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8화. 정면 돌파(1)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대충 허기를 채운 지호가 컴퓨터 앞에 앉았다.
방송을 하기 전이었다면 습관적으로 스포츠나 연예 뉴스부터 확인했을 텐데, 지금은 달랐다.
[배치로 미다스 까는 사람 특 : 브론즈임 ㅋㅋㅋㅋㅋ]
[미다스 진짜 피지컬은 넘사네….]
[여기 관리 안 하냐?? 알바 좀 쳐내라;;; 뭔 죄다 미다스 얘기여;;;]
[그래서 미다스 다음엔 머함??]
최근 유행인 게임을 알아보고, 커뮤니티의 반응을 살펴보는 것이 이제 그의 일과였기 때문이다.
딸깍! 딸깍!
“확실히 평소보다 핫하네.”
한참 마우스를 내리던 지호는 피식 웃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글과 댓글.
그중 상당수가 지호에 관한 내용이었으니까.
게임 방송을 하며 관심의 맛을 알게 된 지호로서는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그를 들뜨게 만드는 건.
이번에는 겜잘알 외에 다른 사이트에서도 그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다는 점이다.
“역시 오튜브 때문이겠지?”
어제 화제가 된 영상은 지호도 이미 봤다.
1분도 넘지 않는 짧은 영상.
그런데 파급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핵쟁이가 쏘는 총을 피할 수 있다고요?!! #Shorts]
[조회수 26만회 ‧ 12시간 전]
오죽하면 벌써 20만 명도 넘게 봤을 정도겠는가.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자연스레 오튜브의 영향력이 체감되었고.
동시에 필요성도 확실히 느껴졌다.
‘오튜브를 제대로 운영하려면 영상을 만들어줄 편집자가 필요하다 했었지.’
왕눈이를 비롯한 합방 멤버들에게 들어서 대강은 알고 있다.
같은 장면이어도 어떤 부분에 초점을 두냐에 따라 영상의 조회 수가 달라진다.
여기서 필요한 건 센스.
그래서 편집자가 중요하다… 까지.
문제는, 그런 편집자를 어떻게 구하냐는 건데.
“아!”
한참 턱을 만지며 고민하던 지호는 이내 손가락을 따악! 튕겼다.
그러고 보니 물어볼 만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친구인 준영.
같은 업계에 종사하고 있으니 지호 혼자 맨땅에 헤딩하는 것보다는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일단 저녁에 만나서 물어봐야겠다.’
이런 건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터.
지호는 곧바로 휴대폰을 열고 준영에게 연락을 보냈다.
* * *
몇 시간 후, 준영의 집 근처 국밥집.
따랑!
익숙한 간판을 본 지호는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그곳에 들어갔다.
“왔냐? 사장님, 여기 순대국밥 특 하나 더 주세요.”
“네! 특 하나!”
그러자 먼저 가 있겠다던 준영은 그를 보고 손을 흔들더니.
자연스럽게 음식을 주문했다.
“……?”
천천히 자리로 다가가던 지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묘한 위화감을 느꼈기 때문.
위화감의 정체는 테이블 위의 소주였다.
‘뭔 일 있나 보네.’
사실 약속을 잡을 때부터 이상하긴 했다.
평소 낮에는 워낙 바쁜 놈이라 저녁에 보자 했는데 녀석의 대답은 점심이나 먹자는 것이었다.
거기에 더해 술까지 시키다니.
그러고 보니 표정도 착잡하게 그늘져 있었다.
드륵-
지호는 대놓고 티를 내는 대신.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으며 넌지시 물었다.
“뭔 낮술이여. 벌써부터 마시면 오늘 일은 어떻게 하려고.”
예상대로, 돌아오는 대답은 평범하지 않았다.
“내가 말 안 했나? 나 당분간 백수여. 며칠 쉬다가 일 알아봐야지.”
“엥? 갑자기?”
지호는 또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준영은 스트리머의 영상을 편집하는 편집자다.
게다가 프로게이머 출신 대기업 스트리머인 에이푸와 전속으로 계약한 상태기도 했었고.
한데, 갑자기 백수라니?
의아함도 잠시.
“크…….”
시원하게 소주를 들이킨 준영이 다시 잔을 채우며 말했다.
“별 건 아니고. 내가 계약한 스트리머, 이번에 군대 오라고 영장 나왔다더라. 페이도 괜찮게 쳐주고 좋았는데, 다른 곳 알아봐야지 뭐.”
“그랬냐.”
지호는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물론 준영의 말처럼 별일 아닐 수도 있다.
‘인터넷에도 얘기가 돌 정도로 능력은 확실한 놈이니까.’
대형 스트리머 에이푸의 편집자.
즉, 준영이 영상을 잘 뽑아낸다는 건 이제야 오튜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지호도 들어봤을 정도다.
당연히 금방 다른 일을 구하겠지.
하지만 사람인 이상 착잡한 기분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지호는 조용히 준영의 술잔을 채웠다.
“크으…. 역시 낮술이 개꿀이여. 그래서 어쩐 일로 불렀냐.”
그렇게 반 병 정도 술을 건넸을 즈음.
준영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과연 눈치 빠른 놈.
용건이 있다는 걸 알아챘나 보다.
“아, 다름이 아니라.”
제대로 각 잡고 오튜브 운영해보려고 하는데 괜찮은 편집자 있으면….
이라고 말하려던 지호는 잠시 멈칫했다.
계약한 스트리머가 군대에 간다고?
그 말인즉, 지금은 프리하다는 소리다.
‘실력은 확실한 데다가, 다른 일자리도 찾아본다고 했었고. 그럼 굳이 다른 사람을 소개받을 게 아니라.’
생각을 바꾼 지호는 바로 준영에게 물었다.
“나 이제 오튜브 채널 본격적으로 키워보려고 하거든.”
“엉.”
“그래서 말인데, 나랑 일 같이 할래?”
“……?”
“원래는 너 아는 편집자 있으면 소개받으려고 했는데, 너 지금은 백수라며. 나랑 전속으로 계약하자.”
“뭐?”
순간 준영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슬슬 오튜브를 운영해야겠다는 말은 몇 번 들었다.
근데 하필 이 타이밍에?
장난인가 싶어서 짜증스럽게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확신에 찬 지호의 눈빛을 볼 수 있었다.
‘진지한 거 같은데.’
준영은 차분히 생각에 잠겼다.
갑작스럽긴 하지만 나쁘지 않은 이야기였다.
어차피 그는 백수가 된 상황.
굳이 알아보지 않고도 새 일자리가 생긴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중요한 건.
‘조건이겠지.’
그는 프로다.
아무리 친구라 해도 일에 관한 이야기는 확실하게 해야 맞다.
“조건은?”
준영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물었고.
대답은 기다렸다는 듯 바로 돌아왔다.
“자세한 건 협의해야겠지만, 일단 지금 생각하는 건 기존에 받던 월급에 오튜브 수익 일정 퍼센트까지 추가로.”
“뭐?”
준영은 순간 벙찐 표정을 지었다.
잘못 들었나 싶을 정도로 화끈한 조건이었으니까.
보통 편집자들은 건당이나 월급으로 페이를 받는 경우가 많다.
당장에 준영만 해도 그랬고.
거기에 오튜브 수익의 일부를 추가로 얹어준다니.
“야, 내가 원래 받던 돈만 해도 어지간한 대기업 월급이여. 감당할 수 있겠냐.”
이쪽 업계를 모르면 그럴 수 있다.
준영은 일단 현실을 일깨워주려 했는데.
정작 지호의 대답은 담담했다.
“알아 임마. 대충 듣긴 했거든, 괜찮은 편집자들이 보통 얼마를 받는지”
왕눈이를 비롯한 합방 멤버들에게 들어서 대강은 알고 있다.
한데, 예전이면 모를까.
지금의 지호에게 편집자의 수당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근데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너도 알다시피 나 이번 달에 받을 정산액만 해도 예전 연봉 절반이거든.”
게다가.
아직 시기상조라는 생각에 전부 거절하는데도 계속 들어오는 광고들의 단가는 입이 벌어질 정도였다.
그러니 태연히 말할 수 있는 거고.
“하긴, 너 미다스였지. 평균 시청자 1만 넘는 대기업.”
여유로운 대답에 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대기업 스트리머.
그중에서도 평균 시청자 수가 1만이 넘어가는 이들의 수익은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지호처럼 매번 슈퍼플레이를 펼치는 이들의 경우에는 후원도 남들의 몇 배는 들어올 정도고.
긍정적인 반응에 힘입은 지호는 또다시 자신의 생각을 이어갔다.
“일단 들어나 봐. 내가 너한테 제안하는 게 단순한 편집자면 저런 조건을 걸지도 않았을 거거든.”
오튜브 채널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은 있지만.
지호는 그쪽 분야를 아예 모른다.
‘그럴 땐 전문가한테 맡기는 게 확실하지.’
거기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저 정도 투자는 아깝지 않다.
“단순한 편집자로 고용하는 게 아니라, 채널을 같이 성장시킬 동업자를 원하는데. 어때?”
그간 지호가 찾아본 바로는 이런 식으로 채널을 운영하는 이들이 몇몇 있었다.
중요한 건 편집자의 실력인데.
준영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었다.
결정적으로.
“나한테 스트리머 해보라고 추천한 게 너잖아. 나는 그 안목을 믿는 거야. 그러니까 같이 해보자.”
“후….”
준영은 잠시 관자놀이를 짚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해보자. 근데 바로 시작은 못 하겠다.”
“왜? 너 어차피 쉰다며.”
“일단 실력은 보여줘야지. 며칠만 기다려봐. 채널에 올릴 영상 기깔나게 만들어서 보내줄 테니까. 자세한 얘기는 그다음에 하자고.”
“기대한다.”
실력을 보여준다는 준영의 말.
그리고 동시에 보인 자신감 넘치는 표정에 지호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일단 먹자, 다 식겠다.”
이처럼 짧고 굵었던 대화가 끝나자.
화제는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아, 너 호박왕이라는 사람 알아? 합방하자고 연락 왔던데.”
“오! 호박왕? 최초로 배치고사 다이아를 받은 미다스 초대석이라.”
지호가 건네준 트리스 쪽지함을 읽어보던 준영은 반색했다.
“괜찮은데? 원래 호박왕이 말도 안 되는 논란 정리는 기가 막히게 잘하거든. 너 지금 억까당하고 있는 거 한 번에 해결되겠는데?”
“아, 그렇더라. 일단 합방은 다음 주쯤에 하기로 했거든.”
지호도 대충 알고 있다.
준영의 말처럼 호박왕은 논란 정리에 일가견이 있는 스트리머였다.
겜잘알을 비롯한 커뮤니티에서 시답잖은 소리가 나오고 있는 입장이니 분명 도움이 될 터.
‘근데, 그건 내 스타일이 아니지.’
자신에게 닥친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지 왜 남의 손을 빌린단 말인가.
용납할 수 없었기에.
지호는 호기롭게 말을 덧붙였다.
“근데 인터넷에 도는 말들은 그 전에 정리하려고.”
* * *
언제나 싸움이 끊이질 않는 게임 커뮤니티, 겜잘알.
그곳은 오늘도 시끌벅적했다.
[솔직히 피지컬로 미다스 까는 건 억까 아니냐 ㅋㅋㅋㅋㅋ]
[배치 결과가 버그인 거 아니면 큐 돌려서 증명해야지 왜 다른 게임 하겠냐 ㅋㅋㅋㅋ]
[ㄹㅇ ㅋㅋㅋㅋ]
[프로게이머도 아니고 종겜스가 잠깐 다른 게임 한다고 억까하는 수준 ㅋㅋㅋㅋ]
[에휴, 알바 새끼들 열일하네;;]
특히 지금 그들이 가장 열을 올리고 있는 화제는 미다스였다.
어제보다 조금 식은 편이지만.
그래도 치열한 싸움이 이어지던 와중, 당사자의 방송이 켜졌다.
[스트리밍을 시작합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켠 방송.
아직 송출도 시작하지 않은 상황이라 어두운 화면만 보일 뿐이었다.
한데, 반응은 굉장히 격했다.
-미하!!!
-미다스가 왔다!!!!!!
-오늘 뭐함? 오늘 뭐함? 오늘 뭐함?
-알바 사장님 오셨네 ㅋㅋㅋㅋ
-이 시청자수 반은 거품이라던데 사실인가요??????
-쫄아서 퓨처 워 못 돌린다는데 해명 좀 ㅋㅋㅋㅋㅋㅋ
빠르게 올라가는 인사들과.
사이사이 섞여있는 비꼬는 채팅들.
[‘ㅇㅇ’님이 1,000원 후원!]
[오늘은 퓨처 워 랭겜 돌리나요? 또 핑계대고 안 돌리는 건 아니죠?]
심지어 몇몇은 후원으로까지 그를 비꼬고 있었다.
짜증이 날 만도 하거늘.
“안녕하세요, 미다스입니다.”
지호는 태연하게 인사를 건네며 준비했던 멘트를 이어갔다.
“인터넷에 저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돌더라고요.”
모른 척 넘어간다.
라는 선택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호는 다른 선택을 했다.
“바이럴이니 뭐니 하는 소리는 말도 안 되는 억지니 굳이 해명할 가치도 없고.”
정면으로 부딪치고.
“퓨처 워 랭겜을 안 돌린다는 말도 있던데. 이건 확실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또다시 장작을 넣었다.
-이걸 직접 말하네 ㅋㅋㅋㅋ
-뭔데 이렇게 뜸을 ㅋㅋㅋㅋㅋ
-큰 거 오나???
떡밥이 조금 더 활활 타도록.
사람들의 관심이 더 집중되도록.
그리고는 예상대로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했을 때, 결정타를 날렸다.
“다음 주까지 마스터 찍는 거 보여드릴게요.”
-ㅋㅋㅋㅋㅋㅋㅋ
-??????
-미친 ㅋㅋㅋㅋㅋ
-마스터 찍으면 인정이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 *
“캬……. 지호 저거 자신감 하나는 진짜 기가 막힌다니까.”
방송을 보던 준영은 헛웃음을 지었다.
논란을 깨겠다는 말은 들었는데.
저런 식으로 맞부딪힐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마스터라…. 빡세긴 한데 성공만 하면 논란도 확실히 박살 내고, 인지도도 더 올라가겠지.’
애초에 다이아 티어도 천상계라 불릴 정도로 수준 높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면, 상위 0.1%만 찍을 수 있다는 마스터 티어는?
<하늘 위의 하늘>
이라는 말로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다이아들이 우러러볼 정도로 차원이 다른 영역이었으니까.
남들은 몇천 판을 돌리고도 엄두도 못 내는데.
그걸 일주일 만에 찍겠다니.
당연히 화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 말은 많은 관심이 쏠릴 거라는 소리고.
지호가 언제나 그랬듯.
성공하면 그만큼 얻는 것도 많을 것이다.
물론 실패하면 나락이겠지만 준영은 지호가 성공할 거라 믿었다.
아니, 성공해야만 했다.
그래야 오튜브 채널이 시작부터 성공적으로 출발할 수 있을 테니.
“그래, 한번 해봐라. 결과만 내면 영상은 기가 막히게 뽑아줄 테니까. 같이 떡상 가보자.”
그는 기대와 긴장으로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실행시켰다.