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화. 로스트 월드 –2일 차(2)
한참 날아가던 와중 헬기를 조종하는 레버를 놓은 지호.
이어서 그가 손에 든 것은.
철컥!
반자동소총보다 한 단계 발전된 무기, 자동소총이었다.
-음…….
-무슨 생각하는지는 알겠는데, 이게 맞나;;;;
-이게 무슨 드론인줄 아누 ㅋㅋㅋ 바로 추락할 텐데 ㅋㅋㅋㅋ
갑작스러운 돌발행동에 그의 시청자들이 즉각 반응을 보였다.
먼저, 채팅이 빠르게 올라왔고.
[‘로뉴비’님이 1,000원 후원!]
[님님 이 게임에 호버링 기능 없어요;; 빨리 레버 잡고 운전하셈 ㅋㅋ]
[‘서폿유저’님이 10,000원 후원!]
[이거 맞음? 아닌 거 같은데….]
또, 몇몇은 후원까지 보내며 지호를 만류했다.
하지만 그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결국 지호는 레버를 붙잡지 않았고, 균형을 잃은 헬기는 지상을 향해 추락하기 시작했다.
휘이이잉!
전신을 두드리는 거친 바람.
빠르게 낮아지는 고도.
얼마 전, 배틀 에어리어의 비행기에서 뛰어내렸을 때처럼 아찔한 감각이었다.
그때와 한 가지 다른 점은.
단순히 아래로 떨어지기만 하는 게 아니라는 것.
덜컹, 덜컹-끼리익!!!
-으…, 빙글빙글 도네…….
-ㅠㅠㅠㅠㅠㅠ
-뭐 하러 돈 내고 놀이공원 가냐 미다스 방송 보면 되는데 ㅋㅋㅋ
-와, 토할 거 같아;;;
-화면 꺼야겠다. 멀미나서 못 버티겠음ㅠㅠ
실시간으로 방송을 보고 있지만 시청자들이 느낄 수 있는 건, 시각과 청각뿐이다.
끊임없이 덜덜거리는 진동이나.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하강감은 화면으로 전해질 수 없는 부분이니까.
한데, 그럼에도 몇몇은 화면을 끄고 싶어 할 정도로 극한 상황이었다.
그러니 당사자인 지호가 어떠할지는 말할 필요도 없을 터.
휘이이잉-!
거칠게 추락하는 기체와, 눈을 찌르는 바람.
심지어는 흩날리는 머리카락까지.
온갖 것들이 그를 방해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ㅠㅠㅠ
-총을 들면 뭐하냐고 쏠 수가 없는데…….
-근데 끝까지 레버 안 잡고 버티는 건 진짜 리스펙 ㅋㅋㅋㅋㅋ
간신히 눈만 뜰 수 있을 정도로 극한 상황.
시청자들은 안타까워했으나.
정작 당사자인 지호의 표정은 평온했다.
왜냐?
아주 조금이라도 눈이 떠지고 손을 움직일 수 있다면, 그는 적을 정확히 맞출 자신이 있었으니까.
바로, 지금처럼.
‘저기 있네.’
끊임없이 흔들리는 조준경 사이로 목표가 어렴풋이 보였고.
지호는 차분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후으….”
그리고 그 순간.
…….
귓가에 들려오던 바람 소리와 삐걱거리는 소리가 멈췄다.
또, 그의 눈에는 표적이 정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온 세상이 고요해진 정적 속에서.
지호는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콰직!
이어서 들려온 경쾌한 파열음.
그의 총알이 적들의 머리를 꿰뚫었다는 의미였다.
-와…….
-진짜 미친놈;;;;
-말했잖아, 미다스는 신이라고 ㅋㅋㅋㅋ
-아니;;;; 핵을 써도 이런 건 못하겠다 미친놈아 ㅋㅋㅋㅋㅋㅋ
-미쳤다…….
로스트 월드의 설정상 자동소총은 반자동소총보다 위력이 뛰어난 대신, 반동도 세다.
아주 잘 다루는 게 아니면 평지에서도 반동을 완벽하게 잡기 힘들 정도.
더군다나, 빙글빙글 돌면서 추락하는 헬기에서 쏜다?
이건 고인물이 아니라 썩은물을 데려다 놔도 불가능하다는 말부터 꺼낼 것이다.
그런 전제라면 원하는 방향으로 총을 쏘는 것 자체도 버거울 테니.
한데, 지호는.
겹겹이 쌓인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목표를 정확히 맞췄다.
이제 그의 슈퍼플레이에 익숙해진 시청자들도 당황할 정도였는데, 처음 보는 이들은 어련하겠는가.
-봄??????
-와 저거 진짜 뭐냐 ㅋㅋㅋㅋㅋ
-아니 ㅋㅋㅋㅋ
-방금 내가 본 게 맞음? 경헬에서 쟤네 맞춘 거 맞지?????
-ㅇㅇㅇ;;;;;
-와……. 저게 미다스임??
“진짜 미쳤다…….”
폭주하는 채팅창을 볼 정신도 없이.
미아는 눈을 연신 깜빡거리며 허공을 바라보았다.
반쯤 추락한 경량헬기가 보인다.
놀라운 건.
‘방금, 저 거리에서 총을 쏴서 두 명을 눕힌 거지……?’
솔직히 미다스가 길을 터준다고 할 때도 믿지 않았었다.
뭐, 활도 총도 잘 쏘는 거야 봤으니 알고 있었지만, 그것도 옆에 있을 때 가능한 거 아니겠는가.
그래서 도망치라고 했던 건데….
미다스는 해냈다.
그것도 아주 깔끔하게.
‘기껏 길까지 열어주셨는데, 죽어서 템 다 빨리면 면목이 없지.’
그녀는 곧바로 움직였다.
툭!
“왕눈이 오빠! 도망치자!”
방금 전까지의 그녀처럼 멍하니 허공을 보는 왕눈이를 부른 뒤.
총을 난사하며 도망칠 타이밍을 재기 시작한 것이다.
타다다당! 타당!
적들은 아직 반자동소총을 쓰는 반면, 미아와 왕눈이의 무기는 한 단계 위인 자동소총.
게다가, 위치도 그들이 유리했다.
덕분에 적들의 머릿수가 더 많음에도 버틸 수 있었던 것.
물론 결국 쿠누누가 죽은 것처럼 시간이 더 지났으면 그들도 죽었을 테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게다가.
“왕눈- 님!”
또다시 미다스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타다다당!
허공에서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총격이 향한 방향은 적들이 있는 곳.
말은 중간에 끊겼지만 미다스의 의도는 전해졌다.
도망치라는 거겠지.
-마지막까지 철저하네 ㅋㅋㅋ
-저 정도면 그냥 영웅 아님?
-ㄹㅇ ㅋㅋㅋㅋ
-오늘부터 미다스 팬 한다. 개멋있네…….
“오빠, 가자!”
“엉! 미다스 님! 저희 도망치고 있습니다!”
타다닥.
미다스가 길을 터준 방향으로 달려가던 미아는 잠시 위를 올려다보았다.
한참 위에서 날던 헬기가.
어느새 형체가 보일 정도로 가까워진 상태였다.
‘못 살겠지…?’
미아의 눈썹이 살짝 떨렸다.
아무리 미다스라 해도 저 상황에서 살아남는 건 힘들 터.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그들이라도 살아야지.
미아는 다시 왕눈이와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 * *
“미다스 님! 저희 도망치고 있습니다!”
“다행히 잘 도망치셨나 보네요.”
귓가에 들려오는 왕눈이의 목소리에 지호는 미소를 지었다.
-와… 이걸 결국 살렸네…….
-캬ㅑㅑㅑㅑㅑㅑ!!!
-그럼 뭐해 ㅋㅋ 본인은 죽을 텐데 ㅋㅋㅋㅋ
-웃음이 나오냨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반면 채팅창은 환호 반, 웃음 반인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팀원들은 구해냈지만 당사자인 그는 여전히 위기였기 때문이다.
아니, 상황은 오히려 더 악화됐다.
공중에서 자신들을 방해하는 지호가 거슬렸는지.
남은 적들이 추락하고 있는 헬기를 향해 총을 쏘아대기 시작했으니까.
피잉! 푹!
워낙 멀리서 떨어지고 있던 터라.
대부분의 총알은 빗나갔지만, 개중 몇 발은 지호의 몸에 꽂히며 체력을 갉아먹기도 했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도 있었다.
쿠구구구-!
빠르게 추락하던 헬기가 어느새 지면 근처까지 다다른 것이다.
-그래도 팀원들은 살렸으니까 된 건가?
-ㅇㅇ 아까 들어보니까 에땁까지 먹었던데, 이건 쿠누누랑 미다스 템 뺏겨도 이득임.
-로알못이라 그런 건 잘 모르겠는데, 일단 걍 멋있더라 ㅋㅋㅋ
-ㄹㅇ ㅋㅋㅋㅋㅋ 무슨 영화 보는 줄 ㅋㅋㅋㅋㅋ
-그래도 이젠 죽겠지?
-이건 못 살지 ㅋㅋㅋㅋㅋ 이거 살면 10만원 쿨도네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번에야말로 시청자들은 그의 죽음을 확신했다.
총에 죽든, 추락해서 죽든.
빠져나갈 구멍은 없어 보였으니까.
그리고 그때.
지호가 입을 열었다.
“10만 원 약속하신 겁니다.”
툭 던지듯 무심한 목소리.
하지만 그 안에 내포된 의미는 충분히 전달되고도 남았다.
-미친 그걸 보네 ㅋㅋㅋㅋㅋㅋ
-ㅇㅇ 살아보셈. 진짜 바로 쏠 테니까 ㅋㅋㅋㅋㅋㅋㅋ
-오…….
-뭐야 진짜 살 수 있음?????
“해봐야죠, 뭐.”
적들을 죽여 봐야 헬기를 제어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일 터.
지호는 일단 총을 집어넣은 뒤, 곧바로 레버를 당겼다.
끼긱!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이쯤에서 기체가 서서히 위로 상승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추락은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된 상황. 헬기는 잠시 주춤했을 뿐, 결국 멈추지 않았다.
-뭐야;;; 못 사네;;;
-그게 멈추겠냐고 ㅋㅋㅋㅋㅋㅋ
-이걸 어케 살건데 ㅋㅋㅋㅋ
-아~ 10만원 주고 싶었는데 ㄲㅂ ㅋㅋㅋㅋㅋ
타닥! 타다닥!
그 사이.
이제는 큰 나무의 가지가 얼굴을 때릴 만큼 땅이 가까워졌다.
당연히 시청자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괜찮다.
‘이 정도면 할 수 있다!’
애초에 그의 목적은 추락을 잠시 늦추는 것이었으니까.
타앗!
지호는 곧바로 추락하는 헬기에서 뛰어내리며.
두꺼운 나뭇가지를 붙잡았다.
우드득…!
순간 밑으로 쏠리는 몸.
현실이었다면 이 시점에서 팔이 빠져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게임.
히트 판정이 나지 않는 이상 데미지는 입지 않는다.
후우웅!
지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반동을 이용, 몸을 튕기며 다른 나뭇가지를 잡았다.
그렇게 몇 번.
날렵하게 나무 사이를 오가던 지호의 발이 닿은 곳은, 바닥이었다.
“짜잔! 살았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무슨…….
-뭔 마술사임? ㅋㅋㅋㅋㅋㅋㅋ
이번엔 진짜 끝이라 생각했는데 또다시 살아남은 지호.
기가 차다는 채팅만 올라왔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황당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지호와 내기를 했던 시청자였다.
[‘유리병’님이 100,000원 후원!]
[아니?????? 이걸????????]
이제는 이런 반응이 익숙해질 만도 한데.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졌다.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들을 해내는 건, 언제나 짜릿한 일이었으니까.
지호는 씩 웃으며 말했다.
“유리병 님 10만 원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대화 모드를 바꾸고, 팀원들을 불렀다.
“다들 도망치셨나요? 저 바닥에 내려왔는데, 어디쯤이신가요.”
“어? 미다스 님! 살았어여?! 어떻게? 아니다! 만나서 얘기해여! 저랑 왕눈이 오빠랑 누누 다 V4쪽에 있어여!”
“네, 바로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같이 빼시죠.”
* * *
“우리… 또 그 원숭이 새끼한테 당한 거야?”
“아니! 저게 어떻게 핵이 아닌데!”
“아무리 피지컬이 좋아도 떨어지는 경헬에서 총으로 두 명을 정확히 잡는다고? 그것도 다 헤드만 맞았다며…….”
“그 새끼는 그걸 해낸다고!”
“후… 다들 진정해. 조금 꼬이긴 했는데, 어차피 계획대로만 하면 우리가 이긴다.”
점점 격해지는 팀원들의 대화를 말리며 세르게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의 계획은 간단했다.
어차피 녀석들은 다들 스트리머.
모든 과정이 방송으로 보이니, 그걸 보면서 저격하려 했던 것.
분명 거의 다 끝난 상황이었다.
성공만 했으면 자동소총에 높은 등급 방어구까지 3세트는 먹을 수 있는 거였는데….
‘또 저 새끼가 방해했지.’
미간을 찌푸리며 시야 한구석을 바라보자, 미다스의 방송이 보였다.
녀석이 파밍지로 올 거라는 건 미리 알고 있었다.
방송을 켠 순간부터.
계속 모니터링하고 있었으니까.
“야, 세르게이. 니가 말해봐! 대체 뭘 믿고 그 새끼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던 건데?! 그냥 바로 조졌어도 되는 거였잖아!”
그렇다.
그들은 미다스라는 놈이 오는 걸 알면서도 늦장을 부렸었다.
왜냐하면.
“그거야 다 동의했던 거잖아? 원숭이 새끼 눈앞에서 팀원들 죽이고 템 다 빨아먹자고. 이제 와서 내 탓 하면 뭐가 달라지냐?”
지들도 좋다고 맞장구쳐놓고 이제 와서 내 탓이라니.
세르게이는 코웃음을 쳤고.
자연스레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다.
“일단 지난 일은 어쩔 수 없으니까, 앞으로는 계획대로—.”
그리고 뒤늦게 팀원들을 다독이려 세르게이가 다시 입을 열었을 때.
차가운 목소리가 말을 끊었다.
“계획도 필요 없어. 그냥 내가 핵 키고 학살해줄 테니까, 다 쓸어버리자고.”
팀원이 데려온 핵쟁이였다.
독이 든 사과처럼 달콤한 제안.
세르게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지금은 때가 아니야.”
핵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다는 알량한 정의감 때문은 아니었다.
그런 생각이었으면 애초에 저 남자를 부르지도 않았겠지.
“핵은 중요한 순간을 위해 아껴두자고. 지금 썼다가 어드민한테 신고 들어가서 밴 당하면 다 끝이야.”
중요한 건 타이밍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터뜨릴수록 그 쾌감은 극대화될 테니까.
예를 들면, 놈들이 다 이겼다고 생각할 때?
“그건 걱정 안 해도 되는데? 내가 쓰는 핵은 실시간으로 보는 거 아니면 못 잡아. 이게 얼마짜린데.”
그렇기에 핵쟁이의 이런 대답에도.
세르게이는 고민 없이 거절할 수 있었다.
“아냐, 그 원숭이만 피하면 나머지 놈들은 방플로 충분히 조질 수 있어. 몇 번 템 빨다 보면 지들이 먼저 레이드 올 거거든? 그때부터 반격 시작한다.”
“그래…. 해보자.”
그의 말에 돌아온 건, 팀원들의 힘없는 목소리였다.
평소와 달리 계속해서 당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들의 얼굴에는 점점 독기가 차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