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5화. 로스트 월드 -솔로 플레이(4)
조용하던 지하도에 울려 퍼진 요란한 소리.
지호는 슬쩍 위를 올려다보았다.
철컹-! 철컹!
오래된 구식 엘리베이터가 미처 막기도 전에 덜컹거리며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헉;;; 뭐지? 쟤네 팀인가??
-아직 모름. 백업일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팀일 수도 있고.
-근데 이러면 양각 아님?
-일단 미션은 실패네…….
-미션이 문젠가 ㅋㅋ 여기서 죽으면 파밍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ㅋㅋㅋㅋㅋ
-태초마을행 ㅋㅋㅋㅋㅋ
기계가 혼자 작동할 리는 없으니.
저 위에 누군가 있는 게 분명하다.
그게 기존에 상대하던 적들의 지원군인지, 아니면 새로운 적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상대가 누구든 간에 지호에게는 불리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어찌 됐건 아군은 아닐 테니까.’
그렇다고 지레 겁먹을 수는 없는 노릇.
철컥!
지호는 빠르게 총을 장전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다행히 지하도의 엘리베이터는 느리다.
최하층까지 내려오는데 넉넉잡아 2분 이상은 걸릴 정도?
방금 올라가기 시작했으니 다시 내려오려면 대략 3~4분은 걸릴 터.
교전이야 끝낼 수 있을지 몰라도.
시체에 남은 장비들까지 챙기고 도망치기에는 빠듯한 시간이다.
‘뭐, 도망칠 생각은 없으니 상관없겠지만.’
어찌 보면 불리한 상황인 건 맞다.
하지만 도망칠 생각은 없다.
왜냐?
해볼 만하니까.
아예 불가능하다면 모를까, 고작해야 불리한 정도로 해보지도 않고 도망치는 건 지호답지 않다.
물론 이건 지호의 생각이고.
쉴 새 없이 올라오는 채팅창의 반응은 달랐다.
-미다스 님!! 멍 때리고 있을 때가 아님!!!!
-소리 못 들으셨나??? 위에서 적 내려오고 있어요…….
-이렇게 죽는 건 진짜 에반데;;;
-빨리 ㅌㅌㅌㅌㅌㅌ
-아직 안 늦었나???
예전의 지호였다면 채팅창이야 어떻든 일단 넘기고, 결과로 보여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트리머인 이상 방송도 신경 써야 한다는 걸 깨달은바.
그는 짧게나마 계획을 설명하려 했다.
“이거 생각보다 해볼 만-.”
그리고 때마침, 지호의 말을 끊으며 미션이 날아왔다.
[‘2300시간 로악귀’님이 미션을 등록했습니다.]
[아까 교전으로 눈요기 오지게 해서 인심 쓴다. 지금 바로 계단으로 도망치면 1만원.]
익숙한 닉네임이었다.
설산에서 생존 미션을 걸고.
이어서 곰을 잡는 미션까지 걸었던 그 사람이었으니까.
-또 쟤야?
-아까 템 빨아먹는 미션 걸었다 아님?
-ㅇㅇ 근데 갑자기 빼라는 거 보니까, 여기에 계속 있는 게 맞는 거 같기도 ㅋㅋㅋㅋㅋㅋ
-그러게 ㅋㅋㅋㅋㅋㅋㅋ
-저 사람이 저러니까 뭔가 있는 거 같긴 하네.
-큰 거 오나?????
묘한 데자뷰가 느껴지는 ‘2300시간 로악귀’의 행동에 시청자들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설산에서처럼 해내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이 차오른 것이다.
지호는 자연스럽게 바뀐 분위기에 올라탔다.
“하하, 도망을 어떻게 칩니까. 미션 깨고 로악귀 님이 주시는 미션금 받아가야죠.”
-벌써 15만원 받았잖아 ㅋㅋㅋㅋ
-지가 주겠다는데 어쩌겠어…….
-맞긴 해 ㅋㅋㅋㅋ
그때.
철컹! 철컹!
요란한 엘리베이터의 소음을 뚫고, 기다렸던 소리가 들려왔다.
스륵, 스륵.
누군가 바닥을 기는 소리였다.
‘역시, 안 살리곤 못 배기겠지?’
방금 전의 교전에서 지호는 한 가지 덫을 깔아두었다.
바로, 한 명을 기절상태로 둔 것.
보통 이런 게임에서 살릴 수 있는 팀원을 버리는 건 쉽지 않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살리려 할 터.
순전히 그가 노렸던 대로였기에.
“일단 남은 둘부터 마무리 지을게요.”
타앗!
지호는 소리가 멈추는 순간 밖으로 달려나갔다.
‘역시.’
예상대로 그의 눈에 들어온 장면은 기절한 팀원을 구하기 위해 손을 대고 있는 적이었다.
“……!”
한발 늦게 지호를 확인했는지 그가 부랴부랴 총을 겨누었지만.
이미 늦었다.
그보다 먼저, 지호가 방아쇠를 당겼으니까.
탕! 타앙!
콰직!
순식간에 헤드에 꽂힌 총알 세 발!
상대의 몸이 그대로 무너졌다.
먼저 누운 팀원과 마찬가지로 기절 상태에 빠진 것이다.
철컥!
마무리를 위해 다시금 총구를 드는 지호의 귀에 또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NPC가 그를 겨누는 소리였다.
시야에 누군가 보이면 총을 난사하는 게 NPC의 특성.
지호는 곧바로 몸을 날리며, 기절한 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투두두두!
타앙! 타당!
방금 전 지호가 있던 위치에 NPC의 총알이 박혔다.
그리고 지호가 쏜 총알은.
콰직!
정확히 기절한 적들의 머리를 꿰뚫었다.
-캬…. 진짜 시원시원하게 싸우네…….
-이제 백업 온 놈들만 잡으면 되는데.
-글킨 한데 그거까지 바라는 건 좀 욕심이지 ㅋㅋㅋㅋㅋ
-ㄹㅇ ㅋㅋㅋ 좀 불리하지 않나?
-몇 명인지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어지간하면 불리할 듯.
순식간에 남은 적을 정리하고, 동시에 NPC들로부터 엄폐까지 완벽하게 끝낸 지호.
채팅창에 감탄과 걱정이 동시에 올라왔다.
하지만 지호의 생각은 달랐다.
“걱정 마세요. 새로운 팀이면 모를까. 만약 저쪽이 지원 온 거면 제가 질 수가 없어요.”
-???
-어째서??
철컹!
점점 가까워지는 엘리베이터 소리.
지호는 엄폐한 위치와 총을 정비하며 이유를 말했다.
“저 사람들이 온 거면, 무장이 빈약할 테니까요.”
-엥???
-그걸 님이 어케 암???
-CCTV라도 달아뒀나 ㅋㅋㅋ
-ㄴㄴ 저 말이 맞음.
“저 사람들 집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최소 10분은 걸리는데. 백업이 너무 빨랐어요. 거의 3분 만에 왔으니까.”
-아아, 맞네!
-근가…?
-ㅇㅇ 미다스가 올 거 알고 있었으면 몰라도 밴딧 당했다는 소리 듣고 백업 올 시간은 아님.
-그럼 어케 된 거?
-침낭 깔면서 왔을 테니까, 근처에서 리스폰하고 바로 뛰어왔을 가능성이 높지.
물론 새로운 적일수도 있겠으나.
그 또한 괜찮다.
어차피 적이 나올 수 있는 곳은 좁은 문 하나.
지호가 먼저 자리 잡은 이상, 상대가 몇이든 사냥감에 불과할 테니까.
쿵-!
그 사이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는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몇 명이나 나올지 기대되네.
-ㄹㅇ 많으면 많아서 재밌을 거 같고, 적으면 미션 깨니까 꿀잼일 거고 ㅋㅋㅋㅋㅋ
-ㄷㄱㄷㄱㄷㄱㄷㄱㄷㄱ
“후….”
지호도 차분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그곳을 응시했다.
그리고 그들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채팅창이 웃음으로 도배되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로악귀 ㅋㅋㅋㅋㅋ 또 5만원 뜯겼네 ㅋㅋㅋㅋㅋㅋ
-원시인들 ㅎㅇ
-쟤넨 무슨 깡으로 ㅋㅋㅋㅋ
-늦기 전에 양각으로 싸먹으려고 했나본데 ㅋㅋㅋㅋ
-응, 이미 늦었어.
조심스레 문밖으로 나오는 적들.
그들이 하나같이 속옷만 입은 상태로, 손에는 활이나 돌칼 따위를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스트 2300시간 로악귀’님이 50,000원 후원!]
[쩝……. 피지컬에 판단력도 좋은데, 운까지 좋네. 이게 왜 새로운 팀이 아니냐;;; 에라이, 다 가져가라. 다 가져가!]
이어서 미션 성공이 떴고.
지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 말이 맞죠? 이제 마무리하고, 쟤네 집 가서 좀만 괴롭히다가 끝낼게요.”
* * *
“후… 그래서. 한 명한테 다 죽고 돌아왔다? 템도 다 빨렸고?”
지나가던 뉴비, 지호를 괴롭혔다가 표적이 된 러시아 팀의 팀장.
세르게이는 황당한 눈빛으로 팀원들을 바라보았다.
‘단체로 몰카라도 하는 건가?’
모아놓은 무장을 싹 다 입히고 초반 개꿀 파밍지인 지하도로 파밍을 보낸 게 고작해야 십여 분 전.
기습을 당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그러려니 했다.
익숙한 일이니까.
서버 초반에 저 정도 무장이면 알아서 하겠거니 싶었는데…….
지금까지 쌓아둔 총과 무장을 전부 털리다니.
그것도 한 명한테!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미안…….”
“근데, 그 새끼가 진짜 미친놈이었어.”
그런데 팀원들의 침울한 표정을 보니 농담이 아니었다.
“핵이야?”
세르게이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짚으며 말했다.
비록 사회인들이 주말에만 취미로 모여서 하는 팀이라지만.
그들은 대부분 플레이 타임 1,000시간은 넘는 사람들이다.
상대가 아무리 잘했다 쳐도, 4:1을 질 만한 이유는 핵밖에 없다.
“그런 거 같은데.”
“그게 아니고서야 샷빨이 말이 안 되긴 해.”
“로그 딴 다음에 고유넘버 조회해봤는데, 그 새끼 플탐 3시간따리야. 무조건 핵임.”
“뻐킹 원숭이 새끼.”
세르게이는 인상을 찌푸렸다.
로스트 월드는 게임사에서 직접 운영하는 서버가 없다.
게임사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서버는 있지만, 대개는 지금 이 서버처럼 사설서버다.
그만큼 보안이 취약해서.
간혹 에임핵이나 플라이핵 같은 핵이 뚫리곤 한다.
요즘 좀 안 보인다 싶었는데 그새 다시 뚫린 모양.
“핵은 어쩔 수 없지…….”
소중한 아이템들을 다 뺏긴 건 뼈아프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주워 담을 수 없는데.
다행히 기존에 얻었던 총으로 연구는 끝내뒀으니, 재료만 구하면 다시 만들 수 있다.
로스트 월드는 원래 이런 게임.
그는 빠르게 체념하고 오더를 내렸다.
“일단 내가 관리자한테 신고 넣어둘 테니까, 다시 파밍이나 가자.”
“난 담배 한 대만 피고, 핵쟁이 원숭이 새끼한테 당하고 나니까 열 뻗쳐서 안 되겠다.”
“그럼 난 밥 좀 먹고 올게.”
“우린 파밍 다녀올게.”
“좀따 보자고.”
두 명의 팀원들은 잠시 휴식을 선언했고, 나머지는 파밍을 나갔다.
“오케이, 대신 빨리 와. 방금 무장 빨린 거 타격 커서 좀 빡세게 해야 하니까.”
그였어도 열이 뻗쳤을 터.
세르게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신고 탭을 눌렀다.
한데, 신고내용을 다 쓰기도 전에.
탕! 타다당! 탕!
집 밖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헬프! 밖에 적 있다!”
“지원 나와줘!”
동시에 방금 파밍을 나간 팀원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바로 나갈게.”
세르게이는 급하게 활을 챙긴 후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문을 열자마자.
콰직!
‘콰직?’
시원한 헤드샷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바닥으로 기울었다.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이 머리를 꿰뚫었고, 곧바로 기절 상태에 빠진 것이다.
콰직!
이어서 또다시 머리를 관통한 총알.
사망을 의미하는 회색 화면 너머 멀리 보이는 적은, 몇 시간 전 그가 직접 두개골을 캔 동양인이었다.
“왓더…….”
* * *
몇 시간이 지났다.
쐐애액! 콰직!
“하나 더 컷.”
-진짜 악질 ㅋㅋㅋㅋㅋㅋ
-샌드백 패냐고 ㅋㅋㅋㅋㅋㅋ
-내가 당하는 것도 아닌데 토나온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처음에는 재밌었는데 이제 슬슬 지루하긴 하네요.”
러시아 팀의 문이 보이는 언덕.
그곳에 서서 활을 당기고 있던 지호는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ㅋㅋㅋㅋㅋㅋㅋ
-쟤네는 지옥일걸요?
-ㄹㅇ 저기 봐 ㅋㅋㅋ 끔찍함
그의 화살 끝이 향하고 있는 장소는, 말 그대로 시체 밭이었다.
집에서 나오는 이들도.
밖에서 부활한 후 지호를 노리러 온 이들도.
모두 지호에게 죽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이제 총알도 다 떨어져서 활을 쏘고 있을 정도.
-진짜 오지게 잡긴 했네.
-지나가던 뉴비 한 번 잡았다가 이게 뭔 난리야 ㅋㅋㅋㅋㅋ
-솔직히 날벼락이긴 함…….
“그치만, 계속 도발을 치니까…….”
사실 어지간하면 진작 끝냈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목적은 로스트 월드에 대해 조금 익히려는 것이었고.
저들에 대한 복수는, 말이 복수지 그냥 조금 괴롭히는 정도로 끝낼 생각이었으니까.
-미친놈들이긴 했어…….
-ㅇㅇ 저렇게 뒤지면서도 욕해대는 건 진짜 쉽지 않은데;;;
-근데 지금은 왜 조용함?
-원래 미친개는 매가 약이라고 했어. 뒤지게 패다 보니까 조용해지더라 ㅋㅋㅋㅋㅋㅋㅋㅋ
-아하~ 납득 완료 ㅋㅋㅋㅋ
그런데 상대도 만만치 않았다.
계속 죽으면서도 나와서 갖은 욕을 하더니.
옐로 몽키니 뭐니 인종차별적 발언을 시작으로 끝내는 패드립까지 할 정도였다.
뭐, 그것도 이젠 끝이다.
그 후로도 몇십 번을 죽더니 이제는 집에 꽁꽁 박혀서 나오지도 않고 있었다.
“이 정도면 할 만큼 하긴 했네요.”
샌드백을 패는 것도 어느 정도지, 이제 슬슬 그만할까 싶던 와중.
“미다스 님?”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시죠?”
아무런 기척도 없이 갑자기 나타난 목소리.
지호는 경계하며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에 들어온 건, 허공을 날아다니는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서버 관리자입니다.”
-관리자가 왜……?
-뻔하지 뭐 ㅋㅋㅋㅋㅋ 신고 들어왔겠지.
-아, 핵이라고?
-ㅇㅇ 백퍼임 ㅋㅋㅋㅋ
-미다스는 어디가든 핵 소리 듣네;;;;;
-핵 소리 안 나오겠냐고 ㅋㅋㅋ
-미다스 방송중이라 해명 쌉가능이긴 함.
-ㄴㄴ 사설 서버는 관리자에 따라 다름. 방송이고 뭐고 바로 밴 때리는 사람도 있어……. 걍 지 맘임.
-이거 느낌이 쎄한데.
“무슨 일이신가요?”
관리자가 아무 이유도 없이 찾아오지는 않았을 터.
지호는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핵 관련 신고가 들어왔는데….”
역시나 그의 입에서 나온 주제는 핵이었다.
“익숙한 아이디라 확인 차 와봤습니다. 지금 방송 중이신 한국 스트리머, 미다스 님 맞으신가요?”
하지만 다행히, 예상처럼 부정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네, 맞습니다. 실시간 다시보기로 확인하실 수 있을 텐데. 핵은 절대 안 썼습니다.”
“네네. 제가 퓨처 워도 좋아해서 미다스 님 대충 알고 있는데, 본인이 맞나 확인하러 와봤습니다.”
차분한 대답과 함께 관리자의 시선이 잠시 허공을 향했다.
인터넷을 보고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관리자의 입이 열렸다.
“일단 방송 영상으로 봤을 때, 핵으로 보이는 장면은 없네요. 즐거운 게임 되세요.”
“아, 감사합니다.”
-캬ㅑㅑㅑㅑㅑㅑ
-핵 신고 당했는데 관리자가 샤라웃을 ㅋㅋㅋㅋㅋ
-저 관리자 외국인 아니었음?
-ㅇㅇ 미다스 월클이네 ㅋㅋㅋㅋ
-나 이런 거 처음 봄 ㅋㅋㅋㅋ
-원래는 어떤데?
-뭐, 미다스 같은 슈퍼 플레이를 하는 경우도 드물긴 한데. 일단 관리자가 저렇게 친절하진 않음.
-ㅇㅇ 억울하게 밴 당해서 문의 넣어도 단답만 오는데;;;;
용건이 끝나자마자 허공으로 사라지는 관리자를 보며 시청자들은 환호했다.
관리자가 저런 대우를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쟤네도 어지간히 힘드나 본데, 이제 슬슬 그만해야겠네요.”
안 그래도 그만하려던 참.
지호는 활을 내렸다.
하지만 이내 다시 들 수밖에 없었다.
[‘악마’님이 50,000원 후원!]
[핵이라고 신고한 거 괘씸한데 좀만 더 팰까요?]
“생각해보니까 괘씸하네요. 조금만 더 괴롭혀야겠습니다.”
-미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개불쌍해 ㅋㅋㅋㅋ
-악마야…….
-오늘 하나 배워가네. 미다스는 건들면 안 된다 ㅋㅋㅋㅋㅋ
그렇게 일방적인 학살이 끝난 건.
[미다스 님 슬슬 준비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왕눈이]
왕눈이의 메시지가 도착한 후였다.
* * *
한편, 같은 시각.
“신고 넣은 거 맞아? 쟤 왜 밴 안 당하고 계속 살아있어?”
“아, 스트레스……. 저 원숭이 새끼 때문에 게임을 못 하겠네!”
팀원들의 불만스러운 항의를 들으며 관리자의 답변을 읽던 세르게이는 허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핵이 아니라네…….”
“그럴 리가! 뭔 개소리야.”
“저 새끼 관리자한테 돈 먹인 거 아니야?”
이해할 수 없지만, 어쩌겠는가.
관리자의 답변에는 그렇게 나와 있는걸.
[확인 결과, 신고하신 플레이어 ‘미다스’는 핵 유저가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해당 채널에서 플레이 영상을 확인하실 수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나도 그런 거 같은데. 관리자가 불만이면 직접 확인해보래. 저 원숭이 새끼 스트리머라고 링크까지 줬네.”
“스트리머? 링크 줘봐.”
“보냈다.”
“잠깐만, 확인해볼게.”
세르게이가 링크를 보내자 그는 잠시 허공을 응시하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 새끼 9시에 초기화되는 서버 간다는데, 쫓아갈까? 당하고만 있을 순 없잖아.”
솔깃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상대는 핵쟁이.
이대로 갔다간 결과는 뻔하다.
잠시 고민하던 세르게이는 이내 박수를 치며 말했다.
“아! 따라가자. 그리고 너 예전 팀에 핵 쓰다가 걸린 사람 있다 했지? 걔한테 연락해봐. 용병 좀 뛰라고.”
“핵쟁인데?”
그의 말에 팀원이 껄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평소였다면 핵 유저를 끌어들일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어. 핵은 핵으로 상대해야지.”
또, 이대로 넘어가기엔.
자존심이 용납할 수 없다.
세르게이는 남들을 괴롭히려고 로스트 월드를 하는 거지, 괴롭힘을 당하려고 하는 게 아니니까.
“원숭이 새끼한테 지옥을 보여주자.”
차갑게 말하는 세르게이의 입가에는 비릿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