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8화. 로스트 월드 -합방(3)
“꺄! 끝났다! 미다스 님, 디티 님, 누누야! 다들 나이스에요!”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와, 미아 누나. 디티 님하고 미다스 님 봤어? 무슨 화살이.”
-이 자리는 우리껍니다 ㅋㅋㅋ
-고인물 + 미다스 이거 못 막지 ㅋㅋㅋㅋㅋㅋㅋ
-일단 미다스가 사기여 ㅋㅋㅋ
-뭐, 쏘는 족족 다 헤드에 박아버리니까 그냥 두 발만 쏘면 무조건 킬 나오던데;;;;;
지호의 합류 이후.
설산에서의 자리싸움은 빠르게 끝나버렸다.
애초에 고인물인 디티 하나로도 버거워하던 상대였는데.
먼 거리에서 말도 안 되는 적중률로 화살을 꽂아대는 지호까지 합류했으니 감당이 될 리가.
게다가.
“뭐지? 딱 우리 오자마자 끝나네.”
“그러게 뭔가 주인공 된 기분이다. 이 전쟁을 끝내러 왔다. 뭐 이런 느낌. 암암.”
“왕눈이 오빠! 자돌 언니! 어? 망군이랑 봉봉이까지. 한 번에 다 왔네? 좀만 빨리 오지! 미다스 님이 엄청 신기한 거 보여줬었는데!”
“신기한 거? 뭔데?”
때마침 도착한 왕눈이를 비롯한 나머지 팀원들도 큰 역할을 했다.
피지컬도 압도적인데 인원까지 우위를 점하기 시작하니, 상대가 곧바로 꼬리를 만 것이다.
“음….”
치열한 초반 자리싸움은 끝났지만, 게임은 이제야 시작이다.
오더를 맡은 디티는 지도를 확인하는지 잠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고.
“응응! 막 미다스 님이 화살을 쏘는데! 머리 중앙에 딱! 그것도 두 발 연속으로! 엄청 신기했어!”
“에이, 무슨 주몽도 아니고 그게 말이 되냐. 미아 너 과장하지 말라했지.”
“진짜라궁! 아, 왜 안 믿냐! 누누야, 니가 말해 봐! 진짜잖아!”
“하하……. 미아 누나 말이 맞아요. 다들 보셨으면 깜짝 놀랐을 텐데.”
“흠, 그렇게 잘한다고?”
미아를 비롯한 팀원들은 대화를 나누며 적들의 시체를 파밍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멀리서 활을 쏘던 지호는.
“다 모이니까 꽤 많긴 하네요.”
합방에서만 느낄 수 있는 떠들썩한 분위기에 감탄하며, 팀원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게 ㅋㅋ 다 모이니까 든든하네 ㅋㅋㅋ
-다른 거 다 떠나서, 일단 대화가 안 끊기는 게 오지는 듯.
-근데 원래 미다스 말고 다른 스머들은 말 많긴 해…….
-ㅇㅈ 글고 왕눈이쪽 사람들이 유난히 더 말이 많기도 함 ㅋㅋㅋㅋ
이미 인사를 한 왕눈이, 디티, 미아, 쿠누누를 시작으로.
차례로 김자돌, 망군, 봉봉봉까지.
교전 중에 멀리서 잠시 인사를 나눴을 뿐인데, 한눈에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인상적인 사람들이었다.
다른 팀원들은 한데 모인 상황.
마지막으로 지호가 도착하자, 디티의 입이 열렸다.
“이번 시즌은 이쪽에 터 잡고 가볼게요……. 일단… 집부터 지어야 하니까 다 같이 돌이랑 나무부터 캐오면 될 거 같아요…….”
“넹!”
“알겠습니다, 디티 님.”
그녀의 오더를 들은 팀원들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 명, 지호를 제외하고는.
“잠시만요. 저 자원 조금 있어요.”
갑자기 자원?
무슨 소린가 싶었는지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 시선을 받으며.
지호는 아이템창을 열고, 오는 길에 털어온 자원들을 꺼냈다.
툭! 투욱! 툭!
“엥?”
“뭐가 저렇게 많아.”
“와….”
돌, 나무 그리고 철과 유황까지.
한 뭉치의 아이템들이 나올 때마다 팀원들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그들 모두를 대표해, 왕눈이가 얼떨떨하게 말했다.
“와, 미다스 님. 이걸 다 어디서 구하셨대.”
소량이었으면 그들이 놀라지도 않았을 터.
그런데, 많아도 너무 많았다.
로스트 월드의 자원들은 1,000개당 한 묶음으로 묶이는데.
얼추 보이는 것만 해도 8묶음이다.
이 시점에 혼자서 캘 수 있는 양은 절대 아니니 궁금했던 것.
그리고 그에 대한 지호의 대답은 간단했다.
“오는 길에 산타들을 만나서…….”
-산타 ㅋㅋㅋㅋㅋㅋㅋㅋ
-맞긴 해 ㅋㅋㅋㅋㅋㅋㅋ
-근가?
-지들이 선물 주러 왔으니까 미다스한테는 산타지 뭐 ㅋㅋㅋㅋㅋ
“꽤 많네요….”
디티는 눈에 이채를 띠며 지호를 바라보았다.
‘이 정도면 최소 10명 이상은 잡으면서 왔다는 건데……. 아까 활 쏘던 것도 그렇고…. 시청자들이 괜히 놀란 게 아니네…….’
사실 그녀는 미다스라는 스트리머를 오늘 처음 알았다.
평소에도 워낙 로스트 월드 말고는 관심이 없는 데다가.
게임 방송을 즐겨보는 성격도 아니라 알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역시 미다스 ㅋㅋㅋㅋ
-안 그래도 자리싸움 때문에 파밍 늦어졌는데 개이득이네.
-진짜 무슨 게임이든 치트 쓰고 하는 사람 같다니까 ㅋㅋㅋㅋㅋ
다만 처음에 미다스가 자신을 소개할 때.
지금처럼, 그녀 방송의 시청자들이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던 것은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당시 디티는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었다.
로스트 월드는 여타 게임들에 비해 불친절하기로 유명하다.
탄낙차는 기본이고 불편한 조작감이나, 불합리에 가까운 환경적 요인까지.
다른 게임들과 달리 신경 써야 할 요소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뉴비는 고인물을 절대 이길 수 없다는 말도 있고.
다른 게임을 잘하는 사람들도 여기선 죽 쓰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이번에도 당연히 그럴 줄 알았는데….’
한데, 미다스는?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그저 압도적인 피지컬 하나로.
로스트 월드를 1만 시간 넘게 플레이한 디티를 놀라게 할 정도였으니까.
“디티 님, 이 정도면 스타팅 베이스는 지을 수 있겠죠?”
밝은 표정으로 물어오는 왕눈이의 말처럼.
이 정도면 작은 거점을 짓기에는 충분한 자원이었다.
그 말인즉, 초반 템포를 앞당길 수 있다는 소리!
“네… 충분하죠….”
차분히 왕눈이에게 대답하며, 디티는 잠시 계획을 수정했다.
‘설산의 왕, 해보자고 했었지…….’
평소 로스트 월드에 진심인 사람들과 팀을 꾸려서 매번 초기화에 참여하는 그녀.
당연히 설산 지역을 독점해본 경험이 많다.
‘문제는… 이분들이 우리 팀원들처럼 로스트 월드 악귀들은 아니라는 거겠지….’
팀원들과 함께일 땐 이렇다 할 전략도 필요치 않았다.
그녀가 소속된 팀의 팀원들은 하나같이 평균 플레이 타임이 1만 시간 이상인 고인물들.
주말마다 서버가 초기화되는 이 게임을 하기 위해, 직장까지 그에 맞춰 구할 정도인데 어련하겠는가.
얌전히 성장하기만 하면 이후에 화력으로 압살하는 건 간단했다.
반면, 지금의 팀원들은 평범한 이들이라고 왕눈이에게 전해 들었다.
그만큼 다른 팀들을 이기려면 압도적인 화력이 필요할 터.
“제가… 아까 1레벨 열쇠 하나 주웠고……. 근처에 설산 관측소가 있거든요….”
-오? 바로 파밍지부터?
-원래 팀이면 모를까, 이 사람들로는 빡세지 않나 ㅋㅋㅋㅋㅋㅋ
-글킨 해 ㅋㅋㅋㅋ
-하지만 미다스라면???
설산 관측소.
고인물들이 설산에 모이는 이유 중 하나이자.
초반부터 중후반까지도 쓸만한 아이템들이 나오는 파밍지였다.
원래였으면 어느 정도는 기반을 갖춘 후에야 공략을 시도하는 곳.
하지만 그녀는 확신했다.
방금 전 전투에서 본 미다스의 피지컬이라면 가능할 것이다.
비록 게임 초반이지만.
방호복도 있고, 활 솜씨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 정도면 조금 난이도 높은 파밍지라도 가능하겠지.
결정을 내린 디티는 미다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머지 분들 파밍하시는 동안…. 미다스 님은 설산 관측소로 파밍가시면 될 거 같아요…….”
-????????
-되려나…….
-일단 성공하기만 하면 바로 떡상가능인 건 확실함 ㅋㅋㅋㅋ
-글고 젠타임도 체크되는 게 진짜 큼. 초반에 계속 파밍지 컨트롤 하면서 스노우볼 굴릴 수 있어서.
-일단 저 사람 고인물이라며. 불가능할 거 같으면 말도 안 꺼냈을 거 같은데?
먼저 난리가 난 건, 지호의 채팅창이었다.
그들은 앞서 지호가 혼자 지하도를 정리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설산 관측소는 지하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다.
NPC들의 무장 수준부터 차이가 나는 데다가 AI도 차원이 다르고, 나오는 수도 3배 이상이다.
미다스가 아니었다면 불가능이라는 말부터 나왔겠지.
한데, 정작 당사자인 지호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바로 가면 될까요?”
설산 관측소가 어떤 곳인지?
지호는 모른다.
다만 확실한 건, 어려워도 가능하니까 얘기가 나왔을 테고.
가능한 일이라면 그는 실패할 리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호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자신감이 넘쳤다.
-캬ㅑㅑㅑㅑㅑㅑㅑ
-이게 미다스지 ㅋㅋㅋㅋㅋ
-ㄹㅇ 그냥 다 실력으로 박살내는 이 맛. 매번 짜릿함 ㅋㅋㅋ
“네…. 바로 가주시면 될 거 같아요…….”
오더를 맡은 디티도, 당사자인 지호도 태연한데.
불만이 있을 사람은 없었다.
팀원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고.
“그럼 결정 났으니까…. 바로 시작할게요. 저도 토대만 만들고 바로 파밍하겠습니다…….”
디티는 말을 끝내며 건설 망치를 손에 들었다.
“다들 가장!”
“오케이.”
이어서 다들 파밍을 나서려던 찰나.
한 명이 이견을 제시했다.
“자원도 여유 있으니까, 저도 미다스 님이랑 같이 파밍지 돌아도 될까요? 아무래도 혼자보다는 둘이 낫지 싶은데.”
처음에 미아와 대화를 나누던 남자, 봉봉봉이었다.
어차피 한 명보다는 두 명이 가서 빨리 정리하는 게 이득일 터.
디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설산 관측소.
새하얀 눈이 뒤덮인 설산, 그 중턱을 조금 넘은 지점에 위치한 파밍지다.
돔형 지붕, 천천히 돌아가는 풍차.
그리고 제대로 된 형체를 갖춘 3층 건물까지.
다소 낡은 티는 나지만.
그럼에도 확실한 문명의 흔적이 느껴지는 구조물이었다.
“오… 로스트 월드에도 이런 건물이 있네요.”
로스트 월드에서 처음 보는 건물을 지호는 신기하게 바라보며 감탄했다.
어떻게 봐도 뉴비로 보이는 반응.
신난 건, 동행한 봉봉봉이었다.
“미다스 님, 로스트 월드는 오늘 처음이라고 하셨죠? 설산 관측소도 당연히 처음이시겠네! 제가 설명해드릴게요!”
-봉봉이 신났네 ㅋㅋㅋㅋㅋㅋ
-아닠ㅋㅋㅋ 아까까지만 해도 미다스 거품일 거라고 의심했었잖아 ㅋㅋㅋ 갑자기 왜 이래 ㅋㅋㅋ
-뭣? 뉴비? 핥짝!!!
-뉴비 냄새는 못 참지 ㅋㅋㅋ
-얘는 진짜 단순해 ㅋㅋㅋㅋㅋㅋ
동시에 봉봉봉의 채팅창에선 놀리는 듯한 말들이 한참 올라왔다.
시청자들은 그가 왜 미다스를 따라왔는지 알기에 웃음이 나오는 것.
“아니, 의심한 건 아니고…. 솔직히 님들도 궁금했잖아.”
봉봉봉.
그는 왕눈이 사단이라 불리는 스트리머 중에서는 비교적 피지컬이 뛰어난 편이었다.
특히 로스트 월드는 광적으로 좋아해서 꽤 한다는 소리도 들었고.
그렇기에.
미아의 말이 과장이라 생각했다.
화살을 쏘는 족족 같은 위치에 박히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근데 쿠누누까지 맞다고 하니, 더더욱 궁금해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볼 수 있을 터.
당장은 뉴비인 미다스에게 무언가를 알려주는 게 더 즐거웠다.
“미다스 님, 저 안에 들어가면 1레벨 열쇠 사용하는 곳이랑. 파밍할 수 있는 상자들 있는데, 들어가면 제가 알려드릴게요. 저만 믿으세요.”
“오, 감사합니다.”
“일단 설산 관측소에서 조심해야 할 것들은 말이죠-.”
그렇게 대화를 이어가길 잠시.
이내 그들의 눈앞에 설산 관측소의 정문이 보였다.
동시에, 지금까지 신나게 말하던 봉봉봉이 목소리를 죽였다.
“2층이랑 3층 창가에 NPC 한 마리씩 경계서고 있는 거 보이시죠? 쟤네한테 들키면 한 번에 다 몰려오니까 숨어서 이동해야 합니다.”
설산 관측소 공략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2층과 3층에서 경계를 서는 NPC들은 일정한 시간을 간격으로 감시하는 방향을 바꾼다.
놈들의 시선을 피해 이동하며, 다른 NPC들을 하나하나 제거하는 것이 포인트인데…….
미다스는 그렇게 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안 걸리면 된다는 말이죠?”
“그쵸, 그래서 저격소총이 있으면 편해요. 쟤네 다 딴 다음에 편하게 들어가면 되니까.”
다소 생뚱맞은 미다스의 질문에 무심코 대답한 봉봉봉.
이내 그의 귓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기리릭-
미다스가 활을 당기는 소리였다.
“어어, 미다스 님. 그거 못 맞추면 진짜 대참산데….”
황급히 말리려던 것도 잠시.
이어진 결과를 본 그의 입이 떡 하니 벌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