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화. 로스트 월드 -솔로 플레이(1)
다음 날, 이른 아침.
캡슐 설치를 위해 방문한 직원들에게 방을 안내한 후.
지호는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바로 어제, 방송 마지막에 온 왕눈이의 후원 때문이다.
“로스트 월드라고 했었지.”
인기 게임은 아닌지 글이 많지는 않았다.
특히 베스트 공략 게시판은 휑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지호는 그중 하나를 골라서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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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로스트 월드 하려는 사람은 꼭 보고 가라.
이번에 로스트 월드 할인 들어간 거 보고, 흑우 방지 차원에서 경고하니까 제발 보고 가라…….
일단 로스트 월드가 어떤 게임인지부터 설명해줄게.
세계관이랑 컨셉은 간단함.
운석 충돌, 빙하기, 핵전쟁.
이 모든 게 동시에 벌어진 세기말 이후의 이야기 ㅋㅋㅋㅋㅋ
딱 봐도 느낌 오지 않음?
걍 없을 무 그 자체임.
아, 하나 있긴 하다 ㅋㅋㅋㅋㅋ
시작하면 짱돌 하나 주거든?
이제 그거 들고 나무 캐고, 돌 캐고, 이것저것 파밍한 담에 집도 짓고 하면서 ‘생존’하면 됨.
왜 생존이냐고? 몬스터 같은 거라도 있냐고?
ㄴㄴ 다른 플레이어들 밖에 없음.
근데? 걔네가 제일 무서워 ㅋㅋㅋ
괜히 잃고 뺏고 죽고 죽이는 게임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일단 꿀팁 하나 알려줄게.
뉴비가 로스트 월드에서 다른 사람이랑 눈을 마주쳤다?
그냥 죽었다고 생각해라.
바로 화살이나 총알 날아올 거거든.
뭐, 어떻게 살아남았다 쳐.
어찌어찌 파밍도 하고 열심히 집도 지었어.
이제 안전할 거 같지?
절 대 아 님.
그러면 로스트 월드가 아니지.
유어 베이스 붐붐 이라고 들어봄?
무슨 말이냐면…. 니네 집을 폭탄으로 밀어버린다는 소린데.
로스트 월드 하게 되면 자주 듣게 될 거야 ㅋㅋㅋㅋ
이게 로스트 월드에선 일상이니까.
자고 오면 집 밀려있고 너도 죽어서 모르는 장소에서 다시 시작할 가능성이 99.9%다 ㅋㅋㅋㅋ
뭐, 게임 자체가 몰입감이 오져서 어느 정도 익히고 나면 플탐도 점점 길어질 거고 재밌긴 해.
근데?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지옥이야 지옥.
아무것도 모르는 뉴비는 그냥 계속 뒤지는 게임이니까.
그래서 뉴비가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뭘 어케 해.
개처럼 맞으면서 배우던가 아니면 그냥 안 해야지.
이 정도 설명했으면 알아듣지?
하. 지. 마.
-추천 박고 간다 ㅋㅋㅋㅋㅋ
-이게 그 플탐 1,000시간도 고인물 소리를 못 듣는 그 게임인가?
-ㅇㅇ 맞음. 좀 한다하면 5~6천은 기본에 가끔 만 시간 넘는 괴물들도 있어서;;
-그치만 재밌는 걸……. 난 오늘도 광 캐러 간다…….
-아ㅡㅡ 이딴 글 쓰지 말라고……. 뉴비가 와야 사냥하지;;
-윗댓 넌 악마냐 ㅋㅋㅋㅋ
-맞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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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긴 감은 있으나, 로스트 월드가 어떤 게임인지는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다.
당연히 핵심은 제일 마지막의 ‘하지 마’일 터.
그러나 지호는 오히려 흥미를 느꼈다.
“오… 재밌겠는데?”
난이도가 높을수록 극복했을 때의 기분도 더 짜릿하다.
뉴비는 살아남기 힘들다고 할 정도로 진입장벽이 높은 게임.
게다가 얼마나 전투가 잦으면 눈만 마주쳐도 활이나 총알이 박힐 정도란다.
이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데.
심지어 몰입감까지 좋다니.
이만큼 그의 취향을 저격하는 게임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렇게 이런저런 정보를 찾아보고 있기를 한참.
“미다스 님, 설치 끝났습니다.”
강운이 지호를 불렀다.
어느새 설치가 끝난 모양이다.
일정이 빠듯하기 때문인지 다른 직원들은 바로 집 밖으로 나갔고.
홀로 남은 강운은 잽싸게 두꺼운 인쇄물을 펼치며 설명을 시작했다.
“저번에 말씀드렸다시피 맞춤형 캡슐은 보급형과는 많이 다릅니다.”
“네, 그렇다고 하셨죠.”
“일단 기본적으로 미다스에게 맞춘 싱크로율이 제공되고.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실시간 뇌파 점검을 비롯한 각종 안전장치들까지! 오직 맞춤형 캡슐에만 제공되는 기능들이죠!”
“오…….”
“세세히 설명 드리고 싶은데, 그러면 밤을 새도 모자랄 테니. 이거 간단히 읽어보시면 됩니다!”
간단한 설명이 끝났는지 강운이 인쇄물을 건넸다.
“그리고 중요한 것 하나 더! 미다스 님의 사용 기록 데이터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연락드리고 방문하겠습니다. 괜찮을까요?”
“넵. 당연하죠.”
“그럼, 타이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불편사항 있으면 언제든. 이 강운을 찾아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강운도 나갔다.
띠리리!
이제 집에 남은 건 지호뿐.
도어락이 잠기는 소리를 들으며 지호는 캡슐이 설치된 방으로 향했다.
“와…….”
방에 들어가자마자, 그의 입에서는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괜히 비싼 게 아니네.’
크기도, 외형도. 심지어 은은하게 울리는 가동음마저 고급스러웠다.
실제로 게임을 할 때는 어떨지 벌써부터 기대가 될 정도.
우웅-!
이어서 캡슐을 열자.
내부가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띠링.
[미다스 님, 서버랑 대화방 보내두겠습니다. 저녁 9시에 초기화되는 서버라 그 전에 준비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왕눈이]
때마침, 왕눈이에게서 온 연락.
합방 일정에 관한 내용이었다.
‘저녁 9시라.’
보통 생존게임으로 분류되는 로스트 월드는 한 가지 특징이 있었는데.
바로, 주나 월 단위로 서버가 초기화된다는 것이다.
모두 공평하게 초기의 상태에서 시작하기 위함일 터.
왕눈이의 문자가 그 내용이다.
“흠, 어떡하지.”
지호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어제 방송에서 왕눈이랑 합방할 수도 있다고 말하긴 했지만.
정확한 시간을 공지한 건 아니다.
‘저녁에 켤까, 아니면 그냥 지금부터 계속 할까.’
사실 건강이나 체력을 생각하면 전자를 선택하는 게 맞다.
하지만 고민되는 이유는 두 가지.
당장 하고 싶다는 마음과, 아무것도 모르는 뉴비 상태로 합방을 시작하면 민폐라는 생각 때문이다.
“하긴, 어느 정도는 할 줄 알아야겠지.”
결국 지호는 전자를 선택했다.
* * *
[스트리밍을 시작합니다.]
-미하미하
-ㅎㅇㅎㅇㅎㅇ
-미다스가 왔어!!!!
방송을 켜지자마자 시청자 수가 빠르게 올라갔다.
이제는 익숙하게 느껴지는 상황.
지호는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미다스입니다. 어제 말씀드린 대로 오늘부터는 새 캡슐에서 방송을 진행하게 됐습니다.”
-캬!!!!!
-그 비싸다는 맞춤형 ㄷㄷㄷ
-느낌은 어떰???
-맞춤형은 다른가????
-미다스 진화한 건가 ㅋㅋㅋㅋㅋ
-여기서 더 진화할 게 남았나;;;
역시나 시청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새 캡슐의 성능이었다.
맞춤형 캡슐을 사용하는 스트리머는 거의 없기에 당연한 반응이다.
지호였어도 궁금했을 터.
문제는 그도 아직까지 체감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단 대기 공간에만 있어서 아직은 잘 모르겠네요. 게임을 시작하면 확실히 차이를 알 수 있지 않을까요?”
-하긴 원래 캡슐 성능은 게임을 해봐야 알 수 있긴 함.
-그럼 빨리 게임 해야겠지???
-뭐? 퓨처 워???
-삼국지 드가자~~~
-ㄴㄴ 오늘 왕눈이랑 합방이라고 어제 공지함 ㅋㅋㅋㅋ
-ㄹㅇ????
-캬!!!!! 왕눈이 미다스 듀오는 못 참지 ㅋㅋㅋㅋㅋㅋㅋ
-로스트 월드??
-엉? 이번에 주초섭이던데 벌써 켜도 되나 ㅋㅋㅋㅋㅋㅋ
“네네, 맞습니다. 오늘은 왕눈이 님하고 다른 분들이랑 로스트 월드 합방 예정입니다. 근데 서버 초기화 시간이 저녁이라, 그때 시작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아아…….
-뭐야. 로스트 월드는 서버가 초기화 되기도 함?
-ㅇㅇ 보통 주나 월 단위로 초기화 됨 ㅋㅋㅋㅋ
-신기하네;;;;
-그럼 게임은……?
-퓨처 워…, 켜야겠지?
-새 캡슐인데 새로운 게임! 제발!
로스트 월드는 합방 때부터 시작할 거라 생각하는 걸까?
또다시 채팅창에 여러 게임들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잠시 그들의 반응을 지켜본 지호는, 여유롭게 운을 띄웠다.
“그래서 말인데.”
-?????
-큰 거 오나???
“전 완전 뉴비라 아무것도 모르니까, 저녁에 같이 시작하기 전에 혼자 연습해보려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건 진짜 오바임.
-나 로악귀인데 아무리 미다스라도 이건 무리;;;;
-피지컬은 안 밀릴 텐데 물량에서 밀릴 걸요 ㅋㅋㅋㅋㅋ
악명 높은 게임답게.
이제는 어느 정도 그를 알만한 시청자들도 만류했다.
물론, 지호도 그런다고 포기할 성격은 아니다.
오히려 불타오를 성격이지.
“하하.”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런 말 아시나요?”
-또 뭔 말 하려고 ㅋㅋㅋㅋ
-얘 이런 말 아냐고 하면 맨날 이상한 말 하는데 ㅋㅋㅋㅋㅋ
-근데 그걸 보여주잖아;;;;
“실전보다 좋은 연습은 없습니다.”
쿠궁!
그 말과 함께 화면이 바뀌었다.
[Lost World]
로딩 게이지가 빠르게 차올랐고.
그 위로 펼쳐진 광활한 풍경은 야생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숲이었다.
-미친.
-이미 키고 있었네;;;;
-ㅋㅋㅋㅋㅋㅋㅋ
-빌드업 뭔데 ㅋㅋㅋㅋ
-다들 아직도 몰라? 미다스는 못 말린다고 ㅋㅋㅋㅋ
-ㄹㅇ 걍 코뿔소여.
게임의 실행이 완료됨과 동시에.
지호의 눈앞에 수많은 서버 목록이 떠올랐다.
‘일단 스트리머 모드로 바꿔야 한다고 했었지.’
그는 곧바로 설정을 바꾸고는 괜찮아 보이는 서버를 고르고, 시작을 눌렀다.
* * *
[Now Loading…….]
잠시의 기다림이 지나고 눈앞의 풍경이 바뀌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시작화면이 연상되는 광활한 숲.
그곳에서 지호는 맨몸에 가죽 팬티만 입은 상태로, 손에는 큰 돌덩이 하나만 들고 있었다.
“오…….”
색다른 시작에 지호는 멍하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제 나무랑 돌 캐면 됨 ㅋㅋㅋㅋㅋㅋ
-빨리 움직여라!!!!
-한눈 팔 시간이 없어요 ㅋㅋㅋ
하지만 다른 게임을 할 때와 달리, 시청자들은 뉴비스러운 행동을 용납하지 않았다.
빠르게 올라오는 채팅에 정신을 차린 지호는 근처의 나무로 향했다.
후웅! 픽!
돌덩이를 들고 나무를 내려치자.
나무에 붉은 점이 생겨났다.
-저거 맞춰야 함.
-미다스님 저거 ㅋㅋㅋㅋ
-다른 데 치면 효율 극악 ㅋㅋㅋㅋㅋㅋㅋ
그와 동시에 또다시 훈수가 쏟아졌으나.
지호도 게임이라면 도가 튼 사람.
그는 이미 반사적으로 빨간 점을 노리고 있었다.
퍽!
정확히 목표를 맞춰서일까?
처음보다 훨씬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한데, 그와 동시에.
지호의 귓가에는 다른 소리도 들려왔다.
푸슉!
화살 소리였다.
“어?”
지호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반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팟!
그리고 이번에도 그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몸을 날리기 전의 위치로 화살이 지나간 것이다.
-캬 ㅋㅋㅋㅋㅋㅋㅋ
-역시 미다스 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뭘 듣고 피한 거야???
-미다스잖아 ㅋㅋㅋㅋㅋㅋ
언제나처럼 이해할 수 없는 플레이에 채팅창이 물음표로 도배되기 시작한 찰나.
“안 맞다, 이게?”
지호의 뒤에서 어색한 한국어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푸른 눈의 외국인이 보였다.
왜 한국어가 들릴까 잠시 고민했는데, 이유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자동 통역 중]
로스트 월드의 자동 통역 시스템 덕분일 터.
충분히 대화가 가능한 상황이거늘, 상대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기릭!
곧바로 활을 들고는 다시 지호를 겨누기 시작했으니까.
‘밴딧이라고 했었나?’
다른 이를 약탈하는 행동을 말하는데, 로스트 월드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고 들었다.
-이게 로스트 월드지 ㅋㅋㅋㅋㅋ
-쟤네 어느 나라 사람임??
-불곰 친구들 같은데 ㅋㅋㅋㅋ
-어우, 하필 스타팅 지점에 다른 사람들이 있냐 ㅋㅋㅋㅋㅋㅋ
-심지어 제대로 팀 꾸린 사람들임…….
-미다스 이번에도 해내나?
-되겠냐 ㅋㅋㅋㅋㅋㅋㅋ
게임 시작부터 직면한 위기.
시청자들은 당연히 즐거웠다.
하지만 지호는 같이 웃을 정신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을 거 같다, 얘?”
“상관없다.”
어느새 다른 외국인들이 그를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몇몇은 총까지 들고 있었다.
“저는 돌인데, 쟤네는 총이 있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님은 이제 시작했고, 쟤네는 이미 기반 다 다진 상태잖아요 ㅋㅋㅋ
-이래서 초기화 될 때 시작하는 거 ㅋㅋㅋㅋㅋ
-그래도 AK는 아니고 반자동소총이네…….
-그럼 뭐 달라짐? ㅋㅋㅋㅋ 얘는 돌밖에 없는데 ㅋㅋㅋㅋ
아무리 매번 기적 같은 플레이를 펼치던 지호라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이건 답 없네요.”
지호가 두 손을 위로 들었다.
탕! 타다당!
그와 동시에 총성이 울렸고, 시야가 흐릿해졌다.
-이게 맞지 ㅋㅋㅋㅋ
-원래 이러면서 배우는 게임임.
-이게 로스트 월드다 이마리야!!!
“재밌네요.”
인터넷에서 봤듯 로스트 월드에서는 흔한 상황일 거다.
지호도 웃으며 다른 지역에서 리스폰하려 했다.
한데 그때, 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퍽! 퍽! 퍽!
“눕. 눕. 캬캬캬.”
“두개골 고맙다. 잘 가져간다.”
어색한 통역, 비웃음과 함께.
무언가를 터뜨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저거 무슨 소리죠?”
왜인지 모를 불쾌한 기분에 지호는 고개를 갸웃했고.
몇몇 시청자들이 곧바로 답했다.
-두개골 까는 거 같은데?
-ㅇㅇ 시체 파밍중임.
-티배깅 ㅋㅋㅋㅋㅋㅋ
-퓨처 워에서는 양학하던 미다스가 로스트 월드에서는 농락당하는 이야기? ㅋㅋㅋㅋㅋㅋㅋ
“하.”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지호는 헛웃음을 흘렸다.
게임에서 죽는 건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비꼰다?
이건 얘기가 다르다.
그리고, 참을 수 없다.
“오늘 합방 전까지 목표는 저 친구들한테 복수하는 거로 하죠.”
그의 입가에 처음 보는 사악한 미소가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