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6화. 로스트 월드 -마무리
쿵! 쿠우웅!
한참 레이드에 당하고 있는 러시아 팀의 거점.
[당신은 깨어났습니다!]
“후우….”
적들의 맹공격으로 연신 떨리는 건물 내부에서 한 남자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이름은 스테판.
러시아 팀에 용병으로 불려온 핵 유저다.
“대체 왜 안 맞는 거지? 세팅이 잘못됐나?”
짜증스럽게 손을 내젓자.
시야를 가리던 리스폰 메시지가 사라지고, 이내 에임핵의 설정을 조절하는 창이 떠올랐다.
“멀쩡한데.”
세팅은 정상이었다.
그 말인즉, 핵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근데 왜 지는 거냐고…….’
방금 전의 리스폰 메시지가 벌써 몇 번째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만큼 많이 죽었다는 소리겠지.
으득!
스테판은 이를 악물었다.
어이가 없는 걸 떠나 분통이 터질 지경인데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모두가 그를 비난하기 바빴으니까.
“야, 핵! 어떻게 좀 해봐!”
“한 대도 안 맞고 조져주니 어쩌니 신나서 허세부리더니 막상 하는 건 하나도 없네.”
“핵은 어디 팔아먹었냐?”
“이래서 핵쟁이 새끼들은 상종을 하면 안 되는 건데.”
잠깐 용병으로 불려왔고 앞으로 볼 일 없는 사이인 건 맞다.
한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금은 같은 팀인데 어떻게 한 놈도 빠짐없이 자신을 탓하느냔 말이다.
‘됐다, 뭘 기대하겠어.’
사실, 지금이라도 나가면 이 고생은 끝난다.
애초에 대가를 받은 것도 아니고.
그저 흥미롭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받아들였던 제안이었으니.
하지만 아직은 내키지 않았다.
“갈 때 가더라도 복수는 해야지.”
이길 수 있으리란 기대는 없었다.
다만, 마지막으로 한 번은 더 죽여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어차피 다시 볼 일 없는 사이.
그렇다면 최후에 죽인 사람이 이긴 거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딱 한 번만 더 죽인 다음에 도발 좀 치다가 나가야겠다. 그럼 내가 이기는 거야.”
철컥!
스테판은 다시 무장을 챙겼고.
몇 걸음을 채 이동하기도 전에, 치열한 난전을 볼 수 있었다.
투두두두두! 쾅! 콰아앙!
계속해서 울리는 총성과, 연신 꽂히는 휴대용 로켓.
속이 뻥 뚫리는 시원한 공성이다.
문제는, 그가 당하는 입장이란 것.
‘후, 이번에 꼭 성공해야겠는데.’
벌써 여기까지 밀고 들어온 걸 보니.
마지막 기회일 가능성이 높다.
리스폰 장소에서 나오자마자 적들이 보인다는 건 레이드가 거의 막바지라는 의미니까.
“막아아!”
“미친, 저 새끼들 폭탄이 왜 저렇게 많은 거야!”
당연히 나머지 팀원들은 이를 악물고 적을 막고 있었다.
비록 전력의 차이는 있지만.
수성이 공성보다 유리한 건 상식.
잠깐이나마 격한 대치가 이어졌다.
이처럼 정신없는 와중.
저 멀리, 목표인 미다스가 총을 난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지금인가.’
철컥-!
스테판은 바로 그를 겨누었다.
동시에 핵이 작동하며 에임이 적의 머리로 고정되었다.
원래였다면 이대로 방아쇠를 당겼을 터.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면 이렇게 몰리지도 않았을 테니.
하여, 스테판은 잠시 참았다.
그리고 미다스가 다른 팀원들을 쏘려는 순간.
방아쇠를 당겼다.
‘제발, 한 번만 맞아라!’
타앙!
분명 빈틈을 노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총이 격발되는 순간 적의 시선이 스테판을 향했고.
이번에도 총알은 빗나갔다.
콰직!
이어서 그의 머리에 날아와 꽂히는 적의 총알.
“에휴…….”
스테판은 한숨을 내쉬었다.
경험상, 핵이 만능은 아니다.
고인물이라 불리는 이들은 다른 이들을 방패 삼는 등. 저마다의 방법으로 핵을 카운터치곤 했으니.
하지만 그들도.
저렇게 직접 피하지는 않았다.
아니, 피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말하는 게 정확하겠지.
‘근데 저 괴물은 어떻게 피하는 거냐고….’
감도 잡히지 않는다.
그러니 의지가 꺾일 수밖에.
“안 돼! 어떻게든 막아봐!!!”
“이거 레이드 당하면 복수고 뭐고 못한다고!”
“세르게이, 다음 계획 없어?”
아직 희망을 놓지 않았는지 귓가에는 뭐라도 해보자는 말이 연신 들려왔으나.
그가 보기에는 헛된 꿈이다.
“포기해 병신들아. 저건 못 이겨.”
이제는 알 수 있었다.
미다스는 괴물, 재난이다.
그리고 재난은 이기려 덤빌 게 아니다.
피해야지.
[게임을 종료하시겠습니까?]
“후….”
그래도 이대로 나가기는 뭔가 분했기에.
덜컥!
스테판은 소리를 증폭시켜주는 확성기를 들고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외쳤다.
“X발, 게임 뭐 같이 하네.”
* * *
핵을 사용하는 적이 사라진 이후.
레이드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애초에 성장 격차는 압도적이었던 상황.
유일하게 위협적이었던 핵 유저까지 사라지자, 누구도 그들을 막지 못한 것이다.
“끝!”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꺄! 이겼다아!”
-방플러 쉑들 컷 ㅋㅋㅋㅋㅋ
-핵 없으니까 아무것도 아니네 ㅋㅋㅋㅋ
-솔직히 미다스 어케 이기냐 ㅋㅋㅋㅋ 핵쟁이도 못 이기고 튀었는데 ㅋㅋㅋㅋㅋㅋ
-??? : 게임 x같이 하네 ㅋㅋㅋ
레이드가 끝난 이후, 남은 과정은 간단했다.
내부의 아이템을 수거한 뒤.
집을 못 쓰게 마감하면 끝이니까.
그렇게 한참.
레이드 타워와 적들의 거점을 오가며 아이템을 옮기던 찰나, 후원이 날아들었다.
띠링!
[‘여기저기’님이 1,000원 후원!]
[잠깐 못 봤는데 레이드 끝난 건가요? 집이 많이 예뻐졌네요…….]
-ㅇㅇ 레이드 끝남. 개꿀잼이었는데 이걸 놓쳤네 ㅋㅋㅋ
-예뻐진 거 맞음? ㅋㅋㅋㅋ
-저 정도면 양호하짘ㅋㅋㅋㅋㅋ
“읏챠. 집이요?”
마침 아이템도 거의 다 옮긴 참.
레이드 타워 앞에서 열심히 아이템을 정리하던 지호는 적들의 집을 바라보았다.
설산을 독식했던 스트리머 팀의 집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름 규모가 큰 집이었는데.
지금은 이빨 빠진 옥수수 같은 몰골이었다.
곳곳에 구멍이 뚫려서 거점 핵심부까지 훤히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
“솔직히 이쁜 건 잘 모르겠는데 시원은 하겠네요.”
-ㅇㅈ
-에어컨은 안 틀어도 될 듯 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사이.
다른 팀원들도 하나둘씩 레이드 타워로 모이기 시작했다.
아이템 회수가 끝나자마자.
디티가 모두를 불러 모은 것이다.
“다들… 오셨네요…….”
그렇게 팀원들이 모인 걸 확인한 디티가 뜻밖의 제안을 했다.
“여기서… 같이 불꽃놀이… 보고 갈까요?”
“불꽃놀이여?! 좋아여!”
갑작스러운 말에 미아는 반갑게 눈을 빛냈고.
“오? 근데 로스트 월드에 불꽃놀이 없지 않나요?”
왕눈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팀원들의 시선을 받은 디티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네…. 불꽃놀이는 없는데…, 비슷한 건 있어요…….”
비슷한 거?
모두들 감이 잡히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디티는 설명하는 대신.
작게 미소 지으며 레이드가 끝난 이후부터 보이지 않았던 망군을 불렀다.
“망군 님… 준비되셨나요……?”
“네, 지금 쏩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피이이이잉!
하늘 저편에서부터 공기를 찢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
그곳을 바라보자.
무언가 반짝이며 날아오고 있었다.
“헉, 디티 님?”
“저거 MLRS 아니에요?!”
“맞아요…. 저 사람들이 많이 모아뒀더라구여…….”
지호도 들어본 적 있다.
휴대용 로켓과는 차원이 다른 화력을 자랑하는, 본격적인 건물 철거를 위한 최종병기가 있다는 말.
그게 바로 저것.
다연장로켓, MLRS였다.
-mlrs가 내가 생각하는 그거 맞음????
-ㅇㅇ 다연장로켓.
-불꽃놀이래 ㅋㅋㅋ 디티도 제정신은 아니구만 ㅋㅋㅋㅋㅋ
-그럼 제정신인 사람이 이 미친 게임을 1.2만 시간 했겠누 ㅋㅋㅋ
쾅! 콰아아아! 콰아아아아아!
과연 레이드 최종병기의 위력은 엄청났다.
한 발, 한 발이 꽂힐 때마다.
폭음이 연신 울리고 건물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멀쩡한 상태였어도 데미지가 컸을 텐데, 적들의 집은 이미 반파상태였으니 버틸 수 있을 리가.
이빨 빠진 옥수수처럼 휑했던 집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캬…. mlrs는 다르네 ㅋㅋㅋㅋ
-진짜 화려한디?
-이게 불꽃놀이지 ㅋㅋㅋㅋ
어두운 밤을 수놓는 MLRS의 불길.
불꽃놀이 같기도, 캠프파이어 같기도 한 폭발은 보기만 해도 속이 뻥 뚫릴 만큼 시원시원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그들이 모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헉? 근데 쟤네가 저거 모아뒀다는 말은…….
-와;;;;;
-선빵 안쳤으면 조질 뻔 ㅋㅋㅋ
몇몇 시청자들의 채팅처럼 저들의 목적이라 해봐야 뻔하다.
십중팔구 스트리머 팀의 집이겠지.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좋았다.
승자는 이쪽이니까.
“뭐 어때요. 이제 우리 건데. 본인들이 모은 탄에 역으로 당한다. 이게 진짜 꿀잼 아닐까요?”
-ㄹㅇ ㅋㅋㅋㅋ
-아 달다 ㅋㅋㅋㅋㅋ
-니네 mlrs 쩔더라 ㅋㅋㅋㅋㅋ
원래, 가장 맛있는 라면은 남이 끓여준 라면이라는 말이 있다.
먹는 음식이 그 정도인데.
심지어 나를 찌르려고 갈아둔 무기로 적을 조진다?
이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짜릿함이었다.
“꺄! 진짜 멋있다아!”
“와, 속이 다 후련하네요.”
“나 mlrs 중독될 거 같아…. 다음부터 저거로 레이드 하자!”
당연히 그들은 신났으나.
이 장관을 순수히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 * *
다연장로켓, MLRS가 박히고 있는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
“저, 저게 뭐야!”
“X발!”
“우리 집! 안 돼!”
세르게이와 팀원들은 경악하며 소리를 질렀다.
치열한 레이드로 리스폰 지점인 침대도 침낭도 모두 사라진 상황.
아무것도 없이 덤빌 수는 없으니.
멀리서 부활한 후에 부랴부랴 활만 들고 바로 달려왔다.
한데, 그들을 반기는 건.
MLRS가 꽂히며 와르르 무너지고 있는 집이었다.
당연히 아이템도 다 털렸을 터.
이제 완전히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후…. 여기서 끝낼까?”
잠시 한숨을 쉬던 세르게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슬슬 지치지 않을까 싶어서였는데.
다행히 그를 바라보는 팀원들의 눈빛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당하고?”
“절대 못 끝내지. 끝까지 가. 끝까지 가면 우리가 이겨.”
“헛소리 말고 다시 파밍하자.”
역시.
이래야 우리 팀이지.
세르게이는 벅찬 감동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번에는 제대로 조져보자.”
방법은 많다.
지금까지 했던 대로 조심스럽게 카운터만 치면서 서서히 말려 죽이면 그만이니까.
라고 생각했는데….
야심 찬 계획은 시작하기도 전에 뜻밖의 장애물에 막히고 말았다.
[서버에서 추방당했습니다. -스테판 (사유 : 핵 사용)]
그 시작은 이미 한참 전에 게임을 종료한 핵쟁이, 스테판이 서버에서 쫓겨났다는 공지였다.
[서버에서 추방당했습니다. -이고르 (사유 : 핵 사용자와 같은 팀)]
……
…
“어?!”
“미친 핵쟁이 새끼, 절대 안 걸린다며!”
“믿었는데…!”
이어서.
끝까지 가면 이긴다며 복수를 다짐하던 팀원의 접속이 끊겼고.
다른 이들도 차례로 추방당했다.
그리고, 마침내.
[서버에서 추방당했습니다. -세르게이 (사유 : 핵 사용자와 같은 팀)]
세르게이.
그의 추방 공지까지 올라왔다.
이제는 복수도 할 수 없게 된 것.
세르게이의 입에서는 허탈한 목소리만 새어 나왔다.
“왓더…….”
* * *
[서버에서 추방당했습니다. -스테판 (사유 : 핵 사용)]
……
…
연달아 뜨는 서버 알림.
얼마 전까지 싸우던 러시아인들이 단체로 추방당했다는 공지였다.
“와! 쟤네 밴 당했다!”
“핵이나 사용하더니 꼴좋네.”
한참 신나게 폭격을 감상하던 팀원들은 환호했다가.
“캬…. 재밌었다!”
“이번 시즌은 2일 만에 우여곡절이 엄청 많았네요.”
“다들… 수고하셨어요…….”
이내 힘 빠진 목소리로 바뀌었다.
적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니, 끝났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린 것이다.
-시즌 끝인가?
-캠프파이어 했으면 끝이긴 하지 ㅋㅋㅋㅋㅋ
-ㄹㅇ 재미가 있었다 ㅋㅋㅋㅋ
그렇게 모든 상황이 끝나고 남은 건, 공허함이었다.
수학여행 마지막 날 밤 같은 분위기랄까?
방송감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왕눈이는 그 분위기를 바로 캐치했다.
“자자, 그럼 이번 시즌은 여기서 마무리할까요?”
이어진 그의 말은 이러했다.
본래 로스트 월드는 끝이 없는 게임, 게임의 목적이라 해봐야 끝까지 살아남는 게 전부다.
더 이어가 봐야 계속 레이드하며 돌아다니는 것뿐.
그럴 바엔 여기서 마무리하는 게 낫지 않냐는 것이다.
“방플 저격하는 사람들도 제대로 참교육했고, 딱 이쯤에서 끝내는 게 깔끔할 거 같은데 혹시 다른 의견 있으신 분?”
“전 좋습니다.”
“저도 찬성이에요…. 원래 이렇게 큰 전투 끝나면 시즌 마무리하는 경우도 많아서……”
비슷한 생각을 하던 참.
지호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디티를 비롯한 나머지 팀원들도 동의했다.
“그럼,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그렇게 지호의 첫 로스트 월드 합방이 성공적으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