설치했는데 왜 당하는 거냐고.
물론 실제로 말하지는 못했다.
만약 말한다면 얼마나 욕을 먹을지 안 봐도 비디오겠지.
“야, 서리검. 제발 미드 포탑이라도 좀 밀어라. 사람이면 로밍은 못 와도 포탑은 밀어야지.”
그때, 다시 들려온 정글러의 타박.
일리는 있는 말이다.
문제는 서리검도 알고 있다는 것.
“내가 그걸 모르겠냐고.”
“알면 좀 쳐 밀어. 게임 끝날 때까지 전투 로봇만 처먹을 거임?”
“아니, 그건 아닌데….”
서리검도 상대가 로밍을 다니면 포탑이라도 밀어야 한다는 건 안다.
알긴 알지만, 쉽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라인을 밀라치면, 어느샌가 귀신이 다시 나타나는데 뭘 어쩌라는 말인가.
게다가 계속해서 울리는 킬로그를 보면 알 수 있듯, 만날 때마다 그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이제는 죽어라 포탑까지 도망쳐야 겨우 살 수 있을 정도.
“아니, 병신아. 방금 봇이었으니까. 쫄지 말고 포탑 치라고. 제발 좀.”
저렇게까지 말하면 어쩔 수 없지.
“알았어…. 치면 되잖아. 대신 귀신 오면 백업해줘야 함.”
서리검은 힘없이 대답하며 라인을 밀고, 포탑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상대 포탑 뒤쪽에서 귀신이 나타났다.
‘?’
한데, 뭔가 이상했다.
귀신의 전신에 보라색과 회색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속도의 룬과, 힘의 룬이었다.
애초에 버프가 없을 때도 겨우 도망쳤는데 거기에 버프까지 달고 있으면 결과는 뻔할 터.
“야, 정글. 빨리 미드 백업와줘. 귀신 저거 쌍버프 들고 있다.”
서리검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도망치며 정글러를 불렀다.
하지만 정글러가 대답하기도 전에.
사삿-
상대가 스킬을 발동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까지!
서리검은 직감할 수 있었다.
‘X발…….’
이번에는 피할 수 없겠다는 것을.
[적에게 당했습니다!]
[귀신 → 서리검]
“아, 씨.”
“적당히 좀 뒤지라고.”
이어서 기다렸다는 듯 팀원들의 욕이 날아들었다.
‘아니, 이거 어차피 이기지도 못할 텐데 계속 해야 하나?’
라인전에서 진 것도 서러운데.
거기에 계속해서 욕까지 들으니 참을 수 있을 리가.
결국 서리검은 지금까지 꾹 참았던 말을 꺼냈다.
“니들끼리 해, 개새끼들아.”
“미치-.”
“니가 뒤져놓고-.”
당연히 팀원들이 뭐라 말을 내뱉었지만.
끝까지 들리지는 않았다.
그는 이미 게임을 종료한 후였으니까.
* * *
[적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서리검 계속 안 보이네요.”
-탈주했나?
-솔직히 나였어도 탈주했을 듯.
-그러게 적당히 팼어야지 ㅋㅋㅋ
여유롭게 상대 진형의 경계 포탑을 철거한 지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언제부턴가 서리검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단 미드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봇도 계속 안 보여요.”
“탑도 없습니다. 게임 포기한 거 같아요.”
갑자기 모든 라인이 빈 상황.
떠오르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항복하려나 보네요.”
-ㅇㅇ 그런 듯…….
-항복이 답이긴 해 ㅋㅋㅋㅋ
-진짜 내가 쟤네였으면……. 아찔하다;;;;
지호는 빠르게 결론을 내렸고.
시청자들도 이에 호응했다.
항복하려는 것 말고는 모든 라인을 비울 이유가 없었으니까.
“미드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이겼어요.”
“정글 벌레새끼 때문에 지나 했는데. 버스 잘 타고 갑니다.”
“진짜 잘하시던데. 혹시 듀오 할 사람 필요하시면 저 데리고 해주세요.”
팀원들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지호에게 연이어 감사를 표했다.
“별말씀을요. 다들 잘 호응해주셔서 이길 수 있던 거죠. 덕분에 쉽게 이기고 갑니다.”
오는 말이 고우면 가는 말이 고운 법.
지호는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그때.
날카로운 목소리가 지호의 말을 끊었다.
“이… X발! 너 핵이지 미친 새끼야! 내가 신고할 거야”
바로, 그를 저격했던 라스코였다.
-ㅋㅋㅋㅋㅋㅋ
-지가 지면 핵 ㅋㅋㅋㅋㅋㅋㅋㅋ
-에휴 ㅋㅋㅋㅋㅋㅋ
-저런 새끼들 반응이야 뻔하지 뭐;;;;;
-아~ 암튼 핵이라고~~
판에 찍어낸 듯 전형적인 반응에 시청자들이 분노했다.
하지만 지호는 개의치 않았다.
“네, 신고하세요.”
다만, 조용히 답할 뿐.
처음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다.
내기에서 졌다고 약속을 지킬 인물이었으면, 저런 컨텐츠로 활동하지도 않았겠지.
알면서도 내기를 건 이유는.
‘대신 자존심은 상하겠지.’
자신만만하게 선전포고하고, 대놓고 던졌음에도 내기에서 지다니.
얼마나 화가 나겠는가.
“아, 저 뻔뻔한 새끼. 내가 꼭 정지시킨다. 두고 보자. 진짜!”
지호의 태연한 반응에 라스코는 더 화가 난 듯 목소리를 높였다.
맘만 먹으면 한참 비꼴 수도 있겠지만, 지호는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았다.
“정글 넌 신고할 거니까 정지 각오해라.”
“인생 그따위로 살지 마.”
“벌레새끼.”
그가 아니더라도, 팀원들이 계속해서 라스코를 비난하기도 했고.
[‘[TK]나무’님이 1,000,000원 후원!]
[살다보니 트리스에서 돈을 쏘는 날이 오네;;; 이거 라스코가 내기 이기면 주려던 건데, 님이 이겼으니까 받아가셔. 리액션 ㄴㄴ.]
-캬!!!!!!!
-사파리 회장님이 ㅋㅋㅋㅋㅋㅋ
-먼 곳까지 오셨네;;;
-미친 ㅋㅋㅋㅋㅋㅋㅋ
라스코가 받을 수도 있었던 큰 후원도 터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직접 볼 수는 없어도, 라스코가 얼마나 욕을 먹고 있는지는 시청자들이 알려줬다.
굳이 그까지 보탤 필요는 없을 터.
“나무 님, 감사합니다. 기왕 트리스 오신 김에 앞으로 제 방송도 자주 구경해주세요.”
지호는 후원에 감사를 표하며 화제를 넘겼다.
그리고 때마침.
항복 가능한 시간, 15분이 지났다.
“꽁승 축하요.”
“우리 미드 신고 부탁드릴게요.”
“봇 우리가 개털었는데, 팀원 잘 만나서 버스타네. 부럽다.”
그와 동시에, 상대 팀원들의 전체 말이 연거푸 들려왔다.
역시나 이때만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이어서 게임의 승리를 알리는 메시지가 떴다.
[승리!]
이제 확인 버튼만 누르면 배치고사의 결과가 나올 터.
[현재 시청자 수 : 12,383]
배치고사 마지막 판이 끝나간다는 소식이라도 퍼진 걸까?
어느새 시청자 수는 12,000명도 넘긴 상태였다.
-ㄷㄱㄷㄱㄷㄱㄷㄱㄷㄱ
-빨리 확인! 빨리 확인! 빨리 확인! 빨리 확인!
-절 대 공 개 해!
-나 궁금해서 미칠 듯…….
-지금까지 최대가 몇임?
-방송에 나온 건 골1이 최대.
-방송 말고 인터넷에는 플레 이상 나왔다는 사람들도 있긴 함.
-골1? 미다스가 넘기려나?
-배치에서 다이아를 만났는데 그건 넘기겠지?
-미친 ㅋㅋㅋㅋㅋㅋㅋ
그만큼 채팅도 빠르게 올라갔다.
말이 아닌 글자임에도 확연히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은 흥분한 상태였다.
‘최고가 골1이라….’
누군가의 말처럼 배치에서 다이아를 만났는데 저보다 낮게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
설레는 기대감을 느끼며.
지호는 확인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