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화. 퓨처 워 -배치고사 결과(2)
쿵!
웅장한 소리와 함께 퓨처 워의 전장인 황폐화된 대지의 풍경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게임이 종료된 것이다.
이어서 지호의 시야에 나타난 건, 대기실이었다.
어둡고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
이었어야 하는데….
왜인지 평소와는 달랐다.
어디선가 빛이 몰려들기 시작했으니까.
파앗!
어느새 공간 전체를 밝힌 눈부신 빛은 이내 허공에 모여들더니.
티어를 나타내는 문양으로 변했다.
띠링!
[배치 완료 : 다이아몬드 Ⅳ]
그렇게 만들어진 문양은 눈부시게 빛나는 보석, 다이아몬드였다.
“와, 다이아네요?”
어지간한 일로는 당황하지 않던 지호도 이번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막연히 골드1은 가뿐히 넘지 않을까 기대했던 건 사실이다.
배치고사 10판을 말 그대로 찢다시피 했으니까.
하지만 생각보다도 더 높았기에.
그는 멍하니 티어를 바라보았다.
지호가 이 정도로 놀랐는데, 다른 이들은 어련하겠는가.
-엥????
-??????????
-다이아???
-아니 ㅋㅋ 미친 ㅋㅋㅋ 이거 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생 배치에서 다이아가 나와????
-이건 진짜 버그 아님?????
-진심 에반데;;;;
-와…….
-아무리 미다스여도 이건 좀 ㅋㅋㅋㅋㅋㅋㅋ
-이게 어케 되냐 ㅡㅡ
채팅창은 말 그대로 불타올랐다.
실시간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ㅋㅋ 나는 배치 죽어라 보고 골드 4 받았는데 ㅋㅋㅋㅋㅋ
-실버도 있는데 조용;;;
-난 브론즈여 ㅅㅂㅡㅡ
배치고사가 끝나면 보통 브론즈에서 골드 사이 티어를 배정받는다.
그마저도 10연승을 해야 골드 1~2가 간신히 나올 정도다.
한데, 플래도 아닌 다이아라니!
어찌 보면 의아한 게 당연했다.
‘솔직히 황당할 만하긴 해.’
지호는 채팅창을 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님티.
즉, ‘그래서 님 티어가?’라는 말을 흔히 사용할 만큼 퓨처 워에서 티어는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래서일까?
누군가는 몇 날 며칠 밤을 새면서까지 아득바득 게임을 돌리고, 티어를 올린다.
그런 상황에서 지호는 배치로 다이아를 받았으니.
불만이 들 수밖에 없을지도.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기에.
“자자, 다들 일단 진정하세요.”
지호는 차분한 목소리로 그들을 진정시켰다.
그리고는 질문을 던졌다.
“아까 채팅에서 어떤 분이 배치로 플래도 나올 수 있다고 하셨던 거 같은데, 아닌가요?”
-인터넷에서 사진 보긴 함.
-근데 그건 주작이다 아님?
-모르지 ㅋㅋㅋㅋ 진짜일수도 있는 거니까 ㅋㅋㅋㅋㅋ
-미다스님이 다이아 나오는 거 보면 주작 아닐 수도…….
-아니;; 주작이라고;;;
-증거는?
-보면 모름? 그냥 딱 보면 주작이잖아 ㅋㅋㅋㅋ
-암튼 주작 ㅇㅈㄹ;;;;
또다시 싸움판이 열렸다.
서로 내 말이 맞다 주장하는 이들.
하지만 그중에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들 없어 보였다.
대개 ‘어디서 봤다.’, ‘아무튼 아니다.’ 같은 말만 하고 있었으니까.
‘나중에 왕눈이 님한테 물어보던가 해야 하나.’
딱 봐도 끝이 없을 싸움이다.
지호가 머리를 긁적이며 화제를 돌리려던 찰나.
누군가의 후원이 날아들었다.
[‘ST RIFLE’님이 100,000원 후원!]
[배치에서 골드 넘기는 경우 생각보다 많습니다. 저만해도 플래로 마무리했으니까요.]
이번에는 본인의 경험담이었다.
“오! 라이플 님 10만 원 후원 감사합니다. 아… 배치에서 골드까지만 나오는 건 아닌가 보네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
지호는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그런데 시청자들의 반응이 묘했다.
-엥? 라이플????
-진짠가?
-저거 찐임???
-에이 ㅅㅂ 구라겠지 ㅋㅋㅋㅋㅋ
치열하게 싸우는 대신 득달같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ST RIFLE : 진짜 맞습니다.
이어서 채팅창에 본인이 등판하자.
-와!!!!!
-미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왜진 ㅋㅋㅋㅋㅋ
-아니 ㅋㅋㅋㅋ 프로가 왜 여기에 ㅋㅋㅋㅋㅋㅋㅋ
-대박…….
언제 싸웠냐는 듯.
시청자들은 환호하기 시작했다.
‘어?’
그제야 다시 후원자의 이름을 살펴본 지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익숙한 이름이었다.
‘저 사람 엘카랑 같은 팀인 프로게이머 아닌가?’
핵 논란이 터지기 전.
월드 챔피언십 하이라이트 영상에서 본 적 있는 이름이었으니까.
“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지호는 조용히 감탄했다.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의 방송을 보는 것도 놀라웠는데.
그걸 넘어 프로게이머까지 보다니.
마치 유명인이 된 것만 같은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아마 그 기분은 지호만 느낀 게 아닌가 보다.
[‘ㅇㅇ’님이 18,000원 후원!]
[다이아 축하드립니다! 오늘 저녁은 맛있는 치킨 뜯으시죠.]
[‘미다스는 신이야’님이 200,000원 후원!]
[프로게이머도 보는 월클 스트리머 미다스!!!!]
[‘서폿유저’님이 50,000원 후원!]
[배치에서 다이아는 프로게이머도 못 참지 ㅋㅋㅋㅋㅋㅋㅋ]
“ㅇㅇ 님, 미다스는 신이야 님, 서폿유저 님. 다들 감사합니다.”
-미쳤다…….
-오늘 방송 레전드 ㅋㅋㅋㅋ
-이걸 도네로 논파하네 ㅋㅋㅋㅋ
-프로게이머가 맞다면 뭐…. 맞는 거겠지 ㅋㅋㅋㅋㅋ
-ㄹㅇ ㅋㅋㅋㅋㅋㅋ
다이아라는 결과가 나온 후 잠시 주춤하던 채팅도, 후원도.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으니까.
-미친 ㅋㅋㅋ 지금 도네 밀린 거 뭐임 ㅋㅋㅋㅋ
-하긴, 배치 다이아면 그럴만해.
-ㅇㅇ 거기다가 사람이 한두 명이어야지 ㅋㅋㅋㅋㅋ
-만이천명 ㅋㅋㅋㅋ
-미다스 부자야!!!!
어느 정도냐 하면.
하도 후원이 많이 쏟아져서 딜레이가 있을 정도였다.
“니모 님 5만 원 감사합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후원마다 감사 인사를 하던 지호는, 미소를 지으며 채팅창을 응시했다.
결과가 공개되고 다소 줄었지만.
아직도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방송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지호의 말에, 후원에.
계속해서 호응을 보내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원래는 배치 결과만 보고 방송을 종료할 생각이었는데.
이제 생각이 바뀌었다.
“다들 오늘 방송 재밌게 보셨나요?”
지호는 미소를 머금으며 시청자들과 소통을 시작했다.
-ㅇㅇㅇㅇㅇ
-오늘 방송? 설마…. 아니지?
-더 해다오….
“하하, 방종 하려는 거 아니에요.”
수많은 시청자들과 소통하는 것.
게임과는 다른 재미지만, 이 또한 만족스러웠다.
지호는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방송이 재미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과 잘 맞는다는 것을.
* * *
시작 전부터 겜잘알을 뜨겁게 달궜던 미다스의 배치고사는 그 유명세만큼이나 많은 화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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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 워] 미다스 배치 끝! 다이아 받음 ㅋㅋㅋㅋ
니들 ㅅㅂ 배치에서 다이아 나오는 거 알았냐?
오늘 미다스 배치 10연승 캐리하고 다이아 나왔다 ㅋㅋㅋ 채팅창에서 말도 안 된다고 난리 났는데, 그때 누가 등판한지 알아?
라이플 ㅋㅋㅋㅋㅋㅋ
그 ST 소속 라이플 맞음 ㅋㅋ 도네로 자기도 배치 플래나왔다고 하더라 ㅋㅋㅋ
배치 플래 인증 올라와도 다들 주작이라길래 당연히 주작인 줄 알았는데, 역시 인터넷은 믿을 게 못되는 듯;;;
혹시 안 본 사람 있으면 인기 클립 봐봐 ㅋㅋㅋ
난 막판 보고 귀신 돌리러 갈 생각 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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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는, 겜잘알 베스트 상위에 올라온 이 글이 그러했다.
간단하지만 핵심을 담은 제목.
게다가 내용도 어그로 끌기에 딱 좋았다.
그래서일까?
배치가 방금 끝났음에도 수많은 추천을 받고 순식간에 위로 올라갔고.
그만큼 댓글도 많이 달렸다.
-배치 다이아는 씹 ㅋㅋㅋㅋ
└라이플이 논파했다던데?
└라이플도 플래지 다이아는 아니잖아;;;;
└근데 이론상 가능하긴 함. 지금까지 배치 플래 나왔다고 인증한 사람들 보면 플2~3도 있었으니까.
└근가? 난 모르겠다. 신고 넣으려고 ㅋㅋㅋㅋ
└알아서하셈 ㅋㅋㅋ
-나도 배치 실시간으로 봤는데, 미다스 진짜 미치긴 했더라……. 그냥 괴물임
-그 정도임??
-넘사야 넘사.
-귀신 ㅋㅋㅋ 넌 ㅅㅂ 랭겜 돌리지 마라 ㅋㅋㅋㅋ
-궁금하누…. 클립 찾아봐야겠다.
종종 부정적인 이들도 있었으나.
몇몇을 제외한 나머지는 미다스의 배치고사 자체에 관심을 가졌다.
지호의 방송을 실시간으로 본 시청자는 대략 12,000명.
퓨처 워 유저 중 극히 일부다.
당연히 그보다 몇 배는 많은 사람들이 뒤늦게 클립으로 지호의 플레이를 봤고.
이내 충격에 쌓인 채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미친;;;;
-이게 사람임?
-아니 ㅋㅋㅋ 얘 뭐야?
-프로지망생인가?
-진짜 오지네;;;
-제발 빨리 올라가라 랭겜에서 만나기 싫으니까…….
그리고 그건 프로라 불리는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 * *
퓨처 워 프로팀, ST의 숙소.
그곳에서 큰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짝짝!
“캬! 다시 봐도 미쳤네! 이 사람 진짜 왜 이렇게 잘하냐!”
목소리의 주인공은, 감탄한 듯 박수를 치고 있는 남자 라이플이었다.
“확실히 잘하긴 해.”
라이플과 같은 ST의 팀원, 엘카도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거 말고 저 사람이 피지컬 테스트 한 거 있는데, 그것도 한 번 봐봐. 깜짝 놀랄 거다.”
“아, 그래요? 봐봐야겠네. 이게 진짜 이상한 게 플레이 하나하나만 놓고 보면 저도 할 수 있거든요? 근데 뭔가 묘하게 차이 나는 느낌이에요. 엘카 형, 어떻게 생각해요?”
“묘하게 차이 난다라….”
라이플의 말에 엘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라이플의 말은 틀리지 않다.
오늘 미다스가 선보인 플레이 중, 프로게이머라 불리는 이들이 따라하지 못할 것들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저렇게까지는 아니겠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 속임에도.
미다스의 움직임은 매끄러웠다.
게다가, 한 치의 낭비도 없었다.
-뭐가 보이긴 하나???
-와 답답해 ㅠㅠㅠㅠ
-관전 시야 이런 건 없나;;;;
-진짜 어떻게 움직이는 거야 ㅋㅋㅋㅋ
방송 채팅창은 물음표만 올라오고 있었으나.
엘카는 소리만 듣고 알 수 있었다.
미다스가 서리검의 검과 스킬을 한 끗 차이로 피하고 있다는 것을.
마치 눈으로 보고 있는 듯 깔끔한 움직임.
그걸 가능케 하는 건 뭘까.
‘감각? 본능? 센스…? 아니면, 저게 진짜 재능이라는 건가?’
엘카도 알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렇기에 아직은 라이플의 질문에 명확히 답해줄 수 없다.
다만 확신할 수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 알아낸다면,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미다스와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
피지컬 테스트 영상과, 지난 그의 방송 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봤기에 할 수 있는 확신이었다.
‘영영 따라잡을 수 없는 차이는 아니겠지. 노력으로 찾아낸다.’
본디 사람은 목표가 생기면 의욕이 샘솟는 법.
게임을 시작한 이래 늘 정상에 있었던 엘카에게.
처음으로 목표가 생긴 것이다.
“그럼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트바!”
때마침.
틀어놨던 미다스의 방송이 끝났다.
두근!
그리고 미다스의 배치고사를 보는 내내 참아왔던 욕구가 불타기 시작했다.
‘게임하고싶다.’
이 두근거림을 가라앉힐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을 터.
엘카는 미소를 지으며 라이플에게 말했다.
“나랑 간만에 1:1이나 해볼까?”
“콜이요! 대신, 좀 살살해요.”
돌아온 건, 예상했던 대답이다.
라이플도 피가 끓을 텐데 거부할 리 없겠지.
“뭐, 봐서.”
그는 미소를 지으며 캡슐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